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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남긴 편지
이규대
아내와 경기도 광명리에 조그마한 집을 마련한 것은 1976년이었다. 그해 8월 초순, 나는 스위스 보험 연수원의 4개월 코스 보험연수 과정에 등록했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설렘으로 밤잠을 설치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걱정스러웠던 것은 학습 내용을 제대로 소화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였다. 영어사전을 늘 옆에 두고 지내긴 했어도, 외국인과 대화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나로서는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게다가 초등학교 선생인 아내가 다섯 살, 두 살짜리 두 아이를 돌봐야 하는 것이 마음에 걸렸는데, 아내는 집안 걱정은 하지 말라고 했다.
연수가 시작되기 이틀 전에야 스위스 취리히공항에 도착했다. 미리 준비해야할 일들로 마음이 몹시 바빴다. 고맙게도 스위스재보험회사 직원이 공항에서 나를 맞이해 주었고, 함께 시장도 보고 연수원 가는 길도 안내해 주어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연수원이 개강하고 정신없이 며칠이 지나갔다. 겨우 한숨을 돌리고 안정되기 시작한 어느 날, 연수원으로 아내의 편지가 날아들었다. 편지를 받아드니 걱정하는 아내의 얼굴이 떠올라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가방에 편지를 챙겨 넣었다. 강의가 끝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편지봉투를 열어보았다.
결혼 7년이 되도록 적당한 호칭 하나 만들지 못했군요. 그간 여행은 어떠셨는지요. 무사히 도착하였으리라 믿어요. 떠나시던 날 공항에서 돌아와 마당에서 비행기 지나길 아무리 기다려도 와야지요. 평상시에는 연속극 볼 때마다 지나가는 비행기 소리가 무척 얄미웠는데, 어쩌면 그 소리가 그렇게 기다려지던 지요. 항공사에 알아보니 금방 떠났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모두 마당에 나와 하늘을 보며 기다리다, 다시 한 번 배웅을 했습니다. 빨간 불이 멀리 사라질 때까지 배웅하고 들어오는데, 공연스레 눈물이 왈칵 쏟아지더군요. 자기 안 계신 집안이 이렇게 허전하고 외로울 수가 없어요.
결혼하고 처음으로 오랫동안 떨어져 지내게 되었네요. 자기는 너무 말수가 적어 가끔 섭섭하고 외로웠는데, 떨어져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그런 마음 하나도 없고 허전하기만 해요. 역시 자기의 큰 그늘 속에서만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는 작은 존재임을 새삼 느낍니다. 무리하지 마시되 자주 소식 주셔요.
8월 18일
당시만 해도 해외 연수가 흔치 않은 시절이라, 첫 해외 나들이에 나서는 내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또한 염려도 컸던 모양이다. 얼마나 걱정이 되었으면, 집에 돌아와서도 마당에 나와 하늘을 향해 다시 한 번 배웅을 했을까. 기대에 부응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먼 이국에서 스스로 밥을 지어먹으며 공부해야 하는 남편 생각에, 아내도 마음을 졸였을 것이다. 늘 곁에 있어 무심하게 지냈던 가족이란 말이, 멀리 떨어져 있고 보니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가족이 있어 행복했다.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었다. 며칠을 두고 두 번째, 세 번째 편지가 왔다.
자기 월급으로 106,410원이 나왔어요. 이 달은 근무한 걸로 되어 그런지 직책 수당도 나왔어요. 엄마와 아주머니한테 빌린 돈 다 갚았어요. 9월분 적금 붓고, 설탕과 밀가루 값이 오른다기에 미리 준비했어요. 이제 빚은 하나도 없어요. 이달 보너스 일찍 나온다니까, 받게 되면 쌀과 연탄을 살까 합니다.
8월 23일
요즘 이곳은 8‧18 도끼 만행 사건으로 정국이 불안하고 위험한 상태예요. 북한군 30여 명이, 미군 장교 두 명을 도끼와 몽둥이로 살해하는 끔찍한 일이 벌어졌어요. 미군은 전쟁 준비 상태에 들어갔고, 우리 군軍도 휴가 중인 장병들이 귀대하는 등 아주 불안합니다. 자기도 몸 조심하셔요.
