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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01
S#1. 경혜공주 사저 인근 (밤)
토할 듯 가쁜 호흡 소리. 피땀 범벅인 승유(20대 초반, 男)의 의식 혼미한 얼굴.
칼을 든 무뢰배1이 앞장서고, 횃불을 든 무뢰배2,3이 승유를 부축하듯 끌고 온다.
곳곳에 관복차림의 널브러진 시체들. 그리고 주인 잃은 말들도 몇 마리 주위를 배회한다.
그 한쪽에 승유를 거칠게 무릎 꿇리는 무뢰배2,3.
힘겨운 승유의 눈에 바로 옆 시체의 손에 쥐여있는 칼이 보인다. 무뢰배들의 눈치를 살피는 승유.
무뢰배1 : (잔인한 웃음) 저승길이 외롭지는 않을 거다.
무뢰배1, 그대로 칼을 곧추 세워 내리치는데, 순식간에 시체에 있던 칼을 들어 무뢰배1의 배를 찌른 승유.
무뢰배2,3, 놀라 들고 있던 횃불을 던지고 칼을 뽑으려는데, 승유의 칼이 먼저 무뢰배2의 목을 친다.
그 사이 무뢰배3의 칼이 승유의 팔을 스치고, 칼을 놓친다.
무뢰배3의 칼이 다시 승유를 향하는데.. 그대로 양손으로 칼날을 잡아 막는 승유.
무뢰배3과 승유의 필사의 힘겨루기. 칼날에 승유의 피가 묻어난다.
결기 가득한 눈빛으로 칼날을 무뢰배3에게 돌리는 승유.
마침내 무뢰배3의 목 밑으로 승유의 칼이 들어간다. 그대로 숨통이 끊겨 쓰러지는 무뢰배3.
거친 호흡을 몰아쉬는 승유의 눈빛이 다급하게 말을 찾는다. 말에 다가가 간신히 올라타는 승유.
S#2. 산길 (밤)
다급하게 달리는 승유의 말. 마상 위 승유의 절박한 눈빛 위로.
수양(E) : 어디냐?
S#3. 경혜공주 사저 마당 / 플래시백 (밤)
씬1의 이전 상황.
수양대군(30대 후반, 男)의 섬뜩한 얼굴. 그 앞에 무릎 꿇려 있는 피땀범벅의 승유.
수양 주변에 함귀, 칠갑, 막손 일당들.
수양 : 네 아비가 숨어있는 곳이 어디냐?
대답처럼 수양을 죽일 듯 쏘아보는 승유.
이때 황급히 마당으로 들어서는 무뢰배1.
무뢰배1 : 김종서가 숨어있는 곳을 찾았사옵니다!
승유 : (놀라서 보는!)
수양 : (함귀 일당을 향해) 이번엔 확실히 김종서의 목을 거둬 오너라!
함귀무리 : 예!
살기등등한 함귀 뒤를 따르는 칠갑, 막손.
소리치며 그들에게 달려들려던 승유. 그런 승유의 뒤통수를 가격하는 무뢰배의 칼자루.
S#4. 야산 일각 (밤)
야산을 질러 달리고 있는 승유의 말. 마상 위에 승유는 더욱 더 박차를 가한다. 결연한 표정.
S#5. 야산 아래편 길 (밤)
대지를 진동하며 요란하게 달리는 말발굽.
칠흑 같은 어둠 속. 함귀와 칠갑, 막손이 탄 말들, 기괴한 말울음 소리를 내며 저승사자처럼 두렵게 달려온다.
S#6. 거리 (밤)
쏜살 같이 달려가는 승유의 말.
S#7. 김승규의 처가 앞 (밤)
말에서 내린 승유, 주위를 경계하며 집 앞으로 다가가는데, 집 안에서 뛰쳐나오는 노비 몇 명 보인다.
승유, 반가운 마음에 그들에게 향하는 순간! 어느새 달려 나온 칠갑과 막손, 노비들의 등 뒤에 칼을 꽂아 넣는다!
승유가 놀랄 새도 없이 도로 집으로 들어가 버리는 칠갑과 막손.
승유, 집안을 향해 달려 들어간다!
S#8. 김승규의 처가 마당 (밤)
다급히 들어온 승유의 눈, 경악에 찬다!
이마에 광목천을 댄 김종서가 이미 의식을 잃은 채 무릎을 꿇고 앉아있다.
김종서의 주위를 둘러싼 함귀의 무리들.
승유 아버지! 부르짖는 순간, 보란 듯 함귀의 칼이 김종서의 목을 내려친다!
절규를 하며 달려드는 승유의 팔을 칼로 스치는 칠갑! 그래도 달려드는 승유의 다리를 스치는 막손의 칼!
털썩 무릎 꿇은 승유, 멍하니 아버지 김종서를 본다. 오열하며 아버지를 향해 처절하게 기어가는 승유.
승유를 비웃는 함귀 무리들의 비열한 웃음소리.
그 때, 털썩! 땅위로 무너지는 승유... 더는 움직일 힘이 없다... 흐릿한 승유의 시야에 칼을 들고 다가오는 함귀 보인다...
점점 가물가물한 승유의 눈....
#플래시백 : 행복했던 과거의 한 때. 말 위에 올라 행복하게 웃는 승유와 세령.
도로 현재.
함귀의 칼날 휘익 어둠 속에 빛나면 풀썩 감기는 승유의 눈에서, 암전.
S#9. 수양대군 邸 / 마구간 (오전)
암전 위 자막 {1년 전}
화면 밝아지면 화면 가득 기대감에 반짝이는 눈빛의 세령(20세,女), 살금살금 몸을 낮추고 다가간다.
마구간 앞 기둥에 매어 있는 말 한 마리.
말이 소리 낼까 두려워 쉿! 하고 조심시킨 세령, 어떻게든 친해보려고 천천히 말 등을 쓰다듬는다.
세령 : 참으로 점잖구나. 참으로 음전해. 한 번만. 딱 한 번만. 알았지?
심호흡을 한 세령, 등자를 밟고 올라타는데, 순순히 세령을 태워주는 말. 성공했다 싶은 세령의 얼굴 환해지는데,
여리(E) : 아가씨!
그 소리에 깜짝 놀란 말이 발버둥 친다. 그 바람에 땅바닥에 사정없이 떨어진 세령.
여리, 놀라서 ‘아가씨!’를 부르며 달려든다.
아파서 얼굴 찌푸린 세령, 확 여리를 째려본다.
여리 : (미안해서) 어이구, 다친 델 또 다치셨습니까요?
세령 : (속상한) 거의 다 됐었는데.
여리 : 요녀석 때문에 다리가 온통 멍투성이잖아요! 안방마님께 들키시면 대체 어쩌려구 이러십니까?
세령 : 웬일로 저놈이 날 태워주었다니까.
여리 : (부축하며 다급한) 얼른, 얼른 일어나셔요. 마님께서 아까부터 나와 기다리십니다.
그 말에 서둘러 일어나는 세령.
S#10. 수양대군 邸 / 마당 (오전)
마당에 선 굳은 얼굴의 윤씨(30대 후반, 女), 세령을 기다리는 중.
그 앞에 나란히 서서 윤씨의 눈치 보는 숭(18세, 男)과 세정(17세, 女).
얌전히 걸어 나오는 세령과 여리.
발목이 삐끗해 저도 몰래 얼굴이 찌푸려지는 세령, 못마땅한 눈길의 윤씨를 의식해 금세 아무렇지 않은 척한다.
불안하게 저를 보는 숭과 세정 옆에 가서 서는 세령.
윤씨 : (매서운) 왜 이리 늦은 게야? (여리에게) 니 상전이 또 마구간을 기웃댄 게냐?
여리 : 아, 아닙니다요.
윤씨 : 바른 대로 대지 못할까?
여리 : (난감해서 세령을 보면)
세령 : (할 수 없다) 어머니, 실은 소녀가- (하는데)
수양(E) : 그럴 리가요?
다들 보면 온화하게 웃고 서 있는 수양대군(30대 후반, 男)
자막 {수양대군. 세종의 차남}
수양 : 발목을 다쳐 종학에도 가지 못한 아이에요. '자막 {종학: 종친들의 교육기관. 일종의 왕족학교}'
(세령 보며) 또 말에 오를 리가 있겠소?
세령 : (아버지 보며 슬쩍 미소)
수양 : (엄한 척) 오랜만의 입궐이니라. 왕가의 일원으로서 기품을 잃지 말거라.
세령 : (얌전한 척) 예. 아버님.
수양 : (두루) 종친이 불학무식하다는 말을 들어서는 아니 돼. '자막 {종친: 임금의 친척. 왕족}'
모두 열과 성을 다해 강론에 임하여라.
다들 : 예.
목례하고 나가는 세령과 숭과 세정, 여리도 뒤를 따른다.
자식들의 뒷모습을 흐뭇하게 보는 수양.
윤씨 : 그 댁에 사람은 보내셨습니까?
수양 : ...지금쯤 당도했을 거요.
윤씨 : (얼굴 환해지는)
S#11. 김종서의 邸 전경 (낮)
승규(E) : 아버님!
