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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ELW_PPhnjLA?si=ZcFSVM3Mi1x7GulR
하나님 나라의 일꾼들
1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 주인과 같으니
2 그가 하루 한 데나리온씩 품꾼들과 약속하여 포도원에 들여보내고
3 또 제삼시에 나가 보니 장터에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4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내가 너희에게 상당하게 주리라 하니 그들이 가고
5 제육시와 제구시에 또 나가 그와 같이 하고
6 제십일시에도 나가 보니 서 있는 사람들이 또 있는지라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여기 서 있느냐
7 이르되 우리를 품꾼으로 쓰는 이가 없음이니이다 이르되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하니라
일꾼들이 받는 보상
8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품꾼들을 불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하여 먼저 온 자까지 삯을 주라 하니
9 제십일시에 온 자들이 와서 한 데나리온씩을 받거늘
10 먼저 온 자들이 와서 더 받을 줄 알았더니 그들도 한 데나리온씩 받은지라
11 받은 후 집 주인을 원망하여 이르되
12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다
13 주인이 그 중의 한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친구여 내가 네게 잘못한 것이 없노라 네가 나와 한 데나리온의 약속을 하지 아니하였느냐
14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15 내 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 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16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
(마태복음 20:1~16, 개역개정)
- 제삼시(3절), 제육시(5절), 제구시(5절), 제십일시(6절) 각각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오후 5시를 가리킨다.
- 저물매…삯을 주라(8절) 해가 지기 전에 하루 품삯을 주도록 율법이 규정한 것은, 가난한 사람들이 굶지 않게 하기 위함이다(신 2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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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말씀요약
천국은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이려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 같습니다.
그가 제삼시부터 제십일시까지 제각각 온 자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주자 먼저 온 자들이
원망합니다. 주인은 이렇게 주는 것이 그의 뜻이라 합니다.
이처럼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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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마태복음 20장 1~7절
1 “하늘나라는 자기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고용하려고 이른 아침에 집을 나선 어떤 포도원 주인과 같다.
2 그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1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일꾼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3 오전 9시쯤 돼 그가 나가 보니 시장에 빈둥거리는 사람들이 있었다.
4 그는 그들에게 ‘너희도 내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적당한 품삯을 주겠다’라고 했다.
5 그래서 그들도 포도원으로 들어갔다. 그 사람은 12시와 오후 3시쯤에도 다시 나가 또 그렇게 했다.
6 그리고 오후 5시쯤 다시 나가 보니 아직도 빈둥거리며 서 있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는 ‘왜 하루 종일 하는 일 없이 여기서 빈둥거리고 있느냐?’ 하고 물었다.
7 그들은 ‘아무도 일자리를 주지 않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주인이 그들에게 말했다. ‘너희도 내 포도원에 와서 일하라.’
-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뿐 아니라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 심지어 제십일시에도 나가 일꾼을 부릅니다. 그들은 놀고 싶어서가 아니라, 불러주는 이가 없어 서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일찍 부름받은 자만이 아니라, 늦은 시간까지 기다리던 자도 찾아가십니다. 중요한 것은 일한 시간의 길이가 아니라, 부르심에 응답했는가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자격이 아니라 은혜의 초청으로 시작됩니다. 이 장면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특정 시간이나 자격에 제한되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늦었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초청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아직 부름받지 못한 이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있나요?
혹시 ‘이미 늦었다’는 생각으로 주저하고 있지는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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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꾼들이 받은 보상 마태복음 20장 8~16
8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이 관리인에게 말했다. ‘일꾼들을 불러 품삯을 지불하여라. 맨 나중에 고용된 사람부터 시작해서 맨 처음 고용된 사람까지 그 순서대로 주어라.’
9 오후 5시에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 각각 1데나리온씩 받았다.
10 맨 처음 고용된 일꾼들이 와서는 자기들이 더 많이 받으리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각 사람이 똑같이 1데나리온씩 받았다.
11 그들은 품삯을 받고 포도원 주인을 향해 불평했다.
12 ‘나중에 고용된 일꾼들은 고작 한 시간밖에 일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하루 종일 뙤약볕에서 고되게 일한 우리와 똑같은 일당을 주시다니요?’
13 그러자 포도원 주인이 일꾼 중 하나에게 대답했다. ‘여보게 친구, 나는 자네에게 잘못한 것이 없네. 자네가 처음에 1데나리온을 받고 일하겠다고 하지 않았나?
14 그러니 자네 일당이나 받아 가게. 나중에 온 일꾼에게 자네와 똑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네.
15 내가 내 것을 내 뜻대로 하는 것이 정당하지 않은가? 아니면 내가 선한 것이 자네 눈에 거슬리는가?’
16 이처럼 나중 된 사람이 먼저 되고 먼저 된 사람이 나중 될 것이다.”