8월 26일
아내의 살림살이가 빈틈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지 않은 돈을 이리 쪼개고 저리 쪼개서 적금 붓고, 아이들 밥 먹이고, 빚까지 갚았다니 얼마나 힘들었을까. 돌아가면 술자리 좀 줄이고 보조를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휴전 상태라 한시도 마음 편하게 지낸 적이 없었는데, 도끼만행 사건이 터지다니, 겁이 덜컥 났다. 퍼뜩 6‧25 전쟁이 떠올랐다. 얼마나 많은 목숨을 앗아 갔으며, 또 얼마나 고통스러웠던가. 불안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더욱이 가장이 없는 마당에 아내는 얼마나 두려워하고 있을까. 불안해하는 아내에게 위로의 답장을 썼다. 아내가 궁금해 할 일상생활을 편지로 써서 보내기로 했다.
보고 싶은 현주 엄마에게.
취리히는 스위스 제일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인구 40만 명 남짓한 호수를 낀 작은 도시랍니다. 인구에 비해 꽤 큰 호수라서, 여기저기 요트가 보이고, 배도 운항하고 있어요. 바다가 없는 나라라서 이곳 사람들은 호수를 바다로 생각하는 것 같아요. 대중 교통수단으로는, 서울에서는 철거된 전차와 전선줄에 매달려 달리는 버스여서 공해라고는 없는 듯하오. 버스표는 길가에 설치된 자동판매기에서 사며, 타고 내려도 표를 보자는 사람이 없어요. 이제 내 방 좀 보여줄게요. 연수원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거리에 있는 3층 빌라 2층인데, 예닐곱 평쯤 됩니다. 바닥은 양탄자, 침대엔 모포 2장에다 홑이불과 베개, 머리맡엔 책장 하나, 구석 쪽으로 책상과 전기스탠드가 보이네요. 그 옆에 세면기와 싱크대, 전기레인지, 밥솥이 있고, 찬장에는 접시 다섯 개와 숟가락, 포크, 나무도마가 있어요. 그 외 냉장고와 옷장, 테이블과 의자 1개가 전부요. 한 발만 움직이면 다 해결된답니다. 세탁실과 샤워실은 공용이라서, 익숙해지려면 시간이 좀 걸리겠지요.
8월 29일
며칠 후 아내의 편지려니 했는데 뜻밖에 아이들의 편지가 왔다.
아빠! 나 현주여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 혼자서 밥해 먹는다면서요. 나는 아빠가 만든 밥 먹고 싶어요. 아빠! 엄마가 다리가 많이 아프다고 하더니 아빠한테 편지 쓸 때는 안 아프다 그래서, 맨날 편지 쓰라고 했더니 ‘히’하고 웃어요. 비행기가 지나갈 때는 승민이랑 “아빠” 하며 손을 흔들었는데도 아빠는 안 보였어요. 다음부터는 손 안 흔들래요. 엄마가 그러는데 아빠는 그 비행기에 없대요. 그럼 어떤 비행기에 탔어요? 아빠 하늘만큼 땅만큼 보고 싶어요. 왜 그렇게 오래 있어요?
아빠! 나 승민이야. 삼촌이 놀이터에 안 데리고 가. 누나는 혼자만 그림 그리는데, 아주 그냥 꼴돼지야. 엄마는 맨날 뭐 안 사주고 그랬어. 엄마가 기침한다고 주사 맞으래서 맞았어요. 많이 겁났어요. 부라보콘 사가지고 빨리 와.
9월 10일
아직 어려서 글자를 익히지 못했으니 아내가 아이들 말을 받아 적은 모양이었다. 갑자기 아이들이 보고 싶어졌다. 둘이 계단 옆에 쪼그리고 앉아 소꿉놀이 하던 모습, 잠자기 전 방바닥에 펴놓은 이불 위에서 엉겨 태권도, 레슬링 흉내를 내면서 장난을 치던 일이 떠올라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다.
스위스에 온 지 한 달밖에 되지 않았는데, 벌써 아이들이 보고 싶고 학교 일로 바쁠 아내의 건강이 걱정되던 차에, 아내의 편지가 또 왔다.
