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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들아
성경본문: 잠언: 1: 1-6
1. 지혜가 그 집을 짓고 일곱 기둥을 다듬고
2. 짐승을 잡으며 포도주를 혼합하여 상을 갖추고
3. 그 여종을 보내어 성중 높은 곳에서 불러 이르기를 시
4. 무릇 어리석은 자는 이리로 돌이키라 또 지혜 없는 자에게 이르기를
5. 너는 와서 내 식물을 먹으며 내 혼합한 포도주를 마시고
6. 어리석음을 버리고 생명을 얻으라 명철의 길을 행하라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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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희 목사
에드워드 퓨링턴이란 분이 “참된 가정은 어떤 것인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는 참된 가정은 체육관과 같습니다.
어린애들에게 건강한 육체를 주는 것이 가정의 첫째 요소입니다.
둘째는 참된 가정은 등대와 같습니다.
앞에서 몰려오는 큰 파도를 보여주고 항로를 가르쳐 주는 역할을 합니다.
셋째는 참된 가정은 운동장과 같습니다.
심한 소란과 장난이 있고 또 잘 다치기도 한다는 것 알아서 주의해야 합니다.
넷째는 참된 가정은 비밀사회와 같습니다.
자기 가정에 대한 충성을 가지고 가정 문제에 관해서 침묵을 지켜야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섯째는 참된 가정은 건강진단서와 같습니다.
어머니들은 타고난 의사입니다.
여섯째는 참된 가정은 예배하는 성전과 같습니다.
가정에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으로부터 보호를 받습니다.
그런데 가장 좋은 참된 가정은 하나님의 기관으로서의 가정입니다. 가정은 결코 사람의 기관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19:6에는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가정의 기초는 “하나님이 짝지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데서 시작합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는 사람이 짝지었으니 하나님이 나누셔야 합니다”라고 합디다. 그러나 사람이 짝지은 가정은 없습니다.
가정은 몇 가지 중요한 기본적 원리가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성경이 가정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성경적 인간관계로 형성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의 공동체로서 작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을 증거하는 복음 공동체입니다. 이런 분명한 원리 위에 서 있는 가정이 좋은 가정입니다.
가정은 집이지만 집과는 다릅니다. 집의 규모나 집의 위치에 따라 집의 가치를 논하는 이런 가치관으로 가정을 논하지 말아야 합니다. 아파트의 평수에 따라서 신분이 좌우되는 이런 잣대로 가정을 보아서는 안 됩니다.
미국의 자동차 왕 헨리 포드는 대기업을 일구어 성공하였습니다. 그 후에 그는 고향에 조그마한 집 한 채를 지었습니다. 작고 평범한 집이었습니다. 이 집을 본 동네 사람들이 “이건 너무 초라합니다. 호화롭지는 않더라도 생활에 불편하지는 않아야지요”라고 하며 주위 사람들이 걱정을 하였습니다. 이 말을 들은 헨리 포드는 얼굴 가득히 미소를 띠며 대답하였습니다. “가정은 건물이 아닙니다. 비록 작고 초라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이 넘친다면 그곳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집일 것입니다.”
지금도 디트로이트에 있는 헨리 포드 기념관에 가면 이런 글이 있습니다.
“헨리는 꿈을 꾸는 사람이었고 그의 아내는 기도하는 사람이었다”. 헨리 포드의 성공의 비결은 꿈꾸는 사람과 기도하는 사람이 함께 이룬 아름다운 가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대표적으로 아름다운 가정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대표 애처가입니다. 그는 당시에 선교여행을 할 때에 부부가 함께 가고, 장모를 모시고 살 정도로 대단한 애처가입니다. 브리스길라와 아굴라는 성경의 가장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그 가정에서 에베소교회가 설립되었고 바울의 훌륭한 협력자가 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에도 성경적 가정이 많이 있습니다.
영국의 빅토리아 여왕, 미국의 백화점 왕이라 불리는 죤 와나메이커, 강철왕 카네기, 정치가이며 사업가이었던 록펠러, 치약을 만든 콜게이트 등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좋은 가정을 이루었고 좋은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이런 좋은 가정들은 우리 주위에도 많이 있습니다. 오늘 성경이 가르치는 성경적 가정이 어떤 가정인가를 잘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가정중심시대에 성경적 가정들이 다 되기를 바랍니다.
