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하는 '루터'
교황 레오 10세는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테첼을 파견한다. 그는 지옥 불에서 고통받는 사람의 그림을 보여주며, "오늘 밤, 주님의 대변자이신 교황께서 너희에게 선물을 주셨다. 바로 지옥 불에서 너희를 구할 특별 면죄부"라고 말하며 가난한 서민들에게 면죄부 판매를 강요한다. 이에 루터는 로마 가톨릭의 면죄부 판매를 비판하며 '95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게시한다. 이 장면은 종교개혁의 시작을 보여주는 장면으로 역사적 사건을 철저한 고증을 통해 사실적으로 묘사해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2. 주님은 성유물과 면죄부가 아닌 우리 곁에 있다고 설교하는 루터!
교황은 '95개조 반박문'을 게시한 루터를 아우크스부르크로 소환한다. 하지만 루터는 겁내거나 물러서지 않고, 자신의 신도들에게 성유물이나 면죄부가 아닌 우리 곁에 주님이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말씀을 따라 오직 믿음으로 살고 서로 사랑하고 섬기면서 산다면 우리는 사람의 심판을 겁낼 필요가 없습니다"라고 말하며 사람들을 감화시킨다. 특히, 그와 대척점에 서서 그를 감시하던 프레데릭의 개인비서 '스팔라틴'마저 그의 설교에 감동한 모습은 관객들에게도 영화의 깊은 감동을 전달할 예정이다.
#3. 보름스 제국회의 재판에 선 루터!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는 보름스 제국회의의 재판장에서 그의 저서에 쓰인 내용을 철회할 것을 강요받는다. 이에 대해 루터는 "성경의 증거와 분명한 이성에 의한 확신에 제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양심을 거스르는 일은 비겁한 것이고, 옳지도 않습니다. 전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또 철회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에 서 있습니다. 어떻게 할 방법이 없습니다.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 아멘"이라고 말하며 철회를 거부한다. 이 장면은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자신의 신념을 지키는 그의 감동적인 모습으로 관객들의 기대를 불러일으키며 명장면으로 화자되고 있다.
21세기 한국 사회와 현대 기독교 교인들에게 진정한 믿음에 대한 성찰로 감동을 줄 대서사시 <루터>는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일을 약 2주 앞둔 18일 개봉하며 관객들과 만날 예정이다.
'95개조 반박문'에 녹아있는 루터의 분노
교회연합신문 2017/09/21 15:55
1500년 넘게 유럽 전역을 지배했던 가톨릭의 심장에 개혁의 깃발이 꽂은 마르틴 루터. 그가 일으킨 종교개혁은 단순히 종교를 넘어 사회, 경제, 문화, 인권, 교육 전반에 걸쳐 이 세상을 뒤집었다.
종교가 곧 법이자, 삶의 전부였던 시대. 그런 종교를 무기로 삼아 자신의 탐욕을 채우던 이들에게 던져진 루터의 반박문은 새로운 시대를 여는 서막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새로운 시대의 가장 큰 변화는 바로 종교의 중심에 들어 온 평범한 민중이었다. 사제들만의 특권으로 여겨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류 전체로 퍼져나갔으며, 무엇보다 누구나 성경을 읽고 기도할 수 있는 권리를 갖게 됐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올해 한국교회 역시 학술행사와 기념식, 기념메달 발간 등 다양한 방식으로 종교개혁을 기념하고 있다. 수많은 목회자들과 신학자들이 중세 가톨릭의 타락과 루터의 신학을 재조명하며, 한국교회의 나아갈 바를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마르틴 루터의 신학과 종교개혁을 접하며, 한 가지 사실을 더 기억해야 할 것이다. 바로 민중을 사랑하고 아꼈던, 그들을 보호하고자 했던 인간 루터이다.
마르틴 루터의 분노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한 장의 대자보가 붙는다. 바로 마르틴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반발해 쓴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시발점이자, 우리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교황청의 면죄부 판매에 대해서는 이미 익히 알려진 역사적 사건으로 로마에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을 위해 사람들에게 ‘영혼 구원’을 미끼로 돈을 받고 판매한 문서다. 세상 그 어떤 죄를 지어도, 심지어 죽은 자신의 조상들마저도 돈을 내고 면죄부만 산다면, 그 모든 죄는 사해지며, 영혼은 구원받을 수 있다는 완전한 방어권이다.
