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https://youtu.be/Wy2ibfEOmJY?si=3OwI-XN7EFQlor4z
이혼 증서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 유대 지경에 이르시니
2 큰 무리가 따르거늘 예수께서 거기서 그들의 병을 고치시더라
3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나아와 그를 시험하여 이르되 사람이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사람을 지으신 이가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시고
5 말씀하시기를 그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하신 것을 읽지 못하였느냐
6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니
7 여짜오되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
8 예수께서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
천국을 위한 독신
10 제자들이 이르되 만일 사람이 아내에게 이같이 할진대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나이다
11 예수께서 이르시되 사람마다 이 말을 받지 못하고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지니라
12 어머니의 태로부터 된 고자도 있고 사람이 만든 고자도 있고 천국을 위하여 스스로 된 고자도 있도다 이 말을 받을 만한 자는 받을지어다
(마태복음 19:1~12, 개역개정)
- 만달란트(24절) '예수님 시대에 1만 .
------------
오늘의 말씀요약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 묻자 예수님은 부부는 하나님이 짝지으신 한 몸이니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답하십니다. 또 모세의 이혼 증서를 말하는 이들에게 음행이 아닌
다른 이유로 이혼하고 재혼하면 간음이라 하십니다. 독신으로 지내는 것은 타고난 자라야 가능합니다.
------------------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 마태복음 19장 1~9절
1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끝마친 후에 갈릴리를 떠나 요단 강 건너편 유대 지방으로 가셨습니다.
2 많은 무리가 따라오자 예수께서는 거기서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
3 바리새파 사람들이 다가와 예수를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이유가 된다면 사람이 그의 아내를 버리는 것이 적법한 것입니까?”
4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는 ‘사람을 창조하신 분이 처음에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라는 말씀과
5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 둘이 한 몸이 될 것이다’라는 말씀을 읽어 보지 못했느냐?
6 그러므로 그들이 이제 둘이 아니라 하나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못한다.”
7 그들이 물었습니다. “그러면 모세는 왜 남자에게 이혼 증서를 주고 아내와 헤어지라고 명령했습니까?”
8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세가 이혼을 허락한 것은 너희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래는 그렇지 않았다.
9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음행한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하는 것이다.”
-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시험하며 이혼이 옳은지 묻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모세의 허용 규정보다 창세기의 창조 질서를 먼저 언급하십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지으시고 둘이 한 몸이 되게 하셨습니다. 결혼은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이 맺어 주신 언약입니다. 이혼은 인간의 완악함 때문에 허락된 것이지, 하나님의 본래 뜻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관계를 쉽게 끊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붙드는 책임 있는 사랑을 가르치십니다.
나는 관계를 하나님의 언약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감정의 문제로만 보고 있습니까?
내 마음의 완고함 때문에 깨어진 관계는 없습니까?
----------------
천국을 위한 독신 마태복음 19장 10~12절
10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만일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11 예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아들일 수는 없다. 오로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들만 받아들인다.
12 모태에서부터 고자로 태어난 사람도 있고 다른 사람이 고자로 만들어서 고자가 된 사람도 있고 또 하늘나라를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 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이라.”
- 제자들은 결혼이 그렇게 엄중하다면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이 말을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가 있다고 하십니다. 어떤 이는 태어날 때부터, 어떤 이는 사람으로 인해, 어떤 이는 하나님 나라를 위해 스스로 독신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헌신입니다. 삶의 형태보다 중심이 더 중요합니다. 주님은 각자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우선순위로 두는 결단을 기뻐하십니다.
나는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 나라를 최우선으로 두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관계와 사명을 어떻게 감당하고 있습니까?
----------------
☑️ 그리스도인의 삶
밀리카 1주 뒤 본회퍼는 베틀린 삼위일체교회에서 설교했다. 히틀러 가 집권하고 나서 본회퍼가 한 첫 설교였다. 그는 새로운 상 황을 있는 그대로 보았고, 자기가 본 것을 두려움 없이 선포 했다.
