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이후부터는 정치도 홍보를 했다.
이마트 앞에 작은 텐트를 쳐 놓고 자신들의
정당을 지지하라며 불러들이는 사람들이 있었다.
정치도 홍보를 하던 시절.
그 외에 정부기관이나 각 단체마다
홍보를 하면서 집단마다 사업성을 갖게 되었고
두 사업을 묶어 변형시킨 불법도 홍보를 한다며
핸드폰에 불이 나기 시작한 것도 그때였다.
굳이 적자면
불법 대부업이니 마약 매매니 성매매니 깡패 집단의 성행도
그때를 기점으로 마치 일반 사업처럼 시작되었다.
그 가운데 중개업이 개입되었고
정상적인 사업처럼 만들어 놓은 것이다.
이미 여기저기 찢겨 매도당하고 도용당한 채
내 전화번호가 남아있던
우리라이스 사업을 브로커로 엮어놓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내 책임으로 돌리기도 좋았다.
정치 집단 역시
지지자를 모으는 것이기는 했겠지만
마치 포장마차로 손님을 끌어들이는 듯한
모습이었다는 기억이 남아있다.
다단계로 모인 집단에서 만들어낸 사업과 같은
모양을 갖게 된 것은 두 개의 사업을 뭉쳐놓은
집단화가 만들어놓은 결과였다고 해도
착각도 과언도 아니다.
작은 모임도 있었고 큰 모임도 있어서
그 가운데 크게 만든 것은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만들어낸 종교단체였고
작게는 각 집안의 모임이 있었다.
종교단체는 종교의 모습을 했지만
결국 각자의 이익을 위한 모임이 되었다.
그 안에서 무능하지만 입심이 좋은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이 추천으로 자리를 얻은
일은 비일비재했다.
ㅇㅇ가 괜찮으니 행사를 만들고 그 시간에
발표하게 하면서
교인들의 반응을 본 후에 결정하자고 한 것은
지위를 얻고 단체의 장으로 오르는 것의 주요 수단은
결국 목사의 추천과 외적인 요소로 판단하는 교인들의
입김이었음을 그들이 더 잘 알고 있다.
특히 종교라는 옷을 입고 만들어 낸 사업체는
불법들이 난무해도 그 누구도 간섭하지 않았다.
당연한 사업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래서 자유라는 말로 모든 것을 합법화하기에
급급했고 모든 것을 눈감아 주고 정당화 시키면서
일을 벌여왔던 것이다.
하다못해 슈퍼에서 청소년에게 술과 담배를 팔아도
어떻게 그러냐고 반문하면
"여기서 하고 있는데 왜 못해."라는 냉랭한 반응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그것을 반대하면 영업방해했다는 신고를 당했음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업의 목적은 이익 추구이기에 많이 팔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많이 모여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가운데
정치가 정치인의 이익 달성을 위한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것은 그때에 이미 사업의 방향이
틀어졌음을 이야기해준다.
그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라이스와 전자화폐 두 사업의 중심에 있었던
나를 건드릴 수 있었고.
내 어떤 것도 자신들이 가져갈 수 있다며
따라다니며 마치 종교적으로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는
사도 바울이니 예수니 하며
내 모든 것을 교회의 모습을 한 사업체가 된
집단에서 가져가도 되는 것으로 만들면서
터무니없는 범죄를 저질렀던 것이다.
그 가운데 정치가 있었으니 더 말해 뭐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