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어는 음식의 삭힌 맛이요,
통구이는 음식의 구운 맛입니다.
음식의 맛에는 생채와 회와 날 것의 자연 그대로 고유한 맛을 비롯해서
삭힌 맛과 구운 맛과 저린 맛과 삶은 맛과 볶은 맛과 튀긴 맛 등 다양합니다.
김치와 젓갈과 발효 식품 등 다양한 저장 음식은
각 지역의 특색에 따라 전통 음식으로 발전하였습니다.
특히 전라도의 홍어, 그 삭힌 맛은
맛의 깊이를 아는 사람들의 별미가 아닐 수 없습니다.
통구이는 바베큐로
숯불 요리의 미학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렇게 홍어와 통구이는 음식의 간판으로 손색이 없지만
혼용무도한 우리 사회는 홍어에 빨갱이의 의미를 더하였으며 분신자살을 통구이로 조롱하였습니다.
홍어와 통구이에 투영된 시대상은
도시의 자연인으로 살아가는 필자의 상념이 되었습니다.
다양한 음식의 맛을 자유롭게 느끼듯
역사인식의 자유, 그 올바른 사관을 향유할 수 있는 시민의 권리는 헌법적 가치입니다.
역사의 흔적으로 남은 종북 좌파는 홍어족이라는 주홍글씨를 새겼고
보수 우파는 통구이의 조롱을 받았습니다.
흔히들 감성팔이라는 홍어족의 통구이 발언은
대구 지하철 참상을 히죽거리는 이율배반적인 만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대구 지하철 참상은 대공용의점, 그 의혹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단순한 광인의 소행으로 덮었습니다.
그러나 대구 사람들은 홍어족이 아니기 떄문에 감성팔이를 하지 않았으며
자하철 화재 사고, 그 참상을 시린 가슴에 묻었습니다.
참으로 대구 지하철 참상으로
통구이의 희열을 느낀 사람들은 누구인가?
분신자살을 통구이로 조롱하는 만행은
홍어족의 비난을 면치 못할 것입니다.
홍어의 홍은 넓을 홍((洪))으로 홍시의 붉을 홍(紅)이 아님에도도 불구하고
홍시는 붉은 강시로 변신하지 않았는데 홍어는 새빨간 거짓말을 하는 사람을 뜻하는
빨갱이의 속칭이 되었습니다.
홍어에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빨갱이와 빨치산의 삼합은
종북좌파를 때려잡기 위한 보수 우파의 칼날이 되었습니다.
민중사관의 역사 왜곡과 날조에 대한 보수 우파의 저항은
종북 성향을 몰아내기 위한 홍어의 삼합을 역사의 밥상으로 올렸습니다.
정치이념의 부산물이 된 홍어와 빨갱이와 빨치산의 허울은
민주의 옷을 입은 종북 성향을 때려잡는 보수 우파의 역사적 내력을 담은 전가의 보도가 되었습니다.
태극기와 촛불로 나누어진 시국의 유튜브 영상 쳇장에는
홍어 출현, 벌레 출현이라는 말과 함께 "사살하라"는 사이버 전쟁의 고지전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민중사관의 역사학자들이 왜곡 날조한 검증 교과서는
오늘날 좌파의 국정 교과서로 전교조의 소위 홍어 교육이 되었습니다.
정치 이념의 갈등으로 심화된 시대 반공 교욱을 받지 못한 3,40대는
종북 성향의 좀비가 되어 좌파 독재 정부를 지탱하는 촛불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전교조 교육의 1세대인 그들은
제주 4.3 남로당 무장 폭동을 민주 항쟁으로 배웠으며
북한의 6.25의 남침을 부정하며 5.18의 민주화 정신을 떠받드는 촛불의 주체가 되었습니다.
홍어의 삭힌 맛을 돌이킬 수 없듯이
주체 교욱을 받은 사람들은 민주의 옷, 허울을 벗기 어려울 것입니다.
홍어와 통구이는 음식의 맛이지만
홍어에 투영된 빨갱이와 통구이에 투영된 분신 자살의 조롱은 혼용무도한 아사리판의 단면이 아닐 수 없습니다.
5.18 민주화 세력으로 장악된 국회는 자유의 헌법적 가치를 무시하고
의회독재로 5.18의 민주화를 폄훼하는 망언자를 형사처벌하는 법을 만들었습니다.
5.18 민주화의 갑질과 차별적 배제의 독초는
민주주의의 부작용인 민중 민주주의를 숭상하는 좌파 독재 정권의 전체주의가 아닐 수 없습니다.
광주 5.18 민주화 성역의 갑질은 국회의원을 제명 처리하는 위력을 행사하였지만
홍어를 싫어하는 보수 우파의 강력한 저항에 직면하였습니다.
광화문 광장에서 김일성 만세를 자유롭게 부르는 것이 민주화라고 말하던 그들은
5.18의 폭동을 말하는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자가당착의 모순에 함몰되었습니다.
국가 보안법과 이면법의 폐지를 주창하고 주적의 개념을 없앤 그들은
5.18의 망언이라는 절대 성역의 만리장성을 사상누각의 필요악으로 쌓았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수 우파의 관점으로 바라본 민주화의 투사라는 그들은 홍어의 삼합으로
광화문의 촛불 정신을 주체 광장의 횃불로 성화시켜 소위 민주 주체혁명의 꽃을 피웠습니다.
이 모든 것은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으로 말미암은 배신의 도미노 현상으로 밝혀진
거짓과 진실의 산을 이룬 혼용무도한 아사리판의 실체입니다.
이 모든 것을 덮어 두고 평화가 가능할 것인가?
북핵과 아무런 상관없는 자유 대한민국의 골 깊은 이념 갈등은 총성없는 고지전이 되었습니다.
좌파 정권의 황국신민(皇國臣民)으로 살 것인가?
아니면 자유를 싫어하는 정권을 대항하는 불령선인(不逞鮮人)으로 살 것인가?
친일의 시대는 끝났지만 종북좌파의 시대는
친일파 못지 않은 민중의 옷을 입은 황국사관, 그 횡포에 저항하는 태극기 애국 시민은
불령선인을 선언하였습니다.
참으로 불행한 것은 한국 교회마저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지 않고
정치이념의 불나방이 되어 확증편향의 촛불과 태극기의 갈등과 대립에 편승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