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하나의 '검찰국가' 과테말라는 민주주의 국민이 '검찰 정부'를 퇴각시키고 승리했음을 보여주고 있다.
과테말라(Guatemala) 공화국의 국민들은 '중남미의 검찰독재 나라'라는 더러워진 이름과 손상된 명예를 치유하고 사흘 전인 1월 15일(현지시간) 민주주의 선거로 국민들이 뽑은 새 대통령 '베르나르도 아레발로'(Bernardo Arévalo)가 작년 8월 선거 이후 6개월 만에 비로소 취임식을 가졌다. 선거 결과를 부정하던 부패 기득권 권력을 지키던 병든 공권력인 검찰의 선거 직후 무차별 압수수색과 체포, 그 6개월 탄압을 과테말라 시민, 국민이 결국 이긴 것이다.
‘풀뿌리민중운동’ 소속인 아레발로 대통령은 1945년부터 1951년까지 일련의 혁명적인 개혁을 시행한 과테말라 최초의 민주적으로 선출된 대통령의 아들이다. 아버지가 미국 CIA의 지원을 받는 쿠데타로 축출되고 과테말라는 수십 년 동안 권위주의 통치를 당했지만 이번 아레발로의 대통령직 취임은 수십 년 전 아버지 시대를 이어 '과테말라의 새로운 봄'으로 보고 있다.
베르나르도 아레발로는 이미 지난해 8월 과테말라 대선에서 58.01%의 득표율로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검찰의 압력을 받은 과테말라 선거관리위원회가 그의 정당인 ‘풀뿌리민중운동’의 법적 지위를 정지시키고, 검찰이 국가 최고 선거 당국 본부를 급습한 후, 20시간 넘게 밤새도록 그들은 시설에서 수십 개의 파일 상자를 꺼내기 시작했다. 선거 관계자들이 검찰에 압수수색을 중단해 달라고 간청하고, 상자가 치워지는 좁은 복도를 물리적으로 막는 등 혼란이 가중됐다. 결국 검찰은 약 120명의 경찰의 지원을 받아 작년 6월 25일 선거에 관한 125,000개 이상의 파일을 강제 압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장면은 극적이었지만 놀랍지는 않았다. 과테말라의 검찰 교정본부국의 단장을 지낸 바 있는 '알레한드로 잠마테이'(Alejandro Eduardo Giammattei)가 대통령이 된 2019년부터 4년 동안 과테말라의 '범죄적 과두정치'는 정권 연장을 위해 국가의 선거 과정 훼손을 시도했다. 이들은 검찰과 경찰 및 국가 사법 기관을 이용했다. 총선을 앞두고 작년 5월 초 검찰은 기소를 수단으로 대선 후보를 선별적으로 탈락시켰다. 그러나 ‘풀뿌리민중운동당’ 소속 베르나르도 아레발로는 이 고르지 못한 경쟁의 장을 이기고 대통령 결선투표에 진출했다. 선거 직전까지 난관을 돌파해야 했던 그는 지난해 6월 치러진 1차 대선에서 11.88%의 득표율로 2위를 차지하는 사건을 연출, 이어 결선에서도 압도적 표차로 승리했다.
그러나 작년 9월 말 검찰의 선거 재판소에 대한 급습은 위기였고 동시에 과테밀러 민주주의 전환점이었다. 9월 30일 저녁, 과테말라 시민단체들과 시민,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수호하기 위한 전국적인 파업을 선언했다. 검찰을 앞세운 부패 기득권 권력의 국민 탄압에 대한 저항은 전국적인 대규모 시위 물결을 이루었다. 그 규모와 비폭력적인 성격은 세계를 놀라게 했다.
10월 9일까지 수십 개의 시위 운동 조직과 과테말라 국민 대중들이 합류한 민주주의 권리 운동은 전국 140개 이상의 지역에서 주요 도로를 막고 있었다. 시위가 정점에 이르렀을 때 시위대는 과테말라의 22개 주와 340개 지방자치단체 중 최소 92개(약 27%)에 장애물을 설치했다. 동시에 시위자들은 민주주의 사수를 위한 수십 건의 행진, 집회, 시위 및 연좌 농성을 조직했다. 3주 중 상당 기간 동안 이 민주화 운동은 과테말라 검찰 정부 기능을 마비 중단시켰다. 이는 거의 모든 기준으로 볼 때 엄청난 수준의 대중 참여였다.