S#12.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마당 (낮)
마당에 서 있는 임운(20대 중반, 男). 임운을 불편하게 의식하며 서 있는 김승규(20대 후반, 男).
드르륵- 사랑채 문이 열리고 모습을 드러내는 김종서(70대 초반, 男)
자막 {김종서. 우의정}
공손히 예를 갖추는 임운을 무심히 보는 김종서.
승규 : 수양대군께서 서찰을 보내셨답니다.
김종서 : (의외다) 서찰?
임운의 손에 들린 서찰을 보는 김종서. 의심스런 눈빛.
S#13.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낮)
서찰을 가만히 바라다보는 김종서. 옆에는 김승규가 앉았다.
긴장한 얼굴로 서찰을 펼쳐 보는 김종서. 잠시 들여다보더니 서안 위에 내려놓는다.
심각해진 김종서를 보던 김승규, 서찰을 들어 읽는다. ‘請婚(청혼)’ 자막 {청혼} 이라는 단어가 눈에 들어온다!
승규 : (놀란) 청혼이라니요?
김종서 : (골똘히 생각에 잠긴)
승규 : 수양대군이 그 댁 여식과 승유의 혼사를 청하고 있질 않습니까?
김종서 : 승유는... (매섭게) 또 안 들어온 게냐?
S#14. 운종가 기방 / 객방 (낮)
환한 햇살이 단잠에 빠진 승유의 얼굴을 비춘다.
지난 밤 과음의 흔적이 남은 술상. 쓰러진 술병과 먹다만 안주들.
옷고름이 다 풀어헤쳐진 흐트러진 승유 곁에 대자로 뻗어 자고 있는 정종.
조심스레 문을 열고 승유의 심의를 들고 들어온 기녀1, 승유를 깨운다.
기녀1 : 나으리! 해가 중천입니다.
승유 : (반응 없는)
기녀1 : (어깨 살살 흔들며) 어서 일어나셔요! 입궐하셔야지요.
그 때, 부스럭거리며 얼굴이 드러난 정종. 꾀죄죄한 차림새.
기녀1 : (보고 언짢은) 같은 동무인데 어찌 이리 달라.
승유는 여전히 잠에 빠졌다.
기녀1, 깨우는 건 포기하고 가만히 얼굴을 들여다본다. 눈, 코, 입, 두루두루 잘 생겼다.
기녀1 : (푹 한숨 쉬고) 그리 수작을 걸어도 안 넘어오시니. (들고 있던 옷 냄새를 들이 맡는)
어쩜 향마저도 이년의 음심을 동하게 할꼬.
안타까운 눈빛으로 나가려던 기녀1, 갑자기 짓궂은 눈빛으로 승유를 본다.
S#15. 운종가 거리 (낮)
옷매무새(심의 차림) 여미며 정신없이 달려 나온 승유, 말에 올라탄다.
해사한 얼굴로 말을 달리기 시작하는 승유. 한쪽 볼에 입술연지 자국이 선명한 것도 모르고.
세령(E) : 혼담?
S#16. 종학 앞 (낮)
열린 대문 위 종학(宗學) 현판. 자막, {종학: 종친들의 교육기관. 일종의 왕족학교}
입구에 선 세령, 놀란 얼굴로 세정을 보고 있다.
세령 : 너, 허튼 소리 마.
세정 : 어머니 아버지 말씀하시는 거 몰래 들은 건데? 김종서 대감 댁에 혼담을 넣는댔어.
세령 : 진정 내 혼담인 게야?
세정 : 그래. 언니 시집가는 거 싫지? 아버지께 말씀드려, 날 보내라고.
(꿈꾸듯) 주상전하도 함부로 못한다는 우상 댁의 막내자제. 김. 승. 유. 함자도 근사하지 않아?
세령 : (못마땅해서) 어서 자미당에나 들자. 공주마마께 문후 여쭤야지.
세정 : (괜히 심통 나서) 언니나 가.
세령 : 뭐?
세정 : 세상에서 자기가 제일 곱고 잘난 줄 아는 공주마마, 아니꼬워.
세령 : (황당하게 보는데)
S#17.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방 한가운데 발이 쳐진 강론방. 발 이편과 저편의 출입문이 따로 나 있는 구조.
발 이편에 서책을 앞에 두고 앉은 염직강(40대 초반, 男)
발 너머 앉은 경혜공주의 자태 어렴풋이 보인다.
염직강 : ‘재상불교’면 ‘고이불위’라. {자막: 在上不驕 高而不危}
발 너머, 냉랭하고 도도한 공주의 목소리.
공주(E) : 높은 자리에 있으면서도 교만하지 아니하면 높으나 위태롭지 않고,
염직강 : ‘고이불위’면 ‘소이장수귀야’ (하는데)
경혜(E) : ...스승님.
염직강 : 예, 공주마마.
경혜(E) : 제 서책에는 방금 읽어주신 부분이 보이질 않습니다.
염직강 : (힐끔 공주 보고) 그럴 리가요.
경혜(E) : 분명 없사옵니다.
염직강 : 그 서책은 소신이 수백 번도 더 읽은 것을 드린 것이온데...
경혜(E) : (싸늘하게) 제가 지금 스승님께, 거짓이라도 아뢴단 말씀입니까?
염직강 : 그것이 아니오라..
경혜(E) : 확인해 보시지요.
염직강 : (놀라서 보는) 예?
경혜(E) : 오셔서 직접 확인해보시란 말입니다.
염직강 : (당황하는)
경혜(E) : 제가 그리 가서 봬드려야겠습니까?
염직강 : (진땀) 아니, 아니옵니다. 소신이...
일어나 발쪽으로 간 염직강, 잠시 망설이더니 발을 올린다.
발 너머... 느린 화면으로 드러나는 경혜공주(20대 초반, 女)의 용모. 화려한 복색에 요염하고 도도한 자태, 꼭 한 폭의 그림 같다.
오만한 표정으로 염직강을 똑바로 보는 경혜공주.
황홀한 공주의 자태에 저도 몰래 눈이 휘둥그레진 염직강, 일부러 시선을 피하며 발 너머로 건너간다.
그런데도 저를 주시하는 공주의 도도한 눈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공주의 곁으로 주춤주춤 다가가 서책을 붙들고 살펴보는 염직강.
경혜 : (일부러 책장을 넘기며) 다음 장을 보시지요.
하다가 겹쳐진 염직강의 손과 경혜공주의 손길.
놀라서 고개를 든 염직강의 바로 앞에 경혜의 아리따운 얼굴이 있다. 염직강을 지그시 바라보는 경혜공주의 눈길.
경혜의 얼굴, 점점 염직강의 얼굴에 가까워진다.
어찌할 바를 몰라 볼이 발그레해지는 염직강 어느새 거의 입맞춤이라도 할 듯 가까워진 두 사람의 얼굴.
은금(E) : 아유, 망측해라!
놀란 염직강 보면 눈살 찌푸린 채 자신을 보고 있는 은금.
당황해서 서둘러 발을 걷고 나가버리는 염직강.
경혜공주의 얼굴에 번지는 회심의 미소.
S#18. 종학 / 집무실 (낮)
넋이 반쯤 나가 앉아 있는 염직강.
여러 명의 직강들 못마땅한 얼굴로 앉아있고, 초조한 얼굴로 서성이는 이개(40대 중반, 男).
직강2 : (분노) 공주가 미색을 무기 삼아 스승을 희롱하다니요! 어디 가당키나 한 일입니까?
이번 참에 아예 공주마마 강론을 작파하십시다!
이개 : 들어가는 족족 쫓겨나오니 종학 스승들의 위신이 땅에 떨어졌어요.
직강3 : (불쾌한) 그게 어디 우리 탓입니까? 임찬규, 이응수, 길병훈 직강이 줄줄이 사직했어요. 그만큼 놀려 먹은 걸로 모자라
(염직강 보며) 염직강까지.
이개 : (못마땅한) 내 그리 발을 올리지 말라 단단히 주의를 주었거늘.
염직강 : (갑자기 주섬주섬 싸서 일어난다)
이개 : (놀라서) 왜 이러십니까? 공주마마께서 처소에서 기다리고 계세요. 강론은 마치셔야지요.
염직강 : (도리도리) 그저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황망히 나가버린다)
이개 : (망연히 보다가 직강2에게) 오늘만 공주마마를 맡아주시지요.
직강2 : 일없소. 무식한 여종친들만으로도 골머리가 빠지외다.
이개 : (직강3을 애처롭게 보면)
직강3 : (빈 책상보며) 새로 온 직강한테나 맡기시지요.
이개 : (역시 책상보며) 대체 이놈은 왜, (하는데)
삐거덕 문 열리는 소리에 이어 승유, 살금살금 걸어 들어온다.
시선 일제히 쏠리면, 연지자국 볼에 찍힌 채 겸연쩍게 미소 짓는 승유.
S#19. 종학 일각 (낮)
승유를 못마땅하게 보며 왔다 갔다 걷는 이개. 능청스럽게 스승의 시선을 받는 승유.
이개 : (멈춰서 모른 척) 어디서 오는 길인고?
승유 : 소인, 서고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졌다가 그만.