그리고 이 면죄부는 발매와 동시에 유럽 전역을 휩쓸 듯이 엄청난 판매고를 올린다. 면죄부에 따른 구원의 진위에 대한 의심은 결코 있을 수 없었다. 신의 사제들이 행하는 일을 의심한다는 것은 신을 의심하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당시 교황청으로 판권을 얻은 알브레히트 대주교는 독일 전역에 면죄부 판매인을 보내, 돈을 거둬들이는데 열을 올린다. 그 판매인은 바로 도미니크 수도회 수사인 요한 테첼, 그는 가는 곳마다 민중들을 향해 “성모 마리아를 강간해도 면죄부만 있으면 깨끗이 용서받을 수 있다” “헌금함에 넣은 동전이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조상들이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다”고 말하는 등 엄청난 상술을 선보이며, 승승장구한 인물이다.
하지만 단 한 곳, 마르틴 루터가 신학교 교수로 일하고 있던 비텐베르크만은 들어오지 못했다. 엘베 강이 가로지르는 비텐베르크는 당시 면죄부 판매인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었던 탓이다. 그러던 추운 어느 겨울 날 요한 테첼은 비텐베르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인근 마을에 자리를 펴고 면죄부를 판매하고 이 소식은 삽시간에 비텐베르크 전역으로 퍼져 나간다.
그리고 그 날 밤 비텐베르크 민중들은 면죄부를 사고자 감시를 피해 몰래 얼어붙은 엘베 강을 건넌다. 하지만 제대로 얼지 않았던 얼음판은 곳곳이 깨져 나갔고, 수백명의 민중들이 얼어붙은 강에 갇혀 죽고 만다.
이 소식을 들은 루터는 엄청난 슬픔과 함께 극한 분노를 토해낸다. 시민들을 지켜내지 못한 스스로를 원망하며, 그 길로 성 교회로 가 면죄부 판매를 맹비난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인다. 라틴어로 쓰여진 이 ‘95개조 반박문’은 단 2주만에 각종 언어로 번역되어 독일 전역으로 퍼지게 된다.
루터, 만인을 말하다
오늘날 종교개혁을 있게 한 ‘95개조 반박문’의 실제적 발단은 면죄부에 눈 먼 민중의 떼죽음을 목도한 루터의 분노였다. 수많은 신학적 이유와 중세 가톨릭의 타락이 있었지만, 루터를 직접 행동으로 옮기게 만든 결정적 매개는 바로 민중들이었다.
위에서 언급했던 당시 종교는 삶의 모든 것, 아니 그 이상이었다. 하지만 종교 지도자들, 사제들은 이를 민중들에게 직접 허락하지 않았다. 신의 대리를 맡은 자신들을 거쳐야만 가능했다. 이들이 이러한 종교 관습을 일반화 시킬 수 있었던 가장 큰 배경은 한정된 교육이었다. 당시 최고의 교육이었던 ‘신학’은 위에서 언급했듯 오직 사제들에게만 허락됐으며, 일반인은 결코 접할 수가 없었다. 성경은 감히 읽는 것조차 허락되지도 않았지만, 배우기 어려운 라틴어로 쓰인 성경을 읽는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기도 했다.
이는 자연스레 민중의 우민화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런 우매한 민중들은 다루기 상당히 편했다. 신의 이름만 앞세운다면, 그 어떤 일도 용납 됐으며, 심지어 죽음조차도 마음대로 다룰 수 있었다.
면죄부 판매는 바로 민중의 우민화를 이용한 대표적인 사건이다. 구원을 빌미로 한 저급한 협박이었지만, 우매한 민중들이 이를 의심할 리 만무했다.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은 성스러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해 순수한 민중들을 죽음으로 몰아간 탐욕에 대한 분노 가득한 일갈이었다. 그 후 루터는 성직과 세속직에 차이를 두지 않고, 모든 기독교인들은 영적 직분을 갖고 있다는 만인제사장설을 외친다. 그리고 이는 모두를 위한, 만인을 위한 교육으로 이어진다.
한국교회 제2의 종교개혁 핵심은 ‘이웃’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고 있는 오늘날의 한국교회는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 과연 무엇을 배울 것인가? 루터를 포함해 얀 후스, 존 위클리프 등 종교개혁의 선진들이 목숨까지 내걸고 성경을 번역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진 바탕에는 스스로의 권위를 너무도 높여버린 까닭이 크다. 모두에 평등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며 겸손히 사회와 국민을 섬겨야 할 교회가 그들과 맞서려고 하고 있다. 여기에 교회의 각 직분은 새로운 형태의 계급이 되어, 교회 조직을 철저히 상하 관계로 계급화 하고 있다.
