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 아이덴티티*
이우디
인생의 반은 즉흥시다
누가 아무렇게나 내 심장을 할퀼 때
계획하지 않은 소금 한 주먹
훌뿌리며, 쉴 틈 없이 몰아치는 연주의 방식으로
꽃잎 틔울 때 너를 알아채지 못하면서
빛을 체험한 적 없지만
가끔, 불안은 꿈의 모서리에 입술을 대기도 하지만
삐뚤빼뚤 밑줄 치며 나를 실행하는 음표들
목에 걸린 가시처럼 숨 언저리 꽃으로 오는 너를
누가 누군지 알 리 없는
어쩌면 생은 가상의 악보에 피는 꽃일지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말 오늘을 연기하지만
불치의 밑동 자르면 나는 나를 걸어 나갈까
폭 삭은 술 냄새, 분 냄새가 아랫목 접수하면 동지에도 매화는 피어
뼈만 남은 꽃잎은 걸레처럼 불쌍했다
타들어 가는 어머니 살 속에서 악을 쓰며 복제되던 모오리돌들
눈시울 붉은 사연들은 아름답고 서늘했던가
아버지 바람기 관을 써도 나는 물빛 곰팡이였을
흑장미를 상상하는 계절의 근육은 고철 덩어리
바람을 모르는 선풍기처럼
존재를 증명하기 위하여 본체를 분해하면 터미널은 일시 정지
불가능은 가능의 전조, 나는 영원한 나의 것이다
허방 짚은 허구의 꽃말처럼
* 미국 영화(M. 나이트 샤말란 감독)
ㅡ계간 《문학청춘》 2021년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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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디 / 1958년 서울 출생. 본명 이명숙. 2014년 영주일보 신춘문예 시조 당선, 2019년 《문학청춘》신인상 시 당선.
시조집 『썩을』 『강물에 입술 한 잔』 , 시집 『수식은 잊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