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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예술의 성지, 시성 단테의 고향 피렌체(Florence)
'꽃피는 고을'이라는 의미를 가진 피렌체는 영어로는 플로렌(Florence)라고도 한다. 문화와 예술의 성지로 사랑을 받고 있다. 메디치가를 중심으로 활발히 추진된 르네상스 문화운동의 발상지라고 보아도 이의가 없을 만큼, 중세기와의 이별을 고하는 출발지이기도 하다. 폰테베키오 [Ponte Vecchio, 베키오 다리] 서유럽 최초의 결원(缺圓) 아치교.
반원보다 곡률이 작은 활꼴 모양의 아치들로 이루어진 다리로, 피렌체 아르노 강을 가로지른다. 유럽 중세 공학의 뛰어난 업적이며 타데오 가디가 1345년에 완성했다. 로마식 반원 아치교보다 적은 수의 기둥으로 만들 수 있으므로 배가 다니는 데 장애가 적고 홍수 때 물의 흐름이 더욱 원활하다.
다리의 도로에는 2층의 갤러리가 있는데, 위층의 갤러리는 근처에 있는 피티 궁, 우피치 궁 및 다른 궁전들과 연결되어 있으며 아래층 갤러리는 상가가 들어서도록 했다. 제2차 세계대전중 독일군이 철수하면서 아르노 강에서 유일하게 파괴하지 않고 남긴 다리이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아르노 강변의 꽃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와 단테의 관계는 이성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뭐? 나를 안내하겠다고? 그럴 필요 없어. 이 지역은 내 손바닥 들여다보듯 뻔히 알아. 내가 살던 떄와 크게 다르지 않군. 이건 두오모이고….. 흠, 그떄보다 겉모습이 화려해졌군. 그런데 웬 사람들이 이렇게도 많담? 가만 있자, 내가 이러고 있을 떄가 아니라 먼저 폰데 벡키오로 가봐야겠어.”
노인은 피렌체의 유서깊은 다리 폰테 벡키오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폰테 벡키오의 모습이 아르노 강위에 비친다. 다리 위에 선 노인은 신기한 듯 두리번거리다가 유유히 흘러가는 강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회상에 잠긴다. 그의 눈은 초점이 흐려지고…, 한 소년의 모습이 추억 속에 아련히 떠오른다. 그는 혼잣말로 중얼거린다.
“오, 나의 영원한 사랑 베아트리체여!”
만약 단테(Dante Alighieri:1265~1321)가 다시 살아난다면... 이처럼 폰테 벡키오로 달려가 베아트리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를지도 모르겠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아홉 살 때 이 다리에서 처음 만났다고 하는데, 어린 베아트리체가 단테의 마음을 평생 사로잡고 말았다.
단테는 베아트리체가 열여덟살이 되었을 때 다시 만나게 되지만, 그 후 그녀는 귀족 집안인 바르디 가문에 시집 갔다가 1290년 6월, 24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단테 또한 다른 여자와 결혼하여 자식도 두고 있었지만 베아트리체를 평생토록 잊지 못했다.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
단테의 여인 베아트리체.
유서 깊은 다리 폰테 베키오는 단순히 강의 양쪽을 연결하는 기능만이 아니라 ‘길의 연장’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다리 위에는 보석상들이 양 옆으로 늘어서 있고 결혼 반지를 고르는 젊은 연인들이 보인다. 그리고 다리 한 가운데에는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 출신의 대조각가이자 금세공 예술가로 이름을 떨쳤던... 벤베누토 첼리니의 흉상 이 마치 이 다리의 주인이라도 되는 듯 세워져 있다.
벤베누토 첼리니가 자신의 삶을 뒤돌아보며 쓴 자서전[나의 생애]에 의하면... “피렌체’라는 도시 이름은 기원전 1세기에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붙인 것이라고 한다.
