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의 의미
이제까지 기독교인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신 기도의 참된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그의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마태복음 26장 38절)” 하시고, 조금 나아가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願)대로 하시옵소서(마태복음 26장 39절)”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번만이 아니라 3차에 걸쳐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너무나 괴로워 죽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이 이렇게 기도하신 이유는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이 그의 사명임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인 약함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사실을 전적으로 왜곡하는 잘못된 생각이 아닐 수 없습니다.
로마제국의 압정 속에서도 수십만의 기독교인들은 당당하게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들은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시몬 베드로도 십자가에 처형당할 때 형리(刑吏)들에게 “나는 나의 주님과 같은 방법으로 죽을 가치가 없다. 원컨대 나를 거꾸로 매달아 죽이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도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기독교의 첫 순교자 스데반도 돌에 맞아 죽을 때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성서에 스데반은 평화스럽게 자기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죽어갔다고 되어 있습니다. 성서를 떠나서도, 미국 독립 때 청년 장교였던 나단 헤일(Narhan Hale)도 체포되어 사형당할 때 말하기를, “나는 내 조국을 위하여 바칠 내 생명이 하나뿐인 것이 유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이 모든 사람들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십니까? 하물며 그가 오신 목적이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전세계를 구원하는 데 있었다면 그런 기도를 하실 리가 있겠습니까?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예수님은 메시아 될 자격이 없는 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뜻을 알지 못했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는 어떤 이기적인 입장에서 하신 것도 아니요, 죽음이 두려워서 하신 것도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만약 십자가에 달리시는 길이 인류를 구원하는 유일의 길이었다면 언제든지 몇 천번이라도 죽으려 하셨을 것입니다.
그는 메시아로서의 사명 때문에 초조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고통 때문에 번민하셨습니다. 그는 자기가 십자가에 달린 후의 비참한 결과를 예견하시고 비통해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잘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의 죽음이 천국을 실현하는 대업(大業)을 또 다시 2천년간 연장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이고, 그동안 인간들은 심한 고통을 당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또 예수님은 자기를 따르는 수백 만의 제자들이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피를 흘리며 순교를 당하는 고난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나라가 버림당하고 황폐하게 될 것을 알았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의 보좌 앞으로 승리와 영광을 돌리기를 원하셨지, 십자가에 처형되어 홀로 가시기를 결코 원치 않으셨습니다. 비참하게 하늘에 돌아가기를 원한 게 아니라 승리의 왕자로서 금의환향(錦衣還鄕)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이와 같은 절망적인 때라도 나의 사명을 완수하기 위하여 지상에 남아 있을 수 있는 무슨 방도가 없겠습니까?” 하고 하나님께 최후의 담판기도를 하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그 슬픔과 고뇌를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만일 십자가의 죽음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것이라면 예수님을 배반한 제자 가롯 유다야말로 영웅으로 인정되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의 상을 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누군가가 하나님의 아들을 원수에게 넘겨주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가롯 유다에게 말씀하시기를,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장 24절)”고 하셨습니다. 또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태복음 27장 46절)” 라고 부르짖으셨겠습니까? 만약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이 하나님의 뜻이었다면 예수님은 그때 참으로 행복했을 것입니다. “하나님, 나는 영예롭습니다.”라고 외치셨을 것입니다 (73-199, 74.9.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