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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4월 1일 수요일
[(자) 성주간 수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말씀의 초대
이사야 예언자는, 주 하느님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주님의 종을 대적하겠냐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와 파스카 만찬을 드시면서,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자는 불행하다며 유다의 배반을 예고하신다(복음).
제1독서
<나는 모욕을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주님의 종’의 셋째 노래).>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 50,4-9ㄴ
4 주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제자의 혀를 주시어
지친 이를 말로 격려할 줄 알게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침마다 일깨워 주신다.
내 귀를 일깨워 주시어 내가 제자들처럼 듣게 하신다.
5 주 하느님께서 내 귀를 열어 주시니
나는 거역하지도 않고 뒤로 물러서지도 않았다.
6 나는 매질하는 자들에게 내 등을,
수염을 잡아 뜯는 자들에게 내 뺨을 내맡겼고
모욕과 수모를 받지 않으려고 내 얼굴을 가리지도 않았다.
7 그러나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니 나는 수치를 당하지 않는다.
그러기에 나는 내 얼굴을 차돌처럼 만든다.
나는 부끄러운 일을 당하지 않을 것임을 안다.
8 나를 의롭다 하시는 분께서 가까이 계시는데
누가 나에게 대적하려는가?
우리 함께 나서 보자. 누가 나의 소송 상대인가? 내게 다가와 보아라.
9 보라, 주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나를 단죄하는 자 누구인가?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사람의 아들은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6,14-25
14 그때에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로
유다 이스카리옷이라는 자가 수석 사제들에게 가서,
15 “내가 그분을 여러분에게 넘겨주면
나에게 무엇을 주실 작정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은돈 서른 닢을 내주었다.
16 그때부터 유다는 예수님을 넘길 적당한 기회를 노렸다.
17 무교절 첫날에 제자들이 예수님께 다가와,
“스승님께서 잡수실 파스카 음식을
어디에 차리면 좋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도성 안으로 아무개를 찾아가,
‘선생님께서 ′나의 때가 가까웠으니
내가 너의 집에서 제자들과 함께 파스카 축제를 지내겠다.′ 하십니다.’ 하여라.”
1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분부하신 대로 파스카 음식을 차렸다.
20 저녁때가 되자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와 함께 식탁에 앉으셨다.
21 그들이 음식을 먹고 있을 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2 그러자 그들은 몹시 근심하며 저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기 시작하였다.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나와 함께 대접에 손을 넣어 빵을 적시는 자, 그자가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24 사람의 아들은 자기에 관하여 성경에 기록된 대로 떠나간다.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
25 예수님을 팔아넘길 유다가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네가 그렇게 말하였다.” 하고 대답하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배신을 이미 알고 계시면서도 그를 내치시지 않고,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식탁에 앉으십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당신에 대한 배신을 예고하십니다. 그러자 유다가 “저는 아니겠지요?”(마태 26,25) 하고 묻습니다. 우리는 이 모습을 보며 뻔뻔하다고 분노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의 물음은 오늘 우리의 얼굴을 비추는 거울일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을 자세히 보면 다른 제자들도 유다처럼 “저는 아니겠지요?”(26,22) 하며 비켜서려 합니다. 본문에 쓰인 “저마다”(26,22)라는 표현에서 여러 제자가 같은 물음을 던지며 책임에서 한발 물러서려고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다르지 않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하면서, 어느새 예수님을 배신하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늘 ‘나는 아니겠지 …….’ 하며 내가 당한 것, 내가 억울한 것만 생각하고, 내 잘못은 누군가의 탓으로 돌리려 합니다. 그러나 죄 앞에 솔직하지 못하고 끝내 감추려 하였던 마음이 유다를 ‘영원한 배신자’로 남게 하였고, 마침내 절망의 선택으로까지 이끌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유다의 가장 큰 죄는 배신 그 자체보다, 회개로 돌아서지 못한 채 자신을 어둠 속에 가둔 절망에 있습니다.
