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사조' (不死鳥) 는 전설 속의 새입니다.
아라비아 사막에 살고 있다는 전설의 새.
5백년에 한 번, 죽을 때가 되면스스로 향나무를
쌓아올려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그 재 속에서 다시 살아나
사막의 하늘 위로 날아오른다는 강인한 새.
이 이야기에서부터, 벌써 제가 누구를 이야기할 것인지
눈치채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로 <불사조>라는 닉네임이 가장 잘 어울리는
한국 프로야구사의 거대한 산, 박철순 투수입니다.
때로는 기쁨으로 때로는 눈물로 엉킨 채
네가 밟고 간 베이스를 넘고 넘어서
우리에게 주어진 희망으로
승리를 위해 외로이 달리는 오직 너 하나만을 위해...
가사를 보시고, 모니터를 들여다보며 소리없이
싱긋, 웃어 주실 것만 같습니다.
이 노래는 OB 팬들이시라면 더욱 마음에 와 닿으실
'에이스를 위하여' 의 가사입니다.
저는 OB의 팬은 아니지만, 늘 이 노래를 생각하면
박철순 투수가 생각납니다.
1982년, 프로야구 원년의 우승팀은
투타의 완벽한 조화라는 것이 무엇인지를
실제로 보여주었던 OB베어스가 차지했습니다.
어느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우승의 주역은
바로 투수 박철순이었지요.
연대 졸업 후 메이저리그 산하 마이너리그팀에서
선수로 뛰다가 1982년 프로야구 출범과 함께
OB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고 합니다.
당시 프로야구 최고의 계약금과
연봉이라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었답니다.
박철순은 상대 타자들에 대한 철저한 분석과
미국 야구에서 체득한 프로정신을 원동력으로
22연승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작성하면서,
다승, 승률, 방어율 부문 3관왕까지 휩쓸며
그해 MVP 타이틀을 거머쥐었지요.
박철순의 시즌 22연승은, 같은 해 MBC 청룡 소속
백인천의 4할 타율, 이듬해 삼미 수퍼스타즈
(흐.. 이 팀을 기억하시는 사람이 이제 얼마나 될까요)
소속의 장명부가 세웠던 시즌 30승과 함께 한국
프로야구사에 있어 기념비적인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국 프로야구 역사상 한 시즌 20승 이상을 올린
투수는 선동렬(해태), 최동원(롯데), 정민태(현대)를
비롯해서 열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그런데 박철순은, 단순한 20승이 아니라 22번의
<연승> 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는 것이니,
정말 대단한 기록이지요. 그 가운데 13승은
완투승이었다는 것 또한, 엄청난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완투를 직접 해 본 선배가 말한 적이 있습니다.
7회가 넘어가기 시작하면 투수들의
고충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고요.
마일드한 미소의 준수한 외모, 깔끔한 경기매너,
종종 <학>에 비유되곤 하는 유연하고도 다이나믹한
투구동작. 투수로 가져야 할 거의 모든 것을 가졌던
박철순은 그 무렵 야구를 좋아하던 모든 이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저는 국민학교 6년을 줄곧
대구에서 다녔는데요, 지방색이 무척이나 강했던
대구에서도 박철순을 싫어하는 친구들을
그리 만나기 힘들었을 정도였으니 말입니다.
박철순은 1982년 시즌에서의 무리한 등판과, 이듬해
대만 전지훈련에서 얻은 허리부상의 후유증으로
허리 디스크라는 소견을 얻게 됩니다.
혼자 힘으로는 걸을 수조차 없게 된 그는 치료를 위해
미국으로 건너가게 되고, 독한 약물 치료의 후유증으로
머리카락이 거의 다 빠진 모습으로 귀국하게 됩니다.
일상 생활은 가능하지만, 선수생활은 불가능하다는
의사의 판정을 받고도 박철순은 계속 훈련을 계속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다시 마운드에 올랐어요.
사람들은 모두들 믿기 어려운 일이라고 이야기하면서도,
그의 의지에 박수를 보냈습니다.
박철순의 재기전 경기 자료화면을 본 기억이 있습니다.
상대팀은 MBC 청룡이었습니다. 현재 LG트윈스의 전신이지요.
이 경기에서 정말이지 영화보다도 더한 사고가 터지게 됩니다.
MBC 청룡과의 시즌 마지막 경기였는데요.
1회말이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상대 타자의
이름을 까먹지도 않고 있습니다.
송영운이라는 타자가 맞은편에 서 있었습니다.
박철순은 힘차게 공을 던졌고, 타자는 그 공을
매섭게 맞받아쳤습니다.
하지만 그 공은 어이없게도 마운드에 서 있던
박철순의 허리를 그대로 강타하고 맙니다.
박철순은 그 자리에서 그대로 쓰러졌고,
의식을 잃고 들것에 실려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재기전에서 다시 엄청난 부상을 입고 의식을 잃어
마운드를 내려간 그를 두고, 이제 선수생명이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고 당시 언론은 말했습니다.
