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논어집주 (論語集注) - 1 - 학이(學而) - ⑥ |
1 | 子曰 弟子入則孝하고 出則弟하며 謹而信하며 汎愛衆하되 而親仁이니 行有餘力이어든 則以學文이니라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제자들은 집안에 들어가면 곧 효도하고, 밖에 나오면 곧 공손히 하고, 삼가되 믿음을 얻고, 널리 많은 사람을 사랑하되 어진 이를 가까이하며, 그렇게 행하고도 남은 힘이 있으면, 곧 이로써 글을 배워야 한다.”고 하셨다.
○ 謹者, 行之有常也. 信者, 言之有實也. 汎, 廣也. 衆, 謂衆人. 親, 近也. 仁, 謂仁者. 餘力, 猶言暇日. 以, 用也. 文, 謂詩書六藝之文. 삼간다는 것은 행실에 떳떳함이 있다는 말이다. 信이라는 것은 말에 그 진실함이 있는 것을 말한다. 汎이란 넓다는 말이고, 衆이란 여러 사람을 말한다. 親이란 가까이한다는 말이고, 仁이란 어진 사람을 말한다. 餘力이란 여유 있는 날을 말하는 것과 같다. 以는 用이다. 文은 詩書六藝의 글월을 말한다. |
2 | 朱子曰 謹信言行相顧之謂 주자가 말하길, “삼감과 신뢰, 말과 행동은 서로를 돌보는 것임을 말한 것이다.”라고 하였다. |
3 | 問汎愛衆 朱子曰 人自是當愛人 無憎嫌人底道理 又問人之賢不肖 自家心中自須有箇辨別 但交接之際不可不汎愛耳 曰 他下面便說 而親仁了 仁者自當親 其他自當汎愛
누군가 널리 뭇사람을 사랑하라는 것에 대하여 물었다. 주자가 말하길, “사람은 저절로 마땅히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이니, 사람을 증오하고 미워해야 할 도리는 없다.”라고 하였다. 또 묻기를, “사람의 현명함과 불초함은 자기 스스로의 마음속에 저절로 모름지기 분별함이 있을 것인데, 다만 사귀고 접하는 즈음에는 널리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일 뿐입니다.”라고 하였다. 말하길, “그 아래에 곧바로 ‘而親仁(그러나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라)’이라고 말하였으니, 어진 사람은 저절로 마땅히 가까이해야 하고, 그 나머지는 저절로 마땅히 널리 사랑해야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4 | 汎愛不是人人去愛他 只如群居不將一等相擾害底事去聒噪他 及不自占便宜之類 皆是也 汎愛(널리 사랑함)란 사람마다 모두 가서 그를 사랑한다는 뜻이 아니다. 그저 예컨대 무리가 함께 있을 때 서로 어지럽히고 해를 끼치는 일을 붙잡고 가서 그에게 시끄럽게 떠들지 않거나, 또는 스스로 편의를 취하지 않는 것 같은 부류가 모두 이에 해당하는 것이다. |
5 | 朱子曰 汎愛而不說親仁 又流於兼愛矣 주자가 말하길, “널리 사랑하라(汎愛)라고 할 뿐 어진 사람을 가까이 하라(親仁)고 말하지 않는다면, 또한 겸애설로 흘러 빠질 것이다.”라고 하였다. |
6 | 問而親仁 曰 此亦是學文之本領 蓋不親仁 則本末是非 何從而知之 누군가 ‘而親仁’을 물었다. 말하길, “이 역시 글월(文)을 배우는 본령이니, 대체로 어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는다면, 근본과 말단, 옳고 그름은 무엇을 따라서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
7 | 朱子曰 只是行此數事外有餘剩工夫 便可將此工夫去學文 非謂行到從容地位而後 可學文也 주자가 말하길, “그저 이 몇 가지 일을 행한 외에 남는 공력이 있으면, 곧바로 이 공력을 가지고 가서 글월(文)을 배워야 한다는 것일 뿐, 그 실행함이 조용한 경지에 이른 후에야 비로소 글월(文)을 배울 수 있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라고 하였다. |
8 | ○ 程子曰: “爲弟子之職, 力有餘則學文, 不修其職而先文, 非爲己之學也.” 정자가 말하길, “제자의 직분을 다하고, 힘이 남으면 곧 글월을 배워야 한다. 그 직분을 닦지 않고서 먼저 글을 배우면, 자신을 위한 배움이 아니다.” 라고 말했다. |
9 | 尹氏曰: “德行, 本也. 文藝, 末也. 窮其本末, 知所先後, 可以入德矣.” 윤씨가 말하길, “덕행은 근본이고, 문예는 말단이다. 그 근본과 말단을 궁구하여 앞에 하고 뒤에 할 바를 알게 되면, 이로써 덕에 들어갈 수 있다.”고 하였다. |
10 | 洪氏曰: “未有餘力而學文, 則文滅其質; 有餘力而不學文, 則質勝而野.” 愚謂力行而不學文, 則無以考聖賢之成法, 識事理之當然, 而所行或出於私意, 非但失之於野而已. 홍씨가 말하길, “여력이 없는데도 글을 배우면 곧 문(文飾)이 그 質(바탕)을 없앨 것이고, 여력이 있는데도 글을 배우지 않으면, 곧 質이 (문을) 이겨 거칠게(野) 될 것이다.”고 하였다.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힘써 행하되 글월을 배우지 않으면, 성현께서 완성하신 법을 고찰하여 사리의 당연함을 알 수가 없어서, 행하는 바가 간혹 사사로운 뜻에서 나오기도 할 것이니, (이렇게 되면) 단지 野(거친)한 정도에서 잘못하는 것일 따름은 아닐 것이다.
