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자서(吳子胥)가 장차 오나라로 가면서 그의 친구 신포서(申包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부터 3년 내에 초(楚)나라가 망하지 않으면 내 다시는 그대를 보지 않을 것이오!”
그러자 신포서가 이렇게 말하였다.
“그대는 노력하시오. 나는 그대를 도울 수 없소.
그대를 돕는 다는 것은 나의 조국을 벌하는 것이 되고,
그대를 제지하는 것은 친구의 관계를 저버리는 것이 되오.
비록 그렇기는 하나 그대는 망하게 하시오. 나는 버티게 할 터이니.
그리하여 초나라가 망하는지 이겨내는 지를 봅시다.”
그로부터 3년 후, 과연 오자서는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초나라를 쳐들어 왔다.
초(楚) 소왕(昭王)은 할 수 없이 서울을 떠나 도망가야 했다.
이때 신포서는 임금의 명령을 받지 않았음에도
서쪽으로 진(秦)나라를 찾아가 진왕에게 이렇게 요청하였다.
“오나라는 무도(無道)한 나라입니다. 군대도 강하고 사람도 많습니다.
천하를 정복할 야심을 가졌으며, 이를 초나라로부터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 임금은 도망하여 운몽(雲夢)에 거하고 있으면서
저를 보내어 이 위급함을 고하게 한 것입니다.”
이 말에 애공(哀公)이 “좋습니다. 장차 시도해 보겠습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신포서는 진나라 조정에 똑바로 선 채 떠나지 아니하고
밤낮으로 울어 칠일칠야(七日七夜)를 그치지 않았다.
애공이 이를 보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와 같은 신하가 있는데 어찌 구원해 주지 않으랴!”
그리고는 군대를 일으켜 초나라 구원에 나섰다.
오나라에서는 이 소식을 듣자 군대를 이끌고 돌아가 버렸다.
소왕이 다시 나라를 복구하자, 신포서의 공을 높이 들어 그를 봉하려 하였다.
그러나 신포서는 이를 사양하였다.
“망해가는 나라를 구한 것은 명예를 위한 것이 아닙니다.
공을 이루었다고 상을 받는 것은 용기를 팔아먹는 행위입니다.”
끝내 받지 않은 채 숨어버리고는 종신토록 얼굴을 내놓지 않았다.
시에 “백성에게 재앙이 있으면 기어가서라도 구해야 한다”라고 하였다.
✼ 오자서(吳子胥): 원래 초나라 출신으로 아버지와 형이 평왕에게 죽자
오나라로 망명하여 뒤에 원수를 갚으러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들어갔다.
✼ 신포서(申包胥): 원래 오자서의 친구. 친구 오자서가 오나라 군대를 이끌고 쳐들어오자,
진나라에 가서 구원을 요청한 인물로 유명하다.
✼ 초(楚) 소왕(昭王): 초 평왕의 아들. 재위27년(B.C. 515∼489).
✼ 진(秦) 애공(哀公): 당시 진나라 군주. 재위 36년(B.C. 536∼501).
✼ 운몽(雲夢): 지명.
-《설원(說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