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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장 Liijiang :
보통 차를 타고가면 따리에서 리장까지 4시간이면 도착한다.
끊임없이 이어져 있는 산맥을 따라 윈을 그리며 돌아가는 길 위에서 바라보는
하늘은 맑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는 등 변화무쌍하다.
창밖으로 보이는 먹구름이 조금씩 뒤로 움직이다가
넓은 들판을 배경으로 시원하게 펼쳐진다면 이제 리장에 도착한 것이다.
아름다운 리장은 수많은 인파로 넘쳐난다.
여강고성(麗江古城)
1996년 리지앙에 리히터 7의 거대한 지진이 일어났다.
대부분의 지역이 폐허가 됐는데 지금의 고성 지역만은 안전했다.
이런 특이성과 건물 가치가 인정되어 1999년에는 이 지역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대대적인 보수를 거쳐 현재의 모습을 갖추게 됐다.
여강고성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천천히 여행해볼 가치가 있는 곳으로 아테네,파리 등의 국제적으로 유명한 도시와 함께 세계 문화유산에 지정 된 곳이기도하다.
이곳은 성벽이 없는 고성으로 반들반들하고 깨끗한 응회암으로된 좁은 골목길에 손으로 직접 지은 흙과 나무로 지은 전통가옥들이 줄지어 있으며 골목골목을 흐르는 수로 위에는 작은 다리들이 얹혀져 있다. 오래된 집과 골목에서는 나이든 나시족 노인이 그 옛날 쪽빛 물들인 옷에 문화혁명시기의 팔각건을 머리에 두르고 환한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오래된 거리를 걷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점점 늘고있는 관광객들로 기념품을 파는 상점과 여행객들을 상대로 하는 음식점들이 모여있는 요란한 시장에서의 구경거리 역시 흥미롭다.
사방가(四方街)는 고성의 중심가로 예전부터 상인들이 교역을 하던 곳이기도 하다. 고성 안의 얽혀있는 수많은 골목들이 모두 이곳으로 통하게 되는데, 낮에는 화물교역시장이 서면서 수많은 인파가 몰리게 되지만 밤이되면 적막해진 사방가에는 호텔들의 붉은 등만 잔잔히 좁은 골목을 비추고 있다.
직경 10km 가량의 지역에 우리의 기와집을 연상하는 모습의 도시는
그 자체로만 신비한 느낌을 준다.
이 도시를 형성하는 포인트는 위추안(玉泉)호수에서 흘러 나온 위허(玉河)가
도시의 중심을 여러 갈래로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독특한 모습이다.
이름처럼 맑은 물빛은 도시를 청량한 모습으로 만들어낸다.
작은 시내가로는 카페가 있다.
사람과 상권의 중심에 형성되는 四方街는 도시 곳곳에 형성된 중심지로 밤에는 공연하는 장소, 낮에는 약속의 광장처럼 쓰인다.
리장 고성은 800년 여년의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리장에 거주하는 나시족은 원래 티베트 북동부에 살던 유목민 이였으나 윈난에 정착하여 명나라이후 세력을 넓힌 민족이다.
유럽의 중세도시를 닮은 아름다운 돌길과 수로의 리장은 매력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높은 곳에 올라 바라보면 검은 기왓장 지붕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데,
그 모습이 고급 슈트를 말쑥하게 차려 입은 회사원 같으며
이 도시에 흐르고 있는 시간이 느껴진다.
밤이 되면 매혹적인 조명과 감미로운 음악이 도시 전체를 감싸는데,
이럴 땐 곡 능수능란한 선수 같다.
낮과 밤의 색이 확연히 다른 리장은 여행자의 마음을 너무도 쉽게 빼앗아가 버린다.
낮에는 도시 전체가 반짝이는 푸른빛을 띤다.
길이 잘 들어 반들반들 해진 돌길에 새파란 하늘이 그대로 반사되고,
구불구불 길을 따라 흐르는 맑은 운하가 도시 전체에 파란 줄을 수도 없이 그어 놓는다.
오래된 돌바닥의 미로 같은 골목길과 물 흐르는 소리에 하루하루 안락함을 느낀다.
리장 꾸청이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복잡한 골목이다.
또한 유럽 도시와 유사한 형태를 하고 있는데
거미줄처럼 얽혀있는 골목은 결국 도시 중심의 광장으로 집결한다.
밤에는 도시 전체가 요염한 붉은빛으로 갈아입는다.
가게마다 내 걸어 놓은 홍등이 낯선 이의 얼굴도 친구의 얼굴도 모두 붉게 물들여 놓는다.
커피 한잔을 가운데 두고 마주 앉은 이의 눈을 오래도록 들여다보고 싶은 저녁이다.
리장을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으니 바로 위룽쉐산(옥룡설산)이다.