교회 안에는 제단이 하나뿐입니다. 그 제단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제단입니다. 그 제단 앞에서는 모든 피조물이 무릎을 꿇 어야 합니다. 이와 다른 것을 원하는 자는 제단에서 멀리 떨 어져 있어야 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집에서 우리와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본회퍼는 자기가 하는 일을 그런 식으로 보았다. 신학을 바탕 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수동적인 것이 아니라 능동적인 것 으로 다시 뜻매김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죄를 피하는 것과 아무 관계가 없으며, 신학적 견해와 원리와 규정과 교의 들을 그저 떠들어 대고 가르치고 믿는 것과도 아무 관계가 없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평생토록 활동을 통해 하나님의 부르심에 복종하며 사는 것과 관계가 있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마음 만 필요로 하는 것이 아니라 몸도 필요로 하는 삶이었다. 충 분히 인간답게 되는 것, 우리를 지으신 분에게 인간으로서 복 종하며 사는 것, 그것이야말로 하나님의 요구였다.
♧ 한 절 묵상
19장 4,6절 |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이혼문제를 가지고 질문을 합니다 당시 여자가 잘못을 하면 그 경중과 관계없이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하는 의견에 대하여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결혼이 하나님께서 직접 만드신 신령한 것임을 말씀하십니다. 결혼은 하나님의 주관하시는 섭리가 있음을 분명히 하셨습니다. 율법에 이혼 증서를 주면 허락하는 말이 있다고 하여도 음행한 연고 이외에는 이혼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결혼이라는 제도가 가지는 영적인 권위가 어느 정도인지를 말씀해 주십니다. 그만큼 결혼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행해지는 신령한 것임을 알려 주십니다. 새 생명을 얻고 새로운 피조물이 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을 깊이 새겨서 성숙한 가정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 오늘의 기도
국내
도박 경험 연령대가 낮아지기에 초등학생들에 대한 도박 예방 교육이 시급합니다. 다음 세대가 탐욕과 유혹에 빠지지 않고 진리 안에서 바르게 자라길 기도합시다.
국외
중국에서 종교 중국화 정책으로 정부에 등록되지 않은 가정교회가 탄압받고 있습니다. 교회를 해체하려는 악한 계획이 끊어지고 성도들이 믿음을 굳게 지키길 기도합시다.
오늘의 말씀 명언 마태복음 19장 1~12절
결혼은 상대를 행복하게 해 줄 완벽한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거룩하게 만들어 가는 여정이다. - 팀 켈러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약속이다. - C. S 루이스
하나님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보다 거룩하게 만들기 위해 결혼을 사용하신다. - G. 토마스
사랑은 자신을 부인하는 선택이다. - 엘리자베스 엘리엇
하나님이 맺으신 것을 사람이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 찰스 스펄전
결혼은 복음의 그림이다. - 존 파이퍼
마태복음 19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대한 질문을 받으시고, 율법의 허용 조항보다 하나님의 창조 질서를 먼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하시며, 결혼은 인간의 편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안에 세워진 거룩한 언약임을 강조하십니다. 이어 제자들이 결혼이 그렇게 어려운 것이라면 하지 않는 것이 낫겠다고 하자, 예수님은 각 사람에게 주어진 부르심이 다름을 설명하십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 여부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드리는가입니다. 신앙은 상황이 아니라 부르심에 대한 순종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태복음 19장 6절
오늘 말씀의 핵심은 ‘관계의 거룩함’입니다. 우리는 쉽게 시작하고 쉽게 포기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관계를 통해 우리를 빚어 가십니다. 결혼뿐 아니라 교회 공동체, 가정, 동역의 관계 모두 하나님이 허락하신 자리입니다. 때로는 어렵고 힘들지만,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보다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 신앙입니다. 관계를 지키는 인내는 믿음의 표현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게 맡기신 사람을 다시 한번 소중히 여기십시오. 그 자리가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자리입니다.
