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영/ 「탄소발자국」
스무 살부터 만지는 장난을 좋아했다
여름을 신나게 만지다 가을을 놓치곤 했다
날마다 가지고 놀던 강의 종아리, 풀꽃의 입술, 느티나무의 가슴
마흔 넘어서는 만질 수 없는 순한 시간들이었다
그대 만지던 것이 나의 젊음이었는지, 불만이었는지
밖으로 끌려나가던 욕망들을 보았다
어떤 눈물은 만지지 않아도 흘렀고 색깔이 검었다
눈동자를 잃어버린 저녁이 기침하곤 했다
그 후로 性이란 호기심 발자국이 탄소 가득한 거리를 맨발로 걸어 다녔다
사랑은 서로의 에너지를 연소하는 호기심
서로를 원할 때마다 불원전한 발자국을 몸에 남겼다
지금 지구의 눈물은 12시 5분 전
장난칠 여름이 보이지 않는다
- 문정영 「탄소발자국」 전문 『술의 둠스데이』 (달을쏘다시선』
<감상문>
문정영의 시집 『술의 둠스데이』에는 유별나게 ‘당신’, ‘너’라는 이인칭 지칭대명사가 많이 나온다. 이는 사물을 보는 시인의 관점이 나와 당신의 상관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시학임을 깨닫게 한다.
소재로는 기후 위기와 지구의 미래에 대한 서사가 중심을 이룬다. 기후 위기에 직면한 위험한 상황에도 이러한 문제들을 에로스와 연계해서 해석하는 감성이 돋보인다. 기후 환경문제라는 어려운 소재를 에로스로 비유하여 승화시키므로 이미지를 쉽게 전달한다.
화자는 “스무 살부터 만지는 장난을 좋아했다” 화자가 만진 것은 강, 풀꽃, 느티나무 같은 자연이였다. 장난을 치며 자연을 훼손했다. 그 후로 性에 눈을 뜬 후 탄소가 가득한 거리를 걸어 다녔다. “사랑은 서로의 에너지를 연소하는 호기심/ 서로를 원할 때마다 불완전한 발자국을 몸에 남겼다” 사랑을 태우던 욕구가 완전히 연소되지 못하고 불완전한 연소를 몸에 남기므로 몸을 상하게 했다. 불완전한 연소를 해소하지 못한 사람과 지구는 하나다. 시인은 동질성을 발견했다. 기후환경 문제를 에로스와 연계해서 불완전한 탄소발자국을 상상하는 이미지가 놀랍다. 밖으로 끌려 나갔던 욕망들은 자연뿐 아니라 사람 자신을 망치고 있다. “지금 지구의 눈물은 12시 5분 전/ 장난칠 여름이 보이지 않는다” 둠스 데이가 가까왔다.
우리의 미래에 대해 “우리에게 맞는 색깔은 익지 않고 미래는 미세먼지 자욱한 지구를 닮아갔다// 오늘 영등포 작은 주점에서 사랑의 색깔 다시 배웠다”(「로젠와인」)고 진단한다. 자욱한 먼지와 숙성한 와인을 비교헸다. 시인은 “적조한 자리에서 간신히 숨 쉬는 꽃이 보이는데/ 당신의 맥을 짚으면 힘차게 뛰기는 하는 것일까요” (「적조」)하며 식물의 호흡과 사람의 생체 리듬에서 동질성을 인식하였으며 또한 “당신은 멸종하는 어느 새의 날개짓을 습작하고 있었던 것일까 등 움츠리고 걸어가던 인사동 골목 한지 불빛 아래서/ 갈 곳 잃어버린 새떼들이 날아올랐지”(「저어, 저어새」)라고, 사람들도 자연의 일부이며 길 잃은 새떼와 동일함을 강조한다.
지금 지구도 아프고 식물도 아프고 동물도 아프고 사람도 아프고 사랑도 아프다. 하지만 시인은 시집 맨 마지막 시에서 “저 꽃이 지지 않으니 너는 다시 봄으로 날 수 있다!”(「겨울 나비」)고 기대감을 놓지 않는다.
- 감상자 / 이구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