이개 : (어이없는) 뭐라? 독서삼매경? 대체 어느 서고에서 기녀들이 책을 읽어준단 말이냐. (버럭) 네놈 얼굴부터 들여다 보거라!
승유 : 얼굴이요? (손으로 여기저기 문질러서 보고) 어? 이게 뭡니까?
이개 : 그걸 네 놈이 알지 누가 아느냐? 어서 공주마마께 들어가거라.
승유 : (이해 안 되는) 공주마마의 스승은 염도열 직강 아니십니까?
이개 : ...그만두셨다.
승유 : (알겠다) 또 공주께서 스승을 우롱하였습니까?
이개 : (한숨 쉬는)
S#20. 경혜공주의 후원 (낮)
경혜공주 처소 뒤 은밀하고 화려한 후원.
다채로운 색감을 보이는 각양각색의 화초들을 심어놓았고, 호화로운 새장 안에 이국적인 새들도 몇 마리 놀고 있다.
화초들을 살펴보는 경혜, 조금이라도 시든 잎사귀들을 가리키면,
옆에서 시종하는 은금이 작고 화려한 가위로 가차 없이 잘라낸다.
경혜 : (화초에 시선 두며) 한심하지 않느냐? 도덕군자인 척 구는 사내들이 쩔쩔 매는 꼴이라니.
은금 : 그래도 좀 지나치셨습니다.
경혜 : (매섭게 보는)
은금 : (금세 입 닫는)
나인 : 공주마마. 세령 아가씨 드시옵니다.
그 말에 뒤를 보는 경혜공주. 아픈 다리를 약간 절뚝이며 걸어오는 세령.
반가운 얼굴이 되는 경혜.
S#21. 경혜공주 처소 / 옷방 (낮)
놀라울 만큼 넓고 화려한 공간. 각종 장삼, 원삼, 저고리, 치마 등 사방을 둘러싼 화려한 복색들.
방 가운데 자개장에는 노리개, 떨잠, 뒤꽂이, 반지 등이 진열되어있고,
한쪽 가에는 자개 신발장에 색색의 비단신들이 수십 켤레나 놓여있다.
그 비단신들을 덤덤한 표정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세령.
곁에는 장신구를 고르는 경혜공주. 수많은 노리개들 중 한 개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면 냉큼 꺼내서 바꿔 달아주는 은금.
경혜 : (마음에 안 든다) 대체 아녀자가 말은 왜 타겠다는 게야? (다른 걸 가리키며) 참으로 볼썽사납구나.
남정네들이나 하는 짓거리에 그리 몸을 상하다니.
은금 : (또 바꿔 달아준다)
세령 : 그러시는 마마는 다 신지도 못할 비단신들을 왜 자꾸 모아들이십니까?
경혜 : (그런 대로 노리개가 흡족한) 갖고 싶으니까.
세령 : 저도 마찬가집니다. 타고 싶으니까. 타고 싶은데 타지 말라니까 더 타고 싶습니다.
경혜 : 말 등에 앉아보지도 못했다면서.
세령 : (억울한) 앉긴 했습니다, 잠시지만.
경혜 : (못 말린다는 도리도리) 그리 혼쭐이 나고도.
은금 : 공주마마, 다시 강론에 드실 시각입니다. 세령 아가씨도 여종친반에 드셔야죠.
경혜 : 강론, 강론. 따분하기 그지없구나. (투정) 내 안 갈 것이야.
세령 : 공주마마! 그러다 주상전하께서 아시는 날엔,
경혜 : (자신감) 아바마마께서 나를 어쩌실 수 있는 분이더냐?
세령 : (밉지 않게 흘기는)
S#22. 대궐 일각 (낮)
종학으로 향하는 길. 말없이 걷는 경혜와 세령. 세령,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다.
세정(E) : 김종서 대감 댁에 혼담 넣는댔어.
그런 세령을 의아하게 보는 경혜.
경혜 : 무슨 생각을 그리 하니?
세령 : 시집가서 갇혀 살면 마마의 심정을 십분 이해할 거 같아요.
경혜 : (의아한) 무슨 소리냐?
세령 : 마마는 이 깊숙한 궁 안에 갇혀서 갑갑하지도 않으세요?
경혜 : (살짝 자존심 상해) 뭐가 갑갑해? 궁이란 데가 없는 게 없는 곳인데.
내 후원에 가보아라. 조선 땅에선 볼 수 없는 신묘하고 기이한 화초들이 얼마나 많은지 아니?
세령 : 전 그렇게 가꿔진 것들보다 들판에 제멋대로 핀 꽃들이 훨씬 더 좋습니다.
경혜 : (기분 상해서 보는데)
은금(E) : 마마!
그 때, 멀리서 달려온 은금 서둘러 예를 갖추고.
은금 : (숨 몰아쉬며) 어떤 분인지 알아냈습니다.
경혜 : (짜증 섞인) 아직도 들어올 자가 남았다더냐?
은금 : (숨을 고르고) 직강 김승유랍니다.
경혜 : 김승유?
은금 : 왜 우상 대감 댁 막내아들 말입니다.
세령 : (알 듯 말 듯해서 입으로) 우상 댁 막내.... (하다 번뜩 스치는!)
세정(E) : 우상 댁의 막내자제 김. 승. 유.
놀란 세령, 눈이 동그래져 은금을 보는!!
S#23. 종학 / 복도 (낮)
긴 복도를 태평한 얼굴로 걸어오는 승유.
이개(E) : 절대 공주마마와 네 사이의 발을 걷어서는 안 된다. 명심, 또 명심하여라.
뭔가 결심한 표정이 되어 강론방을 향하는 승유.
S#24. 종학 / 공주 강론방 앞 (낮)
강론방 앞에 시종 중인 나인. 옷매무새를 가다듬은 승유.
승유 : 고하시게.
나인 : 공주마마. 직강께서 납시었습니다.
스르르, 나인이 문을 열어주면 들어가는 승유.
S#25.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격식이 몸에 밴 승유, 천천히 들어와 정중히 절을 한다.
발 너머. 맞절하는 공주의 실루엣.
승유 : 공주마마. 직강 김승유라 하옵니다. 명성이 자자하신 마마를 모시게 되어 지극한 광영이옵니다.
공주 : (...)
승유 : (여유 있는 미소로 놀리듯) 소신이 늦어 언짢으셨사옵니까? 그 아리땁다는 목소리조차 안 들려주시니.
(피식 웃고) 효경을 펼치시지요.
책을 펼치는 승유.
발 너머 앉아 있는 공주의 손, 책을 펼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시선 올라가면 화려한 복색을 한 채 앉아 있는 어이없는 표정의 세령!!
S#26. 대궐 / 건춘문 앞 (낮)
손짓으로 가마를 세우는 수문장(50대, 男). 가마꾼들이 세운 가마 곁에는 긴장한 표정의 여리가 서 있다.
수문장 : 어느 댁의 뉘신가?
여리 : 수..수양대군 댁의 세령 아가씨입니다.
잠시 가마를 보더니 통과하라는 손짓. 휴- 한숨 쉬고 가마꾼들을 재촉해 나가는 여리.
S#27. 가마 안 (낮)
흔들리는 가마 안. 세령의 옷을 입고 앉은 경혜, 다소 긴장된 얼굴.
#플래시백 : 제1화 장면22의 이후 놀란 경혜의 표정.
경혜 : 진정 김승유가 네 낭군감이란 말이냐?
세령 : (시무룩한) 예. 혼담을 넣으셨답니다.
경혜 : (그렇구나)
세령 : (번뜩) 마마, 혹 궐 밖에 나가보고 싶지 않으세요?
경혜 : 궐 밖? 강론은 어찌 하구...
세령 : 제가 들겠습니다. (의지에 불타) 제 눈으로, 봐야겠어요.
도로 현재. 여전히 긴장된 경혜공주의 얼굴.
그 때, 드르륵, 가마창이 열리고 나타난 여리의 얼굴.
여리 : 공주마마께서라도 세령 아가씨를 말려주셔야지, 같이 이리 하시면 쇤네는 어찌합니까?
경혜 : (매섭게) 한 번만 더 공주마마라 부르면 물고를 낼 것이야.
여리 : (흠칫 뒤로 물러나는)
S#28.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언짢은 얼굴로 앉아 있는 세령. 효경 강론 중인 승유의 목소리 들린다.
승유(E) : 삼종지도라 함은 무엇입니까?
발 틈으로 승유의 얼굴을 보려 애쓰는 세령. 형체만 보일 뿐, 자세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발목에 통증을 느낀 세령.
발 너머. 강론을 이어가는 승유의 모습.
승유 : 여인이 어려서는 제 부모를 따르고, 시집가서는 지아비를 따르며, 사별 후에는 아들을 따라야 함을 이르는 말입니다.
얼굴을 찌푸리고 버선을 슬쩍 내리고 발목을 살펴보는 세령. 멍이 시퍼렇게 들어있는 발목.
승유 : (건너를 의식하며 도발) 결국 삼종지도는 여인이란 사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지요.
기가 막힌 세령, ‘그림자?’라고 입으로만 따라하며 흘긋 발 너머를 본다.