교회는 국민들과 맞서야 할 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픔을 대변해야 한다. 그들의 목소리를 들으며, 하나님의 위로를 전해야 한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제2의 종교개혁을 말하며, 교회 회복을 부르짖지만, 무엇보다 국민을 위한, 소외된 이웃을 위한 교회로 먼저 거듭남이 먼저 선행되어야 한다. 종교개혁의 수많은 주제 중 가장 근본적인 것은 우리 모두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교회는 그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500년 전 루터가 민중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듯 오늘날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소외되고, 고통받는 이웃과 반드시 함께해야 한다.
또한 교회 내 계급을 타파하고, 성도들에 대한 수준 높은 교육을 통해 성도들 개개인의 자율성을 높여야 한다. 더 이상 목회자 말에 무조건 ‘아멘’만을 외치는 성도가 좋은 성도라고 가르칠 게 아니라, 지식과 경험에 바탕한 현명한 판단으로 교회를 올바르게 이끌어 갈 수 있는 역량있는 성도를 길러내야 한다.
‘95개조 반박문’을 있게 한 루터의 분노는 그 내용만큼이나 오늘날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루터의 95 개조 반박문 읽어 보셨나요?"
한국교인 종교개혁 본질 이해 부족...95개조 내용 잘 몰라
▲마틴 루터. |
루터의 95 개조 반박문 읽어본 교인 드물다
해마다 종교 개혁 주일이 되면 루터의 종교 개혁, 면죄부, 그리고 루터의 95개조 반박문 등에 대하여 듣는다. 또 학교에서는 세계사 시간에 종교 개혁을 배운다. 그렇지만 교회를 오래 다닌 사람이라도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 실제로 어떤 내용이 나오는지 읽어 본 사람은 아주 드물다.
글쓴이도 95 개조 내용이 궁금했지만, 마땅히 자료가 없어서 보지 못하다가 1990년대 중반에야 자료를 구하여 읽어 보았다. 다시 말하여 우리는 늘 다른 사람이 말해주는 종교개혁만 알았지, 그 때 루터가 실제로 무엇이라고 말했는지는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은 것이다.
이것이 우리 한국 교회의 한계가 아닐지. 이에 이번 종교개혁 기념일에 맞추어 95개조에 있는 내용을 짤막하게 소개해 보겠다.
루터의 종교 개혁, 1517년 10월 31일
루터가 살던 그 때 로마 카톨릭 교회의 교황 레오 10세(1513-1521)는 성 베드로 성당 (요즘도 성탄절에 미사 중계 때 텔레비젼에서 보는) 공사비 때문에 면죄부를 팔았다.
▲마틴 루터가 번역한 독일어 성경. |
면죄부를 파는 일행이 비텐베르크(Wittenberg)에 왔을 때 이를 본 마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로마 카톨릭 교회의 잘못을 95개 조항으로 작성하여 1517년 10월 31일에 비텐베르크 교회의 벽에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으며, 금년은 486 주년이 된다.
글쓴이는 학생 시절 종교 개혁을 배울 때 95개조라고 하여, 95개조 하나하나가 모두 시정을 요구하는 것인 줄 알았다. 보기를 들어, 1. 교황은 면죄부를 팔지 말아라 2. 교황을 면죄부가 죄를 사할 수 없음을 인정하라 3. ... 인정하라 4. ... 중지하라 5.... 시행하라 등과 같이.
그런데 역사시간이나 교회에서 얘기하는 것을 보면 루터의 주장이 95개는 고사하고 그저 몇 가지로 요약되기에 늘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 뒤 1990년대 중반에 실제 95개조 본문을 볼 때까지 거의 30년 동안 늘 그렇게 잘못 생각하고 있었으니, 이 얼마나 답답하고 한심한 노릇인가. 95개조 본문을 보는 순간, 아! 하면서 95개조 하나하나가 요구 사항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루터의 종교 개혁 핵심
루터의 종교 개혁은 다음 네 가지로 잘 요약할 수 있다.
- 오직 믿음 (Sola Fide)
- 오직 성경 (Sola Scriptura)
- 오직 은혜 (Sola Gratia)
- 오직 하나님의 영광 (Sola Deo Gloria)
루터의 95개조 (Die 95 Thesen, Ninety-five Theses) 소개
▲95 개조 반박문을 비텐베르크 교회 벽에 |
그 당시의 상황과 신학에 대한 지식이 없이는 루터의 95개조를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없다. 따라서 여기서는 비교적 쉽게 읽을 수있는 부분 중심으로 살펴보겠다.
먼저 95개조의 맨 처음인 제1조와 맨 마지막인 제95조가 무엇인지 궁금할 것이므로 이를 먼저 살펴보자.
