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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불승자(叅佛乘者)가 지교망(指敎網)하야 위갈등(爲葛 藤)하고 토불어자(討佛語者)가 척단전(斥單傳)하야 위벽관 (爲壁觀)하며
불승(佛乘)을 참구하는 사람은 교망(敎網)을 가리켜 갈 등(葛藤)이라고 하고, 불어(佛語)를 찾는 사람은 단전(單 傳)을 배척하여 벽관(壁觀)이라고 한다.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가르치신 전통적인 경학의 입장에서 보면 불교의 경전은 중생들의 수준과 근기를 따라 설하다 보니 참으로 다종다양하다. 간단하게 두 가지로만 분류한다면 하나는 최상승의 가르침으로서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라는 교설을 불승(佛乘)이라 하였다. 그 외에 수행을 하더 라도 모두 부처님의 경지에는 이르지 못하고 아라한의 경지에만 이른다고 가르치거나, 아니면 오랜 세월을 수행하여 점차적으로 단계를 밟아 올라가 서 부처님의 경지에 이른다고 하는 다양한 교설을 전계하는 가르침의 교망 (敎網)이 있다. 그래서 사람이 본래로 부처님이라고 공부하는 사람들은 다 양한 교설을 칡과 등나무가 서로 얽히는 것과 같이 복잡하고 어렵기만 한 내용이라고 지적한다. 한편 달마대사가 중국으로 건너와서 불교를 가르치면서 기존의 불교와 는 전혀 다른 선불교(禪佛敎)를 전하였는데 한 사람이 한 사람에게 전한다 고 하여 단전(單傳)의 불교, 또는 벽을 바라보고 명상에 잠긴 불교라고 하 여 벽관(壁觀)의 불교라고 하였다. 그래서 단전불교의 전통을 세우면서 석 가모니 부처님의 정법을 계승한 제자는 제1조가 가섭이며, 제2조가 아난 이며, 제3조 상나화수 등으로 이어져서 달마는 제28조에 이르고, 달마가 중국에서는 초조(初祖)가 되므로 그의 제자 혜가(慧可)를 제2조, 승찬(僧 瓚)을 제3조 등으로 계산하여 혜능(慧能)대사를 제6조로 하여 육조대사라 고도 부른다. 이것이 선불교 전통의 법맥이다. 그런데 부처님이나 보살들이 가르치신 전통적인 불교의 가르침을 의지 하여 수행하는 사람들은 수많은 중생들을 교화하려는 대승적 보살행이 없 는 단전(單傳)의 불교를 벽만 바라보고 명상에만 잠겨 있다고 하여 그들을 벽만 바라보는 벽관외도(壁觀外道)라고 비판하였다. 무비스님이 풀어 쓴 김시습의 법성게 선해 2020년 6월 30일 연화장 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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