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중루의 오대산 비로봉 단풍산행기
해마다 10월이면 괜스레 마음이 바빠진다. 가을산들이 단풍으로 곱게 물들이고 사람들을 부르기 때문이다. 설악산을 시작으
로 물들인 단풍은 빠르게 남하하고, 단풍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발길도 이에 맞춰 부산히 따라간다. 올해도 지난 9월 말, 설
악산은 일찍 단풍소식을 전해왔다. 10월 초면 오대산도 벌써 단풍이 한창 핀다. 주말 산행을 즐기는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이
기 시작했다.
지난 주말 오대산 비로봉을 다녀왔다. 올가을 첫 단풍산행이다. 설악산과 저울질을 하다가 비로봉으로 갔다. 지난 해 10월16
일 진고개를 시작으로 동대산을 올라 두로봉을 돌아오며, 시간에 쫓겨 미쳐 못 돌아봤던 상왕봉과 비로봉의 단풍을 담을 요
령에서다. 또한 설악산은 코스별로 자주 가는 편이지만, 오대산은 일 년에 한 번씩도 찾지 못했던 탓도 있었다. 하지만 제철
을 맞은 오대산 단풍산행은 쉽게 가기가 힘든다. 오대천 선재길의 계풍(溪楓)을 탐하는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찾다보니 월정
사를 거쳐 상원사 입구까지 가는 길이 적체가 심하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예외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하며 11시에야 겨우 상
원사 주차장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뜬금없이 비바람이 몰아친다. 일본으로 상륙한 19호 태풍 하기비스가
세력이 워낙 강해, 그 영향으로 동풍이 불어와 백두대간 준령에 비를 뿌리고 있었다. 난감한 순간, 다행히 상원사 입구 매점
에서 우의와 우산을 구입할 수 있었다.
상원사(上院寺)를 그냥 지나쳐 곧바로 중대(中臺) 사자암(獅子庵)을 올랐다, 이곳은 오대산 적멸보궁의 수호암자다. 가파른
중대 비탈에 단층의 당우(堂宇)들이 마치 계단처럼 층층이 세워져 있는 곳, 뜻 깊은 건축가의 예술적인 건축술을 보는 것만
같다. 사자암의 목탁소리를 뒤로한 채 다시 연등 늘어선 길을 따라 오대산 적멸보궁(寂滅寶宮)으로 간다. 비로봉(毘盧峰)으
로 가는 길가에 있다. 일 만 문수보살이 상주하는 보궁이며, 신라 때 자장율사가 중국에서 얻은 석가모니 정골사리를 모셔다
봉안한 불교성지다. 높은 언덕 위의 보궁 뜨락은 수 많은 연등(燃燈)으로 덮혀있어 사진 한 장 얻기가 힘이 든다. 보궁을 뒤
로하고 한 능선 돌아서자 더디어 적멸보궁공원지킴터가 나온다. 지금까지의 길이 사찰길과 겸한 구간이라면, 이제부터가 비
로봉 산행길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지점이다. 고도가 높아지자 바람은 점점 더 세차게 분다. 산 위엔 날려온 구름과 자욱한
안개가 뿌옇고, 신산(辛酸)한 비바람에 추위까지 엄습해 온다. 가파른 오르막 길에 땀은 고사히고 손이 시려워 옷깃 여미기
조차 힘이 든다. 아침나절, 상원사로 들어오며 오대천 선재길에 핀 선홍빛 맑은 계풍을 보며 멋진 단풍을 기대했건만, 비로
봉의 단풍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먹구름 안개 속, 비에 젖어선지 고운 빛을 잃었다. 비로봉에 올랐다. 해발 1,565m인 오
대산(五臺山)의 주봉(主峰)이다. 서쪽은 호령봉(虎嶺峰)이, 북동쪽은 상왕봉(象王峰). 두로봉(頭老峰)이, 그리고 동쪽은 동
대산(東臺山)이 신선골을 마주한 채 능선으로 잇대고, 각각 천의 준봉(峻峰)으로 까마득 솟아있다. 그러나 비바람 무릅쓰고
오른 비로봉은 사위의 모든 그림들을 덮어버리고, 제자리에 서 있기조차 힘들게 한다. 상왕봉을 거쳐 북대사로 돌아 내리려
든 계획을 접고 애둘러 원점 회귀를 한다. 사자암으로 다시 내려서서 아침에 그냥 지나쳤던 상원사를 찾았다.
촬영, 2019, 10, 12.
- 상원사 주차장 앞 단풍
- 상원사 입구
- 상원사계곡 중대 사자암 들머리
- 중대 사자암 / 중대란 서대, 북대, 동대 등 오대산의 오대(五臺) 중의 한 곳을 이름.
- 사자암 종무소와 적멸보궁 들머리
- 적멸보궁
- 오대산 적멸보궁공원지킴터
- 비로봉으로 가는 길 풍경
- 오대산 비로봉
- 상원사 계풍
- 함께 산행한 유산풍류 회원 일향님과 그 부군
- 일향 부부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