1. 우리들의 주님이시며 선생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 4:17)고 말씀하실 때 그는 신자들의 전 생애가 참회(깊이 뉘우치는 것)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95. 이같이 하여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위안에 의해서보다 오히려 많은 고난을 통하여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데 더욱 깊은 신뢰를 가지게 하라 (행 14:22).
딱 와 닿는 게 없는 듯하다. 전문가가 아니고는 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으므로 너무 고민하지 말자. 이제 95개조 반박문 가운데 비교적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을 아래에 일부 뽑아서 소개한다.
5.교황은 그 직권 혹은 교회법의 위세로 부과된 형벌 이외의 어떤 벌이든지 용서할 힘이나 뜻을 가지지 못한다.
6.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였다는 것을 선언 혹은 시인하는 이외에 어떤 죄든지 사할 힘이 없다.
22.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 대해서 어떤 형벌도 사할 수 없다. 이 형벌은 교회법에 의하여 현세에서 받아야만 하는 것이다.
▲95 개조 반박문. |
27.연보궤 안에 던진 돈이 딸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은 연옥에서 벗어 나온다고 말하는 것은 인간의 학설을 설교하는 것이다.
30.누구든지 자기 참회의 진실성에 대해서도 확신을 못 가지는데 하물며 남의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를 어떻게 밝힐 수 있을 것인가.
31.면죄증을 진심으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말하자면 그러한 사람은 거의 없는 것이다.
32.면죄증서에 의하여 자신의 구원이 확실하다고 스스로 믿는 사람은 그것을 가르치는 사람들과 함께 영원히 저주를 받을 것이다.
36.어떠한 그리스도인이고 진심으로 자기 죄에 대하여 뉘우치고 회개하는 사람은 면죄증서 없이도 형벌과 죄책에서 완전한 사함을 받는다.
43.가난한 사람을 도와주고 필요한 사람에게 꾸어 주는 것이 면죄증을 사는 것보다도 선한 일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5.가난한 사람을 보고도 본 체 만 체 지나버리고(요 3:17 참조) 면죄를 위해서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진노를 사는 것이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6.풍부한 재산의 여유를 가지지 못한 자라면 자기 가족을 위하여 필요한 것을 저축할 의무가 있으며(딤전 5:8) 결코 면죄증 때문에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47.면죄증을 사는 것은(사고 안 사는 것은) 자유로운 일이요 결코 그렇게 하라고 강요되어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52.면죄증서로 구원받을 것을 신뢰하는 것은 헛된 것이다. 비록 판매위탁자가 아니 교황 자신이 그 증서에 대해서 자기 영혼을 걸고 보증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68.그렇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에 비하면 그것(면죄증)은 참으로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
86.또한 오늘날 제일 부자의 재산보다도 더 많은 재산을 가진 교황이 가난한 신자의 돈으로 행하는 대신 차라리 자기의 돈으로 성 베드로 교회당쯤은 세울 수 있지 않는가?
90.일반 세인이 열거한 반론에 대하여 떳떳한 이유를 들어 해결하지 않고 다만 권력으로만 억압하는 것은 교회와 교황을 원수의 조롱거리가 되게 만드는 일이요 또 그리스도인을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다.
위에서 95개조 가운데 비교적 쉬운 부분을 살펴보았는데, 다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조금도 걱정할 필요 없다. 그냥 '아 이렇게 생겼구나' 하고 읽어 보기만 해도 한국 기독교인 가운데 루터의 95개조를 아주 잘 아는 사람이 되기 때문이다.
- 한글로 된 95 개조 출처: 말틴 루터, 지 원용, 컨콜디아사, 1987.
gimgs0@dreamwiz.com">김경석
1.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회개하라.”(마태복음 4장 17절)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믿는 자의 삶 전체가 회개하는 생활로 이루어지길 바라셨다.
2. 이 말씀은 고백 성사, 즉 고해와 속죄가 사제1)에 의해 집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 없다.
3. 하지만 이 말씀은 단지 마음으로만 회개하라는 뜻은 아니다. 그처럼 진심으로 행한 회개를 통해 육욕에 대한 금욕적 생활 태도가 몸에 잘 배어나지 않는다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4. 사람이 자신 스스로를 미워하는 한, 죄에 대한 대가, 즉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진정한 참회는 우리가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날까지 계속될 것이다.
5. 교황은 자신의 권한이나 교회법에서 정한 규정에 의해 부과된 벌 말고는 어떤 벌도 면제하려고 해서도 안 될 뿐만 아니라 그렇게 할 수도 없다.