1)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 19:6)
예전에 ’좋은 세상 만들기‘라는 예능 프로그램에서 ‘스피드퀴즈’로 시골 어르신들의 솔직하고 재치 있는 입담을 보여 주던 코너가 있었는데, 한번은 ‘천생연분’이란 정답으로 어르신들이
문제를 내고 답한게 있었다.
할아버지, "어떤 남자와 여자가 만나서 잘먹고 잘사는거“. 할머니 왈; "웬수"
할아버지, "아니아니! 네글자로!!"
할머니 왈; "평.생.웬.수.".
결혼을 천생연분이라 말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서로의 다름 앞에서 완악함이 먼저 드러나곤 합니다. 처음 사랑으로 시작했던 마음은 어느새 익숙함 속에서 흐려지고, 이해보다 판단이 앞서며 관계가 거칠어지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혼의 허용을 말하기보다 “처음부터, 하나님이 짝지어주신”이라 말씀하십니다.
관계의 문제를 현재의 감정이 아니라 시작의 마음으로 돌아가 보게 하십니다. 저 또한 결혼 초반의 치열했던 시간 속에서 상대를 바꾸려 했던 완악함이 있었음을 돌아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며 깨닫게 된 것은, 서로가 달라서 불편한 존재가 아니라 서로의 부족함을 채우도록 붙여 주신 ‘돕는 배필’이라는 사실입니다. 싸움이 줄어든 것은 성격이 맞아서가 아니라,
상대를 고치려 하기보다 받아들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마음을 기억하는 일은 사랑을 지키는 가장 단순하지만 깊은 순종임을 배웁니다. 오늘도 관계를 판단하기보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은혜를 먼저 바라보며, 본래의 마음으로 돌아가기를 선택합니다.
2)
마태복음19:1-12절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아내를 버리는 문제를 가지고 왔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고자에서 무엇을 시험하고자 합입니까?
당시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의 견해차이를 이용한 것입니다
힐렐학파는 남편이 아내를 버리는 일에 대해 대단히 관용 했습니다
어떤 이유로든 이혼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음식이 맛이 없다고 해도
이혼이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샴마이학파는 반대입니다 성적인 부도덕 외에는 이혼을 허용해서는 안된다고 했습니다
당시 대중들은 힐렐학파를 따랐습니다 바리새인들은 힐렐학파와
샴마이학파의 다른 견해를 이용하여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어떤 대답을 하셔도 난처해질수 있습니다
예를들어 엄격한 샴마이 학파 편을 든다면 대중의 지지를 받고 있는 힐렐학파로 부터
비난을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답변을 하십니다
결론적으로 결혼은 인간의 단순한 계약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질서의 한 부분임을 말씀하셨습니다
4절은 창1:27절 하나님께서 남녀를 지으셨다를 인용하십니다
그리고 5절은 창2:24절 하나님이 남녀를 한몸으로 결합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누지 못한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결혼이 하나님의 뜻에서 얼마나 멀어졌는가를 알수가 있습니다 나중에 제자를 통해서도 확인이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바리새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습니다 반론을 제기합니다
내용은 신명기24:1-4절에 모세는 이혼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말에 예수님이 이유를 말씀합니다
8절에 모세가 그렇게 한 것은 너희 마음이 완악함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서 여자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결론적으로 음행한 연고 외에 무슨 이유로든 아내를 버리는 것은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
다시말해 음행한 연고외에 무슨 이유로든 아내를 버리는 것은 결혼을 만드신 하나님의 뜻을 파괴하는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입니다
10절에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결혼에 대한 말씀이 너무 엄격하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동시에 당시 사회가 그렇듯 이혼과 재혼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너무나 떨어져 살고 있음을 말합니다
그런의미에서 부모인 우리가 우리 자녀들에게 결혼에 대해 바르게 가르칠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오늘날도 본문 당시와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인들이 사는 세상이기 때문임을 알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결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것이 낫겠다는 말을 들으신
예수님께서 "독신"의 은사에 대해 말씀합니다
"독신"은 은사이며 독신의 은사가 하나님 나라를 위한 중요한 헌신이 될수 있다고 말씀하며
말씀을 마무리 하셨습니다
정리합니다 부모인 우리가 자녀들이 올바른 성경관을 가지고 결혼을 하며
행복하게 살도록 지도와 기도의 몫이 있음을 봅니다
3)
바리새파 사람들이 이혼에 대하여 묻자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은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고 대답하십니다.
