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족(纏足)
兩足立傾倒-두 발로 서지만 그만 넘어진다
細弱脚難立-가늘고 약한 발로 서기 어렵네
一步一歎息-한걸음 떼고 한숨 한 번 쉬고
二步淚流满-두 걸음 떼고 눈물 가득 흐르네!
日年千年慣-하루 일 년이 천년의 습관이
悲哀淚現實-슬픈 눈물의 현실이 될 줄이야
농월(弄月)
길이 깨끗해 하이힐(high heele) 신을 필요가 없는데도 !
양계초(梁啓超)는 중국 근대의 사상가이자 교육가(敎育家)이며 중국의
봉건국가(封建國家)를 탈피하고 새 시대의 국가를 주장한 개혁가이다.
그의 스승 강유위(康有爲)의 입헌제(立憲制) 주장에 동조하면서 청(淸)나라의 군주제
혁파(革罷)를 주장하면서 베이컨, 데카르트, 루소, 괴테, 칸트등의 사상을 배경으로 한
신진사상가였다.
“고보자봉(故步自封)”이란 한자어가 있다.
“옛 걸음으로 스스로를 묶는다”는 뜻이다.
유래는
청(淸)나라 말기 양계초(梁啓超)가 “애국론(愛國論)”에서 한 말이다.
“청나라 부인네들이 오랫동안 전족(纏足)을 하다 보니 발을 묶은 것을 풀어주어도
오히려 걸어 다닐 수가 없다.
그래서 예전 걸음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얽어매고 산다.”
“고보자봉(故步自封)”이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전족(纏足)-중국 송(宋)나라 때부터 행해졌던 것으로 여자아이가 네댓 살이 되면
발에 긴 천을 감아서 엄지발가락만 남기고 모두 동여매어 자라지 못하게 하여
작은 발을 자랑하게 한 독특한 풍습
중국 전족(纏足)의 풍습은 당(唐618~907)나라 때는 없었다고 하며
송(宋960-1279)나라 때부터 청(淸1644-1911)나라 때까지 약 900~1000년에 있었던
풍속으로 추측된다.
긴 역사다.
어릴 때부터 여자 아이의 발을 꽁꽁 동여매 발의 성장을 막았다.
성장하면서 발등의 뼈가 휘어 기형이 되었다.
전족(纏足)은 근대 중국의 낙후성(落後性)을 나타내는 한 상징이었다.
청나라 말기에 여성을 압제에서 해방한다면서 전족(纏足)을 풀게 했다.
하지만 그녀들의 발은 이미 정상적인 걸음걸이가 불가능한 상태였다.
필자 어렸을 때부터 30세 청년 때까지 중국화교집에 자장면을 먹으려 가면
중국 화교 할머니가 전족(纏足)발로 뒤뚱뒤뚱 걷는 모습이 기억이 난다.
몇십 년전 까지도 있었다.
전족(纏足)에서 해방되기 위해 발을 꽁꽁 싸맨 천을 풀자 버팀목을 해줄 것이 없어
통증만 극심해졌고 걸음도 걸을 수가 없었다.
중국 여성들은 결국 제 손으로 발을 다시 동여매어(纏足) 전족의 속박으로
되돌아가고 말았다고 한다.
청나라 말기에 태어난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발을 묶지 않으므로 정상적인
발일 것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있다.
“한단학보(邯鄲學步)”의 고사다
“한단(邯鄲)에 걸음 유학을 갔다”는 뜻이다.
연(燕)나라 소년은 조(趙)나라 사나이들의 씩씩한 걸음걸이가 늘 부러웠다.
어깨를 쫙 펴고 앞가슴에 탄력을 넣어 튕기듯 걷는 모습이 참 멋있었다.
따라 하고 싶었다.
소년은 큰 용기를 내서 조(趙)나라의 서울 한단(邯鄲) 땅까지 걸음 유학을 왔다.
거기서는 다들 그렇게 걸었다.
못난 제 걸음이 더 바보 같아 보였다.
“참 잘 왔구나”싶었다.
그러나 막상 그 멋진 걸음걸이를 배우려 하니 예전 버릇이 자꾸 걸림돌이 되었다.
팔과 어깨와 다리가 따로 놀았다.
아무리 해도 어떻게 해도 따라 할 수가 없었다.
그는 실망해서 돌아가기로 했다.
그런데 더 큰 문제가 생겼다.
그동안 새로운 걸음걸이를 익히느라 예전 자기가 어떻게 걸었는지 가 도무지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결국 울면서 엉금엉금 기어 연나라로 돌아갔다.
그런데 중국 여성의 전족(纏足)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을까
중국 역사에는 측천무후 같은 열혈 여성도 있었지만
과거 중국은 대부분 여인들에게 잔혹하였다.
시집살이만 시키는 것이 아니고 여인들의 발을 묶는 전족(纏足)으로 여인들을
집안에 가두어 놓고 성(性) 노리개로 삼았다.
