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가 자신의 품에서 매끈하게 생긴 검정색 권총을 꺼내놓고, 기자가 잘 볼 수 있게 들었다. 액정안의 기자는 물론이고 그의 주변에서 길을 걷는 사람들도 그가 들고 있는 것이 진짜 권총인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 누구도 두려워한다거나 소란스럽게 하지 않았다. 잠시 혼란스럽게 권총을 보고 있던 기자가 상황이 잘못 돌아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당신, 지금 무슨 짓을 하려는 거야?
그가 잠시 기자에게 음흉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특종을 제보한다고.”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치 않았다. 권총을 익명의 다수에게 겨눈 그는 핸드폰을 권총 옆에 딱 붙여놓았다. 기자는 이제 총구가 겨누는 대상만을 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오래 조준할 필요도 없이 곧장 방아쇠는 당겨졌다. 대량 살육을 부르는 첫 번째 총성이 울리자, 아무 죄도 없는 남자 한 명이 맥없이 자리에 쓰러졌다. 갈라지듯이 날카로운 총성이 주변이들에게 그가 주목받게 해 줄 수 있었고, 그가 들고 있는 권총에서 화약연기가 뿜어져 나오자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게 되었다.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약속이라도 한 듯이 일제히 그를 피해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이제 마음 편히 방아쇠만 당기면 되는 것이었다.
탕! 탕! 탕!
계속 되어 총구에 뜨거운 불꽃이 뿜어져 나왔다. 거리에 쓰러지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그들의 비명소리에 사방은 아수라장이 되어가고 있었다. 권총의 반동에 의해 핸드폰은 사정없이 떨리고, 껍데기만 남은 탄피는 너무나 허무하게 차디찬 바닥에 떨어졌다.
살육을 시작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총알이 다 떨어진 그는 뜨거워진 권총을 던져 버리고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권총의 반동덕택에 떨리는 화면으로 총기난사 사고를 실감나게 감상한 기자는 난생 처음 보는 광경에 넋을 잃고 있었다.
“지금 이 사람들을 구할 수 있는 자는 당신 하나 뿐이야. 어서 경찰에 신고해. 난 지금 핸드폰을 들고 있는 사람들 위주로 쏘고 있단 말이야!”
-예. 알았어요.
기자가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했을 지는 잘 몰랐다. 본능적으로 뒤에서 한 남자가 오고 있는 것을 느끼고는 날렵하게 돌려차기로 그 남자를 걷어 내버리고, 순식간에 품에서 총알이 충만한 권총을 꺼내들어 남자의 심장에 한 발을 날려버렸다.
자신이 하마터면 위험한 상황으로, 혹은 생명이 꺼져 버리는 사람들을 보며 그는 여전히 아무런 표정을 짓지 않았다. 자신이 당하든 해하든 이건 무의미한 일이니까.
다시 핸드폰을 권총옆에 붙여놓고, 눈에 띄는 표적이 있나 잠시 주변을 둘러보았다. 시간이 조금 흘러가서 그런지 눈에 띄게 사람들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아주 없는 것은 아니었다. 다시 눈에 보이는 데로 그는 사격을 시작했고, 총성 중간 중간에 핸드폰에서 다급한 기자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이미 신고는 끝났어야 했어.”
멀어지는 사람들을 향해서, 그도 핸드폰 영상을 잘 찍기 위해 뛰기 시작했다. 갑자기 뛰기 시작한 그의 움직임에 당황이라도 했는지 얼마되지 않은 거리에서 하이힐을 신고 있던 여자가 쓰러졌다. 여자는 그가 자신에게 달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고는 굽이 부러진 힐을 버리고 앞으로 기어가며 발버둥 쳤지만 결국 잡히고 말았다.
“살려주세요.”
여자는 우는 소리를 내고, 그는 여자의 말이 당연하면서도 비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말은 전혀 소용없다는 듯이 총구를 여자의 관자놀이에 갖다 대었다. 여자는 좀 전까지 요란하게 울렸던 총구의 온기를 느끼며 죽음이 한 발자국 다가왔다는 것을 느꼈다. 살고자 하는 본능으로 여자는 더욱더 공포에 떨며 울기 시작했고, 그는 재미있다는 듯이 핸드폰 렌즈를 여자의 얼굴로 향하게 하였다.
“이 여자가 살려달라는데 어떻게 할까요? 기자양반.”
-진정해. 당신이 무슨 이유 때문에 이러는지 모르겠지만, 이건 옳지 않아.
“나 참 특종하나 건져주니까 따분한 설교나 하려 드는군.”
그가 더 이상 여자를 살려둘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방아쇠를 당기려 하였다.
“야, 개자식아!”
공포가 극에 달아 미치기라도 한 것일까? 여자가 큰소리로 떠는 말에 그는 방아쇠를 당기지 않았다. 그는 여자를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나한테 한 말인가?”
“저 자식 말이에요.”
여자가 검지로 한 쪽을 가리켰다. 차도였던 그곳에 불법정차가 되어있는 차량이 있었으나, 저 자식이라 불릴만한 사람은 없었다. 있다면 차량 반대편에 숨어있는 듯 했다.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자기 여자친구가 이렇게 넘어져 있는데, 자기 혼자 살겠다고 버리고 도망가는거야!”
그가 여자의 시선과 같이 남자친구라는 사람이 있을 법한 곳을 계속 쳐다보았다.
“진짜 남자친구가 있는거야?”
“네.”
“그럼 남자친구에게 만회할 기회를 주지.”