하지만 박철순의 이야기는 그 때부터 시작됩니다.
끝없는 부상, 재기, 재발로 이어지는 악순환 속에서도
그는 야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CF촬영 중 아킬레스건에 부상을 입고서도
그는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몇 게임에 등판하여 좋은 피칭을 보여주고서는,
연달아 찾아오는 부상 후유증 때문에
다시 치료에 들어가는 지리한 자신과의 싸움 속에서도
그는 끝까지 야구를 버리지 않았습니다.
1986년에 그는 롯데를 상대로 부상 이후 최초의 완봉승을 거둡니다.
그건 다른 투수들이 뽑아내는 완봉승과는 한 차원 다른 의미의
승리였습니다. 말 그대로 <인간승리>의 순간이었습니다.
잠실 구장에서는 박철순을 위해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 를 틀어주었습니다.
그는 끝내 눈물을 쏟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꺼질 듯한 선수 생명을 초인적인 의지로 끈질기게 이어갔던 선수,
그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노래였을테니 말입니다.
투수생활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은 몸과,
나이에 따른 체력저하로 그는 예전처럼 자주 경기에
나설 수는 없었습니다. 오랜 간병에 지쳐버린 첫사랑
아내와도 헤어지는 아픔을 겪고, 원년 멤버였던 동료들의 은퇴 속에서
그는 30대 초반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투수로서의 황금기를 그렇게 날려 보내면서, 선수로서 최고의 순간을
누려야 할 시기를 마운드에서 보낼 수 없었던 투수.
잃어버린 자신을 되찾기 위해 공을 던졌다는 투수.
그러나 그는 마운드에 올라설 때마다 무척 인상적인
투구를 보여 주었습니다.
당시 최강이었던 해태를 상대로 6타자 연속 탈삼진이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고, 선동렬과의 맞대결에서 완투승을 거두기도 했었거든요.
그가 경기를 마치고 마운드에서 내려올 때면 언제나
잠실구장에는 '마이 웨이' 가 울려퍼졌습니다.
OB베어스는 원년 우승 후, 계속 중하위권에 머물렀습니다.
1994년에는 최 하위 팀이라는 치욕을 겪기도 했었는데요,
김인식 감독을 새로이 영입하면서 이듬해인 1995년에는 완전히
다른 팀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1982년의 재현인 듯, 투타에 걸쳐 무서운 집중력을 보여주면서
페넌트 레이스 내내 1위를 질주했고 마침내 기적처럼
한국시리즈 진출을 이루어내게 됩니다.
13년만의 일이었습니다.
1995년, 그해 한국시리즈에서 맞닥뜨린 상대는 LG트윈스를 꺾고
역시 기적처럼(!) 올라온 롯데자이언츠였습니다.
두 팀의 대결은 정말 막상막하였습니다.
서울 잠실과 부산 사직을 오가며 각각 2승 2패를 기록한 후 잠실에서
다시 5차전을 가지게 되었지요.
중간고사도 끝났겠다 뭐 하나 마음에 거리낄 게 없었던 저는, 친구와 함께
잠실로 향했습니다.
저녁에 시작하는 5차전 티켓은 오후 2시에 도착했는데도
구할 수가 없었습니다. 3만원을 주고, 암표를 샀습니다.
그날 선발은 권명철과 주형광이었습니다.
심정수(!)의 홈런 및 롯데 내야의 어이없는 실책으로
(병살 찬스를 멀거니 지나쳐 버리고 말더라구요) OB는 초반부터 4점을 뽑아내며
앞서 나갔고, 뒤이어 롯데가 마해영을 선두로 연속 안타로 응수하며 4점을 뽑아냅니다.
그해 한국시리즈의 양상을 <대포와 기관총의 대결>이라고 표현했던 모 해설가가 있었는데요.
그 비유에 걸맞는 경기를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치열한 타격전의 양상을 띄며 경기는 계속 진행되었습니다.
6회에 들어, 롯데가 한 점을 더 보태며 역전에 성공하면서 완전히
분위기를 롯데 쪽으로 이끌게 됩니다.
저는 OB 관중석에 앉아 있었는데요,
거짓말 조금 보태서 거의 초상집(^^;) 분위기였습니다.
권명철 갈아치우라는 거친 목소리가 들렸고, 응원도 시들했지요.
그 순간,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르게 갑자기 함성이 터져나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섰고, 저도 덩달아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불펜에서 등번호 21번의 박철순이 걸어나오고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5차전의 구원투수로 불사조 박철순이 마운드에 오르고 있었습니다.
한국시리즈 사상 최고령, 마흔 살의 투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순간이었습니다.
13년만에 다시 선 한국시리즈의 마운드. 그도 감회가 남달랐을 것입니다.
박철순의 등장만으로 OB응원석의 분위기는 극적으로 뒤집혔습니다.