'베르나르도 아레발로'가 이끈 ‘풀뿌리민중운동당’은 대중 시위에서 분명한 사실은 비폭력 저항의 고수였다. 비폭력은 시위를 동원하고 유지하는 데 필수적이었다. 억압에 대한 대응이라 할지라도 폭력 시위는 적어도 두 가지 이유로 저항 운동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다. 첫째, 폭력은 대중의 참여를 방해한다. 시위가 폭력적인 측면을 수용하거나 용인한다면 대규모 시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더 넓은 사회에서 더 많은 대중을 끌어들일 가능성이 줄어든다. 둘째, 폭력은 반대자들이 모든 시위자들을 급진적인 법 위반자로 모함하는 데 도움이 되며, 이는 결국 국내 및 국제적 지지를 약화시킨다.
과테말라의 시위 운동은 주로 원주민 지도자들의 조직적 역량과 전술적 선견지명 덕분에 검찰의 탄압을 피했다. 시위를 주도한 시민 단체들은 지속적으로 비폭력적인 시위를 옹호하고, 처음부터 폭력 사용에 대한 강력한 규범을 확립했으며, 생활필수품 수송 등 긴급 차량은 많은 장애물을 우회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등 폭력적인 대결 가능성을 줄이기 위한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 폭력 사태가 발생하자 운동 지도자들은 재빨리 거리를 두고 이러한 행동을 규탄했다. 그 결과, 검찰이 선두에 선 과테말라 기득권 연합의 시위 방해 노력에도 불구하고(헌법재판소는 시위자들이 반인도적 범죄를 저질렀다고까지 주장했다) 그들은 과테말라 민주화 운동의 국내외 정당성을 훼손하는 데 실패했다.
지난 6개월 동안 독재자 '알레한드로 잠마테이' 대통령은 권력 사수에 진력을 다했다. 그러나 과테말라 민중들의 시위는 권위주의 기득권 연합에 균열을 일으켰다. 예를 들어, 10월 16일 경찰을 총괄하는 내무장관이 사임했다. 이번 조치는 시위 대응 방식을 두고 중앙정부 내부에 분열이 있다는 신호로 널리 해석 됐다. 시위는 또 과테말라에 대한 국제적 관심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 미주 기구 (Organization of American States)와 미 국무부는 과테말라 민중들의 시위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고 평화적인 권력 이양에 대한 지지를 거듭 밝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민주화 운동이 대중 동원을 통해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물론 남미나 중미의 민주화운동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그러나 라틴 아메리카 전역의 증거에 따르면 민주적 퇴보에 맞서 잘 조직되고 비폭력적인 대중 저항이 성공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이는 동일한 목표를 향해 부패한 법원, 부패한 입법부, 부정 선거 및 기타 제도적 채널을 활용하는 독재 전술에 대항할 때 그렇다. 멕시코의 최근 경험에서 알 수 있듯이 조직화된 시민의 강력한 지지를 획득한 민중 운동은 독재세력에 맞서는 것에 필수 조건이다.
1821년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과테말라는 20세기 초반부터 미국 과일 회사(United Fruit Company)와 미국 정부가 지원하는 일련의 독재자에 의해 통치되었다. 1954년, 미국이 지원한 군사 쿠데타가 독재 체제를 구축했다. 과테말라는 1960년에서 1996년까지 군대에 의해 자행된 과테말라 대학살 사건을 비롯하여, 미국이 후원하는 정부와 좌익 반군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을 견뎌냈다.
그러나 미국의 외교 방식이 지역에 따라서 달라지면서 독재자의 일방적인 지원은 한계가 있음을 인식하게 됐고, 이번 과테말라 국민의 민주주의 승리를 인정하게 됐다.
미 국무부는 검찰 독재국가를 이끈 과테말라 전 대통령 '알레한드로 잠마테이'의 미국 도피를 허락하지 않고, 미국 입국을 금지시켰다. "중대 부패에 연루" 됐다는 이유다.
미 대통령 바이든은 백악관 성명으로 과테말라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신임 대통령의 취임식에 환영 성명을 발표했다. 수십 년 전 미국 CIA가 지원하면서 군부 쿠데타로 축출당한 대통령의 그 아들이 민주주의 승리로 새로운 대통령이 된 것이다. 아이러니다.
바이든의 성명서는 이렇다.
"오늘의 베르나르도 아레발로 과데말라 대통령 취임식은 민주주의와 국민의 의지에 대한 우리의 공통된 헌신을 보여주는 역사적인 증거입니다. 저는 앞으로 몇 달, 몇 년 동안 인권을 증진하고, 민간 안보를 강화하고, 부패에 맞서 싸우고, 이주 근본 원인을 해결하고, 남반구와 전 세계 사람들을 위한 경제적 기회를 확대하면서 양국 간의 강력한 파트너십을 계속 이어갈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김상수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