첫째, 가정은 지혜로 지을 하나님의 기관입니다.
잠언 9:1에는 “지혜가 그 집을 짓고”라고 합니다. 집은 지어가는 것입니다. 가정은 만들어져 가는 것입니다. 많은 가정의 실패의 원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냥 결혼만하면 좋은 가정이 되고, 잉꼬부부가 될 줄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좋은 가정은 그 만큼 많은 노력을 하는 가정입니다.
집에 중요한 것은 평수가 아닙니다. 장식품이 아닙니다. 가정의 실패의 원인은 가정의 기초와 가정의 장식품을 혼돈하는 데서 시작됩니다. 어떤 이는 가정의 기초는 무시합니다. 어떤 이는 가정의 장식품을 가정의 기초로 착각합니다. 이런데서 가정의 어려움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집입니다. 가족은 집을 짓는 사람들입니다. 가족들은 평생을 통하여 집을 짓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가지고 집을 짓습니까? 성경은 지혜로 집을 지으라고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지혜로 집을 짓지 않고 물질로 짓고 인간의 지식으로 짓고 경험으로 집을 짓고 삽니다. 이것이 집이 무너지는 이유입니다.
이전에는 설계사는 건축설계사를 의미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설계사도 많습니다. 보험설계사, 재무설계사, 생활설계사, 주방설계사, 대출설계사 등 설계사도 여러 종류입니다. 그런데 가정설계사는 없습니까? 가정은 설계도 하지 않고 대충 짓기 시작합니다. 설계도 없이 자격도 없이 아무렇게나 벽돌을 쌓고, 못을 박고, 색칠을 합니다. 그러니 집 모양이 갖춰질 리가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 집에 있는 교회”라는 말이 여러 번 기록되어 있습니다. 초대교회는 집이 교회였습니다. 여러분의 집이 교회입니까? 여러분의 집에 교회가 있습니까? 여러분의 집의 교회는 무엇으로 지었습니까? 그리스도가 가정의 기초인 머릿돌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짓고, 성령님으로 도배하고, 은혜로 집 안을 장식한다면 최고의 집의 될 것입니다.
지난 주간의 연동성경학교에서 왕대일 교수님도 강의 시간에 말씀하셨지만 BC 6세기에 성전의 제단이 없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레위 법전에 따라 제단에서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화목제는 교제의 성격을 가진 함께 먹는 제사입니다. 그런데 제단이 없어짐으로 제단이 가정으로 발전됩니다. 가정이 제단을 대신하게 되었습니다. 가정의 아버지가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성전은 없지만 가정이 있으면 믿음은 살아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요즘에도 가정에서 모든 사람은 인간으로서의 기본 교육을 다 받습니다. 가정에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신앙을 배웁니다. 학교나 학원에 비할 바가 아닙니다. 가정은 요즘에도 제단입니다.
인류 최초의 공동체는 에덴동산에 있었던 첫 가정입니다. 하나님은 처음 부부에게 명령을 주십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땅에 충만하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문화 명령이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첫 명령은 가정에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부부에 주신 명령이었습니다. 부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즘에는 부부관에도 많은 변화가 왔습니다. 원래는 ‘주종부부’이었다가 ‘평등부부’이었는데 이제는 ‘각자부부’랍니다.
최근에 들어 아기에 대한 모유 수유율이 점차 떨어지고 있는 것을 아시지요? 교육수준이 높을수록 모유 수유율이 상대적으로 낮습니다. 어느 대학교에서 조사를 했더니 모유만 먹이면 년간 182만원이 절약된답니다. 영국의 어느 의학전문지의 조사에 의하면 고무젖꼭지를 물고 자란 아기는 IQ가 그렇지 않은 아기보다 4정도가 낮다고 합니다. 우리 아이가 머리가 나쁘다가 탓하지 말고 혹시 고무젖꼭지 물고 자라지 않았는지 돌이켜 보세요. 아기 생각은 하지 않고 자기만 생각해서 젖을 먹이지 않는 어머니가 많다고 합니다. 아기 낳고 나서 처녀같이 보이려고 애쓸 필요가 왜 있습니까? 이게 문제입니다.
