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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장,
현지는 때마다 도움을 주는 영미의 마음에 고마움과 함께 죄스러움을 느낀다.
남편을 자신에게 빼앗기고도 미움은커녕 자신을 배려해주는 큰댁의 넉넉함에 절로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다.
아이 둘을 자신의 호적에 넣어주고는 때마다 마음을 써주는 영미의 크고 깊은 마음 씀에 고개가 숙여지는 것이었다.
이제 그녀들은 서로를 인정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되어간다.
명지와 명훈이 학교를 입학할 때에도 아이들의 가방과 옷 그리고 학용품 일체를 사서 보내는 영미의 섬세함에 현지는 할 말을 잊는다.
이제 명훈이도 초등학교를 입학해서 학교에 다니고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직까지 자신의 본가에 가 보지 못한 아이들이 자꾸만 마음에 걸린다.
현지 자신은 평생을 그렇게 한 남자의 그늘에 가려 세상을 밝게 살아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아이들만큼은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에 있는지 알려주고 비록 같은 배가 아니라 하더라도 다른 형제들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은 현지의 마음이었다.
현지는 영미가 도와주는 덕분으로 조금은 여유 있는 생활을 할 수가 있었다.
더구나 남편 주성은 젊은 시절과는 달리 매우 성실한 사람으로 회사에서 인정을 받아 과장으로 승진이 되어 장래를 촉망받고 있는 사람으로 변신해 있는 것이다.
과장으로 승진이 되고 나서 현지는 주성에게 승용차를 구입해 준다.
고향에 내려갈 때마다 버스에 시달려 내려가고 올라올 때마다 많은 것들을 택시에 태워 보내주는 영미의 마음에 보답을 하기 위해서라도 승용차를 구입해 주어야만 했던 것이다.
아직 한 번도 영미를 보지 못한 현지였지만 영미의 인품을 자신을 도저히 따라 갈 수 없을 것이라 생각하면서 때가 되기만 하면 남편을 고향으로 내려 보내곤 하는 것이다.
이제 주성은 집안의 제사 때나 명절은 물론이고 집안의 대소사를 영미와 함께 의논하면서 참석을 한다.
물론 고향 집에 내려 갈 때마다 영미와 부부관계를 맺으면서 자연스러운 부부사이로 그들은 남모르게 속정이 깊어져 가고 있었다.
“이번 추석에는 아이들을 데리고 가겠소!”
추석을 얼마 앞두고 주성은 그렇게 현지에게 말을 한다.
“네?
그래도 되겠어요?”
“안 될 것이 뭐가 있겠소?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우리 명지와 명훈이를 보실 수 있게 해 드려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오.“
박순분여인은 점점 더 건강이 악화되고 있었다.
이제는 전처럼 음성도 크지 않고 기운 없어 하시더니 결국은 자리에 누워 있는 시간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주성은 그런 어머니를 볼 때마다 자신이 어머니의 건강을 많이 힘들게 했다는 자책감과 함께 어머니께 죄스러운 마음이 든다.
이제 칠십을 막 넘기신 어머니다.
아직은 더 건강하게 살아 가셔야 할 연세에 어머니는 병들고 늙은 모습으로 주성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뿐인 자식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마음고생을 하셨는지 주성은 그저 어머니 앞에만 앉게 되면 저절로 자신의 못남을 한탄하곤 한다.
“우리 명지와 명훈이에게도 할아버지 할머니의 모습을 남겨주고 싶소.”
“그것이야 당신보다 내 마음이 더 간절하지요.
허지만 어머님이 허락하지 않으시니 공연히 더 어머님의 병세만 더 해드리는 것이 아닌가 싶어 불안해요.“
“아닐 것이오.
이 아이들을 보면 어머니도 기뻐하실 것이라고 믿소.
아무리 그래도 당신의 핏줄이 섞인 당신 후손인데 반가워하실 것이오.
그것을 겉으로 표현을 하지 않으시는 마음을 이해를 해 드려야 할 것이오.“
“왜 그것을 모르겠어요?
우리 명지와 명훈이가 냉대를 받아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뿐입니다.“
현지는 그렇게라도 남편이 아이들을 고향에 데리고 간다는 것이 기쁘고 고마운 생각이 든다.
“당신도 함께 가지 못해 미안하오!”
“명지 아빠!
저는 이제 아무렇지도 않아요.
그저 우리 명지하고 명훈이가 고향을 찾고 자신들의 뿌리가 어디라는 것을 알면서 살아갔으면 하는 마음뿐이에요.
이참에 저도 우리 친정 부모님과 홀가분하게 명절을 보내고 싶어요.“
현지는 밝은 음성으로 주성의 마음을 가볍게 해 준다.
주성은 명지와 명훈이를 데리고 고향으로 향한다.
“아빠!
정말 아빠고향에 가면 할아버지도 할머니도 계세요?“
명훈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벌써 몇 번을 묻고 있었다.
“그래!
그동안 아빠가 우리 명지하고 명훈이를 아빠고향에 데리고 가지 못해서 정말 미안하구나!