먼 하늘 높은 구름 사이로 가끔씩 보이는 산봉우리에 일 년 내내 변함없이
눈이 덮여 있기에 설산이라고 불린다.
들꽃마을
게스트 하우스 주변에서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소외된 아이들을 돌보는 들꽃마을 공동체를 만났다.
들풀과 들꽃!
그리고 공중의 새를 기르시는 하나님의 세미하신 간섭하심이 바로 그들을 기르시고
먹이신다는 고백으로 시작된 공동체이다.
자기 자식도 기르기 힘드는데!
이런 분도 있구나 하는 생각에 콧등이 찡한다.
여행은 눈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사람들을 만날수 있어야 한다.
여행은 사람과의 만남이다.
여행은 이기주의를 포기한 사람과 함께 어울릴 때 가장 편안하다.
더 많은 아이들이 깨끗한 마음으로 자랄 수 있도록 !
후원자들이 늘어나
들꽃마을이 버려진 노인들과 장애인들까지 돌보는 공동체로 성장하기를 원한다.
리장에 숨겨진 명물이 하나 있으니 바로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들꽃마을)이다.
숨겨졌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아름다운 자연을 찾아다니면서도
정작 인간을 대상으로 진지하게 바라보는 시간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무심결에 올려다본 하늘 --- 진짜 파랗다.
파아란 하늘보고 자라는 들꽃 마을 아이들이
흰눈같이 하얕게 하얕게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여강 백사벽화 건물
리장에서 10km떨어진 나시족 전통마을. 13세기 몽골족에 의해 멸망한 나시족 왕국의 수도였던 곳이기도 하다. 리장이 대지진 이후 관광지로서의 길을 걸은반면, 백사는 예나 지금이나 원형 그대로의 모습을 보존하고 있다.
백사는 이강에서 북쪽으로 8km거리에 있는 마을로 북쪽으로는 옥룡설산, 남쪽으로는 용천 , 서쪽으로는 지산(芝山)을 면하고 있다. 이곳은 이강에서 가장 오래된 마을 중의 하나로 여강에 있는 나시족 최초의 집거지이면서 여강 목씨토사(세습족장제도)의 발상지이기도 하다. 명대 건축물인 대보적궁(大寶積宮), 유리전(琉璃殿), 문창궁(文昌宮) 등이 이곳에 위치하고 있으며, 유명한 백사벽화가 대보적궁내에 있다.
※ 백사벽화
백사(白沙)에 있는 유리전과 대보적궁 내에는 대량의 명청시기 벽화가 보존되고 있다. 이 백사벽화의 가장 독특한 특징은 여러 종교가 하나로 합쳐져 묘사된 것으로, 하나의 벽화 안에 불교를 비롯하여 도교의 불상, 라마교의 불상이 함께 담겨져 있다. 이러한 각종 종교가 하나의 회화양식에
융합되어 있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사실, 여강벽화는 단지 백사에만 있는 것은 아니며 대연(大硏),속하(束河),중해(中海),양서(?西),설숭(雪嵩)등의 마을에 있는 십여 곳의 절과 사당에서도 볼 수 있다.
헤이룽탄 꽁위안(흑룡담 공원)
여강 시내 북쪽의 상산(象山) 밑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흑룡담은 청 건륭년간에 나시족이 이곳에 "옥천용왕묘(玉泉龍王廟)를 짓고, 청 건륭황제가 "옥천용신(玉泉龍神)"에 봉해지면서 알려지기 시작했다.
공원 내에는 푸른 버드나무 고목과 누각, 정자 등이 서로 조화롭게 배치되어 으며, 이외에도 명대의 오봉루(五鳳樓),해탈림(解脫林), 청대의 득월루(得月樓) 등 고대 나시족 건축군을 볼 수있다. 또한 공원 북쪽 입구에는 운남성 사회과학원 소속 동바 문화연구소가 있어 나시족의 문화와 관련된 것들을 전시하고 있다.
호수가 자리잡고 있는 이 공원은 리장에서 가장 보기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이다.
구름이 산 봉우리를 비켜주기를 기다렸지만 점점 더 많아졌다.
고도가 높아서 7월달이 되서야 오른쪽 산에 붉은 진달래 꽃이 피었다.
사쿠라 카페;
매일 밤마다 중국 여행자들이 한대 모여 노래하고
소리치는 바람에 머리가 아플 지경이다. (옆에 않은 사람의 목소리도 잘 들이지 않을 정도).
맞은편 카페와 경쟁적으로 국적모를 노래와 무용으로 앰프의 볼륨을 높이는 대
서울의 시끄러운 카바레 골목에 들어와 있는 듯하다.
고성은 각자의 취항에 따라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
보이차나 나염 등 각종 특산물 쇼핑은 물론이고
나시족 전통 공연 등 낮과 밤으로 흥밋거리가 있다.