6. 교황은 하나님께서 죄를 용서하였다는 사실을 선언하거나 가르치는 경우나, 자신이 재판을 진행하도록 명확하게 정해진 사건에서 죄를 면제하는 경우 말고는 어떤 죄든지 면제할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도 그의 사면권이 무시되었을 때 그 죄는 확실히 그대로 남는다.
7. 하나님께서는 매사에 겸손한 자세를 취하면서 자신의 대리자인 사제에게 순종할 줄 모르는 자에게는 결코 죄를 용서하시지 않는다.
8. 고해에 관한 교회법은 살아 있는 자에게만 적용될 따름이고, 임종을 앞둔 자에게는 본래의 교회법에 따라 아무것도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9. 따라서 교황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께서는 교황이 자신의 교령으로 임종을 앞둔 경우와 궁핍한 경우를 항상 예외로 취급하는 한 우리들에게 자비를 베푸신다.
10. 임종을 앞둔 자에게 속죄를 구실로 삼아 교회법상의 대가를 요구하는 사제들의 행위는 무지하고도 사악한 짓이다.
11. 교회법상의 대가를 속죄의 대가로 바꾸는 가라지의 씨앗들은 분명히 주교2)들이 잠든 사이에 뿌려졌다.(마태복음 13장 25절)
12. 일찍이 교회법상의 대가는 진실한 회개의 증거로서 사면 이후가 아니라 사면 이전에 부과되었다.
13. 임종을 앞둔 자는 죽음에 의해 모든 벌로부터 자유로워지며, 교회법과 관련해서 이미 죽은 자와 다를 바 없는 상태이며, 교회법의 구속을 받지 않아도 되는 권리를 갖고 있다.
14. 임종을 앞둔 자의 입장에서는 불완전한 신앙심이나 사랑이 필연적으로 커다란 두려움을 초래하기 마련이다. 사랑이 작을수록 두려움은 한층 더 커진다.
15. 다른 것은 차치하고 이 두려움이나 공포만으로도 속죄의 대가를 충분히 치르고도 남는 셈이다. 그 상태가 절망적인 공포에 매우 가깝기 때문이다.
16. 지옥3)과 연옥4)과 천국5)사이의 차이점은 각각 절망감에 휩싸인 상태, 두려움에 떠는 상태, 구원에 대한 자신감으로 가득 차 있는 상태 사이의 차이와 같다.
17.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경우에 공포는 필연적으로 줄어들고 사랑은 커진다.
18. 게다가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공덕을 벗어난 상태, 즉 사랑이 성장할 수 없는 상태에 있다는 사실은 성서에 의해서도 입증되어 있지 않다.
19. 또한 우리가 절대적으로 확신하고 있더라도, 연옥에 있는 영혼들이 최소한 일부라도 자신들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다는 사실이 입증되어 있지 않다.
20. 따라서 교황이 ‘모든 벌의 완전한 사면’이라는 말을 사용하는 경우에, 그 말의 의미는 사실상 ‘모든 벌’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자신에 의해 부과된 벌만을 뜻하는 것이다.
21. 그런 까닭에 교황의 면죄부에 의해 인간이 모든 벌로부터 용서받고 구원받는다고 말하는 면죄부 설교자들은 오류에 빠져 있다.
22. 사실상 교황은 연옥에 있는 영혼에게 어떤 벌도 면제해 주지 못한다. 교회법에 따라 현생에서 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
23. 만일 모든 벌에 대한 사면이 누군가에게 허용된다면, 그것은 틀림없이 가장 완전한 사람, 즉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주어질 것이다.
24. 이런 까닭에 사람들 대다수는 벌로부터 해방된다면서 분별없이 허풍을 떨어 대는 그런 약속에 의해 필연적으로 사기를 당한다.
25. 교황이 일반적으로 연옥에 대해 행사하는 권한은 모든 주교나 사제가 자신이 관할하고 있는 주교 관구나 교구 내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행사하는 권한에 해당한다.
26. 교황은 천국으로 통하는 열쇠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연옥에 있는 영혼들에게 사죄를 허용하는 일을 아주 잘 해낸다.
27. 헌금 상자에 던져 넣은 돈이 짤랑 소리를 내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 벗어난다는 설교는 단지 인간이 지어 낸 이야기일 따름이다.
28. 돈이 헌금 상자 안에서 딸랑 소리를 낼 때 탐욕과 허욕이 틀림없이 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교회가 기도를 올리는 경우에 그 결과는 오직 하나님만이 알고 계신다.
