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찬 바람에 봄 옷깃 여미게 만든 날이었습니다.
덥지 않아 좋은 날씨였기도 하고요.
공사로 온통 뒤집어 놓아 물길 따라 가는 길은
험한 산을 타는 것 만큼이나 힘이 들었지요.
풍영정천을 정비한다더니 광주천과 매한가지로 호안을 만들어놓고 있었습니다.
호안을 아주 두껍고 단단한 시멘트블럭으로 덮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호안을 정비하는 통에 자연스런 하천의 흐름은 곧게 되어 버리게 되죠.
또 이 시멘트블럭은 결국 엄청난 양의 폐기물로 전락하게 되겠죠.
철골을 먼저 놓고, 그 안을 자갈로 채우고 있었습니다.
그 곳에 놓여있는 모든 철골들이 위 사진처럼 녹이 슬어있어서 하천을 오염시키지 않을지 심히 걱정이 되었습니다.
풍영정천 제방 뒤 저류지의 모습입니다.
풍영정천에 대하여 환경연에서 제기했던 방안들은 그 어떤 것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논의체계를 만들자는 안도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자연형하천으로 정비할 계획이 잘 잡혀 있으니 같이 할 필요가 없다는 답변이 토지공사로부터 보내져 왔다는군요.
수완택지지구 하천구간7.0km를 걸어 나와
목련마을 운남주공아파트가 있는 곳으로 계속하여 걸어갔습니다.
이 구간은 둔치전체가 이렇게 농작물 경작지로 변해 버렸고,
경작에 쓰인 비닐들과 사람들이 버린 쓰레기가 널려 있습니다.
하지만 물과 수변의 모습만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렇지요.
광주천과 수완지구 풍영정천의 수변이 물과 둔치를 완전히 갈라놓아 접근을 어렵게 만들어 버린 반면
이곳은 이렇게 넘나듦이 자유스럽지요. 춘희씨말로는 풍영정천도 정비계획이 있다는데, 그렇게 되면
이런 자연스러움도 또 변할 것입니다. 아마도 광주시의 공법대로라면 둔치의 높이를 높이고 호안을 경사지게 시멘트블럭 등으로 덮어버리지는 않을까요?
운남아파트 8,9단지 풍영정천보도교 옆 우수관에서는 저렇게 퍼런 색의 물이 흘러나오고 있네요.
비가 얼마 오지도 않는데 저러는 것을 보면 뭔가 잘못된 것 같지요.
물길 따라 가는 길에
벌룸벌룸 매화향 가득 빨아들이고,
비가 와서 흙탕물된 풍영정천에 노니는 쇠오리, 청둥오리, 넓적부리오리 들이 고맙기만 하여
찻길에서 잠시 그 귀여운 모습들을 바라봅니다.
풍영정천은 16.11km를 흘러흘러 어디로 갈까. 더 큰 강 극락강(영산강)으로 간답니다.
사진을 바라봐서 왼편이 풍영정천, 오른편 줄기가 극락강입니다.
여기가 어디냐면 무진로의 어등대교랍니다.
이 곳에서 조금만 더 내려가면 광주천과 인사하게 되지요.
이 풍영정천의 하류지점은 넓은 습지가 자리하고 있답니다.
비, 바람에 굴하지 않고 풍영정천 물길 답사를 마친 우리는 마지막으로 풍영정을 찾았습니다.
광주광역시 문화재자료 제4호인 풍영정은 신창동 극락강 옆에 있습니다.
풍영정을 오르니 바로 앞에 극락강이 운치있게 보입니다.
식영정과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풍영정천 물길이 예전에는 풍영정 까지 닿았었는지 모르겠지만 풍영정천과 풍영정의 관계가 '뭣이 있을 것 같은데...' 아리송합니다. 김영옥선생님이 풍영정에 대해 잘 아실 거라 하니 한번 들어 보아야겠습니다.
풍영정 안내판에 적혀진 글로 풍영정 소개를 대신하겠습니다.
" 조선 중기에 김언거(1503 ~1584)가 세운 정자이다. 풍영이라는 이름은 자연을 즐기며 시가르 읊조린다는 뜻으로 논어에서 따온 말이다. 김언거의 자는 계진, 호는 칠계이다. 1531년(중종26)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거친 뒤 물러나 이 곳에서 여러 문인 학자들과 어울리며 생활하였다. 정자 안에는 당재의 명필 석봉 한호가 쓴 '제일호산'이라는 커다란 편액이 걸려 있으며, 송순, 이황, 김인후, 기대승, 고경명, 이덕형 등 많은 문인들의 시가 현판에 남아 있다."
첫댓글 수고들 하셨습니다 자연은 어머님의 품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