어느 설문조사서에 의하면 자식을 위해 희생하지 않겠다는 사람이 36%나 응답했습니다. 결혼도 꼭 할 필요가 없다는 사람이 일반인의 27.1%, 기독교인의 20.2%가 됩니다. 결혼 후에 자녀가 있어야 한다는 부부는 65.9%에 불과하고, 34.1%는 없어도 괜찮다고 합니다. 이런 생각들이 심각한 저출산의 위기를 만든 것입니다. 산부인과나 소아과 병원이 없이 장례식장만 있는 군도 있습니다. 초상집이 돌잔치보다 많은 곳은 수두룩합니다. 자기만 생각해서 낳기도 하고, 안 낳기도 한다고 합니다.
여러분, 신손자병법이 뭔지 아세요? 며느리가 “어머니, 손자 낳아드릴까요? 낳아주면 뭐 해 주실래?”하는 것이 신손자병법이라고 합니다. 우리 시대의 이기적 세태를 지적하는 말입니다.
가족계획에 대한 표어들을 기억하시지요. 1960년대의 표어는 “덮어놓고 낳다보면 거지꼴 못 면한다”입
니다. 처량하지요? 1970년대의 표어입니다. “아들 딸 구분 말고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안 부럽다”. 1998년 초등학교 2학년이 만든 가족계획에 대한 초우수작 표어를 보세요. “아들바람 부모세대, 짝꿍 없는 우리세대”. 남아를 선호했던 우리 세대는 참 미안하지요? 2000년대는 “아들 딸 낳지 말고 우리끼리 행복찾자”라고 합니다. 시대를 반영하는 표어들입니다. 이런 시대에 점점 느는 캥거루 족입니다. 부모에 대한 의존도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어버이날 부모님께 전화할 때에 콜렉트 콜로 전화하는 자녀가 그렇게 많답니다. 부모도 자녀도 도리를 다 못하는 것 같습니다.
미국에는 어머니 혼자 사는 싱글 마더가 3분의 1이나 됩니다. 가정의 지도자가 남자가 아닌 경우도 많습니다. 제임스 돕슨이란 미국의 유명한 가정사역자는 가정에는 남자 지도자가 나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래야 가정이 온전하고 건강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가정은 서로 비난하고 분석하고 흠을 잡는 곳이 아닙니다. 이해하고, 눈을 감아주는 곳입니다. 진실게임은 TV에서나 하는 것입니다. 비난게임은 정치판에서나 하는 것입니다. 가정을 지혜롭게 지어 가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가정은 우리 모두가 다스려야 할 기관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자기 집을 잘 다스려”라는 말이 나옵니다. 감독들에게 권하신 말씀입니다. 흔히 감독의 자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말은 비단 감독에게만 주신 말씀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할 것은 다스림이란 지배가 아니라 섬김이란 사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질서 파괴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이전에는 그나마 삼강오륜으로 질서라도 잡혔는데 이제는 어른도 아이도 없고, 스승도 제자도 없습니다. 학생이 선생님을 폭행합니다. 선생님이 부모에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이런 선생님에게 자기 아이가 존경하고 따르겠습니까? 자신은 아이를 위한 일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정 반대입니다. 이 아이는 어떤 선생님도 존경하지 못하고 인생을 배우지 못할 것입니다.
생각 없는 부모입니다.
성경이 가르치는 가정의 법을 보세요.
출애굽기 21:15에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출애굽기 21:17에는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고 합니다. 마태복음 15:4에는 “하나님이 이르셨으되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시고 또 아버지나 어머니를 비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거늘”이라고 합니다. 가정을 다스릴 때 무엇으로 다스릴까요? 질서로 다스려야 합니다. 질서가 파괴되면 더 이상 가정이 아닙니다.
가정은 잘 다스려야 할 우리의 기관입니다. 남편과 아내의 다른 점이 있다고 합니다. 어느 책에 보니 여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화장품에 의지하게 되고 남성은 나이가 들수록 더욱더 유머에 의지하게 된다고 합니다. 화장품 많이 사주고, 유머도 많이 들려주세요.