로마군의 병영이 있던 아르노 강변에 꽃이 만발했기 때문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꽃피는 곳’ 이란 뜻이다. 플로렌티아(Florentia)라고 불렀다는 것이다. ‘피렌체’란 이름은 여기에서 유래한다. ‘플로렌티아’는 프랑스어와 영어로는 Florence로 표기되며 각각 ‘플로랑스’ ‘플로렌스’라고 발음한다.
피렌체는 율리우스 카이사르 시대 이후 천년 이상이 지난 다음 서서히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데, 1115년 이래로 도시 국가의 면모를 갖추고 세력을 확장하면서 권력의 문화의 절정을 위한 바탕을 구축해 갔다.
하지만 권력이 비대해지고 외부의 위협이 사라지면 내분이 생기기 쉬운 모양이다. 피렌체 내부는 교황을 지지하는 구엘피(Guelfi)파와 신성로마제국 황제를 지지하는 기벨리니(Ghibellini)파로 분열하였고, 기벨리니파가 패배한 이후에는 곧이어 구엘비파가 다시 백색파, 흑색파로 갈려 서로 싸웠다.
기벨리니파에 속했던 단테는 고향 피렌체로부터 추방되었다. 그 후 오랜 유랑생활 끝에 이탈리아 동북부 도시 라벤나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숨을 거두었다.
죽기 전 베아트리체를 잊지 못해 방대한 시를 쓰고 ‘희곡’(Cimmedia)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단테는 이 작품을 라틴어로 쓴 것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읽기 쉽게 피렌체 지방의 언어로 썼다. 이것을 계기로 피렌체 지방의 언어가 표준 이탈리아어로 서서히 굳어지는 계기가 되었다.
‘희곡’은 지옥편, 연옥편, 천국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단테는 그의 작품 속에서 고대 로마의 문인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1300년 4월 부활절 이전 목요일 밤부터 부활절 다음 목요일 자정까지 저승을 여행하게 되었는데... 그의 여정은 지옥에서 시작해 연옥을 거쳐 베아트리체가 있는 천국으로 향하는 것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인간의 이성을 상징하고 베아트리체와 단테의 관계는 예수 그리스도와 인류의 관계를 상징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그리하여 후세의 보카치오는 이 작품을 ‘신성하다’는 의미에서 [신곡](神曲, La Divina Commedia)이라고 불렀고 1555년 베네치아에서 처음으로 이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단테는 반대파의 정치가, 성직자, 또 악명 높은 범죄자들을 모조리 지옥편에 던져 넣었다. 그 중에는 쟌니 스킥키( Gianni Schicchi)라는 이름도 등장한다. 쟌니 스킥키는 남의 유산을 교묘하게 모두 가로챈 희대의 사기꾼이었다.
베키오 궁전 1298년에 착공하여 몇 번에 걸친 개수를 하여 16세기에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540년에 내부를 코시모 공작 1세가 개조했는데, 개조 작업은 바사리가 하였다.
일찍이 피렌체 광화국(토스카나 공화국)의 청사였던 건물로, 현재도 시청사로 사용되고 있다.
궁전 오른쪽에 있는 입구로 계단을 올라가면 대청으로 들어간다. 대청 양쪽 벽면은 바사리와 그 일파가 그린 메디치의 전투장면이 있다.
3층에는 기를란다요의 로마 영웅들의 프레스코화가 있고, 그 밖에 마키아벨리의 초상화, 프란체스코 1세의 방, 지구의 방 등 옛날 피렌체의 부와 힘을 느낄 수 있는 유물들이 많다.
피아짜 델라 시뇨리아(Piazza della Signoria)와 궁전
수세기 동안 피렌체의 정치·사회적 중심지였으며, 현재는 카페 테라스가 있는 휴게장소이다. 광장 부근 베키오 궁전에 있는 종루의 종은 시민들을 공공집회에 불러모으는 데 사용되었다.
