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코르제국의 흔적을 찾아14
1월 6일(토) 다섯 째날
세시 반 쯤 일어나다. 간밤 꿈에 구속되었다 풀려난 이민숙 선생이 보였다. 난 반가와 악수를 청할 생각이었는데, 이 선생은 그냥 아는 체만 하고 기차를 타려는 참이었다. 좀 무안한 기분에 잠이 깼다. 선풍기는 틀지 않고 창을 약간 열어놓았는데, 새벽 공기가 쌀쌀해서 문을 완전히 닫았다. 어젯밤에 빨아 널어놓은 빨래들이 대부분 말랐다.
다섯 시 조금 지나 밖으로 나섰다. 새벽 공기가 쌀쌀하다. 아직 어두워 둥근 달빛이 무척 밝게 느껴진다. 지도가 없으니 도대체 이곳이 어디인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어제 갔던 방향과 다른 쪽으로 가본다. 어둠 속에서 음식점들이 문을 열고 있고, 맨발의 탁발승들이 보인다. 썽태우도 다니기 시작한다. 새벽 미션은 서점과 인터넷 카페 찾기다.
또쌍 호텔(Tohsang Hotel) 안내판이 있어 그쪽으로 간다. 빨로짜이 길(Palochai Road) 길에 나타난 호텔이 아주 고급스럽다. 혹시나 인터넷을 할 수 있나 싶어 들어가 보니 입구에 LCD 모니터가 보인다. 멍하게 프론트에 앉아서 졸던 남자가 컴퓨터를 켜준다. 쓰여진 사용료는 시간당 100 바트로 무척 비싼 편이다. 하지만 이런 새벽에 멋진 공간에서 사용하려면 그 정도는 기꺼이 쓸 수 있다. 동아시아언어지원을 받기 위해 CD 1번이 있느냐고 물어보니 직원은 없다고 한다. 아마도 담당이 아니라서 내용을 모르는 게 분명하다. 할 수 없이 다시 나온다. 숙박 요금은 1,200 바트. 두 사람의 뷔페식 아침 식사가 포함되면 괜찮은 숙소다. 규모가 크지 않아 소박한 아름다움이 여겨진다. 다음에 오면 한번 묵고 싶은 호텔이다. 주소는 다음과 같다.
http://www.tohsang.com
이제 방향을 분명하게 알았다. 붉은 빛이 띄는 곳이 동쪽임을 분간할 수 있다. 또쌍 호텔에서 다시 날이 밝아오는 곳을 향해 되돌아 걷는다. 새벽부터 노인들이 잠에서 깨어 의자에 우두커니 앉아 있다. 날이 춥다고 털모자와 귀마개까지 쓰고 있다. 반팔 차림으로 나선 나는 계속 걷는데도 땀은커녕 체온이 내려간다.
“개들을 조심하라.(빌립보서 3:2)”. 노숙하는 개들이 너무 많다. 어두운 길거리 곳곳에 개들이 웅크리고 있거나 일어나서 어슬렁댄다. 또는 나를 보고 짖거나 으르렁거린다. 카메라 삼발이를 길게 꺼내서 호신용 도구 삼아 가니, 또 이게 개들을 자극하는 모양이다. 아예 어떤 놈들은 몇 마리씩 떼를 지어 호전적 신호를 보낸다. 따라서 추운 날씨에 빠른 걸음을 걸을 수가 없다.
게다가 어두운 인도 상황을 잘 살펴야 한다. 장애인과 자전거를 위한 배려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턱이 높거나 제멋대로인 보도, 곳곳에 파여지고 함정처럼 뚜껑 없는 하수구, 공사 현장과 온갖 물건이 방치된 통로는 지뢰밭을 걷는 기분으로 조심스럽게 전진하게 한다. 서울에 살다가 포항에 와서 도로와 인도 정비가 상당히 열악하다고 느끼고 포항시정에 대해 불만을 가졌지만, 우본에 비하면 포항은 아주 좋은 도시다. 물론 아직 가보지 못한 세계 여러 도시 중에서 서울보다 이런 면에서 아주 잘 정비된 곳이 있을 지도 모른다.
미장원에서 하얀 드레스를 입은 신부가 새벽부터 화장을 하고 있다. 아마도 아침 일찍 열리는 예식을 준비하는 모양이다.
보딘 호텔(Bordin) 입구에는 뚝뚝 두 대가 서 있는데, 기사들이 모포를 덮고 자고 있다. 이들은 몇 푼을 벌기 위해 저렇게 고생을 하고 있다.
아침 탁발을 마치고 스님들이 사원으로 들어가고 있다. 웬일인지 열을 짓지 않고 혼자 다니는 스님이 많이 보인다. 태국도 탁발에 쓰이는 밥은 찰밥(stiky rice)인 모양이다.
공원이 보인다. 양곤의 꺼러웨익과 비슷한 조형물이 금빛으로 화려하게 치장되어 있다.
공원은 해자로 둘러 쌓여있다. 신년을 맞이하여 축제를 벌인 흔적이 있고 공원 주변엔 장터가 형성되어 있지만, 아직 문을 열지는 않았다. 공원 안에는 사람들이 갖가지 운동을 하고 있다. 공원은 새벽 3시 30분에 문을 열어 밤 10시에 문을 닫는다. 참 일찍도 연다. 공원 안에 있는 작은 사원 앞에서 십여 명의 스님과 또 그만큼의 노인들이 시주와 탁발 의식을 경건하게 치루고 있다.