부부가 서로의 다른 점을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남성과 여성의 대화의 질은 상반됩니다. 남성의 대화는 ‘과제해결형’이며 여성의 대화는 ‘감정교류형’이라고 합니다. 회의나 용건이 끝나면 대화가 끝나는 것이 남성형입니다. 용건이 끝나면 그 순간부터 잡담이 시작되는 것이 여성형입니다. 우리 권사님들 공부할 때도 보면 쉬는 시간에 정신이 없을 정도로 시끄러워요. 이것이 여성스러움입니다. 부모와 자녀의 세대 간의 차이도 같은 맥락에서 해결되어야 합니다. 서로가 이해하고 용납해야 합니다. 기성세대와 신세대가 같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서로를 이해해야 합니다. 서로 자신의 생각만 고집하면 삶의 평행선만 긋게 되는 것입니다. 이 시대가 얼마나 달라졌는데 자신들의 것만 고집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 앞뒤가 맞지 않는다고 목사에게 어떤 신도가 따지러 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욥에게 모든 것을 다 빼앗아 가시면서 아내는 빼앗아 가지 않으셨습니까?” 그 때 목사님은 이렇게 대답하였습니다. “시험 후에 죄다 곱으로 돌려 주셨습니다. 그런데 부인도 둘을 주어야 하니 하나님이 차마 그렇게 못하신 것입니다”. 욥의 아내는 악처였습니다. 욥이 한참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하던 아내입니다. 이런 아내 둘이 있으면 큰일 나겠지요? 그래서 둘을 주시지 않으신 것입니다.
1989년 아르메니아의 지진은 3만 명이 희생되었습니다. 나라가 박살나는 데는 단 4분밖에 필요하지 않았습니다. 한 아버지가 초등학교로 달려갑니다. 폐허가 된 건물 앞에서 부모들이 울고 있습니다. 이 아버지는 무너진 잔해를 치우며 아들을 찾기 시작합니다. 완전히 학교 건물이 내려앉아 어디가 아들의 교실인지도 알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아버지는 맨 손으로 돌을 치우고, 흙더미를 파헤치기 시작합니다. 힘은 빠지고 손에서 피가 나기 시작합니다. 경찰도 포기하라고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아들과의 약속을 어길 수 없었습니다. “무슨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가 꼭 함께 하마”. 아버지가 혼자서 계속 무너진 돌을 치웠습니다. 38시간이 지난 후 아버지는 돌을 제치고 아들을 부릅니다. “아르만, 아르만”. “아빠 저예요”. 아들은 아버지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구출된 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아이들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했어요. 아버지가 살아계시면 절 구해주실 거고 그러면 너희들도 구해줄 거라고요. 아빠가 약속했잖아요. 무슨 일이 있어도 꼭 함께 하마라고요”. 믿음의 가정은 신뢰에서 시작됩니다. 가정을 다스리는 도구는 상호신뢰입니다.
결론
영국의 세인트 앤드류스 대학교의 린다 부스로이드 박사는 “부부 사이가 나쁘면 딸의 얼굴과 몸매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연구를 하였습니다. 여러 해 동안 여러 학생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행복한 가정 출신이 최상위이며 사이가 나쁘지만 이혼하지 않은 부부가 딸의 외모에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친다고 하였습니다. 이 기사에 어떤 아이가 댓글을 올렸습니다. “엄마아빠 싸우지 마세요. 엉엉. 내가 괜히 이런 게 아니었어.” 딸들이 못생겼으면 괜히 오해받으니 조심하세요.
우리 모든 가정이 이런 가정이 되십시오.
주님이 호주가 되는 가정이 되십시오.
성경이 가훈이 되는 가정이 되십시오.
부모는 믿음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가정이 되십시오.
그래서 지상의 낙원처럼 꽃을 피우는 가정이 되십시오. 이런 가정을 주님을 원하고 계십니다.
영어 속담에 “내 집이여, 내 집이여 너는 비록 작더라도 내게는 궁전이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교회의 모든 가정들이 궁전 같은 가정이 되고 궁전 같은 집이 되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