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 공원 (외 2편)
고성만
바다를 바라보는 일은
너의 안부를 묻는 것과 비슷했다
등대,
깜박이는 눈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의지와 상관없이 뜨고 지는 태양 우러러
기다림의 자세를 생각하는 것뿐이다
네가 기획하고 내가 연출한 꿈속
비바람 부는 날이 많았다
덧입을수록 추운 옷들 껴안을 수도
다가갈 수도 없는 거리
부르고 싶었지만 딱딱하게 굳어버린 혀
물결이 은박지를 구기는 새벽
푸르스름한 안개 퍼질 때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
너의 얼굴이 지워진다 이제 그만
주저앉고 싶다
- 배다
꽃게는 이 많은 알을 배고 그물 속에 갇혀 파닥거리면서 보름달 환히 비치는 산호초 사이 고물고물 깨어나 은빛 헤엄칠 새끼들 생각으로 얼마나 앞이 캄캄했을까
자꾸 돌아보게 돼
나를 배었을 때 노란 참외가 먹고 싶었다던 어머니, 혼자 낳다가 가물가물 까무러치는 순간 세상의 자식으로 태어나 포대기에 싸여 울던 몸, 세상의 아비로 다시 태어나 아내의 불룩한 배 쓰다듬으며 한 방울 눈물 떨구었지
새끼 밴 암소의 눈과 알 밴 제비의 지저귐은 어떻게 다른가
전지가위에 싹둑 잘린 매화나무 가지 끝 가만히 뜨는 눈, 등골 오싹하지 무릇 생명 있는 것들 죄다 파릇파릇 피어나는데
비 갠 아침
자전거 타고 가는 너의 향기가 배어 나는 종일 즐거워
- 로라에게
웅크린 등 뒤로 누군가 지나가는군요
유리창에 비치는 보라색 티
그리 길지 않은 머리가 당신을 닮았어요
황홀하게 불타오르다
잎 떨군 나무같이
잠깐이나마
내 아이 손을 잡은 당신
당신 아이 손을 잡은 나를 상상했었답니다
종착역이 다른 기차처럼 스쳐지나간 뒤
곱게 물든 잎사귀 주워 편지를 썼지요
다시 내 곁에 돌아온다는 말
믿게 해달라고
지금과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해달라고
발정 난 수사슴같이 저기요! 부르면
왜요? 돌아보는 이마
찰랑찰랑 햇살 넘치는 쇄골
같은 노래 되감기하듯
당신을 생각합니다 하늘 끝 어디에선가
내려다볼 저 별
안녕
로라
잘 자요
⸺시집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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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만 / 전북 부안 출생. 1998년 《동서문학》으로 등단. 시집 『올해 처음 본 나비』 『슬픔을 사육하다』 『햇살 바이러스』 『마네킹과 퀵서비스맨』 『잠시 앉아도 되겠습니까』 『케이블카 타고 달이 지나간다』, 시조집 『파란, 만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