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여..
대전 5기 이원우입니다.
지난 5주가 금방 지나갔네여,,군생활 하면서 찬호 박 형님의 메이져리그경기를 5일마다
기다리고 지금 노예생활 하면서 월급날 눈빠지라 기다린거 빼면
일주일을 기다리긴 정말 간만입니다.
개인적으로 뒷풀이를 한번도 참석 못해 아쉽지만 살면서 기회가 되면 감사함의 마음을 꼭 전하고 싶습니다.
어찌어찌 살면서 우여곡졸 없고 사연없는 사람 없겠냐만 돌이켜 보면 딱 한번 내인생에
주인공이었던 순간이 있었습니다.
때는 고 2,,,
교내 웅변대회를 나가기 위해 원고 20매를 빡빡하게 손수 써서 시합을 했드랬져,,
하지만 누가 들어도 막강한 실력을 가진 녀석한테 지고 직접 공들여 쓴 원고도 양보했습니다.
담당 교사도 대외 대회에서 입상하면 플러스 알파가 있기때문에 암묵적인 지도 탓도 있었고
그 녀석은 쭈욱 웅변을 했던 녀석이라 신참인 내가 경쟁상대가 안된다는 스스로의 판단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녀석은 결정적으로 게으르다는 단점이 있었습니다.
자기 실력을 과신하고 연습을 안한거져,,
결과는 공주 지역 예선에서 보기좋게 떨어졌습니다..
그후 얼마 지나지 않아 청소년 주장 발표대회라는 게 있었습니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웅변과 거의 같지만 말하는 톤이 다릅니다.
대화 형식이라 할까여,,자연스러우면서도 강약조절이 필요합니다.
근데 담당교사가 내가 쓴 원고로 그 녀석을 또 출전시키려 하는 거에여,,
어린 나이에 그 당시 교사그림자 정도는 아니더라도 따라야 하는 통념을 깨고
교무실에 가서 무조건 나가고 싶다고 우겼습니다.
결국 제가 나가는 걸로 됐고 그때부터 피나는 연습을 했습니다.
내가 쓴 원고니 달달 외우는데 수월했고 목소리의 강약부분까지 눈감고도 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그렇게 공주 예선을 통과하고 충남,대전 예선을 대전 교육청에서 하는데 대회를 앞두고 목소리가
쉬게 됩니다.다른 친구들 단상에 원고를 들고 가지만 전 원고도 들지 않고 단상에서 유일하게
막힘없이 하고 나왔습니다.
결과는,,,,
전체 22명 중에 2등 먹었습니다.
그 뿌듯함과 담당교사의 뭘 해도 너는 잘 할것이다 라는 칭찬과 상패등,
보상의 달콤함을 처음 맛본 내 인생 주인공이었던 순간이었습니다..
그 후 20년이 흘렀습니다.
전 노예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노가다 현장을 아시져,,
기술공이 있고 보조해주는 뒷모도가 있습니다.
군대에서 경계근무설때 사수가 있고 부사수가 있습니다.
기술공과 뒷모도의 하루 일당은 차이가 많이 납니다.
내 스스로 선택한 일중 잘한일도 있고 대견한 일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지금 노예생활 하는 건 당연한거지여,,
칼 여러자루 가지고 있는 사람 내지 회사는 절 좋아라 했습니다.
시키는 거 이상으로 성실히 해냈으니까여,,
하지만 당사자인 저는 행복하지가 않습니다.
한번 사는 인생인데 회의가 많이 듭니다.
저는 20대 학교 졸업하고 28살되던 해 사회 첫발을 내딛을때
빨간약을 선택했습니다.
하지만 진정 내가 그 약의 쓰디쓴 노력은 뒤로 하고 보상만 상상하면서 흘러가는 대로
살았습니다.
조그만 돌뿌리에도 어마어마한 암벽처럼 쉽게 포기를 하면서 그런 생활은 맘에 안들지만
대충대충 되겠지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인장님,,아니 이해관계는 없으니 형님이라 부를께여..^^
이 강의가 몰랐던 것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잊고 지내왔던 내 안에 뭔가
꿈틀거리는 욕구를 다시한번 상기 시켜 주었네여,,
새해 계획은 조그만 거 부터 바꾸려 합니다.
풋샵하고 몸관리부터 하겠습니다.
사실 형님의 몸 보고 반성많이 했습니다.ㅠㅠ
쓸데 없는 지출 하나하나 목록을 만들어 줄여나가겠습니다..
마스터 플랜 계획은 시도해봤지만 어려워도 너무 어렵더라구여,,
천천히 만들어 볼 계획입니다..
그리고 우리 대전 5기 회원님들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지나간 일보다 앞으로의 일들이 굉장한 일들로 가득차길 기원합니다.
싸우고 부딛쳐서 상처가 나더라도 내가 주인공인 길을 찾기 바랍니다..
저 오리세상도 어설프지만 작은 거부터, 당장 할 수 있는 일부터 실천해보렵니다.
추신 : 형님의 소신,,멋지십니다.
첫댓글 텐인텐 5기 여러분 화이팅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