이혼에 관해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이혼에 대한 질문을 합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즉 마땅한 이유가 된다면 아내를 버리는 것이 적법합니까?
이것은 모세가 아내에게 수치되는 일이 발견되면 이혼증서를 써주어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라고한 신명기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런데 '수치되는 일'에 대해 당시 힐렐 학파는 남편이 못마땅해 하는
모든 것이라고 한 반면, 샴마이 학파는 간음했을 때로 한정했습니다.
이런 배경 속에서 저들의 질문은 예수님의 답변이 두 학파로부터
맹비난을 받을 것이기 때문에 곤경에 빠뜨리려는 것입니다.
결혼에 관해
예수님은 이혼을 해석한 모세의 신명기보다 서로 한몸이 되라고 하신
창세기의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소개하심으로써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결혼은 하나님이 지으신 남녀가 그 부모를 떠나 둘이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부는 한 몸이 되어 사는 것이
최선이요 그렇기에 쉽게 깨질 수 있는 관계가 아닙니다. 결혼은 창조
섭리에 포함된 하나님의 명령이요 우리가 순종해야 될 뜻입니다.
독신에 관해
당시 남자들이 가지고 있던 생각과 예수님의 말씀이 차이가 많이 나는
것을 보고 제자들은 차라리 독신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고 말합니다.
이에 예수님은 독신은 타고 난 자라야 가능하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처럼 결혼하면서 사역할 수도 있고, 바울처럼 독신으로
사역할 수도 있는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아가면 됩니다.
사람들은 전통과 자신이 아는 지식으로 판단하려고 하지만 예수님은 약자를 보듬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기를 원하십니다.
사람을 대하거나 일을 만날 때 하나님을 의뢰하며 서로 사랑하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4)
(마 19:1~12 ❝주께서 세우신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내는 삶❞
❚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온전한 가정을 이루어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 어떠한 자세를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까?
➲ 세우신 가정을 지켜내야 합니다(1~6절).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떠나 유대 지역으로 가셨다는 것(1절)은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의 길로 가까이 다가가고 있다는 의미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라오자 그곳에서 그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2절). 몇몇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하여 ‘무엇이든지 이유만 있으면,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됩니까?’(3절,새번역)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의 속셈은 예수님에게서 명확한 해답을 듣기를 원한 것이 아니라, 어떤 해석을 하든지 예수님을 곤란하게 만드는 데 있었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하나님은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연합해 한 몸을 이루기를 원하시며, 하나님이 세우신 가정과 부부 관계를 사람의 욕심 때문에 나누거나 깨뜨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5~6절;창1:27,2:24).
오늘날 부부간의 관계가 깨지는 가정이 계속해서 증가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가정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며, 각각의 가정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계획들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이혼은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말 2:16)입니다.
설령 이혼이 사회적 통념처럼 여겨지는 분위기 속에서 그리스도인들의 가정만큼은 결코 그것을 따르지 않아야 하며, 남편과 아내가 한 몸이라는 사실을 늘 기억하고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이루어가야 합니다. 가정이 무너지면 교회도 온전할 수 없습니다. 가정이 깨지면서 생겨나는 많은 사회적 문제 또한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세우신 믿음의 가정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지켜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완악한 마음을 돌이켜야 합니다(7~9절).