또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서 혹시나 생길지 모르는
<비포 선 라이즈> 같은 사랑을 기대하며 바를 서성이기도 한다.
그러나 급속히 늘어나는 여행객의 홍수로 리지앙도 머잖아 사람의 홍수에 빠질 것이다.
눈의 웅장함, 옥룡설산(玉龍雪山, 위롱쉐샨)
여강의 빼놓을 수 없는 상징, 옥룡설산은 이름 그대로 1년 내내 눈이 녹지 않는 설산이다. 20km 떨어진 여강의 서북부에 웅장하게 서 있는데, 여강시내에서 이곳의 주봉을 볼 수 있다. 주봉은 해발 5,596m로 이곳에 눈이 녹지 않아 여강에서 이 산을 바라보는 우리가 이곳을 설산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옛부터 이 산의 산맥이 마치 은색의 용이 춤을 추는 모습과 비슷하다 하여 '옥룡'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그러나 설산의 기묘한 자태가 옛부터 지금까지 많은 여행자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 그 어느 누구에게도 정복된 적이 없는 처녀산이다. 보기에는 아름답지만, 결코 정복하기 어려운 산이기 때문이다. 또 이곳에서는 설산의 기경을 감상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고원산림의 풍모도 볼 수가 있는데, 희귀한 식물들이 많아 '현대의 얼음하천 박물관', '식물의 왕국'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다음 날은 리지앙에서 가장 가까운 설산인 위롱쉐산(玉龍雪山)으로 향했다. 설산의 입구에서는 고성의 보수비를 내야 한다.
해발 5500m 고봉이 펼쳐진 설산의 정상부는 흰 빛의 얼음 및 눈이 아름다운 모습을 하고 있다.
하지만 설산도 갈수록 높아지는 기온 때문에
그 아름다운 비늘이 차츰 벗겨지고 있다고 한다.
이곳을 구경하기에 가장 좋은 때는
겨울이 지나는 2월부터 우기가 시작되는 6월 이전까지와
10월에서 11월 초까지다.
그때는 산에 눈도 성성하고, 비도 오지 않아 정상을 보기 좋다.
우리 일행은 윈산핑에서 정상으로 향하는 케이블카를 탔다.
그런데 고산 기후답게 갑작스럽게 비가 온다.
오락가락하는 비 때문에 삼나무 숲은 보였지만 뒤로 펼쳐진 설산의 장경이 보이지 않는다.
고산의 맑은 숲에는 우리 한우를 닮은 소들이 자유롭게 방목해 있다.
이곳의 육포는 최고급으로 대우받는다.
문제는 정상 근처에서 파는 육포조차 그 진위를 가릴 수 없다는 것 있을 뿐. 이곳에서는 천마(天麻), 삼칠(三七), 설차(雪茶),
동충하초 같은 고급 약재들이 나온다.
돌아오는 길에 바이사(白沙) 마을의 벽화를 본다.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다.
벽화를 보고 나온 후문 쪽에는 <론리 플래닛>에 실려 잘 알려진 벽사 노인이 있다.
이곳 약재를 연구해 현대판 이시진(<본초강목>의 저자)으로 불리지만,
입구에서부터 붙여져 있는 신문기사는 보는 이로 하여금 미덥지 않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 수허 위추안스의 문 창살.
우리는 한군데 더 수허(束河)에 들렀다.
한 중국 여행자의 여행기에 인상적이라는 말을 들었지만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그런데 수허는 이번 여행에서 예상 밖의 수확이었다.
수허는 차마고도(茶馬古道)의 도시 가운데 가장 잘 보존된 지역이었다.
실크로드보다는 약간 늦지만 거의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차마고도는
윈난성 남부에서 출발한 동서 교역의 중요한 길로 7세기 경에 개통되었는데
현재까지도 세계적으로 지세가 가장 높고 험준한 문명 전파의 옛 도로로 알려져 있다.
역참도로를 따라 마방(馬幇)이 끊임없이 만들어져 있고,
이 길로 티베트나 인도에 차, 설탕, 소금 등 생활 필수품을 운송했다.
보통의 운송 수단은 말과 소로 '차마고도'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리지앙은 물론이고 샹그릴라 곳곳에서 이 지명을 만날 수 있는데
가장 대표적인 도시는 리지앙 인근 수허(束河)다.
수허에는 차마고도 역사 박물관이 있어, 차마고도에 관한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다.
수허는 리지앙시 중심에서 북쪽으로 8km 떨어져 있지 않으며,
해발 2440m 가량에 조성되어 있다.
수허는 일명 롱추안춘(龍泉村)으로 불리는데, 마을의 위쪽은 과거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
특히 빼어난 창살 문양을 가진 롱추안스(龍泉寺)가 있다.