박 대통령이 운동회를 부활시키라고 지시했기 때문에 아주 힘이 들어요. 내용은 민속놀이와 총력안보, 새마을 운동이라야 하는데, 새 교장선생님의 주문 수준이 높아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격이어요. 하여튼 하라는 대로 입에 맞게 해야겠는데 아이들 수준은 저 아래에 있으니 목청을 2개쯤은 여벌로 준비해야겠어요. 자기가 돌아오셨을 땐 가뜩이나 검은 얼굴이 더 검어지고 꾀꼬리(?) 같던 목소리는 타조 목소리가 되어 있을까봐 겁나요. 쫓겨 갈 준비로 들어갈 만한 큼직한 가방 하나 준비해 놓을게요.
9월 12일
요즘 얼굴이 더 검어지고 눈 밑과 입가에 기미가 많이 앉았어요. 7일 날은 그야말로 파김치가 되어서 집에 돌아왔는데 “수고 했어” 하는 자기의 위로가 없으니까 그렇게 허전할 수가 없었어요. 이불 속에서 혼자 눈물을 흘렸어요. 엄마가 대신 “힘들지 않느냐, 수고했다” 위로해 주셨지만 자기의 말 한마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어요. 다행히도 운동회는 성황리에 끝났어요. 제가 맡았던 탈춤이 인기를 끌어 칭찬을 많이 받았답니다. 전부 자기가 염려해준 덕분으로 생각해요.
10월 10일
운동회가 한동안 사라지는 바람에, 아내가 많이 편해졌다고 하더니만, 다시 부활된 모양이었다. 운동회는 학교 역량을 학부모들에게 내보이는 자리요, 학교와 학부모가 가까워지는 중요한 자리다. 운동회 때문에 아내가 많이 힘들겠다는 생각이 들어 안타까웠다. 멀리서 응원하는 것밖엔 해줄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었다. 사흘이 멀다 하고 오던 아내의 편지가 한동안 뜸하더니, 또 소식을 보내왔다.
지금 시간이 밤 10시예요. 삼촌이 지금 막 들어오는군요. 아주머니가 잠을 자기 때문에 제가 밥을 차려야 해요. 회사 일이 힘이 드는지 삼촌이 많이 마른 것 같아요. 아이들 과자를 사왔더군요. 애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요. 이야기 하다 보니 12시가 넘었어요. 자기 사진이나 봐야겠어요. 요즘은 사진을 가방에 넣고 다니면서 보고 있어요. 집에서는 보고 싶어도 엄마랑 아주머니 때문에 못 보고 그랬는데, 오늘 밤은 다들 주무시니까 실컷 볼래요. 10반 선생님이 저만 보면 생과부, 생과부하면서 놀려요, 빨리 자기가 오셔야 그 소리 면할 텐데. 두 달이 빨리 갔으면 좋겠어요.
11월 2일
대학에 다니는 막내 동생이 좀 늦었나 보다. 귀국하면 내 사진에 손때가 얼마나 묻었는지 봐야겠다. 아내의 편지 내용은 일상생활에서 있었던 소소한 일들이었지만, 나에게는 하나같이 반가운 소식들이었다. 나도 아내에게 자주 편지를 써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러질 못했다. 오랜만에 아내에게 편지를 보냈다.
현주 엄마 보시오.
연수원 수업은 오전 8시 반에 시작해서 오후 3시 50분에 끝나요. 지난밤 좀 늦게 잤더니 교장 선생님 강의인데도 많이 졸았나 봐요. 얼마나 미안스러운지 몸 둘 바를 몰랐어요. 수업 후 이라크 친구가 다가와서 많이 졸더라면서 웃지 않겠어요. 연수원에서 제공하는 음식이 너무 짜서, 식후엔 물 한 컵을 꼭 먹고 있어요. 요리하면서 웬 소금을 그리도 많이 넣는지. 다음 달 16일 연수가 끝나면 영국, 미국, 일본을 들러 27일 김포공항에 도착 예정입니다. 일정이 확정되는 대로 다시 연락할게요.
11월 9일
연수원에 나가는 날이면, 먼저 편지함부터 확인하는 것이 어느새 버릇이 되었다. 혹시 아내의 편지가 오지 않았나 하고 보았더니, 그 날도 편지가 와 있었다.
오늘 월급을 받아서 3만 원 은행에 넣었어요. 이 달은 김장도 해야겠고, 삼촌과 아이들 겨울옷이랑 아주머니 겨울옷 등 준비해야 할 일이 많네요. 올해는 꼭 제 오버를 해 입으려고 했는데, 물 건너 간 것 같아요.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오버를 한꺼번에 2개, 3개씩이나 맞추는지 이해가 안 가요.