洪氏: 名興祖 字慶善 丹陽人 홍씨는 이름이 흥조이고, 자는 경선이며, 단양 사람이다. |
11 | 朱子曰 無弟子之職以爲本 學得文 濟甚事 此言雖近 眞箇行得亦自大段好 文是詩書六藝之文 古人小學便有此等 今皆無之 所以難 又曰 人須是知得古人之法 方做不錯 若不學文任意自做 安得不錯 只是不可先學文耳 주자가 말하길, “제자의 직분을 근본으로 삼음이 없다면, 글월을 배운다고 한들, 무슨 일을 이루겠는가? 이 말은 비록 淺近하기는 하지만, 진짜로 그렇게 행할 수 있다면, 역시 그 자체로 대단히 좋은 것이다. 글월(文)이란 詩書六藝의 글이다. 옛사람들은 小學을 배울 때 바로 이러한 것들이 있었으나, 지금은 모두 없다. 그래서 어려운 것이다.”라고 하였다. 또한 말하길, “사람은 모름지기 옛사람의 법을 알아서 터득해야만 비로소 틀리지 않고 할 수 있다. 만약 글월을 배우지 않고 제멋대로 스스로 한다면, 어찌 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단지 글월을 배우는 것을 먼저 하면 안 될 따름이다.”라고 하였다. |
12 | 問行有餘力而後學文 夫豈以講切爲緩哉 曰 書固不可以不讀 但比之行實差緩耳 不然則又何必言行有餘力而後學耶 누군가 묻기를, “행하고도 여력이 있은 후에 글을 배우라고 하였는데, 무릇 어찌 講切(익히고 절차탁마함)을 급하지 않은 일로 삼을 수 있습니까?”라고 하였다. 대답하길, “書는 본래 읽지 않을 수 없으나, 다만 행하는 것에 비한다면, 실제로 조금 급하지 않을 따름이다. 그렇지 않다면, 또 하필이면 행하고도 여력이 있은 후에 배우라고 말하였겠는가?”라고 하였다. |
13 | 南軒張氏曰 入孝出弟 謹行信言 汎愛親仁 皆在己切要之務 行有餘力則以學文 非謂俟行此數事有餘力而後學文也 言當以是數者爲本 以其餘力學文也 若先以學文爲心 則非篤實爲己者矣 文謂文藝之事 聖人之言 貫徹上下 此章推言 爲弟爲子之職 始學者之事 然充而極之 爲聖爲賢 皆不外是也 此數言先之以孝弟 蓋孝弟人道之所先 必以是爲本 推而達之也 남헌장씨가 말하길, “入孝出弟(들어가면 효도하고 나오면 공경함)와 謹行信言(행실을 삼가고 말을 미덥게 함), 그리고 汎愛親仁(널리 사랑하고 인자를 가까이함)은 모두 나에게 절실하고 중요한 일들이니, 이를 행하고도 여력이 있으면 글을 배운다는 말은, 이 몇 가지 일을 행하고도 여력이 있는 것을 기다린 후에 글을 배우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마땅히 이 몇 가지를 근본으로 삼고, 그 여력으로 글을 배우라고 말한 것이다. 만약 우선 글을 배우는 것을 마음으로 삼는다면, 독실하게 자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다. 글월(文)이란 문예의 일을 일러 말한 것이다. 성인의 말씀은 上下를 貫徹하였는데, 이 장에서는 제자 된 사람의 직분이 비로소 배우는 자의 일이라는 것을 미루어 말하였다. 그러나 이를 확충하여 지극히 한다면, 성인이 되고 현자가 되는 것도 모두 이것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다. 이 몇 가지 말 중에서 孝悌를 앞세운 것은 대체로 孝悌가 人道에서 우선으로 삼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반드시 이것을 근본으로 삼아서 미루어 통달시켜야 한다.”라고 하였다. |
14 | 雙峯饒氏曰 尹氏以文對德 行有本末先後之分 說得文字輕 洪氏以文對質 言不可偏勝 說得文字差重 朱子以學文爲致知 與力行 爲對 謂所知不明 則所行不當理 發明文字甚重 三者互相發明 蓋但知文之爲輕而不知其爲重 則將有廢學之弊 故不得不交致 抑揚之意 쌍봉요씨가 말하길, “윤씨는 文을 德과 대조하였는데, 실행에는 본말과 선후의 구분이 있다고 하여 文자를 가볍게 말하였다. 홍씨는 文을 바탕(質)과 대조하였는데, 어느 한쪽이 낫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文자를 조금 무겁게 말하였다. 