곡식을 쌓아 두었던 장치나
가죽 가공 기술이 빼어난 점은 이곳이 차마고도의 중심임을 말해 준다.
수허는 새롭게 조성되는 구간보다는 과거의 향취가 묻어난 지역이 휠씬 보기 좋다.
입구에서 한참을 들어가 왼쪽으로 구 도시가 나타난다.
조금 올라가면 강가에 칭롱치아오(靑龍橋)가 있다.
이 다리는 차마고도상의 중요한 교통 중심이었다.
여기에서 산을 보면 산이 옛날 돈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그래서 마을 뒷산을 취보산(聚寶山)이라고 부른다.
부자가 되고 싶은 마음을 담은 산인 셈이다.
마을은 지진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 등 옛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고,
투명한 물이 마을 전체를 흐른다.
이 물은 마을 위쪽 롱추안스 앞 구딩롱탄(九鼎龍潭)에서 나온 것이다.
이 물길의 주변에 아름다운 게스트하우스들과 각종 시설이 갖추어져 있다.
이곳에는 차마고도 박물관이 있는데, 차마고도의 전모를 볼 수 있는 곳이다.
일행은 다시 리지앙으로 돌아와 여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과거 작은 촌락에 지나지 않았을
이곳이 수년만에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메카 가운데 하나로 변화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마음의 안식을 얻기 위해 이것을 찾고 있다.
밤이 되면 리자앙 고성을 통과하는 위허의 맑은 물 위로는 각자의 소원을 비는
작은 종이배들이 촛불을 켜고, 유랑을 시작한다.
세계 배낭여행자들이 모이는 만큼 그들의 소원도 각양각색일 것이다.
그 강에 띄워 보내지는 못했지만 내 소원도 강물을 따라 흘러가고 있었다.
옥수채
옥수채玉水寨는 나시족纳西族 중부지역의 동파성지이며, 여강고성의 근원지이다.
옥수채는 옥룡설산의 옥玉자와 물 수水자를 따서 지은 마을 이름으로 그만큼 아름다운 마을이라는 뜻이다.
나시纳西 문화의 발원지라는 옥수채를 많은 분들이 리쟝丽江 여행시 이 곳을 생략하는데, 고성을 덜 돌아다니더라도 이 곳만큼은 꼭 가보길 바란다.
옥수채 상단에 위치한 폭포와 호수의 맑고 투명함, 그 안에 투영된 하늘을 보지 못한다면 리쟝 여행의 즐거움을 반은 놓친 것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옥수채 동파문화 계승기지는 나시족의 전통과 고풍스러우면서도 수수한 면모를 보존해오고 있다. 주위의 아름다운 자연경관과 여러 색채가 서로 어우러져 비추고 있다. 실로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발전’이라는 나시족의 전통이념, 동파문화의 참뜻을 구현하였다. 현 풍경지역 내에 세분의 동파대사가 일상사무를 주관하고 있으며, 수명의 동파학생이 옥수채에서 동파경문, 동파춤, 동파제사의식, 동파예술등을 배우고 있다. 매년 농력 3월 5일에 나시족 전체가 옥수채에 모여 동파십라묘에서 1년에 한차례있는 동파십라회东巴什罗会를 거행한다.
옥수채에 들어가기전부터 이상한 문자들이 눈에 들어온다.
동파란 한 집단의 우두머리를 말하며 큰동파, 작은 동파들이 모여사는데 이들이 만든 문화가 동파문화이며, 이들이 쓰는 문자는 상형 문자로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자라고 한다.
장강제일만
운남 북서쪽에 있는 티벳에서 남동쪽 운남으로 흘러들어 온 금사강을 시작으로 하는 장강의 물줄기가 처음 역류하여 다시 북쪽으로 물줄기를 바꾸는 곳을 장강제일만이라고 한다.
장강은 폭이 넓고 물의 흐름이 매우 느리기 때문에 역사적인 도하작전이 이루어지곤 했었다.
호도협
장강제일만에서 30분이면 닿는 협곡으로 '호랑이가 뛰어 넘을 만큼 폭이 좁은 협곡'이라는 뜻으로 호도협이란 이름이 붙어있다. 넓은 금사강이 호도협에 이르러 갑자기 좁아져서 병목을 일으키는 이 곳에서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엄청난 물의 소용돌이가 일어나 장관을 이룬다. 더구나 옥룡설산과 합파설산이라는 거대한 두 개의 산맥 사이에 위치한 협곡의 깊이는 세계에서도 손꼽힌다.
협곡은 아스라한 벼랑사이로 난 도로를 따라 버스로 갈 수도 있고, 협곡 옆으로 난 산책로를 따라 걸어갈 수도 있다. 도보길은 약 30분 정도 걸리는데 주변 풍경이 좋아 산책하기에 정말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