언제부터인가 박철순의 투구에는 기립응원을 보내는 것이 관례처럼
자리잡고 있었는데요. 그날 역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모든 OB팬들은 일제히 기립해서 불사조 박철순에게
아낌없는 함성과 박수를 보냈습니다.
건너편 롯데 응원석에서도 박철순을 향해 박수를 보내고 있었습니다.
타석에는 자이언츠의 포수 강성우가 서 있었는데요.
사실 그리 뛰어난 선수는 아니었는데, 이 선수는
그해 포스트시즌에서 이상스럽게(^^) 성적이 좋았습니다.
LG와의 플레이오프전에서도 이상훈을 무너뜨리는 데 견인차 역할을 했었던 선수였습니다.
마흔 살의 노장인 박철순이 힘으로 맞설 상대가 아니었지요.
하지만 박철순은 피하지 않고 시속 140키로가 넘는 직구를 초구로 선택합니다.
강성우는 지겹도록(정말 지겨웠습니다) 파울볼로 응수하며 맞섰지만,
끝내 박철순은 그에게서 삼진을 뺏아냅니다.
제가 앉아 있던 OB관중석은 완전히 흥분의 도가니였습니다.
다음 타자 역시 박철순은 정면승부를 걸었고, 또 하나의 삼진을 뺏아내게 됩니다.
연속 탈삼진이었고, 1사 1, 2루라는 위기를 그렇게 박철순은 멋있게 막아 주었습니다.
관중석에 있던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닌 듯 했습니다. :) 모두들 펄쩍펄쩍 뛰며 환호했고,
서로 껴안고 소리지르고 난리도 아니었답니다. 울음을 터뜨리는 팬도 있었습니다.
넥타이를 매고 양복을 점잖게 입은 아저씨들이 눈물을 흘리며 서로 마주보고
웃던 모습도 기억납니다. 저 역시 제 곁에 있던 친구가 남자친구였더라면
서로 꼭 안고(^^;) 감동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하고 아쉬워했을 정도로,
멋지고도 가슴 벅찬 순간이었습니다.
박철순은 그날 경기에서 2이닝 무실점으로 훌륭한 피칭을 보여줍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는 노장의 역투에 아낌없는 응원을 보냈습니다.
그가 던지는 공 한 개 한 개마다 응원을 실어 주었고, 마운드를 내려오는 그에게
모두 일어서서 박수를 보냈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한국시리즈 마운드에 다시 서 보는 것이 마지막 소원이라고
입버릇처럼 말하던 그 투수는, 팬들의 박수를 받으며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그날 경기는 연장전까지 가면서 끝내 롯데가 7대 6으로 승리하긴 했습니다만,
승패와는 관계 없이 1995년 10월 20일 한국시리즈 5차전 경기는 제게 있어 가장
감동적인 경기 중의 하나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도 박철순이 마운드에
오르던 순간의 함성을, 강성우와 김민재를 상대로 삼진을
잡아내던 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뜁니다.
1995년 10월 말, 늦가을 오후.
저는 서울역에서 친구와 함께 그해의 마지막 게임,
한국시리즈 7차전을 보고 있었습니다. OB가 2점 앞서고 있었습니다.
온갖 사투리들이 섞이고, 흥분한 아저씨들과 지나가다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섞여서 함께 TV를 들여다보던 사람들. 공 하나하나에,
타자의 일거수 일투족에 소리를 지르고 욕설을 퍼붓고(^^) 나름대로
해설을 늘어놓던 사람들. 얼굴도 모르는 그 낯선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친근함을 느끼며,
친구에게 제안을 했습니다. OB가 13년만에 다시 우승을 한다면
우리, 어디 가서든 술 한잔 하자고. 내가 사겠다고.
<너, 술 못하잖아> 친구는 놀라면서도 선선히 그 제의에 반갑게 응했습니다.
그날, OB는 13년만에 다시 우승을 했고,
그날 오후 서울역은 함성의 도가니였습니다.
저는 작은 바에서, 친구와 독한 데킬라를 마셨습니다.
처음으로 데킬라를 마셔 본 날이었습니다.
그 바 구석에 있던 TV의 스포츠뉴스에서는 OB의 우승소식보다도,
OB 우승 이후 감격에 빠진 박철순의 모습을 더욱 크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박철순은 박용민 전 OB단장을 끌어안고 울고 있었습니다.
마흔 살의 남자가,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고 있었습니다.
82년 원년 우승 당시 포효하던 패기 만만하던 젊은 투수의 모습과
13년 후 주름진 얼굴로 엉엉 울고 있는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기 시작하면서,
마흔 살의 남자가 흘리는 그 눈물의 의미가 제게도 전해지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눈물에서 그가 쏟아내고 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알아버린 것만 같은 기분에,
손등에 레몬즙을 짜서 바르고, 소금을 살짝 치고, 손등을 힘차게 핥은 후에,
데킬라를 그대로 쭉 들이키고,
살짝 젖은 눈으로 친구를 바라보며 웃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