주자는 文을 배우는 것을 致知(앎을 지극히 함)로 여겼는데, 力行과 더불어 대조되는 것으로 삼았다. 아는 바가 밝지 못하면 행하는 바가 이치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함으로써, 文자가 매우 무겁다는 것을 드러내어 밝혔다. 이 세 가지 말은 서로 드러내어 밝혀주는 것이니, 대체로 그저 文이 가볍다는 것만 알고서 그것이 무겁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장차 배움을 그만두는 폐단이 있게 될 것이기 때문에, 그 抑揚(누르고 올림)하는 뜻을 서로 알려주지(致) 않을 수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15 | 趙氏曰 德固不可一日而不修 學亦不可一日而不講也 조씨가 말하길, “덕은 본래 하루라도 닦지 않으면 안 되고, 배움 또한 하루라도 익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16 | 雲峯胡氏曰 行有餘力者 謂六事之中每行一事有暇 則便學文 非謂每日盡行此六事畢然後學文也 若必欲盡行此六事 行之不給 則恐終無學文之時矣 又按熊氏謂 此章是小學 自孝弟忠信入 故先行而後文 子以四敎 是大學 自格物致知入 故先文而後行 蓋以弟子二字 專爲小學之事 然則十五入大學者 獨非爲人弟爲人子者乎 大抵聖人敎人力行 必以學文爲先 故爲弟子之職者 力有餘則便當以學文爲重 集註力行而不學文以下 正自該子以四敎章之意在其中 운봉호씨가 말하길, “행하고도 여력이 있다는 것이란 6가지 일 중에서 매번 하나의 일을 행하고서도 겨를이 있다면 바로 글을 배운다고 말한 것이지, 매일 이 여섯 가지의 일을 다 하여 끝마친 연후에 글을 배운다고 말한 것은 아니다. 만약 반드시 이 6가지 일을 다 행하기를 바랐다가 행함이 충분하지 못하다면, 끝내 글을 배울 시간이 없게 됨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또한 살펴보건대, 웅씨가 말하길, 이 장은 小學이라 孝悌忠信으로부터 들어가기 때문에, 行을 앞세우고 文은 뒤로 하였고, 공자께서 네 가지로 가르치신 것은 大學이므로, 格物致知로부터 들어갔으니, 이 때문에 文을 우선하고 行을 뒤로 한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는 대체로 弟子라는 2글자 때문에 오로지 小學의 일이라고 여긴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15세에 대학에 들어간 사람은 유독 사람의 동생이 아니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란 말인가? 대저 성인께서는 사람들에게 힘써 행하라고 가르침에 있어 반드시 文의 배움을 우선으로 삼았으니, 이 때문에 제자의 직분을 행한 자가 힘에 남음이 있다면 곧바로 마땅히 글을 배우는 것을 중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집주의 ‘力行而不學文’ 이하는 바로 ‘공자께서 네 가지로 가르쳤다’는 장의 뜻을 저절로 그 안에 갖추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
17 | 新安倪氏曰 文行二者 以本末之重輕言 則行爲重 故此章先行而後文 先本而後末也 以知行之先後言 則文爲先 故四敎章 先文而後行 先知而後行也 以二章參觀之 則文行之不可不並進 可見矣 신안예씨가 말하길, “文과 行, 이 2가지는 근본과 말단의 輕重으로 말하자면, 行이 무거운 것이기 때문에, 이 장에서 行을 먼저 하고 文을 뒤로 한 것이고, 근본을 우선하고 말단을 뒤로 한 것이다. 알고 행하는 先後를 가지고 말하자면, 文이 먼저이기 때문에, ‘네 가지로 가르친다’는 장에서는 文을 먼저 하고 行을 뒤로 한 것이며, 아는 것을 먼저 하고 행하는 것은 뒤로 한 것이다. 이 2장을 가지고 참고하여 살펴보면, 文과 行을 나란히 증진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