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디쯤 자리를 펼까 물갈퀴 드리워도
편안히 발을 뻗기엔 아득히 먼 불빛
한 자리 머물지 못하고 자꾸만 떠도는 삶
2
새벽안개 자욱히 선잠 깬 신도림역
집 떠난 자갈들 레일 밑에 신음하고
환승장 좁은 미로엔 출렁이는 얼굴들
3
등 밀려 쓸려왔다 어디로 또 떠나는
무리 속 까만 얼굴 자꾸만 눈길이 간다
언제쯤 돌아가려나, 헤매 도는 개구리밥
*개구리밥:논.늪지 등에 뜨는 작은 풀로 "부평초"라고도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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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부터 맷돌의 시감상을 다시 제가 맡습니다. 약수 선생님의 개인 사정으로 한 보름동안 먼 곳 여행을 다녀오시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양해바랍니다.
5월 중앙일보 시조 백일장 장원작품을 소개합니다. 먼저 본인의 이야기부터 들어보겠습니다.
"조선 500년 시조로 읊고 싶어"
연시조 "개구리밥"으로 5월 시조백일장 장원에 오른 박선양(67)씨. 그가 생업 전선에서 문학으로 돌아오는 데는 40년이 걸렸다. 40년 전 박씨는 김상옥의 시조 "봉선화"에 마음이 움직인 감수성 예민한 중학생이었다. 그 후 그는 고교 3년 동안 문예부에서 활동했으며 20대 중반까지는 이런저런 등단 관문을 두드리던 문청(文靑)이었다.
박씨는 "3남매 혼사까지 끝내고 나니 여유가 생겨 1년 2개월 전 본격적으로 시조 공부를 했다"고 밝혔다. 처음에는 예전 "가락대로" 자유시에 도전했지만 시를 어디에서 끝내야 할지를 알 수 없어 정형시인 시조로 방향을 틀었다.
박씨는 "이런 식으로 공부한다"며 주섬주섬 가방을 열어보였다. 마종기씨의 시집 "새들의 꿈에서는 나무 냄새가 난다"가 먼저 집혀 나온다. 줄친 자국, 깨알 같은 메모…. 손때 묻어 낡은 흔적이 역력하다. 이어 꺼낸 유재영씨의 시집 "햇빛 시간" 속표지에는 한자 "正(정)"자로 무슨 횟수를 표시해 두었다. 빨간색 "정"자의 획수는 62개. 읽은 횟수란다. 그 밑에 표시된 까만색 "정"자 획수 6은 옮겨 쓴 횟수다. 박씨는 "요즘은 단테의 "신곡"을 읽는다"며 A4 용지 크기의 두툼한 노트를 보여줬다. 눈이 아파 읽을 수 없어 작은 글씨를 160%로 확대 복사한 것이다.
박씨는 "우선 등단하고 싶다. 나중에는 신봉승씨의 "조선왕조 500년"같은 역사물을 시조로 풀어쓰는 작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씨는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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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심사평
떠도는 우리들 삶 돌아보게 해
박선양作 "개구리밥
숱한 격랑 속에서도 변함없이 세상을 지키는 초록이 더 눈부신 때다. 주위의 초록빛을 둘러보며 우리가 쓰는 시조도 저렇듯 겸손하고도 오래 가는 힘을 지녔으면 하는 마음이 새삼 간절해진다.
이달의 장원에 "개구리밥"을 뽑는다. "개구리밥"은 율격의 안정감과 삶에 대한 성찰이 돋보이는 가작이다. 현대인의 유목민적 삶의 단면과 개구리밥의 이미지 교차가 조화를 잘 이루는 가운데 자신 혹은 이웃의 떠도는 삶을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