승유, 언뜻 시선을 옮기는데 발 아래로 슬쩍 보이는 세령의 하얀 종아리.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 싶은, 여유 만만한 웃음.
승유 : 그 정도로 되시겠습니까?
세령 : (보면)
승유 : 이번엔 발을 걷으실 차례입니까?
세령 : (놀라서 얼굴 드는)
승유 : 종학 스승들의 혼을 쏙 빼놓았다는 그 자태. 양귀비도 울고 갔다는 마마의 미색을 어디 한 번 보여주시지요.
세령 : (어이없는)
갑자기 선뜻 올라가는 발! 놀라서 눈이 동그래진 세령을 만만히 보는 승유.
승유 : (세령의 발목 쪽 보며) 종아리가 아니라 더욱 은밀한 데를 봬주신다 하여도, 소신은 흔들리지 않사옵니다.
세령 : (기가 막힌)
승유 : (기분 나쁘게 위아래로 훑어보며) 공주께서 미색을 무기로 삼는다면,
사내들에게 웃음을 파는 기녀들과 다를 게 무엇이겠습니까?
세령 : (얼굴 확 굳는)
승유 : (웃음기 거두며 못 박는) 강론 시에 스승을 곯려먹는 못된 행동거지는 더 이상 용납치 않겠사옵니다.
세령 : (부글부글 끓는)
승유 : (태연하게) 오늘 강론은 이만 마치겠나이다.
촤르르- 도로 거칠게 쳐지는 발.
씩 웃은 승유, 서책을 덮고 나가려는데,
세령 : (침착하게) 발을 걷으십시오.
승유 : (고개 돌려 보는)
S#29. 종학 / 공주 강론방 앞 (낮)
문가에 귀를 잔뜩 기울인 은금, 호기심 가득한 얼굴.
S#30.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무슨 의도인가, 발 너머를 탐색하는 승유의 눈길.
세령 : (단호한) 발을 걷으라 하였습니다.
승유, 발을 올리면 자신의 치마를 척! 올리는 세령.
승유 : (한심해서) 공주마마. 대체-
세령 : (못 박듯) 어혈입니다!
그제야 승유의 눈에 들어오는 세령의 멍든 다리.
세령 : (치마 덮고) 신체는 부모님께 받은 것으로 상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일진데,
아픔을 참지 못해 스승님께 망측한 꼴을 보인 죄 송구하기 그지없나이다.
승유 : (아차 싶은)
세령 : 헌데, 스승님.
승유 : (본다)
세령 : 더욱 은밀한 곳이라 하셨습니까? 대체 어디를 고대하셨는지요? 옷고름을 풀고 치마라도 걷길 바라셨습니까?
승유 : (당황하는)
세령 : (시선 목께로 던지며) 아니면 그 목덜미에 입맞춤이라도 해드리길 바라셨습니까?
저도 모르게 세령의 시선을 따라 제 목덜미를 만져보는 승유. 손에 묻어나오는 입술연지에 아차, 싶은 승유.
세령 : (힘주어) 벌건 대낮에, 창부의 입술연지를 버젓이 칠하고 다닐 만큼 막돼먹은 자라면, 그런 난잡한 상상쯤은
별 일이 아니겠지요. 허나 여기는 지엄한 궁 안입니다. 색주가에나 어울릴 법한 농지거리라니, 불쾌하기 그지없나이다.
승유 : (살짝 얼굴 굳는)
세령 : (차분하게 쐐기 박는) 여인네들이 사내들의 그림자에 불과하다하나,
이리 경박하기 그지없는 남정네들을 어찌 믿고 따르오리까.
승유, 가만히 쳐다보면 만만치 않게 보는 세령. 시선을 피하지 않는 두 사람 사이로 차르르- 쳐지는 발.
S#31. 종학 / 공주 강론방 복도 (낮)
나인 문을 열어주면 강론을 마치고 나온 승유, 픽 웃는다. 제법인데? 싶은 눈길로 강론방 쪽을 한 번 쳐다보는 승유.
문종(E) : 뭐라? 서찰?
S#32. 강녕전 동온돌 안 (낮)
기대고 앉은 용포 차림의 문종, 어의에게 진맥을 받는 중. {자막: 문종. 조선 제5대 왕}
문종 옆에 바싹 다가앉아 있는 내관 전균(40대 중반, 男)
문종 : 수양이 우상에게 서찰을 전했다? 뭐라 썼다더냐?
전균 : 송구하옵니다. 거기까진 미처...
문종 : (불안한) 무엇일꼬... 견원지간같던 자들이 무슨 연유로... (답답해서) 왕이란 자가 왜 이리 모르는 일투성이란 말인가.
어의 : (진맥을 마치는)
문종 : 어떠하냐?
어의 : (얼굴이 어두워지며) 송구하옵니다.
문종 : (허탈하나) 묵은 병이 도진 것이 어찌 어의 탓이랴.
어의 : 황공하옵니다, 전하.
내관(E) : 전하. 수양대군 들었사옵니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문종, 전균에게 빠르게 눈짓하면
전균, 조용하지만 재빨리 어의를 곁방으로 이끈 다음, 서둘러 문종의 접힌 소매를 풀고 물러난다.
문종 : (침착하게 심호흡하고) 들라.
S#33. 강녕전 전경 (낮)
수양대군과 문종의 정겨운 웃음소리 퍼져나간다.
S#34. 강녕전 동온돌 (낮)
문종과 수양대군 마주 앉아있다. 더없이 다정한 분위기. 옆에는 전균이 시종해 있다.
문종 : 말을 타려 한다니, 이제 보니 세령이도 공주 못지않구나. 아우와 나는 참으로 대단한 딸들을 두었어.
수양 : 그러하옵니다. 전하.
문종 : 에미 없이 오냐오냐 기른 탓에 세상 무선 줄 모르니 아우가 가끔 공주를 깨우쳐주시게.
수양 : (농담) 제 여식 하나 간수 못하는 못난 아비 아닙니까?
문종 : 허허. 나는 세령이를 내 여식으로 여기네. 자네도 부디 공주를 그리 여기고 보살펴 주시게.
수양 : 예, 전하.
문종 : ...세자에게도 그리 해줄 수 있겠는가?
수양 : (순간적으로 날카롭게 보고 공손히) 마땅히 그리할 것이옵니다.
문종 : ...고맙구나.
수양 : 종친들과 더불어 편전에서 뵙겠나이다.
수양이 나가는 걸 끝까지 바라본 문종. 문이 닫히면 표정이 싹 바뀌며 휘청- 몸이 흔들린다.
놀란 전균, 문종을 붙든다.
전균 : 전하! (곁방 쪽에) 어의는 어서 나오시게!
문종 : (호흡 가쁘며 다급히) 소릴 낮추라. 수양이 아직 지척에 있다.
전균 : (울컥하며) 전하.
곁방에서 나와 문종을 진맥하는 어의. 혼미한 눈길로 숨을 몰아쉬는 문종.
S#35. 종친부 (낮)
생각에 잠겨 혼자 앉아 있는 수양. 흡사 왕의 풍모 같은 분위기.
문이 열리고 들어와 예를 갖추는 사람, 앞 장면의 어의다. 수양의 귀에 은밀히 고하는 어의.
수양 : (다 듣고서) 서찰의 내용이 궁금하다?
수양의 입가에 번지는 의미심장한 미소.
S#36. 편전 (낮)
용상에 앉아있는 문종, 애써 건재해 보인다.
그 아래로 김종서, 조극관, 민신, 권람 등 조정 신료들, 수양, 안평을 비롯한 온녕 등 종친의 실세들이 양편에 시립해있다.
민신 : 전하. 혼기를 넘기신 경혜공주마마의 길례를 서둘러야 할 것이옵니다. '자막 {민신. 병조판서}'
문종 : 종친들의 생각은 어떤가?
안평 : 신 안평 아뢰옵니다. '자막 {안평대군. 세종의 3남. 수양의 동생}' 공주마마의 혼사는 넓게는 온 나라의 경사이며
좁게는 기꺼이 맞이할 왕실의 중대사입니다. 또한 공주마마께서 부마를 맞으신 연후에 세자저하께서도 세자빈을 맞으셔야
왕실이 반석 위에 올라설 것이옵니다.
온녕 : (수양의 눈치 보며) 신 온녕 아뢰옵니다. '자막 {온녕군. 태종의 서자, 수양의 숙부}'
부마간택은 제일 왕숙인 수양대군을 중심으로 종친부에서 상세히 절차를 의논하겠나이다.
김종서(E) : (묵직하게) 아니 될 말이외다.
모든 시선들이 김종서에게 집중된다. 수양, 김종서를 본다.
김종서 : 공주마마의 부마간택은 종친부가 아닌 예조에서 관할해야 할 것입니다. 전하, 예조의 길례청 설치를 윤허해 주시오소서.
'자막 {길례청: 왕실의 혼사를 주관하는 임시기관}'
온녕 : 예조는 아니 되지요. 왕실의 혼사는 선대왕마마 때부터 종친부가 맡아왔습니다. 혼사란 집안일이 아닙니까?
김종서 : (보면) 크게는 나라일이지요.