파스카 성삼일을 맞이하며 우리도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시다. 회개로 부활에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도록 말입니다. 우리를 부르시며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라고 물으시는 하느님 앞에서, 내 마음은 지금 어디에 머물러 있는지 솔직한 마음으로 살펴봅시다.(김도형 스테파노 신부)
하느님은 다 알고 계시는데, 왜 굳이 죄를 고백해야 할까?
전삼용 요셉 신부님
오늘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나누시며 폭탄 선언을 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나를 팔아넘길 것이다." (마태 26,21) 이 말씀에 제자들은 큰 슬픔에 잠겨 저마다 묻습니다. "주님, 저는 아니겠지요?" (마태 26,22) 그런데 가리옷 유다도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스승님, 저는 아니겠지요?" (마태 26,25) 겉으로 보기엔 똑같은 질문 같지만, 유다의 질문에는 하느님을 향한 무서운 '시험'과 '거짓'이 숨어 있습니다.
먼저 우리는 유다의 호칭에 주목해야 합니다. 다른 제자들은 "주님(Kyrie)"이라고 불렀지만, 유다만은 "스승님(Rabbi)"이라고 부릅니다. 유다에게 예수님은 내 생명의 주관자가 아니라, 단지 내가 속일 수 있고 내 계획을 평가받아야 할 한 명의 현자에 불과했습니다.
유다가 "저는 아니겠지요?"라고 물었을 때, 그의 마음속에는 이런 전제가 깔려 있었습니다. '당신이 아무리 똑똑해도 내가 은밀히 사제들에게 받은 은 서른 냥은 모를 거야. 아니, 혹시 알아차렸더라도 이 거룩한 만찬 석상에서, 동료들 앞에서 내 정체를 폭로하여 분위기를 망칠 정도로 무자비할 수는 없지. 이것이 이분의 약점이야.'
이것이 죄의 본질입니다. "아무도 모른다"는 믿음, 혹은 "알아도 어쩌지 못할 것이다"라며 하느님의 자비를 역이용하는 비겁함입니다. 나를 진실하게 할 대상, 곧 주님이 사라진 자리는 즉시 사탄의 놀이터가 됩니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탈개인화(Deindividuation)'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인간은 자신의 정체성이 가려지고 타인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고 느끼는 순간, 평소에 작동하던 도덕적 규범과 사회적 책임을 한순간에 던져버립니다.
현대 사회의 악플 문화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미국 심리학자 에드워드 디너(Edward Diener)의 실험은 이를 소름 돋게 증명합니다. 핼러윈 밤, 아이들에게 사탕을 마음껏 가져가라고 했을 때, 혼자 온 아이들보다 가면을 쓰고 단체로 움직여 자신의 신분이 모호해진 아이들이 규칙을 어기고 사탕을 훔쳐 갈 확률이 무려 57%나 높았습니다.
유다가 바로 이 영적 탈개인화 상태에 빠진 것입니다. 그는 '나는 누구도 모르게 완벽히 숨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이 익명성에 대한 믿음은 자유가 아니라, 인간을 통제 불능의 짐승으로 만드는 독약입니다. 자신을 지켜보는 절대자의 시선을 지워버린 유다에게 남은 것은, 결국 스스로 목을 매는 비참한 종말뿐이었습니다.
인류 최초의 조상 아담과 하와도 이 환상에 빠졌습니다. 죄를 지은 그들은 숲속에 숨어 무화과 잎사귀로 자신을 가렸습니다. 하느님께서 "너 어디 있느냐?"라고 물으실 때, 그들은 사실 하느님이 몰라서 묻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이 "주님, 저희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라고 고백하지 않고 "저 여자가 줘서 먹었습니다"라고 핑계를 댄 이유는, 하느님을 '다 아시는 분'으로 대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죄는 나를 가리게 만들고, 가리는 행위는 하느님의 전지하심을 부인하는 불신앙으로 이어집니다. 유다의 "저는 아니겠지요?"는 에덴동산의 그 비겁한 숨바꼭질이 변주된 것입니다.