근데, 그곳에 가면 할아버지와 할머니 말고 형들도 있다.“
“형들이요?
어떤 형들인데요?“
“너하고 같은 핏줄을 나눈 네 친형들이다.”
주성은 아직 뭐라고 설명을 해야만 할지 난감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직 명훈이가 이해를 하기에는 너무 어린 것이다.
“그럼 큰 집 형들이에요?”
“그래!”
“그럼 사촌형들이겠네요?
큰 아버지도 큰 어머니도 계세요?“
명훈은 사촌으로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너하고 사촌이 아니고 그 형들도 이 아빠의 아들들이란다.
지금 명훈이가 이해를 하기엔 조금 힘들지?“
“.................”
명훈이는 이해를 할 수 없다는 듯이 명지를 바라본다.
그러나 명지는 그들의 대화를 듣지 못했다는 듯이 차창 밖을 내다본다.
명지는 이미 그 말의 뜻을 알고 있었다.
아빠에게는 자신들 말고 그리고 자신들의 엄마 말고 다른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어려서부터 외할머니의 푸념을 듣고 알고 있었다.
어려서는 그 뜻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으나 이제 초등학교 삼학년이 된 명지로서는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어렴풋이 알게 된 것이다.
명지는 외할머니의 깊은 한숨소리를 듣고 자란 것이다.
자신은 낳은 엄마가 첩이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 그 뜻을 정확하게 알 수는 없어도 그것은 결코 좋은 말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 명지였다.
아빠의 다른 가족들!
그리고 엄마는 아빠의 첩이라는 사실이 명지를 말없는 성격으로 만들고 사람을 기피하게 만들어 놓은 것이다.
명지는 누가 말을 시키기 전에는 자신이 먼저 말을 하는 법이 없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있기 보다는 언제나 혼자서 자신만의 시간 속에서 빠져나오려 하지 않는 명지의 성격이었다.
자신의 속마음을 결코 드러내는 법도 없고 아무런 불만도 그렇다고 좋다는 표현도 별로 하지 않는 명지였다.
그런 명지의 성격을 현지는 무척이나 걱정을 하고 있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이 그저 바라보고 있는 것이었다.
조금 더 크면 성격이 바뀌겠지 하는 한 가닥의 희망을 가지면서 명지를 지켜보고 있는 현지였다.
아직은 어린 나이기에 부모가 시키는 대로 아무런 말도 없이 순순히 따라오기는 하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지 현지는 불안한 마음이 되어 명지의 하나하나를 세심하게 관찰을 하곤 한다.
반면에 명훈이는 무엇이든 관심을 가지고 묻고 또 묻는다.
사내아이가 무엇이든지 궁금한 것은 참지 못하고 묻곤 하는 것이다.
주성은 두 아이를 데리고 고향 집에 도착을 한다.
영미는 남편이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오는 것을 보자 반색을 하며 아이들을 반갑게 반겨준다.
“어서들 오너라!
네가 명지고 너는 명훈이구나?“
”안녕하세요?“
명훈이 인사를 하고 명지는 새초롬하니 영미를 외면하고 만다.
“명지야!
큰 어머니께 인사를 드려야지!“
주성이 명지에게 말을 했으나 명지는 못들은 척 외면을 해 버린다.
영미는 얼른 아이들을 데리고 안채로 들어선다.
“어서들 들어가자!
할머니께서 너희들을 보시면 기뻐하실 것이다.“
영미는 아이들을 데리고 시어머니의 방으로 들어간다.
박순분여인은 영미와 함께 들어오는 아이들을 보고 서울에 있는 손자들이라는 것을 직감한다.
“어무님!
서울에 있는 얼라덜 입니더!“
뒤따라 들어오는 아들 주성의 얼굴을 본다.
“오니라 고생했다.”
“할머님께 절을 해야지.”
주성이 명지와 명훈에게 말을 한다.
명훈은 주성의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넙죽 큰 절을 올린다.
그러나 명지는 인사를 할 마음이 없다는 듯이 그저 서서 할머니를 바라보기만 하는 것이다.
“명지야!
너도 어서 절을 드려라!“
또 다시 아버지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명지는 절을 드린다.
“오야!
내 느그덜을 보니 마음이 아프다.
이제야 느그덜을 만나게 된 이 할매를 이해를 해 주그라!“
“...............”
“그라고 큰 어무이께도 인사를 해야만 하는기다.”
“................”
“할머니!
큰 어머니라면 큰 아버지도 계십니까?“
명훈의 말에 어른들은 할 말을 잊는다.
아직은 아무것도 이해를 할 수 없는 명훈이다.
박순분여인은 그런 명훈을 한참동안 응시를 한다.
“명훈아!
느그 아부지는 집이 두 개 있다.
하나는 서울의 느그 집이고 또 하나는 이곳에 있는 집이다.
말하자면 큰 어무이도 느그 아버지와 부부인 거이다.
이 할매 말이 무신 말인지 알겠노?“
“...............”
명훈이는 고개만을 끄덕인다.
“그라니까 큰 어무이도 느그 어무이라는 것을 생각하믄 되는 거이다.”