온녕 : 종친부에서 관할함이-
수양 : (말 자르며) 우상대감의 의견에 따를 것입니다.
온녕 : (놀라서) 대군!
문종 : (수양을 보는)
수양 : 나라의 경사가 종친들과 신료들의 다툼으로 얼룩져야 되겠습니까?
이번 혼사만큼은 저희 종친부에서 예조를 물심양면 돕겠나이다.
놀라서 술렁이는 좌중의 분위기.
김종서, 수양을 보면 온화한 미소로 화답하는 수양.
S#37. 편전 앞 (낮)
회의가 끝나고 나온 종친들과 대신들. 조극관, 민신 등을 이끌고 가는 김종서.
조극관 : (의아한) 수양대군이 어찌 순순히 대감 뜻에 따른다 했을까요? '자막 {조극관 : 형조판서}'
민신 : 물심양면 돕겠다니 대체 무슨 꿍꿍이랍니까?
무표정한 김종서의 앞을 막아서는 수양, 예를 갖춘다. 뒤에는 권람(30대 중반, 男)과 온녕군 등이 따르고 있다. 자막 {권람}
두 무리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과 날카로운 눈빛들.
스쳐 지나는 듯하던 수양, 김종서의 귓가에 은밀히 속삭인다.
수양 : 혼담의 답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대감.
수양의 속까지 꿰뚫어보려는 듯 매섭게 쏘아보는 김종서. 온화하게 미소 짓고 지나가는 수양.
S#38. 편전 주변 (낮)
먼발치에서 김종서와 수양을 보는 문종의 심각한 표정.
옆에서 시종 중인 전균, 젊은 내관에게 뭔가를 전해 듣는다.
전균 : (다 듣고) 전하.
문종 : (본다)
전균 : 우상의 자제 김승유가 공주마마의 스승으로 들었다 하옵니다.
문종 : (!)
S#39. 운종가 거리+가마 안 (낮)
고급 옷감과 금, 은, 옥 등을 취급하는 상점들이 줄줄이 늘어선 거리. 활기차고 분주한 분위기.
지나가는 경혜공주의 가마 뒤를 따르는 여리.
창을 열어 저자거리를 신기하게 보는, 호기심에 찬 경혜공주. 도망치느라 휙 지나가는 정종 보인다.
잠시 후 함귀와 그 무리들도 어슬렁거리며 지나간다.
그들의 험악한 인상에 저도 모르게 얼굴이 찌푸려지는 경혜공주.
S#40. 운종가 일각 (낮)
멈춰 서 있는 가마 안. 여리가 옆에 서 있고 가마꾼들은 없다.
똑똑. 가마 창을 두들기는 경혜공주. 운종가 쪽에 정신 팔려 있던 여리, 얼른 고개를 숙인다.
경혜 : 좀 더 둘러보자꾸나.
여리 : 가마꾼들을 불러오겠습니다요.
종종걸음으로 멀어지는 여리.
S#41. 가마 안 (낮)
여리가 오나 안 오나 가마 밖을 흘긋 보는 경혜공주.
순간 벌컥! 문이 열리고 웬 사내가 덤벼든다. 급박하게 숨을 데를 찾아들어온 정종(20대 초반, 男)
경혜 : (기겁해서) 웬 놈이냐.
쉿! 조용하라고 손가락을 입가에 대는 정종. 정종, 들킬까 조심하며 창밖의 동태를 살피는데
눈이 벌개진 함귀(20대 중반, 男) 무리들 지나간다.
경혜 : (겁에 질려 버럭) 웬 놈이냐고 묻질 않느냐!
들킬까봐 경혜공주의 입을 확 막아버리는 정종. 놀라서 몸부림치던 경혜공주, 정종의 뺨을 확 갈겨버린다.
제 뺨을 감싸 쥔 정종을 부들부들 떨며 노려보는 경혜공주.
정종, 경혜공주의 아름다운 자태에 숨이 멎는다.
경혜 : (부들부들 떨리는) 감히 네 놈이... 어느 안전이라고...
함귀(E) : 숨어서 소꿉놀이하시나?
정종이 보면 가마 문 열고 보고 있는 함귀의 얼굴. 확 겁에 질리는 경혜공주의 얼굴.
S#42. 운종가 일각 (낮)
칠갑의 손에 무자비하게 끌려나온 정종 무지막지하게 한 대 맞고 쓰러진다.
코피를 흘리며 바닥을 뒹구는 정종을 비웃는 칠갑, 막손.
뒤에서 보고 있는 함귀(20대 후반, 男) 피도 눈물도 없는 악귀 같은 인간.
저 뒤에서 달려온 여리와 가마꾼들. 여리, 급히 가마 문을 열면 잔뜩 겁에 질린 경혜공주.
여리 : (놀란) 공주마, 아니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동동) 아이구, 이를 어째? 부들부들 떨고 계시네.
경혜공주 보면 어느새 정종을 일으켜 질질 끌고 가는 함귀의 무리들.
끌려가는 와중에도 경혜 쪽을 보는 정종.
경혜 : (시선 피하고) 시끄러워 머리가 다 아프구나. 돌아가자.
여리 : (다급히 가마꾼들에게 눈짓)
경혜 : (날카롭게 보며) 오늘 일은, 절대 입 밖에 내선 안 될 것이야.
여리 : ...예.
S#43. 공주 처소 (낮)
물을 한 대접 벌컥벌컥 들이킨 세령.
#플래시백1: 제1화 장면 28의 일부
발을 들고 있는 승유의 목덜미에 선명하게 찍힌 입술연지.
#플래시백1: 제1화 장면 28의 일부
승유 : 삼종지도는 여인이란 사내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가르침이지요.
현재.
허! 기가 막힌 세령, 저고리 고름을 풀려는데 달려 들어오는 은금.
은금 : 세령 아가씨, 큰일 났습니다. 세자 저하께서 오고 계신답니다.
세령 : (놀라는) 뭐?
S#44. 공주의 전각 뜰 (낮)
약간 상기된 얼굴로 뜰을 걸어오는 단종. 자막 {세자 홍위. 훗날의 단종}
단종의 뒤를 따르는 내관과 상궁들.
S#45. 공주 처소 앞 (낮)
복도를 걸어 들어와 처소 앞에 선 단종.
단종 : (상궁에게) 고하라.
상궁 : 공주마마, 세자저하 납시었습니다. (대답 없자) 공주마마.
스르르 안에서 문을 연 사람, 은금이다. 세자에게 고개 숙이는데 당황하고 난처한 얼굴.
아무것도 모르고 들어서는 단종.
S#46. 공주 처소 (낮)
등을 돌리고 서서 옷매무새를 단정히 하는 공주의 자태.
단종 : 누님. 홍위옵니다.
공주 : (말이 없다)
단종 : (살펴보며) 누님.
옷고름을 단정히 한 공주 돌아서는데, 경혜공주다!!
세령(E) : 세자 저하, 오시었습니까?
단종이 보면, 옷방에서 나오는 세령, 원래 제 옷차림이다.
단종 : (건성으로) 세령 누님도 계셨습니까?
세령 : (안도하는 마음에 밝게 웃고) 예.
단종 : 편전에서 부마간택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는데, 혹 들으셨습니까?
세령 : (놀라서 경혜공주 보는)
경혜 : (애써 냉정하게) 그래서요?
단종 : (상심) 어마마마도 안 계시는데, 누님마저 출궁하시면 저는 어쩝니까?
경혜 : 때가 되면 마땅히 치러야 할 일입니다.
(설핏 세령 의식하며) 누구 앞에서든 나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 하지 않았습니까?
세령 : (슬쩍 말리는) 마마.
경혜 : 장차 한 나라를 짊어지셔야 합니다. 힘들어도 안 힘든 척, 아파도 안 아픈 척, 저하는 그리 하셔야 합니다.
단종 : (풀이 죽어) 제가 그만 여염집 도령처럼 굴었나봅니다. (애써 웃으며) 이만 물러나겠습니다.
단종 일어서서 인사하면 함께 예를 갖추는 경혜.
나가는 단종의 뒷모습을 걱정스럽게 보는 세령.
S#47. 공주 처소 앞 (낮)
문을 나온 단종, 시무룩해져서 걸어간다.
S#48. 공주 처소 (낮)
마주보고 앉은 경혜공주와 세령. 은금이 옆에서 시종하고 있다.
세령 : 궐 밖 구경은 어떠셨습니까?
경혜 : (태연하게) 별 다를 게 없더구나. 천한 것들의 말소리로 귀가 따갑고 길바닥은 먼지투성이라 숨조차 쉬기 힘들었다.
세령 : (괜히 미안한) ...그러셨습니까?
경혜 : (서둘러) 그래 네 낭군이 될 자는 어떠하더냐?
세령 : (얼굴 잔뜩 찌푸리는)
경혜 : 왜? 서책만 아는 고루한 자이더냐?
세령 : (불쾌한) 한량 같은 꼴에 더없이 무례한 자입니다.
경혜 : (의아한) 한량?
세령 : 목덜미에 입술연지나 묻히고 다니는 난봉꾼이더이다.