29. 성 세베리누스6)와 성 파스칼리스 1세7)에 관한 전설처럼 예외적인 경우들이 있기 때문에, 연옥에 있는 모든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는지 그렇지 않은지는 아무도 모른다.
두 가지 선교 방식돌기둥을 사이로 개신교와 가톨릭의 서로 다른 선교 태도를 대비시키고 있는 그림. 왼쪽 개신교 모임에서는 사람마다 성서를 들고 목사와 신도가 모두 함께 읽고 있다. 이는 부녀자들에게 큰 도움이 되었는데, 이를 통해 글을 배울 수 있기 때문이었다. 반면 오른쪽 가톨릭 성당에서는 신자들이 신부의 강론을 듣기만 한다. 신부도 성서에 근거해 설교했지만 대부분이 도덕적 윤리에 관한 것이었고, 또한 하느님에 대한 신심을 화려한 제단 장식으로 드러냈다.
30. 아무도 자신의 회개가 진실한지 확신하지 못하고, 더구나 모든 죄가 완전한 사면을 받았는지에 대해 전혀 확신하지 못한다.
31. 진실로 회개하는 사람이 드문 것처럼 면죄부를 실제로 사는 사람도 드물다. 사실상 그런 사람은 거의 없다.
32. 면죄부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자신이 확실하게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그런 내용을 가르치는 사람과 함께 영원히 저주받을 것이다.
33. 교황에 의한 사면을 가리켜서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더없이 귀중한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특히 경계해야 한다.
34. 왜냐하면 면죄부의 은총은 단지 인간이 만든 성찬식을 통해 사죄를 받는 벌하고만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35. 금전으로 연옥에서 영혼을 구원하려고 하거나 고해 특권을 사려고 하는 사람은 회개할 필요가 없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비기독교적인 교리를 설교하는 자이다.
36. 진심으로 회개하는 기독교도는 누구나 면죄부가 없더라도 죄와 벌에서 완전히 면제받을 수 있는 권리를 갖고 있다.
37. 진정한 기독교도는 죽었든 살아 있든 관계 없이 누구나 면죄부 없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모든 은총을 받는다.
38.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이 주는 면죄와 축복을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내가 이미 언급했듯이(제6항 참조), 그것은 신성한 사면에 대한 선언이기 때문이다.
39. 면죄부의 혜택과 참다운 회개의 필요성을 동시에 사람들에게 권장하는 행위는 가장 박식한 신학자의 입장에서도 매우 어려운 일이다.
40. 진정으로 회개하는 기독교도는 자신의 죄에 대한 벌을 달게 받는다. 하지만 면죄부의 혜택으로 인해 벌에 대한 의식이 해이해져서 벌을 받지 않으려고 한다. 설사 그렇지 않다고 해도 최소한 그런 빌미를 제공한다.
41. 교황의 면죄부가 사랑을 실천하는 다른 선행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사람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신중하게 설교하지 않으면 안 된다.
42. 교황은 면죄부를 사는 행위가 자선 사업에 필적할 만한 일로 여기지고 있지 않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3. 가난한 자를 도와주고 필요한 자에게 빌려 주는 행위가 면죄부를 사는 행위보다 훨씬 선한 일이라는 점을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4. 사랑은 그것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성장하고, 인간은 그것에 의해 훨씬 선량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면죄부를 통해 선량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벌로부터 훨씬 자유로워질 따름이다.
45. 도움을 필요로 하는 자를 보고도 못 본 체 지나가 버리면서도 면죄부를 사려고 돈을 바치는 사람은, 교황의 면죄부를 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노여움을 사는 것이라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6. 재산을 필요 이상으로 소유하지 못한 자라면 자신의 가족을 위해 넉넉하게 저축해야 하고, 결코 면죄부 때문에 재산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7. 면죄부를 사는 행위는 자신의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선택할 사안이지 결코 강요받아서는 안 된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8. 면죄부를 교부할 때 교황은 돈보다 경건한 기도를 훨씬 절실하게 필요로 한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49. 교황의 면죄부는 사람들이 그것에 신뢰를 두지 않는 경우에만 유익하지만, 그것으로 인해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상실한다면 매우 해롭다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50. 만일 교황이 면죄부 설교자들의 강매 행위를 안다면, 그는 자신의 양들의 가죽과 살과 뼈로써 성 베드로 대성당이 바실리카 양식으로 세워지기보다는 차라리 그것이 불태워져서 재로 변해 버리는 편을 선택할 것이라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51. 면죄부를 파는 행상인들의 감언이설에 속아 넘어가 돈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에게, 교황은 바실리카 양식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팔아서라도 자신의 돈으로 갚아 주고 싶어 할 것이라고 기독교도에게 가르쳐야 한다.
