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롬 11: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히나 메에테 파르 헤아우토이스 프로니모이''너희 스스로를 너 희가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도록 하려고' 가운데 전치사 '파라'('...곁에', '...함께', '...로 말미암아')가 어떤 사본에는 '엔'...안에', '...로)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비교적 오래된 사본에서는 전치사 '파라'로 되어 있으며 바울은 12:16에서도 이 말을 사용하는데, 거기서도 '파라'로 되어 있어서 '파라'일 가능성이 더 높다.
한편 본 구절의 '히나 메 에테'가 현재 가정법으로서 목적절이 되므로 바울이 이 말을 꺼내고 있는 것은 믿음을 갖고 있다고 하는 이방인들이 자만해 있는 것을 막고 유대인들에 대해 스스로 높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이는 그들이 그들 안에서부터 스스로 어떤 지혜를 가지고 있어서 믿음을 갖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해 준다.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
바울 당시에는 밀교가 있었는데, 그들은 입교자 외에는 알려주지 않는 비밀을 가지고 있어서 어느 정도 단계가 지나지 않으면 이 비밀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그러나 신약에서 사용되는 '비밀'(뮈스테리온)이란 이처럼 종교적 호기심을 발동하게 하거나 특별한 사람이나 풀 수 있는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계시를 통해 그의 백성에게 알려지는 하나님의 구원사적 활동을 의미한다.
이 말은 계시에 대해, 그리스도 자신에 대해,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사용되어 왔다. 그런데 이는 이전에는 감추어져 있었다는 점에서 비밀이지만, 이제는 그 비밀이 알려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비밀이라고 일컬어지는 이유는 사람이 완악하여졌거나 마음이 어두워져서 개별적으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 '이방인의 충만한 수'는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나 이스라엘을 받아들이는 것과 연관되어 이스라엘이 갖고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방인에게 확대되었음을 시사한다. '충만한 수'에 대해 모든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온다고 한다거나(공동번역), 구원얻을 자기 이미 정해져 있다고 하는 논리를 여기에 도입시켜버리는 것은 바울의 정신을 오해하고 본 구절이 다루고자 하는 핵심을 흐려지게 할 뿐이다(
이는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라'는 종말 현상에 대한 예수의 말씀에 근거한 것으로 모든 민족들에게 복음이 전파되는 시점을 의미하는 것이며 선택된 이방인의 충만한 수를 말하는 것이다. 이방인에 대한 하나님의 은혜가 충분히 적용되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올 때까지 이스라엘의 완악함은 계속될 것이며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역사의 끝이 되면 이러한 완악함도 끝날 것이다.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 '완악해졌다'는 표현은 7절에서 이미 언급되었고, 17절의 비유에서는 '가지 얼마가 꺾여졌다'고 암시되었다. 본절에서는 '더러는'이라는 표현이 추가되었다. 이 '더러라는 낱말에 대한 해석이 다양하다. (1) 칼빈은 이것이 단순히 시간이나 숫자를 가리킨다기보다는 '정도'의 으미로서 듣기좋게 수식하려 했을 뿐이라고 한다. (2) 혹자는 이것을 시간적인 의미로 해석하여 이스라엘의 완악함이 시간적으로 충만한 숫자가 들어오는 기간동안만 제한적으로 지속된다는 의미라 한다
그러나 본 구절이 이스라엘의 구원에 집중되어 있고,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언제 완결될 것인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구원 계획이므로 알 수 없다. 결국 칼빈의 견해대로 바울은 본 구절에서 숫자나 시간을 염두에 두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완악하게 된 것은 이방인이 구원얻게 하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될 뿐이고, 결국 이스라엘도 구원에 동참하게 된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롬 11: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 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 구절에 대한 해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1) '온 이스라엘'이 역사의 끝에서 지구상에 살고 있을 모든 유대인 집단을 가리킨다는 견해이다. 그러나 이 견해는 구원의 대상이 사람의 혈통에 의해 좌우된다는 결과가 되므로 성경적으로 지지받지 못한다. (2) 혹자는 갈 6:16에 근거하여 '온 이스라엘'이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 가운데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킨다고 하였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은 이스라엘이라는 견해는 타당하지만,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즉 상반절에서 묘사된 '온 이스라엘'과 '남은 자'의 대조를 파악할 수가 없다 (3) 어떤 학자들은 선택된 유대인 전체로 본다. 이 견해대로 하면 25절의 '이방인의 충만한 수'라는 구절이나 26-29절에 이어지는 문맥과 잘 연결된다. 즉 본절의 '온 이스라엘'은 장차 구원받게 될 이스라엘 민족 개개인을 말한다.
본 구절이 주는 어감은 유대인의 민족적 회심을 암시해 주지만, 모든 개개인이 구원얻는다기보다는 상당히 많은 수의 유대인들이 돌이킨다는 의미로 봄이 타당할 듯하다.바울이 쓴 본문에서는 전치사가 '에크'('...로부터'로 되어 있고, 70인역에서는 '헤네켄'('...을 위하여으로, 맛소라 본문에서는 '레'('...으로'로 되어 있다.
이런 차이들은 각기 성경 기자의 신학적 관점에 따라 기록한 때문일 뿐 내용상 큰 차이를 보이지는 않는다.