경혜 : (흥미로운) 입술연지라. 종학에 그런 스승이 있다니. (이상한) 그런데 연지 자국은 어찌 보았니? 혹 발을 걷은 게야?
세령 : (당황하는)
은금 : (편들어 주며) 아가씨의 불찰은 아니십니다. 그 직강께서 먼저 발을 걷으시는 바람에.
경혜 : (놀란 듯 보면)
세령 : (난처한)
경혜 : (회심의 미소) 그거 잘 되었구나.
세령 : (의아해서) 예?
경혜 : 네 얼굴까지 보았는데 이제 와 내가 들어갈 수야 있니?
(짓궂은) 난 후원에서 화초나 돌볼 테니 넌 네 낭군과 다정히 학문이나 익히거라.
세령 : (얄미운) 마마!
S#49. 한성부 큰 마당 (낮)
위풍당당하게 도열해 있는 한성부 정예 군사들.
군사들 : (절도 있는 인사와 함께) 영전을 감축드리옵니다! '자막 {영전: 일종의 승진}'
그들 앞에 감격스런 눈으로 군사들을 보고 있는 한성부 판관 신면. 그 곁을 지키는 부관 송자번.
신면 : 너희들은 한성부 최고의 군병들이다! 나는 너희 모두를 내 혈육처럼 여기고 지킬 것이다.
군사들 : (빛나는 눈빛들)
신면 : 주군을 위해 목숨을 내놓을 수 있겠느냐?
일제히 : (우렁찬) 예!
군사들 앞으로 다가가는 신면, 한 명 한 명 시선을 맞춰주며 지나간다.
어깨에 손을 얹기도 하고, 가볍게 군복을 정돈해 주기도 하는.
승유(E) : 어깨에 힘이 잔뜩 들어갔구나.
신면이 보면 웃고 서 있는 승유.
S#50. 저잣거리 일각 (낮)
승유와 신면, 나란히 걸어간다. 사복차림.
승유 : 네놈 영전 소식에 종이가 단단히 벼르고 있어.
신면 : 종이 그 놈이야 어떤 연유로든 술독에 빠지기만 기다리는 놈 아닌가?
승유 : (웃는)
신면 : 지금도 어느 기방에서...저기 종이 아닌가?
승유가 보면 함귀 무리들에게 끌려가고 있는 정종.
S#51. 저잣거리 일각 (낮)
함귀 일당(칠갑, 막손 등)에게 거칠게 끌려가고 있는 정종.
함귀 무리를 가로막고 선 신면과 승유.
신면 : 웬 놈들이냐!
칠갑 : 무슨 일이슈?
신면 : 네 이놈! 어찌 양반가의 자제를 함부로 끌고 가느냐?
함귀 : (불손하게) 이 양반께서 우리 자모전가에서 쩐을 빌리고 오리발을 내미니, 피치 못해 모셔가는 길입니다.
'자막 {자모전가: 오늘날의 사채업자}' (부릅뜬 눈으로 정종 보며) 그렇지 않습니까, 나으리?
정종 : 내 안 갚겠다 한 적은 없네.
승유 : 자네들 행수가 누군가?
막손 : 왜? 알면 어쩌시게?
신면 : 무엄하다! 물러서지 못할까?
발끈한 막손이가 험상궂은 얼굴로 달려든다. 막손의 주먹을 피한 신면, 오히려 안면을 가격한다.
순간 다들 달려들 기세가 되어 눈빛들이 매서워지는데!
서둘러 나서는 승유.
승유 : 내 차후에 책임지고 해결할 테니 그 친구를 그만 놔주게.
함귀 : 차후에 책임진다. 골백번도 더 속은 그 말을 어찌 믿습니까?
신면 : (한성부 명패 꺼내들며) 이래도 못 믿겠나?
함귀 : (주춤했다 비꼬듯) 한성부 관리셨어? 귀한 분을 몰라 뵀습니다.
신면 : (무시하는) 물러가라.
함귀 : (정종에게) 든든한 친구를 두셨수.
정종을 풀어준 함귀의 무리들, 승유, 신면을 노려보고 간다.
S#52. 대궐 후원 (낮)
진지한 눈빛의 단종이 활을 겨누고 있다. 핑! 날아간 화살이 과녁의 중심과는 먼 가장자리에 꽂힌다.
무안한 표정의 단종, 실망감에 활을 내려버린다. 그 위로 허허허! 문종의 웃음소리.
단종의 뒤편에 앉은 문종, 옆에는 김종서가 서 있다.
문종 : 부족한 실력을 확인하는 것도 용기이니라. 거듭 시도하여라. 점점 나아지지 않느냐.
그 말에 용기를 얻은 단종, 화살을 집어 든다.
그 모습을 대견하게 보는 문종. 김종서도 따듯한 눈으로 단종을 본다.
문종 : 수양은 참으로 타고난 왕재요.
김종서 : 전하, 당치 않으시옵니다.
문종 : (미소 띤 채) 나는 아마 오래 살지 못할 듯합니다. 이 애비마저 죽으면 저 어린 것이 숙부의 등쌀을 어찌 견딜꼬.
김종서 : 전하!
문종 : (피를 토하듯) 저 아이의 목숨을 보전할 수 있다면 내 이 자리에서 당장 거꾸러져 죽어도 여한이 없소.
김종서 : (땅에 엎드려 부복하는) 전하, 신 김종서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문종 : (똑바로 보며) 내 무덤 앞까지 변치 않는 충절을 보여줄 자가 그대라 믿었으나 (슬픔과 분노) 더는 그대를 믿을 수 없소.
김종서 : 어인 까닭이시옵니까? 연유를 밝혀 주시오소서, 전하!
문종 : (의심) 대체 수양과 비밀리에 무엇을 도모하는 게요?
김종서 : (놀라서 보는)
온녕(E) : 이간질이라?
S#53. 수양의 사랑채 (밤)
권람과 온녕군, 수양이 주안상을 두고 앉아 있다. 말없이 잔을 기울이는 수양.
온녕 : 어찌 서찰을 건넨 것이 이간질이 된단 말이오?
권람 : 주상전하께서 대군대감과 우상 사이에 서찰이 오고 갔음을 아시고, 그야말로 (조심스레) 좌불안석이라 합니다.
온녕 : (무릎을 탁 치며) 탁월한 묘수구만! 어쩐지 받아들일 리도 없는 혼담을 넣었다하여 대군의 정치감이 떨어진 건 아닌지
몰래 걱정하던 차였네.
수양 : (술을 한 모금 마시는)
권람 : 거짓 혼담만으로 주상전하와 우상 사이가 완전히 깨질 리 없습니다.
수양 : (술잔을 탁! 내려놓고) 거짓이라 한 적은 없네!
권람, 온녕 : (놀라서 보는)
수양 : (다짐하듯) 내 김종서와 기필코 사돈의 연을 맺을 것이야.
권람, 온녕 : (보는)
수양 : (의미심장한 미소)
S#54. 정자 (밤)
훤한 보름달이 뜬 가운데, 술을 마시는 승유, 신면, 정종.
불콰하게 취한 정종은 술을 또 한 잔 들이켠다. 그런 정종을 걱정스레 보는 승유와 신면.
신면 : 그리 다급한 형편임을 왜 말하지 않았어. 자모전가가 얼마나 위험한 곳인지 몰라서 그랬나?
이자 대신 수족도 거침없이 잘라낸다 들었네.
정종 : (술을 마시는)
신면 : 아무리 어머님의 신병 때문이라지만 국법으로 금하는 고리대를 써서야,
승유 : (신면의 말을 막고 정종에게) 우선 급한 불부터 꺼야지. 면식 없는 자들보다야 나나 면이가 낫지 않겠어? 대체 얼마냐?
네 놈한테 이자를 챙겨 호의호식 좀 해 보자.
정종 : (딴 소리) 내 오늘 진정한 절세미녀를 보았어. 모르긴 몰라도 조선 팔도 최고미색이라는 경혜공주를 능가하지 싶은데.
승유 : (피식) 최고미색은 무슨. 그저 평범한 계집이던데.
정종 : (의아해서) 자네 설마.... 경혜공주를 보았단 말인가?
승유 : (말없이 마시는)
정종 : 답답해죽겠네. 어서 말 좀 해 봐.
승유 : (대수롭지 않은 척) 강론을 맡았을 뿐이야.
신면, 정종 : (탄성 터지는) 우와.
신면 : 그런 낭보를 왜 이제야 말해?
정종 : 정녕 그리 죽이던가?
승유 : 공주라 해봐야 제까짓 게 계집일 뿐이지. 한낱 계집 때문에 왜들 이리 호들갑이야.
신면, 정종 : (대단하다는 듯) 오오-
승유 : (잔뜩 허세에 찬)
S#55. 김종서의 邸 근처 (밤)
기분 좋게 술이 취해 비틀비틀 걸어오는 승유.
#플래시백: 제1화 장면 30의 일부
당돌하게 승유에게 말하는 세령의 모습.
세령 : 더욱 은밀한 곳이라 하셨습니까? 대체 어디를 고대하셨는지요? 옷고름을 풀고 치마라도 걷길 바라셨습니까?
현재.
생각할수록 기가 차서 픽 웃은 승유. 또 비틀대며 걸어가는 승유.