명훈이는 주성을 올려다본다.
“어여 야들을 데불고 나가 명섭이와 명규를 만나게 히라.”
박순분여인은 영미에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도록 말을 한다.
“애비는 내하고 이바구 하자.”
주성은 함께 나가려다 어머니 앞에 앉는다.
“누가 저 얼라들을 델꼬 오라고 했노?
애미하고 미리 말을 한 거이가?“
“아닙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더 자라기 전에 어머니하고 정도 쌓고 할머니의 정이라도 받아보려고 하는 마음에서.......“
“애비야!
니 마음을 내도 안다.
허지만 명섭애미 마음도 생각을 해야 안 되겠나?
내사 이자 더 바랄 것이 무어가 있냐마는 마음 놓고 그 얼라들을 사랑해 줄 수도 읍고 이뻐하지도 몬한다.
공연히 얼라들 마음에 상처를 줄까 걱정스럽다.“
“어머니!
들어내 놓고 예뻐해 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저 저 아이들도 어머니의 자손이라는 것만 인정해 주십시오.“
“.................”
박순분여인은 깊은 한숨을 내 쉰다.
마음 같아서는 안아주며 사랑해 주고 싶은 마음이다.
그러나 집안을 위해 고생을 하고 있는 며느리의 마음을 헤아려야만 하는 자신의 처지가 한심스럽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다.
“그카고 더 이상은 안 된다는 거를 알제?
그라다 얼라들 어미까지도 델꼬 오는 거는 절대로 안 된다는 거를 명심해야 할 거이다.
내 그것만은 절대 용서치 않을 거이다.“
“네!
그 사람도 이곳에 올 생각은 하지 않습니다.
그저 저 아이들만이라도 어머니께서 인정해 주기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오야!
그나저나 즈그들끼리 잘 어울릴 수나 있을 거인지.......“
“아이들이니까 금방 친해져서 어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키만 된다믄 무신 걱정이 있을까.......”
박순분여인은 손자들이 걱정이 된다.
이제 명섭이와 명규도 다 자란 아이들이다.
아버지의 이중 살림을 훤히 알고 있는 명섭과 명규였다.
그런 손자들이 난데없이 서울에서 아버지가 데리고 온 자신의 배다른 형제들을 어떻게 받아 들인지 걱정이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박순분여인의 걱정과는 달리 명섭은 명훈과 명지를 아무 스스럼없이 받아드리고 있었다.
“네가 명훈이구나!
그리고 넌 명지!“
“형!
형은 나를 알고 있었어?“
명훈 역시 아무 스스럼없이 명섭에게 다가간다.
“암!
너를 보지를 못했지만 너와 명지가 있다는 것을 우린 모두 알고 있다.“
“그럼 우리는 왜 모르고 있었지?”
“그것은 아마 네가 아직 어리기 때문에 아부지가 말을 하지 않으신 모양이구나!
조금 더 크면 말씀을 해 주시려고 했겠지.
암튼, 잘 왔다.“
“나도 형들이 있어 정말 좋아!”
명훈은 명섭과 명규에게 귀여움을 독차지 한다.
그러나 명지는 아무하고도 말을 하지 않고 혼자만의 생각에 빠진다.
명섭과 명규와 아무런 거리낌도 없이 어울리며 기뻐하는 명훈의 모습도 명지의 눈에 거슬리는 것이다.
아버지에게 다른 가족들이 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막상 눈으로 대하고 보니 가슴에 무언가 부글부글 끓고 있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았고 공연한 심술과 화가 나는 것이다.
자신들만의 아버지가 아니고 또 다른 아버지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이 너무 화가 나고 심술이 나는 명지였다.
또한 자신의 엄마가 첩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다.
영미는 그런 명지의 마음을 헤아릴 것만 같다.
남자 아이도 아닌 여자 아이의 섬세한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 할 수가 있을 것만 같은 것이다.
“명섭아부지!
사랑에서 명훈이를 데불고 주무시소!“
“왜?”
“아무래도 아그덜이 낯설지 않겠능교?
명훈이를 데불고 주무시고 저는 명지를 데리고 잘랍니더!“
“모처럼 만에 만남인데 그렇게 해도 서운하지 않겠소?”
주성은 혹시나 자신이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아내가 마음이 상해서 그러는 것이 아닌가 하고 불안한 마음이 된다.
“아무래도 명지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할끼라예!
계집아이가 되니 사내아이들보다 예민하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았나 싶어 조금은 명지의 마음을 보듬어 주어야 할 끼라예!“
“미안하오!
나도 실은 명지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참이오.
명훈이만 데리고 올 껄 그랬다는 후회를 하고 있던 참이었소.“
주성은 아내의 깊은 마음 씀에 또 다시 아내에 대한 믿음과 바위처럼 넓고 단단한 아내의 마음에 깊은 감사를 느낀다.
아내는 역시 고향이었던 것이다.
글: 일향 이봉우
첫댓글 감사합니다,
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가슴이 져려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잘읽었습니다.감사해요
잘읽었습니다.
점점 빠져드네요.
즐독입니다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