- 품삯을 받을 때, 늦게 온 자들이 먼저 한 데나리온을 받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자신들이 더 받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동일한 삯을 받자 불평합니다. 약속한 금액을 받았음에도 말입니다. 문제는 삯이 적어서가 아니라 비교 때문이었습니다. 주인은 약속을 어기지 않았고, 자신의 것을 선하게 사용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은혜가 기준입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감사로 반응하지만, 비교하는 순간 기쁨을 잃어버립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공로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비교가 아니라 감사의 자리입니다.
♣ 묵상 질문
나는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 하나님의 은혜를 왜곡하고 있지 않습니까?
오늘 내게 주어진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까?
비유에 등장하는 주인은 포도원에 들여보낼 일꾼들을 몇 시까지 찾아 나섰나요
나는 누구를 위해, 그리고 무엇을 위해 쓰임받고 있나요?
먼저 온 일꾼들이 주인을 원망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나는 ‘수고에 대한 대가’ 때문이 아니라 ‘쓰임받는 기쁨’으로 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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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부르심을 아는 사람
미국의 상담가 부부인 케빈과 케이 마리 브렌플렉이 쓴 「소명 찾기」에 따르면, “하나님께 가장 하고 싶은 질문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 중에서 1위가 “제 인생의 목적이 무엇입니까?”였다고 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 은사에 맞는 직업을 갖고 싶어 합니다.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취감을 느끼며 일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소명(calling)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런데 소명을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소명을 주신 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을 하도록’ 부르심을 받기 전에 먼저, ‘존재하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내가 사람의 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인 것을 알면 기쁘게 부르심에 응할 수 있습니다.
로이스 프레스터라는 여인은 10대 시절에 하나님을 섬기기로 서원했지만, 그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긴 고난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76세가 되어 ‘이젠 그 서원을 이행할 기회마저 다 지나갔구나.’라고 체념할 즈음, 하나님이 그녀에게 역사하셨습니다. 필리핀에 고아원을 세워, 가난하고 학대당하는 35명의 아이를 돌보는 일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인생이 곤고해도 하나님이 나를 거룩한 일꾼으로 부르셨음을 안다면, 다른 사람과 비교하거나 낙심하지 않고 사명의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 한 절 묵상
20장 15절 | 인간은 스스로가 세상의 중심이라 여깁니다. 인공 지능과 생명 공학을 발전시키는 인간의 능력은 참 놀랍습니다. 놀라운 일들 속에서 안타까운 것은 인간이 현대 기술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마음대로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다는 점입니다. 이는 세상을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본래 나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며, 선하신 주님이 그분 뜻대로 다스리십니다. 이를 아는 성도는 겸손히 주님께 순종합니다.
♧ 오늘의 기도
하나님, 제가 먼저 온 일꾼처럼 억울하다고 생각하며 불평할 때가 많았음을 고백합니다. 이런 저를 용서해 주시고, 천국 문을 열어 주신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음을 진정으로 감사하게 하소서. 하나님 나라를 위한 수고를 통해 구원의 기쁨과 감사를 더 깊이 깨닫게 하소서.
마태복음 20장 1~16절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복을 베푸시려는 하나님의 선한 기쁨이다. - A. W 토저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은 결코 손해가 아니다. 그것은 영원에 투자하는 것이다. - 빌리 그래함
다른 사람의 길을 부러워하는 순간, 당신의 부르심은 흐려진다. - 오즈왈드 챔버스
하나님은 당신을 다른 사람과 경쟁시키지 않으신다. - 프란시스 챈
하나님은 자신을 전적으로 드린 사람을 통해 놀라운 일을 행하신다. - 존 웨슬리
하나님은 당신이 가진 것이 아니라, 당신이 하나님 안에 무엇을 갖고 있는가를 보신다. - 코리 텐 붐
주님은 결코 빈손으로 우리를 부르지 않으신다. 그분 자신이 우리의 몫이 되신다. - 찰스 스펄전
마태복음 20장 1~16절에서 예수님은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설명하십니다. 이른 아침부터 일한 자들과 늦은 시간에 온 자들이 동일한 품삯을 받습니다. 먼저 온 자들은 불공평하다 여기지만, 주인은 약속한 대로 주었으며 자신의 선함을 제한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로 중심이 아니라 은혜 중심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자주 비교하고 계산하지만, 하나님은 각 사람을 향해 주권적으로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공로의 계산이 아니라 은혜의 질서로 움직입니다.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마태복음 20장 15절
예수님은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된다"라고 하십니다. 핵심은 일한 시간보다 주인의 부르심에 응답했는가에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비교와 원망 대신, 나를 불러 주신 은혜를 기뻐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쁨은 내가 얼마나 받았는가가 아니라, 자격 없는 나를 불러 주셨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은혜를 아는 사람은 다른 이의 은혜도 시기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를 품꾼이 아닌 은혜의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오늘도 계산이 아닌 감사로 살아가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삶을 노래하다 : 오늘 본문은 어쩌면 오랫동안 봉사하고 교회를 섬겨 온 이들을 향한 종결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하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본문 앞에서 마음 한켠에 질문을 품습니다. 평생을 신실하게 주님을 섬기며 살아왔는데, 병상이나 임종 직전에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볼 때, 혹은 세상에서 누릴 것을 다 누린 뒤 하나님을 믿고 구원받는 모습을 볼 때 묘한 허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나는 왜 그렇게 살지 못했을까’ 하는 아쉬움이 스며들기도 합니다. 분명 한 영혼이 주님께 돌아온 것은 하늘에서 기뻐할 일임에도, 우리의 시선은 어느새 기쁨이 아니라 비교에 머물러 있습니다. 은혜를 받은 자임에도 우리는 여전히 계산하려 하고, 사랑을 입었음에도 공로를 따지려 합니다.