S#56.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뜰 (밤)
지나가다 사랑채에 눈길이 가는 승유. 불이 켜진 방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마주앉았다.
술 냄새 나나 맡아보고, 옷매무새도 바로 하고 방 앞에 가서 서는 승유.
승유 : 아버님. 소자, 승유이옵니다.
스르르- 문이 조금 열리고 얼굴 드러내는 김종서. 안에 앉아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다.
승유 : 손님이 드셔계시옵니까?
종서 : (못마땅한) 또 부어라 마셔라 한 게냐?
승유 : 정겨운 동무들을 만나 한 순배 하였습니다.
종서 : 들어가 쉬어라.
언짢은 마음으로 문을 탁 닫아버리는 김종서. 아랑곳하지 않는 승유, 비틀대며 사라진다.
S#57.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밤)
무거운 얼굴로 앉아 있는 김종서.
수양(E) : 호탕한 성품의 자제를 두셨습니다.
김종서, 건너보면 맞은편에 앉아 있는 수양!
온화한 수양의 얼굴을 지그시 보는 김종서. 속을 들여다보듯.
수양 : 송구하게도 제 여식은 음전하질 못합니다. 호탕한 지아비를 만나야 소박이나마 면하겠지요.
김종서 : (퉁명스럽게) 이 혼담의 의미가 단지 그 뿐입니까?
수양 : 우상과 나만이 돌이킬 수 없는 참극을 막을 수 있습니다.
김종서 : 참극이라니요?
수양 : 주상전하께서 승하하신 후,
김종서 : 말씀을 삼가시오!
수양 : (개의치 않고) 나 수양이 옥좌를 돌같이 보며 어린 세자저하를 보필만 하겠다면 믿으시겠습니까?
김종서 : (쏘아보는)
수양 : (허탈하게 웃고) 조선 땅에서는 개도 믿지 않겠지요. 세자저하께서 등극하시면 왕재인 수양부터 쳐죽여야한다!
그것만이 어린 저하와 이 조선을 살리는 길이다! 하겠지요!
김종서 : (말없이 보는)
수양 : (비장하게) 그러니 나는, 살기 위해 대감을 칠 것입니다. 종국에는 대감과 나 둘 중 누군가는 피를 보겠지요.
김종서 : (흔들림 없는) 나 김종서는 죽음 따윈 두렵지 않소.
수양 : 나와 대감만이 아닙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우리 자식들이, 칼에 찔리고 목이 잘려 피 흘리는 꼴을 기어이 보시겠습니까?
김종서 : (흔들리는 눈빛)
수양 : (힘주어) 대감과 제가 손을 잡으면 아까운 그 아이들을 살릴 수 있습니다.
허공에서 매섭게 얽히는 수양과 김종서의 눈길!
S#58. 공주 처소 전경 / 다른 날 (오전)
S#59. 공주의 처소 / 옷방 (오전)
나란히 선 세령과 경혜공주.
세령 : (푹 한숨 쉬고) 제가 꼭 들어가야겠지요?
경혜 : 네가 자초한 일 아니더냐. 정 못 견디겠으면 네 입으로 그 직강에게 사실을 밝히거라.
푹, 한숨 쉰 세령, 체념한 얼굴로 저고리를 벗는다. 바닥에 나붓이 떨어지는 세령의 치마.
속살이 비칠 듯 아슬아슬한 속곳차림이 된 세령. 경혜공주의 지시에 따라 은금이 세령을 도와 옷을 입힌다.
머리장식, 반지, 비단신 등 점점 화려한 공주복색을 갖춰나가는 세령.
인형놀이라도 하듯 만족한 표정으로 세령을 보는 경혜공주, 마무리 하듯 노리개를 골라 세령의 옷고름에 달아준다.
경혜 : (노리개를 보며 만족스러워서) 이제야 좀 볼만하구나.
S#60. 종학 / 공주 강론방 (오전)
제 자리에 앉아 세령을 기다리는 승유. 발 너머 바스락거리며 들어오는 세령의 옷자락소리.
세령이 앉았다 싶으면 고개 숙여 예를 갖추는 두 사람.
승유 : 강론 전에 몇 말씀 올립니다. 제게 내리셨던 공주마마의 질책은 아프게 새기겠습니다.
마마께서도 사제 간의 예를 엄격히 지켜주시옵소서.
세령 : (무슨 의도지? 의아한)
승유 : 앞으로 이유 없는 강론의 중지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세령 : (듣는)
승유 : 또한 강론 시에 공부한 내용을 모두 필사하여 다음 강론 때 제출해 주십시오. 그날 배운 모든 구절은 반드시 암기하십시오.
수시로 회강을 치러 확인할 것입니다. '{회강: 사부 앞에서 그 동안 배운 내용을 암기하는 일종의 구술시험}'
회강을 통과하지 못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갈 것입니다. 아시겠습니까?
세령 : (허! 이제 알겠다)
승유 : 왜 답이 없으십니까?
세령 : (당돌하게) 그리 하시지요.
승유 : 망극하옵니다.
세령 : 스승이라는 지위를 악용하여 전날의 일을 앙갚음하고자 하신다면 힘없는 제자가 무슨 수로 막으오리까?
스승님의 치졸함을 너그러이 받아들이고자 하옵니다. 당장 회강을 치르시지요.
승유 : (놀라는) 당장 말입니까?
S#61. 종학 / 복도+강론방 앞 (낮)
문종이 걸어온다. 고개 숙이고 뒤를 따르는 이개.
강론방 앞. 문종을 본 나인 놀라서 고하려 하면, 제지하는 문종.
S#62.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시험 치는 분위기. 승유가 먼저 운을 떼면 세령이 강독한다.
승유 : 자어사부 이사모 이애동하며, 자어사부 이사군 이경동이라.
'{자막: 資於事父 以事母 而愛同하며 資於事父 以事君 而敬同이라}'
세령 : (술술) 아비를 섬기는 바탕으로 어미를 섬기면, 사랑하는 마음이 같을 것이고,
아비를 섬기는 바탕으로 임금을 섬기면, 공경하는 마음이 같을 것이다.
승유, 기가 찬 표정.
승유 : 막힘없이 술술 잘도 하십니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세령.
갑자기 부산하게 일어서는 승유 쪽 소리.
세령, 강독을 멈추고 왜 그런가 싶어 주의를 기울이는데,
이개(E) : 전하, 공주마마의 강론을 맡은 직강 김승유이옵니다.
그 말에 놀라는 세령! 발 너머를 보는데 어렴풋이 문종에게 예를 갖추는 승유, 보인다.
세령, 벌떡 일어나 정신없이 예를 갖춘다.
승유 편. 흡족한 얼굴로 두 사람을 번갈아 보는 문종.
문종 : 잠시 들렀네. 못난 여식을 맡아줘서 고맙네.
승유 : 당치 않사옵니다, 전하.
문종 : 강론하는 모습을 잠시 참관하면 결례가 되겠는가?
승유 : (잠시 놀라지만) 어인 말씀이시옵니까.
다들 앉는다.
승유, 애써 침착한 목소리로 효경 구절을 읽어나간다.
승유 : 고모취기애하고 이군취기경하니 겸지자부야.
이번엔 공주가 읽을 차례다.
승유 : 공주마마, 강독하시지요.
세령 : (입술이 바들바들 떨린다)
승유 : (당황해서 채근하는) 마마!
문종 : (미소) 허허허. 공주의 학식이 아직은 부족한가 보구나. 김직강은 공주에게 모쪼록 자애로운 스승이 되어주게나.
승유 : (고개 조아리며) 송구하옵니다. 스승이 미거하여 주상전하께 누를 끼치옵니다.
문종 : 괘념치 말라.
이개 : 여기까지 납시었는데 공주마마를 보고 가시지요. 발을 올려 드리겠습니다. (승유에게) 등을 돌리게.
승유 : (조용히 일어나 몸을 돌린다)
이개 : 발을 올리시게.
밖에서 들어온 나인, 발쪽으로 향한다. 긴장한 세령의 두 주먹이 꽉 쥐어진다.
발 너머. 세령의 윤곽을 보는 문종.
발 가까이 다가온 나인, 세령은 눈을 꽉 감아버린다.
나인이 발을 올리려는 순간!
문종 : 그만 두어라.
나인 : (멈추는)
문종 : 임금보다 스승을 각별히 여겨야 할 곳이 이 곳 종학이거늘, 강론의 흥을 깨서야 되겠는가. 계속 하거라.
승유 : 예, 전하.
문종 : 우상의 자제라. 과연 듣던 대로 총명하고 수려하구나. 장차 공주뿐 아니라 세자에게도 많은 가르침을 주거라.
승유 :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승유의 어깨를 한 번 짚어주고 나가는 문종과 따르는 이개.
방 밖 복도로 나가 예를 갖춘 승유. 방으로 들어와 발 너머 세령을 노려본다.
승유 : 스승을 골탕 먹이는 방법도 참으로 다양하십니다.
발 너머. 너무 놀라 완전히 탈진 상태인 세령.