52. 설사 면죄부 판매대리인이나, 심지어 교황이 직접 나서서 자신의 영혼을 걸고 그것을 보증한다고 하더라도, 면죄부에 의해 구원받을 것이라고 헛되이 믿어서는 안 된다.
53. 면죄부에 대해 설교를 진행하려고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설교를 교회에서 아예 금지시킨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황의 적들에 해당된다.
54. 설교할 때 하나님의 말씀보다 면죄부에 같은 시간이나 훨씬 긴 시간을 할애하는 경우, 그러한 행위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모욕 행위이다.
55. 매우 사소한 가치를 지닌 면죄부가 한 차례의 종소리나 행렬이나 의식으로써 축복을 받을 경우,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닌 복음8)은 백 차례의 종소리이나 행렬이나 의식으로써 찬양되어야 한다는 것이 바로 교황의 심정임에 틀림없다.
56. 교황이 면죄부를 배부하는 교회의 진짜 보배는 기독교도들 사이에서 충분히 거론되지도 알려져 있지도 않다.
57. 면죄부가 현세의 보배가 아니라는 사실은 매우 분명하다. 왜냐하면 수많은 면죄부 판매상들이 그것을 원활하게 공급하지 않고 오로지 모아 두려고만 하기 때문이다.
58. 또한 그것은 그리스도나 성인들의 공덕도 아니다. 왜냐하면 교황이 아니더라도 성인들은 항상 정신적인 사람에게는 은총을 주고 육체적인 사람에게는 십자가와 죽음과 지옥을 주기 때문이다.
59. 성 로렌스9)는 교회에 다니는 가난한 자들이 교회의 보배라고 말했지만,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에 맞는 어법에 따라 그렇게 표현했다.
60. 그리스도의 공덕으로 주어진 교회의 열쇠가 바로 그 보배라고 말해도 논란의 여지가 없다.
61. 왜냐하면 벌을 면제하고 자신에게 맡겨진 사건을 처리할 수 있을 만큼 교황에게는 충분한 권한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기 때문이다.
62. 교회의 진짜 보배는 하나님의 영광과 은총으로 가득 찬 가장 거룩한 복음이다.
63. 하지만 이 보배는 물론 사람들로부터 매우 따돌림을 당한다. 그 이유는 먼저 된 자를 나중에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마태복음 20장 16절)
64. 다른 한편, 면죄부라는 보배는 물론 사람들로부터 매우 사랑을 받는다. 그 이유는 나중에 된 자를 먼저 된 자로 만들기 때문이다.
65. 따라서 복음이라는 보배는 일찍이 재산을 소유한 사람들을 낚았던 그물이다.
66. 면죄부라는 보배는 오늘날 사람들이 소유한 재산을 낚는 그물이다.
67. 면죄부 설교자들이 가장 커다란 은총이라고 갈채를 보내는 면죄부는 이익을 늘리는 경우에만 실제로 그렇게 받아들여진다.
68. 하지만 하나님의 은총과 십자가의 경건함에 비하면 면죄부는 참으로 가장 사소한 은총에 불과하다.
69. 주교와 사제에게는 대단한 존경심을 지니고서 교황의 면죄부 판매 대리인을 인정해야 할 의무가 있다.
70. 하지만 주교와 사제는 그 대리인이 교황의 위임 사항 대신에 자신들의 꿈을 설교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뜨고 귀를 바짝 기울이면서 한층 더 경계해야 한다.
71. 교황의 면죄부에 관한 진실에 맞지 않게 말하는 자는 파문당하고 저주받게 해야 한다.
72. 하지만 면죄부 설교자들의 욕망과 방종에 대항하는 자는 축복을 받게 해야 한다.
73. 면죄부의 판매를 막무가내로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 교황이 정당하게 탄핵하는 경우처럼,
74. 면죄부를 구실 삼아 거룩한 사랑과 진리를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 교황은 한층 더 엄하게 탄핵할 것이다.
75. 불가능한 일을 해내고 하나님의 어머니를 능욕한 인간까지도 교황의 면죄부가 용서할 수 있을 정도로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미친 짓이다.
76. 역으로, 교황의 면죄부는 죄가 있는 한 아무리 미약한 죄라 할지라도 제거할 수 없다고 우리는 주장한다.
77. 설사 성 베드로가 교황이라고 해도 그는 훨씬 커다란 은총을 줄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 베드로나 교황에 대한 모독이다.