인간은 자신의 죄를 향한 욕구를 스스로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누군가가 지켜봐 줘야 합니다. 우리는 다윗 왕의 사례에서 고백의 위대함을 봅니다. 다윗은 밧 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였습니다. 그는 완벽하게 은폐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나탄 예언자가 나타나 "임금님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라고 지적했을 때, 다윗은 유다처럼 발뺌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즉시 "내가 주님께 죄를 지었소" (2사무 12,13)라고 고백했습니다. 다윗은 깨달았습니다. '아, 하느님은 다 보고 계셨구나. 내가 숨길 곳은 우주 어디에도 없구나.' 이 자각이 그를 살렸습니다. 시편 139편에서 그는 노래합니다. "주님, 당신께서는 저를 낱낱이 아십니다. 제가 앉으나 서나 당신께서는 아시고, 멀리서도 제 생각을 꿰뚫어 보십니다."
다윗이 성군이 될 수 있었던 비결은 죄를 안 지어서가 아니라, 하느님이 나를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고백은 하느님께 정보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진리 안으로 나를 동기화(Sync)시키는 과정입니다. (출처: 『주석 성경』 사무엘기 하권 12장)
여기서 우리는 신자분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신부님, 하느님이 다 알고 계시는데 굳이 구구절절 제 입으로 죄를 고백해야 합니까?" 하느님은 정보를 원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고백은 하느님을 인정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고백은 바로 이 실험의 영적인 완성입니다. 내가 고해소에서 내 입으로 죄를 뱉는 순간, 내 뇌와 영혼은 "하느님께서 지금 나를 지켜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비로소 실재로 받아들입니다. 머리로만 알고 있는 하느님은 나를 정직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하지만 고백을 통해 그분의 시선을 내 삶의 중앙에 모실 때, 우리는 비로소 '거짓의 옷'을 입고 살 수 없게 됩니다.
저는 어렸을 때, 어머니가 저의 모든 일거수일투족을 이미 꿰뚫어 보고 계신다는 사실을 자주 경험했습니다. 어느 주일, 성당에 가지 않고 친구들과 몰래 오락실에 다녀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는 완전범죄를 꿈꾸며 성당 입구에서 주보만 슬쩍 챙겨 집으로 돌아왔지요. 어머니 앞에 주보를 당당히 내밀며 "엄마, 저 성당 잘 다녀왔어요!"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어머니의 눈빛이 이상했습니다. 어머니는 "정말 성당만 갔다 왔니? 신부님 강론은 어떠셨어?" 라고 넌지시 물으셨습니다. 저는 대충 둘러댔지만, 결국 어머니는 제가 오락실에서 게임에 열중하고 있던 모습을 동네 아주머니를 통해 이미 다 알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때 깜짝 놀랐습니다. '아니, 다 알고 계시면서 왜 나한테 물어보셨을까?'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것은 저를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가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려는 어머니만의 '거짓말 방지 장치'였습니다. 엄마가 나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제가 직접 고백하게 함으로써, 제가 '거짓으로 숨길 수 있다'는 오만한 착각에서 벗어나게 하려 하신 것입니다. v 만약 제가 끝까지 고백하지 않았다면, 저는 끊임없이 제 자아를 긍정하며 '거짓말은 유용한 수단'이라고 믿었을 것입니다. 거짓을 아버지로 삼고 사는 사람은 결코 죄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엄마의 질문은 제가 진실 앞에 무릎 꿇게 하려는 사랑의 초대였습니다.