중국역사에 당(唐)나라 문화가 가장 활발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당시대 문화가 번창하고 송(宋)시대에 꽃을 피웠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도 이 시대를 가르킨 것이다.
당나라 시대 중국 남자들은 10cm 정도 길이의 여인 발을 가장 좋아했다고 한다.
전족(纏足)은 귀족이나 부잣집에서 시작해 일반가정에도 번졌는데 가난한 집에서는
여인들이 노동해야 하기 때문에 전족(纏足)을 하지 않았다.
차라리 가난한 집안에 태어난 여인들이 더 행복했을 것 같다.
전족(纏足)을 한 여인들은 발이 너무 작아 뛰는 것이 전혀 불가능했다.
일상적인 보행도 발끝으로 서서 궁둥이가 뒤로 나오게 하여 좌우를 흔들어야 겨우
걸을 수 있었다.
이 궁둥이를 좌우로 실룩거리며 걷는 여인의 모습이 중국 남성들에게
성적(性的) 자극(刺戟)을 주었다.
전족(纏足)을 한 여인들은 발끝으로 서서 뒤뚱뒤뚱 오리처럼 걸었기 때문에
이 몸짓을 통하여 항문 괄약근과 질의 근육이 강해졌다고 한다.
즉 전족(纏足)은 여성들의 성적 능력 향상을 위해 필요했던 것이다.
또한 전족을 하면 뛸 수가 없고 걸음걸이가 매우 느려 집 밖에 나가는 것조차도
힘들어 여인들이 도망 못 가게 하는 목적도 있었다.
조선에서 이 전족 문화를 받아들이지 않은 것은 너무나 다행한 것이었다.
조선에서도 전족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여인들이 버선을 작게 만들어 신었고
발이 작은 여인을 귀인이라 했다.
이 글을 읽는 여성들은 발 큰 것을 자랑으로 여길지 작을 것을 좋아할지---
발과 신발 이야기를 하게 되니 하이힐 글을 읽은 생각이 난다.
하이힐은 원래 패션 용품이 아니었다.
독일 사학자 에두아르트 푸크스가 쓴 “풍속의 역사”책이 있다.
여기에서 하이힐 신발은 분뇨(糞尿)를 피하기 위해 고안됐다고 설명했다.
하수 처리 시설이 없었던 당시 유럽에서는 분뇨를 각 가정에서 창밖으로 버려
길바닥에 분뇨가 깔려 있어 버린 분뇨를 밟지 않으려고 굽이 높게 만든 신발이었다.
이것이 하이힐(high heele)
똥을 밟고다녀도 괜찮은 높은 신발 !
그러다가 16세기 영국에서 수조(水槽물통)에 저장한 물을 내려 보내는 방식의
수세식 변기가 등장하면서 거리에 분뇨를 버리지 않게 되었고 하이힐도 필요
없게 되었지만
하이힐을 신는 습관을 버리지 못해 높이를 낮춰 지금 까지 신고 있다.
막말로 하이힐은 멋쟁이 구두가 아닌 똥구두다 !
뒷간의 화장실 역사는 한국도 “화장실이 불결한 나라”였다.
한국은 1988 서울 올림픽과 월드컵을 계기로 화장실 선진국으로 발돋움했다.
올림픽을 계기로 재래식 화장실을 수세식으로 대거 교체했다.
지금 한국 공중 화장실은 “화장실에서 잠자고 식사를 할 정도”로 청결(淸潔)하다.
전족(纏足)과 하이힐 !
우연히 신발을 통한 습관이야기다.
지금 대한민국은 4,5년 동안에 “지금까지 경험해 보지 못한 나라”로 변했다.
전에는 전라도 경상도로 나뉘었던 사회 분열 현상은 “양반”에 속한다.
이제는 한마디로 “내로남불”로 변했다.
“내로남불”은 세계사전에 등록된 말이니 필자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람은 이상하게
나쁜 본은 잘 따라도
좋은 본은 배우기 어렵다고 한다.
지난 5년 동안 문재인 정권이후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나쁜 본을 보여 주고 있는데
국민은 그것이 나쁜것인줄 모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윤리도덕 전반적으로 이상한 나라가 되었다.
문재인 집단 “이상한 전염병”이 나라를 이상하게 만들었다.
설사 내년에 장권이 바뀐다하여도
전족(纏足)으로 다시 돌아간 중국 여성처럼
똥을 밟던 하이힐을 벗지 못하고 지금까지 신는 것처럼
“내로남불”의 사회습관이 고쳐지기가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은 동물과 다르게 이상하게
좋은 본보다 나쁜 본을 잘 따른다.
Bad money drives out good money
악화(惡貨)는 양화(良貨)를 구축한다.
그레샴의 법칙이 머리를 점령하고 있다.
농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