그러나 이 비유는 우리의 수고를 폄하하는 말씀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시작되고 은혜로 완성되는 하나님 나라를 드러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는 ‘얼마나 오래’가 아니라 ‘누가 부르셨는가’가 본질입니다. 우리는 품꾼이지만, 주인은 선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오늘도 주님의 선하심 앞에 비교를 내려놓고, 나를 먼저 불러 주신 은혜를 기뻐하는 하루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1)
“나중 온 이 사람들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이니라.” (마 20:14)
먼저 와서 하루 종일 일한 사람과, 끝날 즈음에 와서 잠깐 일한 사람이 같은 삯을 받는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는 지금의 기준으로도 쉽게 납득되지 않습니다. 세상에서는 노력과 경력, 성과에 따라 대가가 달라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 오래 수고했으면 더 많이 인정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천국을 그렇게 설명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계산의 논리가 아니라 은혜의 질서로 움직이는 곳임을 보여주십니다. 포도원에 불러 주신 것 자체가 은혜이고, 품삯은 보상이 아니라 선물입니다.
먼저 온 저의 마음이 불편해진 이유는 삯이 적어서가 아니라, 비교했기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남과 비교하는 순간 억울함이 생깁니다. 저 또한 신앙생활을 하며 나도모르는 순간 비교의 자리에 서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나는 더 오래 섬겼는데’, ‘나는 더 많이 애썼는데’라는 생각이 올라올 때, 제 중심이 은혜에서 멀어졌음을 깨닫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일꾼은 자리를 차지하는 사람이 아니라, 부름에 응답한 사람입니다. 중요한 것은 얼마나 오래 일했는지가 아니라, 오늘 주님의 뜻 안에 서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높은 자리나 더 많은 보상이 목적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닮아가는 것이 목적임을 다시 새기게 됩니다.
오늘도 비교의 자리에서 내려와 은혜의 자리에 서기를 원합니다. 불러 주신 것만으로 감사하며, 맡겨진 자리에서 기쁨으로 일하는 일꾼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2)
마태복음20:1-16절
본문은 앞의 본문 먼저 된자가 나중되고
나중된자가 먼저 된자의 비유의 말씀입니다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공로주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은혜에 불러주셨다는 감격을 가지고 살라는
비유의 말씀입니다
비유는 1절에 천국은 마치 품꾼을 얻어 포도원에
들여보내려고 이른 아침에 나간 집주인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집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품꾼은 하나님이 불러주신 자녀들을
말한다고 할수 있습니다
그리고 포도원 품꾼은오늘날 새벽시장 즉 일을 하기 위해 새벽시장에 나온 일군과 같다고 할수 있습니다.
주인은 한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품꾼을 모집합니다
3절에 제삼시 오늘날 오전 6시 5절에 육시와 구시 오늘날 오전 9시 정오12시
마지막 6절에 제십일시 오후 5시입니다 오후5시에 부른 일군은
마지막 1시간을 남겨두고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런의미에서 오전6시에 부름을 받은 일군은 지금까지 11시간동안 일하고 있었습니다
8절에 저물매 포도원 주인이 품군들을 불러 나중에 온 즉 오후5시에 온 종을
시작으로 삯을 주라고 합니다
한데나리온을 줍니다 그것을 제삼시 오전6시에 온 품꾼이 보았습니다
이것을 보고 자기들이 훨씬 일을 많이 했으니 더 받을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1데나리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품꾼은 주인에게 따집니다
12절입니다 "나중 온 이 사람들은 한 시간 밖에 일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을 종일 수고하며 더위를 견딘 우리와 같게 하였나이까"
주인에게 따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있습니다
비유의 첫번쨰 핵심은 공로주의가 부서지고 있습니다
새벽6시에 온 사람들의 주장을 보여주신 것은 공로주의입니다
내가 얼마나 일을 많이 하였는지 아십니까?