그들은 또 물었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 주고 아내를 버리라고 명령하였습니까?’(7절). 이에 대해 예수님은 ‘모세는 너희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에 아내를 버리는 것을 허락하여 준 것이지,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8절,새번역)라고 말씀하십니다. 이혼은 분명 하나님의 뜻이 아닌데, 단 한 가지 예외 사항은 음행을 행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음행한 까닭이 아닌데도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간음하던 현장에서 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끌고 와서 예수님을 시험하고자 했을 때, 예수님은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라 치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에 찔림을 받은 사람들이 모두 떠났고, 예수님은 그 여인에게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으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요 8:11)고 말씀하셨습니다. 명백히 간음을 행한 여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녀를 용서하시고 회복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사람들의 완악함과 이기적인 생각들 때문에 온전한 연합을 이루어야 유지되는 가정 안에 위기가 찾아옵니다. 서로 간에 비록 서운하게 한 것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서운한 것 그리고 잘못한 것만 기억한다면 건강한 가정을 이룰 수 없습니다. 남편은 예수님처럼 목숨을 다해 아내를 사랑하고 책임지며, 아내는 주님께 하듯 남편에게 순종하면 가정은 천국과 같은 행복이 깃들게 될 것입니다. 완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서로 이해하고, 덮어주며 그리고 용서와 사랑의 나눔을 통해 주님께서 세우신 믿음의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 신실한 사역을 감당해야 합니다(10~12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이 예수님께 ‘남편과 아내 사이가 그러하다면 차라리 장가 들지 않는 것이 좋겠습니다’(10절)라고 말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나 다 이 말을 받아들이지는 못한다. 다만 타고난 사람들만이 받아들인다...’(11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결혼하지 않는 것이 유익하다’는 경우는 오직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사람에게만 가능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독신은 고자로 태어났거나, 다른 사람에 의해 고자가 되었거나, 하나님 나라를 위해 고자가 된 사람에게만 허용된다는 것(12절)입니다.
독신으로 금욕 생활을 하는 일은 억지로 강요하거나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가정을 갖지 않고 하나님의 일에 온전히 헌신 하는 일은 아름답고, 대단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것을 따라야 할 규범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응답하는 것이며,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전적으로 헌신하는 삶을 하나님은 더욱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더욱더 잘 감당하기 위해서라도 나의 가정이 든든히 서야 합니다. 가정이 화목하지 못하고 어려움 가운데 있으면 하나님을 잘 섬기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가정에게 부여해 주신 사명을 신실하게 잘 감당해 나가므로 천국과 같은 가정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릴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믿음의 가정을 거룩하게 지켜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세우신 믿음의 가정이 깨어지지 않도록 가정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날마다 기억하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서로 양보하며 진심으로 사랑함으로 천국과 같은 가정에서 천국의 기쁨을 누리는 가정이 될 수 있기를(마 19:1~12절)...
5)
오늘의 말씀해설
가정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신 신적 기관입니다. 예수님은 이혼 문제로 시험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이고, 이는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기에 누구도 이혼해서는 안 된다고 단언하십니다.
또한 모세가 이혼 증서를 주라고 한 것은 완악한 남편에게서 아내를 법적으로 보호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으며, 독신은 특별한 사역을 위한 은사의 영역임을 밝히십니다.
이혼은 타락의 결과이자 하나님의 창조 질서에 반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만드신 가정을
그분 뜻대로 거룩하게 지켜 나가기 위해 성령의 도우심을 끊임없이 의지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바리새인들이 이혼에 대해 예수님께 질문한 저의는 무엇인가요?
- 적용 질문: 타락하고 완악한 이 시대에, 가정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일 수 있나요?