이번 성주간 수요일, 우리도 유다의 질문 "저는 아니겠지요?"를 멈춥시다. 대신 다윗처럼, 그리고 돌아온 탕자처럼 고백합시다.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이 다 알고 계신다는 믿음으로 고해소에 들어갈 때, 그곳은 심판의 자리가 아니라 거짓의 옷을 벗고 하느님의 자녀라는 빛의 옷으로 갈아입는 잔칫집이 될 것입니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이렇게 탄식했습니다. "주님, 제가 고백하지 않아도 당신은 다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제가 고백하는 이유는 제 마음의 닫힌 문을 열어 당신의 빛이 들어오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백은 하느님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나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출처: 성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제10권).
또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말했습니다. "죄를 짓는 것보다 무서운 것은 죄를 숨기는 것이다. 하느님 앞에서의 비밀은 지옥의 불씨가 되고, 하느님 앞에서의 폭로는 천국의 이슬이 된다." (출처: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마태오 복음 강론』).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요즘 사람들은 말합니다. “인공지능 춘추전국 시대다.” ChatGPT, Gemini, Claude, Grok 등 다양한 인공지능이 있습니다. 많은 분이 묻습니다. “무엇이 다릅니까?” 조금 구체적으로 말해 보겠습니다. ChatGPT는 질문자의 의도를 비교적 잘 읽어 주고, 공감적 표현과 설명을 균형 있게 제공합니다. 복잡한 내용을 쉽게 풀어 주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Gemini는 방대한 자료를 빠르게 정리하고, 검색과 연계하여 구조화하는 데 장점이 있습니다. 정보 연결과 정리가 강합니다. Claude는 긴 문서를 차분히 분석하고 요약하는 데 강점이 있습니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일관된 문장을 만들어 냅니다. Grok은 비교적 직설적이고 추론 중심적이며, 최신 이슈를 빠르게 반영하려는 특징이 있습니다. 같은 질문을 던져도 강조점이 다릅니다. 관점이 다릅니다. 그러나 목적은 하나입니다. 인간을 돕는 것입니다.
저는 이 모습을 보며 사 복음서를 떠올렸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유다인 전통 위에서 예수님을 새 모세로 제시합니다. 구약의 성취라는 구조를 분명히 보여 줍니다. 체계적이고 가르침 중심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가장 짧지만 역동적입니다. “곧바로”라는 표현이 반복됩니다. 행동하는 예수님, 고난받는 종의 모습이 중심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자비와 공감이 깊습니다. 가난한 이들, 죄인들, 여성과 이방인까지 품는 예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요한 복음서는 신학적 깊이가 있습니다. 빛과 어둠, 생명과 진리 같은 상징을 통해 예수님의 신성을 드러냅니다. 복음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네 개의 창을 통해 빛이 들어옵니다. 시선은 다르지만,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AI는 서로 다른 강점을 가집니다. 그러나 아무리 뛰어난 도구라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을 대신하지는 못합니다. AI는 정보를 주지만, 복음은 생명을 줍니다. AI는 분석하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고 가십니다. 성주간 수요일은 유다가 예수님을 계산하기 시작한 날입니다. 효율과 이익을 따졌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계산하지 않습니다. 복음은 계산의 논리를 넘어섭니다. 정보가 넘치는 시대입니다. 우리는 더 똑똑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더 거룩해지는 것은 다른 문제입니다. 네 복음서가 서로 다른 색깔로 같은 예수님을 증언하듯이,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같은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주님, 지식 속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소서. 정보보다 사랑을 선택하게 하소서. 복음이 제 삶의 중심이 되게 하소서.”
<그런 사람이기를>
상지종 베르나라도 신부님
“그러나 불행하여라, 사람의 아들을 팔아넘기는 그 사람!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에게 더 좋았을 것이다.”(마태 26,24)
나보다 더
나를 믿으시는
당신을
믿음으로써
내가
나에게
믿음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나보다 더
나를 희망하시는
당신을
희망함으로써
내가
나에게
희망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나보다 더
나를 사랑하시는
당신을
사랑함으로써
내가
나에게
사랑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나보다 더
나를 섬기시는
당신을
섬김으로써
내가
나에게
섬김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나보다 더
나를 살리시는
당신을
살림으로써
내가
나에게
살림일 수 있는
그런 사람이기를
오늘의 성인
이집트의 성녀 마리아 은수자
마리아는 히브리어 Myriam에서 유래된 말로 ’하느님이 사랑하시는 여자’란 뜻이다.