78. 역으로, 현재의 교황이나 다른 어떤 교황이라도 자신의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훨씬 커다란 은총, 즉 고린도 전서10) 12장 28절에 기록된 바처럼 복음, 영적 능력, 치유 능력 등을 갖고 있다고 우리들은 주장한다.
79. 교황복의 소매에 장식된 십자가 상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똑같은 가치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모독이다.
80. 그런 이야기가 사람들 사이에 유포되는 현실을 허용하고 있는 주교와 교구 사제와 신학자는 이에 대해 해명해야 할 것이다.
81. 이처럼 난폭한 면죄부 설교 때문에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비방이나 평신도의 신랄한 의구심으로부터 교황에 대한 존경심을 지켜 내기는 곤란하다.
82. 그 실례는 다음과 같다. ‘만일 교황이 교회 건설에 소요되는 파렴치한 금전을 모으기 위해 수많은 영혼을 구원한다면, 어찌하여 거룩한 사랑과 그 곳에 있는 영혼들의 절박한 필요를 위해 연옥을 비우지 않는가? 영혼을 구원하는 것은 매우 올바른 일이지만, 금전을 모으는 것은 매우 하찮은 일이다.’
83. 또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을 위한 기도는 부당한 일인데, 죽은 자의 장례 미사나 기념 미사가 계속되는 이유는 무엇이고, 교황은 그런 목적으로 조성된 기부금을 돌려 주지 않고 기부금 모집을 취소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84. 또한, ‘돈 때문에 경건치 않은 자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경건한 영혼을 연옥으로부터 구원하도록 허락하면서, 오히려 경건하고 사랑하는 영혼의 필요 때문에 순수한 사랑을 연옥에서 구해 내지 않는 것이 하나님과 교황의 새로운 경건함이란 말인가?’
85. 또한, ‘회개에 관한 교회법은 사실상 폐지되어 사문화된 이후로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는데, 이제 면죄부를 배부함으로써 마치 그 교회법이 여전히 살아 움직이면서 효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처럼 상황을 조성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86. 또한, ‘오늘날 최고의 갑부인 크라수스의 재산보다도 훨씬 많은 재산을 소유한 교황이 가난한 신자들의 돈 대신에 자신의 돈을 들여서 바실리카 양식의 성 베드로 대성당을 짓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87. 또한, ‘완전한 회개를 통해 사면과 신의 은총을 충분히 누릴 권리를 이미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 교황은 무엇을 사면하거나 교부한단 말인가?’
88. 또한, ‘교황이 이러한 사면과 신의 은총을 모든 신자들에게 여태껏 하루에 한 번만 주다가 앞으로는 하루에도 백 번씩 준다고 하면 교회는 훨씬 커다란 신의 은총을 받지 않겠는가?’
89. 또한, ‘교황이 면죄부에 의해 돈보다도 영혼의 구원을 추구한다면, 일찍이 교부되었던 똑같은 효력을 지닌 면죄부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이유가 무엇인가?’
90. 평신도들이 제기한 매우 신랄한 반론에 대해 강제로 억압하면서 타당한 이유를 들어 해결해 나가지 않는다면, 교회와 교황은 적들의 조롱거리가 될 뿐만 아니라, 기독교도를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91. 따라서 면죄부에 대한 설교가 교황의 마음과 의도대로 진행되었다면, 이 모든 사안들은 수월하게 해결되었을 것이다. 사실상 그러한 사안들은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92. 그렇다면 평안하지도 않은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평안, 평안!”이라고 부르짖는 예언자들은 모두 다 물러가라.(예레미야서11) 6장 14절)
93. 십자가도 없는데,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향해 “십자가, 십자가”라고 부르짖는 예언자들 모두에게 신의 은총이 함께하길 빈다!
94. 기독교도는 벌이나 죽음이나 지옥을 통해 자신들의 선두가 되신 그리스도를 부지런히 따르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95. 따라서 잘못된 평안을 지키는 것보다 오히려 수많은 시련을 겪음으로써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확신하라.(사도행전 14장 22절)
종교 개혁가들의 초상루터와 칼뱅 외에도 16세기 이전 인물인 영국의 위클리프와 보헤미아의 후스도 있다. 이들은 모두 신앙에서 성서를 강조한 것 외에는 다른 공통점이 없었는데, 하나같이 자신의 교리만이 옳다고 확신했다.
[네이버 지식백과]마르틴 루터의 95개조 의견서 [Martin Luther’s Ninety-five Theses] - 루터가 없었다면 종교 개혁은 늦어졌을지도 모른다! (세계를 바꾼 연설과 선언, 2006. 1. 15., 서해문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