광장에는 피렌체를 일으킨 코지모 데 메디치의 동상이 있다. 유명한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의 모조품과 메두사의 목을 벤 페르세우스의 청동상인등... 첼리니의 페르세우스..., 잠볼로냐의 사빈 여인의 강간... 등 르네상스 시대의 걸작 모조품들이 있다.
광장 중앙에는 한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수도승 사보나롤라의 처형지임을 알리는 화강암이 서 있다.
미켈란젤로의 동상 다비드의 모조품...
산타마리아 델피오레대 성당과 조토의 종루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S. Maria del Fiore) 바실리카(Basilica)
1296년 아르놀포 디 캄비오(Arnolfo di Cambio)에 의해 착공 되어, 1461년 완공되었다. 이는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Andrea del Verrocchio)의 횃불이 자리를 잡은 때였다.
엄숙하고 장엄한 내부 장식에는 기베르티(Ghiberti)의 화려한 창문과 가띠(Gaddi)의 모자이크 등 다양한 작품이 사용되었다. 파올로 우첼로(Paolo Uccello), 바자리(Vasari), 추카리(Zuccari)의 프레스코화가 브루넬레스키(Brunelleschi)의 거대한 돔을 장식하고 있다.
단테(Dante) 생가 단테 알리기에리(Dante Alighieri)의 생애를 표현해 주는 그림과 문서가 전시되어 있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바라보다.
아르노 강 남동쪽 언덕에 있는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피렌체 시가지를 내려다 본다. 품위 있는 도시의 풍경이 아르노 강을 따라 펼쳐진다. 아르노 강의 다리들은 도시의 풍경이 아르노 강을 따라 펼쳐진다.
아르노 강의 다리들은 도시 미관과 잘 어울린다. 멀리 보이는 폰테 벡키오는 문자 그대로 ‘오래된 다리’라는 뜻인데, 실제로 현재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 된 다리로 1345년에 세워졌다.
그 이전에는 바로 이 자리에 고대 로마 시대 때부터 다리들이 세워져 있었으니까 쟌니 스킥키나 단테가 살던 시대의 폰테 벡키오는 오늘날 우리가 보는 다리와는 모습이 다른 셈이다.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1565년 바자리(G. Vasari)설계에 의한다.
어두움이 서서히 깃드는 피렌체는 꽃이 피어나듯 하나 둘 불빛으로 밝혀진다. 붉게 물든 노을은 아르노 강 위에 녹을 듯 펼쳐지고 [오 사랑하는 아버지]의 감미로운 선율을 따라 흐른다.
Son By Four,,,A Puro Do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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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대박 너무 멋있어요~!! 음악도 좋구요
사진 잘보고 가요. 저도 가보고 싶네요 ~~~~~~~~~~`
정말 폭 빠져서 한참 사진보고 글 읽었어요 너무 멋진것같아요!
멋진 사진과 설명 잘보고 갑니다...멋져요
글도 좋지만 사진이 정말 좋네요.. 사진들이 모두 군더더기 없이 간결한 느낌! 이라 너무 너무 멋지게 감상했어요... 멋지십니다!!!!!
아 그리운 피렌체!!!! 그 분위기 다시 느껴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이 정말 멋지십니다. 사진 글 모두 완벽하시네요~ 감사합니다.
넘 멋있네요.~~~잘 봤습니다.
사진이 넘 깨끗하고 선명해요. 즐감하고 갑니다~~
영화 냉정과 열정사이에서 나오는 음악이 괜시리 생각나네요..그 영화를 보면서 피렌체라는 도시가 그 음악과 참 잘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요즘 개그콘서트에서 생활의 발견에서 나오는 음악이죠..아마..)
아~~~ 가죽 냄새가 진동하던 곳 ㅋㅋㅋ 멋진 사진 잘보고 갑니당...^^
아.....정말 너무너무 잘봤습니다.음악도 잘어울리고~설명도 너무 좋네요^^
전 여기 사진이 없어요 요기서 베터리가 나갈게 뭐람..... 다시 가볼수 있을까.사진 참 좋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