젊은 테오도시우스의 통치때, 팔레스티나에는 한 집에서만 43년동안 살았고, 하느님만 섬기는 거룩한 조시모라는 수도자가 있었다.
그는 하느님의 계시를 받고 요르단으로 향하였으나, 자신은 자기 수도원과 20일 간의 거리나 떨어져 있음을 알고는 기도 시간이 되어 시편을 외우고 있었다.
이때 그는 "조시모 신부님, 나는 여자입니다. 당신의 겉옷을 던지면 나를 볼 수 있습니다."하는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 이 소리의 주인공이 곧 이집트의 마리아이다.
그녀는 이집트 여성인데, 17년 동안이나 거리의 여성으로 살아왔지만, 돈을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28세때, 신비스런 방법으로 그녀는 예루살렘으로 성 십자가 축일을 지내려 가는 일단의 무리들과 합류하게 되었는데, 여행을 하는 도중에 자기의 악습을 고치지 못하고 열심한 순례자들을 타락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드디어 예루살렘에 당도하여 성당에 들어가려 하니, 뒤에서 누가 잡아당기는 듯하여 들어가지 못하고, 한쪽 구석에 서 있다가, 처음으로 자신의 잘못을 크게 깨달았다는 것이다.
이윽고, 눈을 들어 마리아 상을 바라보니, 그 성모님께서 눈물을 흘리고 계셨다고 한다.
그제서야 그녀는 밝은 마음으로 성당으로 갔고, 깊히 통회하니, "너는 요르단으로 가서 여생을 지내라."고 명하여 이렇게 사막에 산다는 것이었다.
그녀는 요르단 사막에서 47년 동안이나 사람 한사람 구경못하고 살았다.
조시모는 그녀를 위해 성체를 영해주고, 그녀가 약속한 두 번째 지점에서 만나기로 하고 갔으나, 그녀는 이미 운명하고 있었다.
"조시모 신부님, 가련한 마리아를 장사지내 주십시오."하며 숨을 거둔 것이다.
그는 이 사실을 자기의 모든 형제들에게 이야기해주어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고 한다.
성 후고 (Hugh)
신분 : 주교
활동지역 : 그르노블(Grenoble)
활동연도 : 1052-1132년
같은이름 : 위고, 후꼬, 휴스
프랑스의 샤토외프에서 태어난 그는 평신도로서 방랑스의 주교좌에서 활동하다가 주교의 협조자가 되었다.
그는 성직매매를 반대하는 주교의 캠페인에 적극 가담하여 큰 성과를 얻었고, 1080년에 열린 아비뇽 시노드에 참석하고 있던 중에 그레노블의 주교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황대사로부터 서품되고, 로마에서 교황으로부터 직접 주교로 축성되었다.
그는 주도면밀한 교구 개혁안을 수립하였는데, 성직매매와 고리 대금업을 철저히 배격하였고, 성직자의 규율과 사제 독신제를 확립하는 한편, 텅빈 교구 재정을 튼튼히 하였다.
그후 그는 세즈-디외 수도원에서 베네딕또 회원이 되었으나, 교황 그레고리오 7세의 권고로 자기 교구로 돌아갔다.
