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방사 花芳寺. 경상남도 남해군 고현면 대곡리 망운산(望雲山)에 있는 사찰.대한불교조계종 제13교구 본사인 쌍계사의 말사이다.
아침저녁으로 시원한 바람이 옷깃을 파고드나 싶더니 벌써 산허리 곳곳이 울긋불긋해지며 자연의 섭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바야흐로 가을이 성큼 곁으로 다가왔다.
깊어가는 가을의 정취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바로 깊은 산 속 수행승들의 불경 읊는 소리 가득한 산사(山寺)가 아닐까.
천년의 세월을 지켜온 화방사
천년 고찰 화방사는 남해군에서 제일 높은 산인 망운산 허리 자락에 자리 잡고 있다. 화방사는 신라의 고승 원효대사가 망운산 남쪽에 창건한 연죽사를 전신으로 하고 있다.
천년 고찰 화방사는 해발 786m의 망운산 정상으로부터 시작된 계곡을 따라 산을 오르다 보면 만나게 된다.
지금은 이곳을 찾는 신도들과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절 입구까지 도로가 반듯하게 나 있어 그 옛날 스님들과 보살, 처사들이 구슬땀을 흘리며 걸었을 오롯한 산길의 정취를 맛볼 수는 없어 조금은 아쉬운 느낌이다.
절 초입에 널찍하게 자리 잡고 있는 주차장에 차를 대고, 짧지만 계곡을 가로질러 난 오솔길을 600미터를 따라 오르다 보면 일주문을 만나게 된다.
일직선 상의 두 기둥 위에 지붕을 얹어 만든 일주문은 세속의 번뇌를 말끔히 씻고 일심으로 진리의 세계로 향하라는 상징적인 가르침이 담겨 있다. 일주문의 웅장함은 저절로 세속의 번뇌를 벗어버리게 만든다.
일주문을 지나 계곡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로 곧게 뻗은 울창한 숲길을 걷다 보면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 채진루가 눈에 들어온다. 채진루는 사바중생들의 설법이 있거나 수행승들이 함께 모여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던 곳으로 1740년 사찰과 함께 불타 없어졌지만 이듬해인 1741년(영조17년)에 다시 재건돼 현재까지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채진루의 맞은편에는 화방사 정중앙을 지키고 있는 대웅전이 웅장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화방사는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부불전인 응진전과 명부전이 배치돼 있어 조선시대 유행하던 삼불의 전형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에서 내려다보이는 앞마당에는 근래 들어 만들어진 9층 석탑을 볼 수 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이 석탑은 세월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화방사를 둘러싸고 있는 수백년은 족히 돼 보이는 나무들과 함께 웅장함을 더하고 있다.
대웅전을 지나면 온 세상 생명체를 제도하는 법전사물(法殿四物)을 떠받친 범종각을 만날 수 있다.
범종각에서는 중생을 번뇌에서 벗어나 깨달음을 얻게 해준다는 범종을 비롯해 부처의 가르침으로 축생과 땅에 사는 모든 중생의 마음을 울려 어리석음을 깨우친다는 법고, 물속에 사는 모든 중생을 제도하는 목어를 포함해 조류와 허공을 떠도는 영혼을 구제하는 운판 등 법전사물을 모두 볼 수 있다.
산내 암자로 극락암과 수광암이 있다.
신라 신문왕(재위:681∼692년) 때 원효(元曉)가 창건하였다. 창건 당시에는 연죽사(煙竹寺)라 불렀고, 고려 중기 혜심(慧諶:1178∼1234)이 중창한 뒤에는 영장사(靈藏寺)라 하였다. 임진왜란 때 승병들의 근거지로 쓰이다가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636년(인조 14)에 계원(戒元)과 영철(靈哲)이 현위치로 옮기면서 절 이름을 화방사라 하였다.
영조·정조 때 가직(嘉直)이 머무르면서 절을 중수한 이후 용문사(龍門寺)·보리암(菩提庵)과 함께 남해군의 3대 사찰이 되었다 한다.
현존 건물로는 대웅전.응진전·명부전·칠성각·일주문· 채진루 등이 있다. 이 중 대웅전과 마주보고 있는 채진루(採眞樓)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 건물로 경상남도 문화재자료 제152호로 지정되었다.
대웅전은 본래 보광전이었으나 보광전이 1981년 10월 1일 불에 타 사라지자 1984년 12월 29일 복원하면서 전각 이름을 바꾼 것이다. 산내 암자로 망운암이 있다.
삼성각은 독성각·산신각·칠성각이 있으며, 대개 삼성각에 삼신을 같이 모신다.좌측 독석존자, 칠성님, 산신할아버지
칠성도는 칠성을 불교의 호법 선신으로 수용하고, 이를 의인화하여 묘사한 그림으로 주존불인 치성광여래(熾盛光如來)를 중심으로 좌우로 협시보살인 일광보살(日光菩薩)과 월광보살(月光菩薩)을 배치하고 7존의 성군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유물로는 옥종자(玉宗子)·금고(金鼓)· 이충무공비문목판(李忠武公碑文木版) 등이 유명하다. 이 중 옥종자는 절을 짓고 불상을 모실 때 밝혔던 등잔으로 한번 불을 붙이면 꺼트려서도 안되고, 일단 꺼진 뒤에는 다시 불을 붙일 수 없다고 전한다. 1234년(고려 고종21) 이전에 불을 붙였다가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난 뒤 꺼졌다. 이런 까닭에 다시 불을 붙이지 못하여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다. 금고는 조선 중기 때의 유물로 범자(梵字)가 사방에 양각되어 있으며, 이충무공비문목판에는 모두 2천자가 새겨져 있다. 이밖에 〈현판기문〉 〈완문절목〉〈선생안〉 등의 고문서가 전한다.
남해 화방사 지장시왕탱南海 花芳寺 地藏十王幀
지장보살도-금암천여(錦巖天如), 채종(彩宗), 유선(有善), 달오(達悟), 선종(善宗) 출초(出草) 기연(錡衍) 성휘(性輝) 도정(道廷), 법인(法仁)시왕도-금암천여(錦菴天如) 편수(片手) 기연(錡衍) 지장보살도-164×229㎝, 시왕도-각폭 156×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