바리새인들이 시험하려고 물었습니다 "어떤 이유가 있으면 그 아내를 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 모세가 말했습니다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주고 내보낼 것이요"(신24:1)
그런데 문제는 수치되는 일이 뭐냐는 것입니다 간음은 아니라고 본 것이, 간음은 이혼 사유가 아니라 사형 사유라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떤 율법학자는 도둑질 같은 중한 범죄라고 해석했고,
또 어떤 율법학자는 음식을 상하게 했다든지 하는 사소한 실수라도 남편이 수치심을 느꼈다면 이혼사유가 된다고 해석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이쪽 편을 들면, 인애가 없다며 맹공을 퍼붓고, 저쪽 편을 들어도 도덕적으로 해이하다고 맹공을 퍼부을 작정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전혀 예상치 못한 답변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4~6)
이혼은 아예 불가하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당황하며 따졌습니다 "그러면 어찌하여 모세는 이혼 증서를 주어서 버리라 명하였나이까"(마19:7) 이에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마음의 완악함 때문에 아내 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외에 아내를 버리고 다른 데 장가 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19:8~9)
남편이 정욕을 따라 조강지처를 버리고 다른 아내를 취하는 당시의 악한 문화를 판단하시고, 그런 남편들을 간음죄라고 정죄하신 것입니다 물론 현대적인 상황과는 괴리가 큽니다 그러나 말씀의 정신은 너무나 분명합니다
거짓을 행하여 심령을 악에게 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맞이한 아내에게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5)
학대를 행하여 심령을 악에게 팔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혼하는 것과 옷으로 학대를 가리는 자를 미워하노라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거짓을 행하지 말지니라"(말2:16)
주는 심령을 감찰하십니다 "여호와는 심령을 감찰하시느니라"(잠16:2)
그러므로 우리가 주의 말씀을 따름으로 주의 심령을 닮아 새롭게 되기 원합니다 "오직 너희의 심령이 새롭게 되어 새 사람을 입으라"(엡4:23~24)
우리의 심령이 주의 선한 길만 따라 평강 얻기 원합니다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우리의 심령을 물 댄 동산 같게 하실 줄 믿습니다 "그 심령은 물 댄 동산 같겠고 다시는 근심이 없으리로다"(렘31:12)
우리의 심령을 강하게 소망 있게 하실 줄 믿습니다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렘31:25)
6)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
결혼은 하나님이 맺으신 신성한 언약이며, 쉽게 깨뜨리는 것이 아니므로 서로를 사랑하고 지키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이혼은 인간의 완악함에서 비롯된 사회적 허용일 뿐, 하나님의 본래 뜻은 아닙니다.
독신도 하나님이 주신 은사이며, 자신의 부르심에 따라 감사하며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진정한 신앙입니다.
삶에 적용하는 방법
결혼 생활에서 서로를 존중하고 이해하며,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고 화해와 회복을 위해 노력하십시오.
인간적인 한계와 약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삶을 선택하는 지혜를 구하십시오.
독신의 길을 걷는 사람들을 존중하며, 각자의 부르심에 충실하도록 서로 격려하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주신 부르심을 깨닫고, 결혼이든 독신이든 감사하는 마음으로 신앙 생활에 임하십시오.
하나님, 제 삶의 관계들을 가볍게 여기지 않게 하소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인연을 소중히 붙들고,
책임과 사랑으로 감당하게 하옵소서.
제 완고한 마음을 부드럽게 하시고,
쉽게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주옵소서.
어떤 자리에서든 하나님 나라를 우선으로 선택하는 용기를 허락하시고,
제 삶이 주님의 뜻 안에 굳게 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관계가 익숙해질수록 처음 주셨던 마음을 잊지 않게 하옵소서.
저의 완악함과 고집을 내려놓고,
서로를 돕는 배필로 붙여 주신 주님의 뜻을 기억하게 하소서.
판단보다 이해를, 다툼보다 감사의 마음을 선택하게 하시고,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관계를 소중히 지키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저희에게 결혼과 독신이라는 귀한 부르심을 허락하심에 감사드립니다.
결혼한 자들은 사랑과 인내로 가정을 지켜가게 하시고, 어려움 속에서도 주님을 바라보며 화해와 회복을 이루게 하옵소서.
독신의 길을 걷는 이들에게는 은혜와 힘을 더하시어 하나님 뜻에 충실함으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옵소서.
저희 모두가 하나님께서 정하신 길을 깨닫고 감사하며 순종하는 신실한 자녀가 되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