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언(證言) - [44] 문명호 (文明鎬) - 절대믿음과 감사의 생활 5. 군 생활 - 3
23 1964년 여름 포천교회를 신축하게 되었다. 식구들은 낫으로 서까래 나무껍질을 벗기고 있었다. 그날 전 부대가 이동을 하면서 훈련을 하는 CPX 군사훈련을 하게 되었다. 교회의 일을 돕고 싶었던 나는 상관에게 창고의 소중한 장비를 도난당할 우려가 있으므로 내가 지키겠다고 말했다. 그랬더니 허락해 주었다. 24 부대원들이 모두 훈련 차 떠난 뒤 나는 교회 신축 공사장으로 가서 일을 도왔다. 며칠간 일을 하고 부대원들이 돌아오는 날 일찍 귀대했다. 그런데 난리가 났다.
25 훈련 중 장비가 고장 나서 교체하기 위해 창고로 찾아왔으나 문만 굳게 잠겨 있을 뿐 내가 없었다는 것이다. 훈련에 큰 차질을 빚게 되어 통신 참모로부터 상급자가 문책을 받고 경위서를 썼다. 25 그리고 창고 장비 담당자인 나를 영창 보내라고 했다는 것이다. 나의 상급자 부관이 긴 몽둥이로 사정없이 때린 후 어디를 갔다 왔냐며 물었다. 나는 교회 공사하는 곳에 다녀왔다고 자초지종을 말했다. 그러자 “너 군인이야, 민간인이야?” 하고 물었다. 훈련은 곧 준 전시상태나 마찬가지인데 미쳤냐는 것이다. 27 나는 죽을죄를 지었다며 용서해 달라고 사정을 했다. 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너는 영창감”이라며 화를 풀지 않았다. 한참 혼을 내더니 나가 있으라고 했다.
28 앞날이 어떻게 될지 걱정되었다.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데 저녁 시간에 다시 나를 불렀다. 매점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앞으로는 절대 그렇게 하지 말라는 다짐을 받더니 자신이 문책을 다 받겠다고 했다. 29 그렇게 나의 일이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통신장비 책임을 맡고 있는 사람이 나와 나의 조수 두 사람뿐이었다. 조수는 아직 업무를 다 익히지 못한 상태라 내가 영창을 가게 되면 부대의 통신 업무가 마비되므로 부관은 나를 지켜줄 수밖에 없었다. 그 어려운 상황에서 헤어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다. 나는 다시금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올렸다. 30 이 모든 일들은 군대라는 특수한 사회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불가능하게 여겨지는 일들이 가능한 일로 바뀌었던 것은 나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을 절대 믿고 뜻길을 가는 자에게 하늘이 지켜주심을 알리고자 함이다. 31 군 생활 중에 나는 초창기부터 참부모님의 운전을 맡았던 박동하 고향 친구(430가정, 천정궁 근무, 청심교회 2구역 회장)를 전도한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다. 그는 처음 수송부에 근무하면서 교회에 다니기가 무척 힘들었으나 잘 극복하고 열심히 출석했다.
32 그리고 통신참모의 차를 운전하였으며 교회에 많은 도움을 주었다. 특히 교회 램프 불의 석유를 늘 공급했다. 그리고 나와 함께 성미 사업을 하여 포천교회(당시 허봉구 지역장과 전선자 사모)를 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