그는 성 브루노의 제자였기 때문에 늘 특별한 관계를 유지하였고, 성 브르노의 카르투시오회가 크게 번창하는데 기여하였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Lodovico Pavoni
신분 : 신부, 설립자
활동연도 : 1784-1849년
같은이름 : 누수, 로도비꼬, 로도비꾸스, 로도비쿠스, 루도비꼬, 루도비꾸스, 루도비코, 루도비쿠스, 루수, 루이, 루이스
성 로도비코 파보니는 1784년 9월 11일 이탈리아 롬바르디아(Lombardia) 지방의 브레시아(Brescia)에서 부유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활기 넘치고 총명한 아이로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관심을 갖고 당대의 사회적 문제들을 이해하는데 재빨랐다. 그는 어려서부터 후에 브레시아의 주교가 된 도미니코회의 카를로 도메니코 페라리(Carlo Domenico Ferrari) 신부의 집에서 신학교육을 받으며 사제직을 준비하였다. 집에서 공부했던 것은 프랑스의 나폴레옹 1세(Napoleon I)가 이탈리아를 점령했던 시기(1799-1814년)에 신학교가 강제로 폐교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1807년 브레시아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1818년, 그는 고아원과 직업학교를 설립할 허락을 받고 성 바르나바(Barnabas) 성당의 주임신부로 임명되면서부터 불행한 소년들을 돌보는 사업을 시작했고, 이는 1821년 ‘성 바르나바 학교’로 구체화되었다. 그는 첫 번째 사업으로 인쇄업을 시작했다. 그래서 1823년에 ‘성 바르나바 학교 출판사’를 설립했고, 이는 오늘날의 ‘안코라 출판사’(Ancora Press)의 전신이 되었다. 소년들은 또한 목수, 은세공인, 대장장이, 제화공, 염료 제조 기술자가 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같은 해에 그는 처음으로 농아들을 학교에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농장을 구입하여 농업학교도 설립하였다.
1825년,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자신의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사제와 수사들로 구성된 공동체를 만들었고, 184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16세는 브레시아를 위해 이를 승인해 주었다. 1847년 8월 11일, 브레시아 교구의 주교좌 참사위원장 루치(Luchi) 몬시뇰이 ‘원죄 없으신 성모의 아들회’[또는 ‘파보니아니’(Pavoniani)]를 설립했고, 그해 12월 8일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와 첫 회원들의 수도 서원이 거행되었다.
1849년 3월 24일, 브레시아가 오스트리아에 저항했던 ‘열흘’ 동안, 양측은 모두 브레시아를 약탈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콜레라마저 유행하는 동안 시민들을 돌볼 책임을 느낀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12km 떨어진 사이아노(Saiano) 언덕에 있는 수련소까지 자신에게 맡겨진 소년들을 이끌며 그의 마지막 영웅적인 애덕의 행위를 완수했다. 한 주일 뒤인 1849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주일이 밝아오던 새벽녘에 그는 하느님의 품에 안겼다. 30여 년간 교육의 긍정적 방법으로 거리의 소년들의 필요에 봉사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영감을 쏟아 부었던 그의 생이 마감된 것이다.
교육에 대한 그의 이상은 광범위한 것으로 한 인간의 전인교육을 실시하는 것이었다. 그는 제자들을 훌륭한 사회인이자 그리스도인으로 교육했다. ‘노동헌장’이 반포되기 50년 전에 이미 그는 사회정의의 종교적 의미를 이해하고, 그 스스로 고용인들을 올바로 대우하는 모범을 보여주었다. 그는 후대의 성 요한 보스코(Joannes Bosco)처럼 격려하고 예방하는 교육방법을 사용했다. 그는 엄격함보다 관대함을 선호했다. 그래서 종종 “엄격주의는 하늘나라를 텅 비게 만든다.”라는 말을 하곤 했다. 그가 설립한 수도회의 회원들은 현재 브라질, 콜롬비아, 에리트리아, 독일, 이탈리아, 에스파냐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들은 여전히 책을 출판하는데, 로마에서는 성 베드로 광장 밖에서 안코라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성 로도비코 파보니 신부는 2002년 4월 14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2016년 10월 16일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바티칸의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그는 성 루도비쿠스 파보니(Ludovicus Pavoni)로도 불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