11월 17일
현주 아빠,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셔요. 이규대와 김진자가 주례 선생님 앞에서 서로 사랑하겠다고 서약한 날이어요. 6년 전 일인데도 어제 일 같아요. 경주 신혼여행 때의 즐거웠던 일, 영천에서 폐백을 드리며, 시댁 어른들 앞에서 쪼그리고 앉아 다리가 아플 때, 자기가 슬쩍 뒤뜰로 불러내 주어 위기를 모면했던 일, 무릎 춤을 추던 동네 할머니의 장난기 띤 얼굴, 다람쥐 뛰놀던 뒷산을 보며 이제 나는 이 집 식구가 되었구나 하고 느꼈던 일, 쫀득쫀득한 도토리묵, 신혼여행에서 돌아와 엄마 언니 오빠 앞에서 부끄러웠던 일, 그 모든 것들이 어제 일처럼 생생해요. 자기는 선이 굵은 분이라 다 잊었으리라 생각하면서도, 늘 마음속에 간직해 주시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11월 22일
아빠! 엄마가 화장품을 샀어요. 셋방 아짐마가 조금 주었는데도 또 샀데. 우리 거는 안 사줬어.
이제 제 차례예요. 다섯 살짜리 현주가 많이 컸지요. 영양크림이 떨어졌기에 하나 샀더니 자기에게 일러바치는군요. 현주 같은 감시병이 있으니까 자기는 안심하셔도 되요. 한데, 자기 옆에 현주가 있다면 저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12월 5일
가사에 치어, 제 옷 하나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있을 아내 모습이 선했다. 귀국하면 만사를 제쳐놓고 양장점에 들러야겠다.
서울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경주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고향집에서 부모님과 친척 어른들에게 인사를 드렸다. 심술궂은 할매들이 신부를 방에다 잡아두고 풀어주질 않았으니 내가 구원 투수로 나설 수밖에. 슬며시 아내를 뒤뜰로 불러내어 아픈 다리를 쉬게 해 준 일이 있었다.
결혼 생활 중에 잊었다가는 아내에게 혼쭐나게 당하고, 며칠 고생하게 되는 게 결혼기념일이 아닌가 싶다. 기억만 해주어도, 작은 꽃송이 하나에도 감동하는 사람이 아내다. 그런데 이번엔 같이 있어주지도 못했다. 그래도 아내는 내가 돌아갈 때까지 편지로 나를 챙겼다.
이제 돌아오실 날이 20일 정도 남았군요. 이 편지가 마지막이 될 것 같네요. 긴 여정을 무사히 끝마칠 수 있도록 날마다 빌고 있어요. 부디 몸조심하셔요. 교통도덕이 잘 지켜지고 있는 나라라고는 해도 연말이어서 들뜬 분위기에서는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여긴 모두들 잘 있으니 걱정 말아요.
12월 7일
짧은 연수기간이었지만, 아내로부터 자그마치 45통의 편지를 받았다. 매번 항공우편 지면이 모자랄 정도로 빽빽하게 지면을 채웠다. 일상의 소소한 이야기에다 속삭이듯 털어놓은 속 깊은 이야기까지. 나는 매일 아내의 편지를 기다렸고 편지를 읽으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멀리 떨어져 있고 보니 지난 일들이 떠올랐다. 집을 장만해 보겠다고 일요일만 되면 서울 변두리 지역을 이곳저곳 기웃거렸던 일, 임신한 몸으로 힘들게 학교로 출근하던 아내 모습,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는 남편을 버스 정류장까지 나와 마중하면서도 한마디 불평이 없던 아내, 집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기뻐했던 일들이 마치 어제 일처럼 느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나는 가장이란 허울만 쓴 허수아비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은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지키는 믿음직한 파수꾼이 되어야 하지 않는가. 아이들이 모두 성가하고 나면, 둘만 남은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아내를 위로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었다.
그러나 아내는 10여 년 전, 영영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떠나고 말았다. 가고나니 결국 그 편지가 평생 주고받은 마지막 편지였다.
수필집『나의 배냇저고리』2020. 이지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