아침마다 시주하는 이 나라의 풍습을 보면서, 가난한 살림에서도 항상 ‘성미’를 모으던 외할머니가 생각이 난다. 우리 나라 기독교의 ‘새벽 기도’도 역시 이런 종교 행위의 공통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여행 떠나오기 전에 뵌 팔순이 다된 어머니도 이제는 매일 새벽기도에 가는 것이 힘드신가 보다. 교회와 붙어 있는 집에서 떠나고 싶어 하신다. 하긴 마음에서 진정으로 우러나는 행위가 아니면 오히려 속박이 되어 구속된다.
퉁씨무앙 사원(Wat Thung Si Mueang) 가기 전에 북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우본 라차타니는 문강(Mae Nam Mun)이 서에서 동으로 흐른다. 남북 방향으로 212번 도로가 지나가고 북쪽과 남쪽에 도시가 발달되어 있다. 기차역은 강남에 있고, 버스 터미널은 강북 서쪽 변두리에 있다. 내가 묵고 있는 도쿄 호텔은 강북 시청 근처다. 이제 도시의 방향은 대충 잡았지만, 서점과 인터넷 카페를 찾으려던 미션은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걷기 시작한지 벌써 두 시간이다. 다리도 아프고 이제는 돌아가고 싶다. 쫑꼰니탄 거리에서(Chongkonnithan Rd.) 드디서 작은 게임방을 발견했다. 아마 밤새 영업을 한 모양이다. 문을 반쯤 열어놓아 언뜻 보기에 찾기가 쉽지 않다. 영어 간판이 돌출되어 있지도 않고 출입문 유리에만 쓰여져 있다. 살그머니 문을 열고 들어갔다. 다행히 동아시아 언어 지원팩이 깔려져 있어 한글도 사용하도록 만들었다. 외국에서 한글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동아시아 언어 지원팩을 깔아야하는데, 동아시아 언어란 중국어, 일본어, 한국어를 말한다. 이곳에는 중국어를 사용하는 누군가 방문한 적이 있는지 언어 막대기(language bar)에 중국어(ch)가 등록되어 있다. 일본어(jp)나 중국어를 사용할 수 있다면 한국어(ko)도 당연히 쓸 수 있다. 평소에는 일본이나 중국이라는 나라에 대해 지정학적으로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지만, 동아시아를 벗어났을 때는 다른 지역보다 동질감이나 친밀감을 느끼게 된다. 오늘처럼 중국인이 좋아진 때는 난생 처음이다. 어제도 실패하였고 오늘 새벽 두 시간에 걸친 미션의 완수로 인해 속도가 느린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천리안과 다음은 액티브 x 를 깔아야 하므로 무척 접속이 어렵다. 네이버나 일반 홈페이지는 오히려 접속이 쉽다. 카페 주소를 바로 치면 광고창을 우회하기에 속도가 좀 빠르다.
http://www.daum.net 으로 들어가기보다 http://cafe.daum.net/meetangkor 로 들어가면 훨씬 속도가 빠르다. 밀린 등업 처리와 게시물 한 두개 읽기, 덧글 달기, 글쓰기 하나를 마치니 한 시간이 훌쩍 넘었다. 다음에서 ‘한줄쓰기’나 ‘덧글달기’는 비교적 빨리 올라가지만, ‘새글쓰기’를 하려면 또 새로운 액티브 엑스를 받아야 한다. 이 액티브 엑스를 받지 않으면 한글이 지원되더라도 글쓰기가 불가능하다. 빠른 속도에 익숙한 한국 사람들이 외국에 나가서 접속을 해보면 대부분 포기하고 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저 인내심으로 미션을 수행해야 한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속도가 너무 느릴 경우는 다시 시도(refresh)를 하는 방법과 인터넷 카페를 옮기거나, 같은 카페에서도 다른 컴퓨터로 옮겨서 해보는 것도 차선책이다.
아무래도 호텔에서 세오녀와 찬이가 무척 걱정할 것 같다. 아침 산책 나온 지 세 시간이 넘었다. 인터넷 카페를 찾기 전에는 다리도 아프고 배가 고팠는데, 이제는 배고픈 줄 모르겠다. 그런데, 도쿄 호텔에서 나올 때 명함을 가지고 오는 걸 잊었다. 정확한 주소를 알 수 없으니 다시 호텔로 찾아가는 방법이 막막하다. 2번 썽태우가 보이면 좋겠는데, 1번, 3번과 12번 썽태우만 만난다. 아무래도 씨클로를 타고 가야겠다. 몇 개 남지 않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고 웃는 늙은 씨클로 기사는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다. 할 수 없이 포기. 좀 젊은 다른 씨클로 기사를 만난다. 그는 영어를 잘 모르지만, 내가 'TOKYO HOTEL'이라고 적어준 쪽지를 가지고 길 건너편에 가서 물어보고 온다. 공부를 못하면 눈치라도 빨라야 돈을 벌 수 있다. 씨클로를 타고 떠나려는데, 호텔 위치를 알려준 젊은이가 뛰어오더니 내게 명함을 건네준다. 렌터카 회사다.
* 여행 기간 : 2007년 1월 2일(금)-2월 2(금) 31박 32일
* 여행 장소 : 태국-라오스-베트남-캄보디아-태국
* 누구랑 : 연오랑 세오녀 찬이(만 11세) 가족
* 환전
-우리은행 1 바트 26.43원으로
-외환은행 환전 클럽 이용(2007년 1월 2일, 65% 우대. 1달러=933.18)
* 연오랑의 다른 여행기는 앙코르사람들과의 만남 http://cafe.daum.net/meetangkor 에서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