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강원도 고성 화암사(禾巖寺)
화암사는 강원도 고성군 토성면 신평리에 있는 사찰로 신라 혜공왕 5년(769년)에 진표율사가 창건했다. 진표율사는 우리나라 불교계에 법상종을 처음 연 승려로 통렬한 참회에 의한 해탈을 추구하는 참회불교의 체재를 정립했다. 화암사는 설악산 울산바위 북쪽 아래 고갯마루인 미시령 근처에 있다. 하지만 화암사 일주문에는 ‘金剛山禾巖寺(금강산화암사)’라 쓴 현판이 걸려 있으니 화암사 뒤에 있는 신선봉이 금강산의 끝 봉우리라 해서 화암사가 설악산권역이 아니라 금강산권역에 있음을 알리는 것이다.
화암사는 행정구역상으로는 고성군에 속하지만 오히려 속초에 가깝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이식(李植) 선생이 간성현감으로 있을 때 쓴 <杆城誌(간성지)> ‘화암사조’에는 ‘천후산 미시파령 밑에 화암(禾岩/벼바위)이라는 바위가 있어 절 이름을 화암사라 했다. 이 절은 산허리에 있어 가까이는 영랑호, 멀리는 창해에 임해 있고, 간성의 모든 산과 평원심곡이 눈 아래 보이며, 넓고 아름다운 경치는 절이 토해놓은 것 같다. 절 뒤에는 반석과 폭포가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어 가히 볼만 하다’고 적고 있다. 간성은 1919년에 군이 폐지되면서 고성군에 편입됐다.
이식 선생이 <간성지>에 썼듯 화암사 앞에는 벼이삭 수(穗)자를 쓰는 ‘수바위’가 우뚝 서 있다. 수바위는 생김새 때문에 쌀바위로도 불리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화암사가 깊은 산중에 있다 보니 스님들이 탁발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수바위에 있는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흔들면 쌀이 조금씩 나와 스님들이 이 쌀로 허기를 메웠다. 그런데 한 스님이 욕심을 부려 쌀이 많이 쏟아지도록 구멍에 지팡이를 넣고 마구 흔들자 쌀 대신 피가 나온 뒤 그 때부터 쌀이 나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는 쓸데 없는 욕심이 화근을 부른다는 가르침이리라.
화암사는 진표율사가 창건한 이래 천여 년간 누 차례에 걸쳐 화재로 인해 절집이 소실됐다. 그래서 화재가 날 때마다 중건을 거듭하다가 6.25전쟁 때 폐허가 된 것을 근자에 중창했다. 그러다 1991년, 고성에서 제17회 세계잼보리대회를 개최했을 때 주변 정비 계획에 따라 기존 법당을 헐고 다시 지었다. 지금 경내에는 신선계곡을 건너는 해탈교, 수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높다란 범종루, 그리고 삼성각, 구층석탑, 대웅전, 요사채 등이 있으며, 대웅전 뒤편의 산등성이에 높이가 14m 에 이르는 석조 미륵대불이 우뚝 서 있다.
화암사 일주문에 들어서면 바로 왼쪽으로 수바위가 보이고, 얼마 걷지 않아 계곡을 가로지른 해탈교를 건너게 된다. 경내에 들어서면 구층석탑과 대웅전이 있으며, 그 곳에서 왼쪽 계단을 걸어 언덕배기에 오르면 수바위가 바로 올려다보이는 범종루에 닿게 된다. 다시 범종루에서 발을 재촉하여 오른쪽 산등성이를 올라서면 동해를 굽어보고 서 있는 미륵대불과 만나게 된다. 미륵대불 앞에서 바라보는 동해의 해돋이 광경은 장관이다. 또한 수바위전망대에 오르면 동해는 물론이려니와 설악산 울산바위와 영랑호, 그리고 속초 시내가 한눈에 잡힌다.
지난 여름, 우리나라 정치권의 여.야 주요 정치인이 협치를 위해 이 곳에서 전격 회동했다고 한다. 그러나 양당이 협치는 커녕 날이 갈수록 더더욱 치열하게 정쟁을 벌이고 있으니 국민들은 어지러울 뿐만 아니라 몹시 피곤하다. 우리나라 정치인들도 참회를 수행의 근본으로 삼은 진표율사처럼 참회하고, 참회하고, 또 참회해야 할 것이다. 화암사를 뒤로하고 해탈교를 건너는데 수바위 쪽에서 진표율사가 정치인들에게 ‘욕심을 내려놓으라’고 일갈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