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부산수필문학상 심사평
생명존중에 대한 강한 인간의 의지 [김복만론]
권대근
문학펴론가, 대신대학원대학교 교수
김복만의 <나무와 꽃과 나>는 작가의 자연친화적 세계관이 담긴 작품이다. 자연을 벗삼는 작가의 동선이 빗어낸 녹색의 축제에는 생명 존중에 대한 강한 인간의 의지가 담겨 있어 감동을 준다. 이 작품에는 작가의 자연과 동화된 삶의 여러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자연의 관조 속에서도 사람이든 식물이든 무엇이나 사랑을 받고 자란다는 자신의 철학을 담고 있다. 이러한 작가의 가치관은 ‘이제 공직에서 퇴직 이십여 년이 흘러 여든의 고개를 넘어선지 두어 해, 일상으로 앞내 남천 강변에 나가 맑은 냇물 들꽃 푸나무 숲길 등에 가벼운 소일거리로 자연스럽게 친해지니 벚나무 소나무 밤나무 상수리나무 동백나무 물버들 등과 더불어 벚꽃 찔레꽃 코스모스 달맞이꽃 개망초 갈대와 억새, 금잔디와 클로버 등 푸새푸나무 너울들과도 일상으로 가까운 벗이 되고 있다.‘라는 진술에 잘 드러나 있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생태적 합리성에 입각하여 사물을 대하면, 어느 것 하나 인연이 아닌 것이 없고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관심을 가지면 어느 것 하나 고맙지 않은 것이 없다. 이름을 불러 주면 누구나 자기에게로 와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이다. 이름을 불러주면 다가와 꽃이 되는 것처럼, 식물은 인간의 관심을 먹고 자란다. 사랑과 관심을 주면 푸른 색으로 화답하는 식물들을 애호하는 내용의 글이 서정성에 힘입어 더욱 공감을 자아낸다. 늘 자연과 따스한 눈길을 나누는 작가가 미덥다. 그가 자연과 나누는 대화는 자연과 인간이 일체가 되는 ‘되기’의 순간이다. ‘나무는 하늘과 땅을 잇는 영혼의 사다리’라는 의미화를 기점으로 나무와 인간이 공생해야 될 긴밀한 관계에 있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그는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동서양을 넘나들며, 불러들인 유명인의 나무에 관한 어록이 눈길을 끌며 주제의 구체화를 돕는다.
자연과의 동화와 자아 투사를 통해 자연과의 화해를 이루어나가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은 그 속에 타자의 사회학이라는 주변부에 대한 작가의 따스한 눈길이 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우수성은 소재에서 건져낸 주제의식보다는 ‘녹색의 가치’라는 주제를 건져 올리기 위해 퇴직 후에도 늘 자연과 함께하는 데 있다고 하겠다. 나무와 꽃을 보며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맛볼 수 있는 생명의 환희는 삶의 희열이다. 작가는 자연생태를 관조하면서 넘쳐나는 정서에 자신의 생사관, 운명관, 자연관, 가치관 등의 정신적, 철학적 신념을 수필 속에 쏟아 놓고 있다. 이 수필의 묘미는 ‘우리는 때때로 인생에서 소중한 것들은 병열처리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라는 의미를 이해하는 데 있다. 이 대목에서 ‘공존’을 추구하는 작가의식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는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모든 것을 가슴에 지니고, 애틋한 체온을 자기 문학의 일부로 수용한다. 그것은 그가 추구하는 이지적이고 논리적인 것이 아니라, 감성적이고 인정적인 데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이며, 심성과도 무관하지 않다.
욕망의 원심력보다는 이성의 구심력으로 삶을 조화롭게 꾸며가는 그의 수필은 온통 인문적 사유로 적셔져 있어 감동을 준다. 수필의 멋은 냉철한 이성과 논리보다는 오히려 안온한 인정에서 찾아지는 것이다. 한 인간의 내면을 진실로 이해하고, 하나의 삶을 진정으로 가슴에 지녔다면 그것은 하나의 세계를 자기의 내부로 끌어들인 것과 다르지 않다. 작가의 심층에는 무의식적으로 ‘생태’에 대한 애정이 드러난다. 따라서 수필정신의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원형 이미지인 ‘자연’은 작가의 인생을 윤택하게 해 줄 뿐만 아니라 마음의 평온을 되찾아주는 종교로서 작가의 심사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고 하겠다. 문학은 더불어 함께의 가치를 실현하고 그 기반 위에서 상생의 영역을 개척했을 때 비로소 완성된다. 자연과 인간의 상생을 통해 바람직한 지구의 삶을 복원해 낼 때만이 오랫동안 아름다움을 간직할 수가 있는 것이다. 수필 쓰기를 통해 작가 자신의 개인적 미덕, 인간적 특성을 담아내는 면이 믿음직스럽다.
심사위원장 권대근/문학평론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