여자가 그를 쳐다보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난 지금 이 여자를 쏠 준비를 하고 있다. 아까까지 상황을 봐서 알겠지만, 난 자비로운 사람이 아니야. 하지만 방금 전의 이 여자가 보여준 용기로 한 번의 기회를 주겠어. 이 여자의 남자친구는 앞으로 나와라. 그렇다면 여자는 살려주지.”
그가 말하고 약 3초간의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차량 뒤편에서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멋을 잘 부리지만, 약간 뺀질뺀질한 인상이 뿜어져 나왔다. 그가 만족한 표정을 보여주었다.
“좋아, 약속대로 이 여자는 살려준다.”
그의 말에 여자는 잠시 동안 희망의 미소를 뿌렸다. 하지만 그 미소가 지어진지 얼마 되지도 않아 슬픔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그가 남자의 심장을 날려버린 탓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살려준다고 한 적이 없어.”
그리고 여자가 자유로울 수 있도록 놓아주었다. 여자는 애인을 잃은 상실감과 완전히 벗어나지 않은 공포심에 머뭇거리는 것 같았다.
“오늘 생각보다 많은 사람을 죽여서 영업을 마무리 짓는 거야. 그러니까 생각 바뀌기 전에 가.”
말을 하면서 그는 계속 총의 무게를 가름해 보고 있었다. 그의 오랜 경험에 비출때 총 안에 들어있는 총알의 개수는 단 하나였고, 그가 더 쏘고 싶어도 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의 사정을 모르는 여자는 이제 살 수 있다는 해방감을 조금씩 느끼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는 핸드폰의 액정을 바라보았다.
“오늘의 특종은 이쯤으로 해두죠. 어때요? 만족하셨나요?”
-당신이 이러는 목적이 뭐야?
기자의 얼굴은 두려움과 그를 이해 할 수 없다는 표정이 담겨져 있었다. 그가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
“아하. 당신이 묻는 질문은 육하원칙 중에서 ‘왜’에 해당 하는 군요. 아무리 특종을 쓴다 해도 육하원칙에 어긋나면 안 되니까. 역시 당신은 기자정신이 투철해. 내가 잘못 고르지는 않았다니까.”
-이런 얼어죽을!
“내가 왜 이러는지 이유를 말해주지요. 솔직히 말하자면 그리 큰 의미는 없었어요. 그냥 이 세상이 싫어서 그런거니까.”
-그래도 당신이 무고한 사람들을 죽일 필요가 없잖아.
“무고하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들이죠. 불교 용어로 치자면 중생정도? 난 이 세상에서 저들을 구해주고 싶을 뿐이에요.”
그는 싸늘하면서도 확고한 얼굴 표정을 지었다. 그럴수록 기자만 움츠러들었다.
-그 많은 기자들 중에서 당신이 나를 택한 이유가 뭐지? 아니, 질문을 바꾸지. 당신의 다음 목표가 나 아니야? 나에게 극한의 공포를 심어 준 다음 내 목숨을 가져가려 하는 것이 아니냐고.
기자의 말을 듣고 그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때 멀리서는 경찰의 싸이렌 소리가 희미하게 들리고 있었다. 어림잡아도 큰 규모로 오는 듯 했으나 그는 도망갈 생각이 없었다. 아직 핸드폰에서는 싸이렌 소리를 잡아내지 못했는지 기자의 얼굴은 두려워하기만 했다.
“결국 당신이 우려했던 것은 저들의 생명이 아니라, 당신의 안위였군요. 솔직히 이해 할 수는 있으나 실망스런 말이었어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제 목적은 한 사람에 국한 되어 있지 않거든요.”
-내가 그 말을 어떻게 믿으란 거지?
그가 다시 한 번 실망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경찰들이 몰려오는 타이밍만을 엿보고 있었다.
“증거를 보여 달라는 말이군요. 그래요 보여드리죠. 하지만 그 전에 제 부탁을 들어준다는 약속을 하셔야 합니다.”
-어떤 부탁?
“이번 일과 우리의 통화를 반드시 기사화해야 한다는 약속.”
기자가 고개를 끄덕이며 긍정의 표시를 보여주었다. 그가 만족했다.
“제가 당신을 해하지 않는 다는 증거는 이것 밖에는 없군요.”
그가 말을 끝마쳤을 때 경찰들은 서서히 대열을 맞추며, 그가 아무것도 못하게 압박하고 있었다. 이제 오늘의 이벤트를 끝마쳐야 한다는 것을 깨달은 그가 서둘러 여분의 한 발이 남은 권총을 자신의 관자놀이에 대었다. 핸드폰 액정 안의 기자가 그의 마지막 말과 행동을 이해하기도 전에 그는 방아쇠를 당겨버렸다.
탕!
비명과 같은 총성과 함께 기자와 시선을 같이하는 그의 핸드폰이 이리저리 흔들리다 경찰의 모습이 보이게 넘어져 버렸다.
기자는 경찰이 핸드폰을 향해 달려온다는 것을 깨닫고는 그들과의 통화가 두려운 나머지 화상전화를 끊어버렸다.
기자의 얼굴과 손바닥에 땀이 흥건이 묻어났다. 그가 그 땀을 대충 훑어내고 낮은 소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건 악몽이야.”
|
첫댓글 뭐야 저자식 !! 이거 이인후처럼 다시 살아 돌아올 것 같네 이인후랑 한패인가 ?
저도 이 부분 쓰면서 저 스스로 싸이코인줄 알았음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