바울의 관점을 살펴본다면 본문에서 전치사를 '에크'로 바꾼 이유는 이스라엘의 회심으로 인해 메시야가 강림할 때에 천상의 예루살렘으로부터 오실 것으로 간주했기 때문인것 같다. 한편 '구원자'에 해당하는 헬라어 '호 뤼오메노스'는 히브리어 '고엘'의 번역이며 이는 종이된 다른 사람을 종된 상태로부터 구해주거나 채무를 대신 짊어지는 사람을 가리킨다.
특히 이 말은 민족적으로는 이스라엘의 적들을 물리치고 이스라엘을 구출하여 내는 '구속자', 즉 '메시야'를 의미한다. 본절에서는 '야곱' 곧 이스라엘 가운데 불경건한 것들이 척결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이루어 구원을 얻는다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 본 구절은 70인역의 사 59:20을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구약에서 '야곱'은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가리키는 집합적이고 대표성을 가진 용어이다.
따라서 본 구절은 이스라엘 민족이 전반적으로 범죄하여 경건치 않게 되었는데 이렇듯 불경건한 상태에 있는 이스라엘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맛소라 본문에 의하면 그 죄에서 떠나는 자에게 구속주가 왔다고 한 반면, 70인역에서는 구속주가 와서 백성으로 하여금 불경건함에서 돌이키게 할 것이라고 번역하였다.
바울이 70인역의 번역을 그대로 따른 것은 70인역이 구속주가 반드시 와야 죄가 해결될 것을 전제하기 때문일 것이다. 불론 구속주로 인해 은혜를 입은 자는 죄에서 돌이키는 것을 수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관점의 차이는 있어도 두 번역은 동일한 내용이라 볼 수 있다.
[롬 11: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본 구절은 사 27:9의 인용이다. 바울은 이 구절을 자유롭게 고쳐서 인용했으며 여기에는 렘 31:31-34과 미 5:2 등에서 볼 수 있는 사상도 깃들어 있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이켰을 때 얻게 되는 복스러운 은혜를 말하고 있다. 본 구절 역시 70인역의 번역을 따랐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스스로 자신의 죄에서 돌이키지 못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스라엘의 회심이 어려운 이유는 그 백성의 완악함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70인역은 새로운 언약을 통해 저희 죄를 값없이 처래해 주겠다고 선언한 데 강조점을 두었다. 바울이 인용한 것으로 보이는 사 27:9의 예언을 보면, 여러 우상이 진멸될 때 비로소 야곱의 불의와 죄가 속함을 받을 것을 말한다. 이러한 약속을 보다 분명히 하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70인역의 번역을 따라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완성된 구원을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죄'에 해당하는 헬라어 '하마르티아스''죄들'는 70인역에는 단수로 되어있으나 복수로 고쳐 인용하였다. 이는 이스라엘 개개인이 범한 모든 죄악을 총칭하고 공동체 전체가 범한 죄 모두를 강하게 시사하는 표현이다.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 바울은 이러한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새언약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이 새 언약은 렘 31:31에서 제시되는 것으로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맺은 옛언약이 새로운 차원으로 진행되어 하나님의 법이 백성들 속에서 작용하고 마음에 기록되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것을 보여준다. 따라서 바울은 이러한 하나님의 언약에 기초하여 이스라엘 백성이 비록 완악하여 지긴 했어도 대부분의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게될 것임을 제시한다. 결국 바울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말한 언약의 개념이 보다 구체화되어 계속적으로 드러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롬 11:28]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본절에서 바울은 수수께끼같은 이스라엘의 현재적 상태를 하나님의 구원 섭리라는 포괄적인 관점에서 경구적 표현을 사용하여 설명하고 있다. 즉 '복음'과 '택하심'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비롯되는 이스라엘의 이중적 상태를 역설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래서 본절에는 대조와 병행을 이루는 용어들이 부각되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원수'와 '사랑을 입은 자', 그리고 '복음'과 '택하심'이다. 한편 4:25에서도 이와 같은 수사법을 사용하였는데,
본절에서는 이런 표현을 사용하여 유대인의 불순종과 패역은 그들이 이방인들에게 천대받아도 된다는 근거를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된 자요 -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여 실제로는 하나님과 적대 관계에 있지만, 이로인해 이방 세계에 복음이 전해져서 이방인들이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므로 그 효과는 충분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었던 유대인은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배척하였어도, 하나님의 택하심과 전혀 무관했던 이방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 상대적으로 유대인들은 하나님과 적대 관계가 형성된 것처럼 여겨졌다. 그러나 바울은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하였기 때문에 실제로는 하나님의 구원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자들이 된 것처럼 보여도 유대인들은 이방인이 가진 것과 다른 특권을 고유하게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하려 하고 있다.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 비록 복음의 경륜 안에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들을 위해 원수된 자로 간주되었지만 그들의 조상 덕분에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있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조상들을 인하여'(디아 투스 파테라스)라는 구절은 조상들의 공적(제쿠트 아보트)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다. 즉 조상들이 보여준 의로운 행위가 축적되어 후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는 의미가 아니라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사랑을 입은 것은 그의 조상들과 맺은 언약에 근거하는 것이고, 하나님은 그의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신실하게 언약을 성취해 가시므로 그 후손들에게도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성취하실 것이다. 결과적으로 현재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인해 하나님의 언약이 폐기되지는 않는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한결같이 신실하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