S#63. 경혜공주의 처소 / 후원 (낮)
새장 속 새들을 보고 있는 경혜공주. 이때 다급하게 다가오는 세령과 은금.
경혜 : 무슨 일이더냐?
은금 : 주상전하께서 종학에 납시셨습니다.
경혜 : (놀라서) 뭐라? 어찌 됐느냐?
세령 : ...들키진 않았습니다.
경혜 : (안도하는) 그럼 됐다.
세령 : 허나 전하께서 또 다시,
경혜 : 아바바마는 다시 들지 않으실 것이다. 효경을 마치면 직강도 바뀔 것이니 좀 더 버텨보아라.
세령 : (한숨 쉬는)
경혜 : 지금이라도 사실을 밝히랴?
세령 : 아닙니다. 저 때문에 공주마마까지 곤경에 처하시는 건, 싫습니다.
경혜 : (그럴 줄 알았다는)
S#64. 수양의 邸 / 사랑채 (낮)
평온한 얼굴로 서책을 보는 수양. 옆에서 차 시중을 들고 있는 윤씨.
임운(E) : 대군마님. 운이옵니다. 기별이 왔사옵니다.
윤씨 : (반색하며) 혼담에 대한 답신이 온 모양입니다.
기대감에 차서 문을 여는 윤씨.
윤씨 : 우상대감 댁이냐?
임운 : 아니옵니다. 입궐하시라는 명패가 왔사옵니다.
윤씨 : (그 말에 수양 보는)
수양 : (궐이라?)
S#65. 수양의 邸 / 마구간 (낮)
마구간 앞에 쭈그리고 앉은 심란한 표정의 세령, 9씬의 말을 보는 중.
기가 다 빠져 멍하니 그 말을 바라보는데 또각또각. 거짓말처럼 세령의 앞에 와서 서는 말. 마치 타라는 듯.
뭐지? 싶어 말을 쳐다보던 세령, 주위를 여기저기 둘러보는데 아무도 없다. 요리조리 보는데도 정말 얌전히 있는 말.
세령, 혹시나 싶어 고삐를 조심스레 쥐는데 그래도 가만있는 말. 이번엔 등자에 발을 얹는 세령, 그래도 미동 없는 말.
용기 내어 사뿐 말에 올라탄 세령, 떨어질까 고삐를 꽉 쥐고 눈을 감는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천천히 눈을 뜨는 세령, 어느새 제가 말 위에 있다!
세령 : (크게 소리도 못 내고 좋아하는) 됐다! 됐어!
그 때, 갑자기 움직이기 시작하는 말.
놀란 세령, 몸을 잔뜩 긴장하는데 이미 뚜벅, 뚜벅, 걷는 말.
말을 타고 처음 걸어보는 세령, 두려운 마음이 왈칵 든다.
S#66. 수양의 邸 / 대문 (낮)
배달 온 찬거리를 열린 대문 안으로 들여오는 여리.
여리가 안쪽으로 들어가면 말을 탄 세령이 나타난다. 세령, 조마조마하게 주위 보는데 다행히 아무도 없다.
열린 대문 밖으로 또각또각 빠져나가는 말. 잔뜩 긴장한 세령의 얼굴.
S#67. 저자거리 일각 (낮)
정종과 어슬렁 걸어가는 승유.
정종 : (놀리듯) 공주라 해봐야 한낱 계집이라며? 한낱 계집이 대단한데?
주상전하 앞에서 천하의 김승유를 무능한 스승으로 만들다니.
승유 : 참, 그 머릿속엔 뭐가 들었는지.
정종 : 그래서 벌이라도 줄 테냐?
승유 : 고심 중이다.
바로 옆 골목. 말을 타고 지나가는 한 여자의 옆모습.
무심히 고개 돌려 돌아본 승유의 커지는 눈! 순간이지만, 세령이가 분명하다. 두려워서 잔뜩 웅크린 채 말을 탄 세령.
말을 탄 세령의 모습이 기가 막힌 승유.
승유 : 긴히 볼 일 있으니 먼저 가 있어.
정종 : 이봐!
서둘러 세령의 뒤를 쫓는 승유.
S#68. 저자거리 다른 곳 (낮)
고삐를 꽉 쥔 채 잔뜩 긴장한 세령, 오로지 말 머리만 보던 고개를 돌려 조금씩 주위를 둘러본다.
말 위에 앉아 내려 본다는 게 무서우면서도 신기하다.
조금 뒤쪽에서 따르는 승유, 세령의 하는 양을 지켜본다.
S#69. 동네 일각 (낮)
멈춰있는 세령의 말. 한적한 웅덩이에서 물을 마시는 중인 말. 앞집 기둥에 매인 말도 마시고 있다.
기특하다 싶어 말을 쓰다듬어주는 세령.
어느 집 뒤. 세령의 하는 꼴을 유심히 보고 있는 승유.
S#70. 편전 안 (낮)
종친들과 함께 들어서다가 순간 당혹해하는 수양.
김종서를 필두로 한 대소신료들 이미 정좌해 있고, 옥좌를 보면 당당히 앉아있는 문종.
온녕 : (눈치 보며 작게) 대군. 대체 무슨 일이오?
뭔가 심상찮은 분위기를 느끼는 수양의 눈빛.
S#71. 동네 일각 (낮)
물을 다 마시고도 꼼짝하지 않는 말이 불안한 세령. 고삐를 조금 죄어보지만 미동도 하지 않는 말.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데 갑자기 히힝! 하고 우는 옆의 말.
그 바람에 놀란 세령, 저도 몰래 말의 배를 힘껏 차버린다. 히힝! 힘차게 울어 젖힌 말, 이내 빠른 속도로 달리기 시작한다.
놀란 세령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비명소리! 쏜살같이 달려 나가는 말 등에 납작 엎드린 세령.
멀리서 보던 승유,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다.
웅덩이에 있던 다른 말이 눈에 들어온 승유. 얼른 말에 올라타 쫒기 시작한다.
S#72. 편전 (낮)
용상에 앉은 문종. 아래 도열해 있는 종친들과 신료들의 면면. 조극관, 민신, 권람 앉아 있고 그 반대편 안평, 온녕 등등 앉았다.
눈을 감고 있는 김종서. 수양, 그의 의중을 탐색하려는 듯한 눈빛.
잠시 장내에 흐르는 침묵.
문종 : 과인은 오늘 경혜공주의 부마간택을 매듭짓고자 하오.
안평 : 한시 바삐 주혼을 정하시고 초간, 재간, 삼간의 간택절차를 진행하심이 옳은 줄 사료되옵니다.
'자막 {주혼: 왕실의 혼사를 맡아 주관하는 책임자}'
문종 : 번거로이 삼간의 절차를 다 밟을 필요가 있겠소?
안평 : (의중을 몰라) 간혹 재간만 하는 경우도 있사옵니다만,
문종 : 더욱 간소히 했으면 하오.
온녕 : 간소하게 하신다면....
안평 : 혹 전하의 마음에 둔 적임자가 있으십니까?
문종 : (말없이 장내를 보는)
다들 : (웅성거리는)
온녕 : 누구이옵니까? 마음에 품은 자를 말씀해주시오소서.
수양 : (문종을 보는)
다들 : 말씀해주시오소서.
문종 : 과인은,
좌중 : (귀추가 주목된)
문종 : 우의정 김종서의 자제 김승유를 부마로 삼을 것이오.
수양 : (!)
김종서를 노려보는 수양의 일그러진 얼굴!
S#73. 벌판 (낮)
벌판을 질주하는 세령의 말. 겁에 질린 세령, 금방이라도 고삐를 놓칠 것 같다.
두려운 속도감에 잔뜩 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 세령. 바로 앞에 흐르는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서 들리는 말 달리는 소리. 세령, 겨우 눈을 떠서 뒤를 보면 빠른 속도로 뒤를 쫒아오는 승유의 말.
다급해진 세령 앞을 보는데, 강이 점점 가까워진다. 승유의 얼굴을 애타게 보는 세령.
승유의 말, 점점 세령의 말에 가까워진다.
두 마리의 말 최대한 가까워지면 순간적으로 홱 제 몸을 날린 승유! 세령의 뒤에 올라타는데 성공한다!
두 사람, 앞을 보는데 이제, 코앞이, 강이다! 말을 멈추기엔 이미 늦은 상황.
두려움이 차오르는 세령의 얼굴. 결기가 눈에 어린 승유, 한 팔로 세령을 감싸안는 데서!!
[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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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ㅠㅠ 공남 대본이 있을줄야.. 여기 오늘 처음알았는데 대본이 정말 많네요! 잘 읽겠습니다.
근데요,궁금해서 물어보는건데 정말 공남 작가님이 쓰신 대본이 맞나요?ㅎㅎ
간혹 아닌 경우가 있긴 하지만 대부분은 작가님께서 쓰신 대본이 맞습니다. 장담까진 못하겠지만 이 대본도 작가님이 쓰신 것이 맞으리라 생각됩니다.
감사해요T.T 대본을 찾다보면 작가님이 쓰신 대본이 아닌게 많더라구요,그래서 혹시나 하구요ㅎㅎ
무튼 정말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잘 읽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잘읽어보도록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ㅎㅎ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소중히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