얼마나 많이 시간으로 봉사를 하였는지 아십니까?
공로주의 입니다
공로주의를 조심해야 합니다
공로주의가 있으면 나중에 품군처럼 불평하게 됩니다
그러면 오전6시에 온 품꾼의 말에 주인이 어떻게 말합니까?
내가 잘못한 것이 없다 너희들과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였다
내것을 가지고 주는 것이 내 뜻이다
15절입니다 "내것을 가지고 내 뜻대로 할것이 아니냐 내가 선하므로 네가 악하게 보느냐"
이말은 내가 관대한대 네가 질투하느냐 라는 말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말씀 즉 관대라는 말씀에서 인간의 공로주의를 내려놓고
하나님의 관대함 즉 하나님의 무한한 은혜를 바라보길 바라심을
알수 있습니다
사실 포도원 주인이 품꾼을 불러 주신 것 자체가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은혜 앞에서 가장 일찍 왔던 품꾼처럼 자신의 공로주의를
질투, 불평을 내려놓고 대신에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가지라 말씀합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축복을 진심으로 축하하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동체가 천국 공동체라 생각합니다 다함께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이런 천국 공동체를 세워가는 우리 모두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마 20:1~16절)❝감사로 누리는 천국의 삶❞
❚ 천국은 우리의 공로나 노력의 대가가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혜로 얻습니다.
✔ 천국은 어떻게 누릴 수 있습니까?
➲ 사람의 노력이 아니라 은혜로 천국에 들어갑니다(1~7절).
주님은 우리를 포도원, 곧 천국을 위해 일하는 일꾼으로 부르셨습니다.
한 데나리온의 품삯을 받기로 하고 포도원에 들어간 일꾼들처럼 하나님의 소유가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부름을 받은 자답게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고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무엇보다 주님의 일을 행함에 있어서 우리의 관심사가 품삯이 아닌 주인이 맡기신 일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주인에게 선택이 되었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는 큰 은혜입니다. 일찍 주님께 부름을 받았든, 늦게 부름을 받았든지 간에 나를 부르셔서 귀하고 복된 일을 할 수 있게 하심에 감사하며,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 된 그리스도인으로서 구할 것은 충성밖에 없음을 결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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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인 은혜로 들어갑니다(8~12절).
세상적인 가치와 잣대는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 달라진다고들 합니다. 한 마디로 줄을 잘 서야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천국의 공정함은 세상 사람이 생각하는 공정함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늘 내가 건강한 신앙으로 나아감에 있어서 가로막는 장애물은 질투, 시기, 욕심 그리고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많은 일을 했는데.. 내가 저 사람보다 더 많이 배웠고, 더 많은 달란트를 가지고 있는데.. 더 좋은 줄을 갖고 있다는 식의 쓸데없는 우월감입니다.
또한 비교 의식등이 내 사역에 개입이 되면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릴 수 없었던 것입니다. 천국의 기쁨 또한 맛볼 수 없습니다. 배 아파하지 말아야 합니다.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나의 이 모습 이대로.. 이 형편 이대로의 모습 속에서 감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내가 노력 노력했다고 해서 더 많이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 개인의 시선이 아니라 은혜로 영광을 바라봅니다(13~16절).
먼저 와서 일 한 일꾼이나, 한 시간만 일 한 일꾼이나 똑같은 품삯을 받는 것에 대해 충분히 이의를 제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한 시간에 상관없이 모든 일꾼들에게 한 데나리온씩 준 것은 전적으로 주인의 주권에 있기에 잘못된 일이 아님을 말씀하십니다.
그럼에도 일꾼들이 불평을 토로한 것은 자기가 한 일에 대해 다른 일꾼들과 비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는 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이나 타인의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이 부여하신 일에 감사함으로 순종하고 기뻐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똑같이 주고자 하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 그렇습니다. 복과 은혜를 주시는 것은 하나님의 절대 고유 권한입니다. 하나님이 행하신 일에 대해 내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선하시고, 공평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남 잘되는 것에 대해... 다른 교회 잘 되는 것을 보고 비교해서 배 아파(??) 하지 말고,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충성하는 삶이어야 합니다. 내 개인의 시선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닫고 감사할 때,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이 베풀어 주시는 일상의 은혜에 감사하며, 천국의 기쁨과 영광을 일상에서 누리며 살아갈 뿐만 아니라 개인의 시선과 판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깨달아 주신 것에 만족하며, 이 땅에서 천국을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마 20:1~16절)...
4)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일꾼들을 불러 포도원에서 일하고 품삯을
주는 모습입니다.
품꾼을 고용하는 주인
포도원 주인이 장터에 나가 품꾼을 얻어 자기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그는 추수 때를 맞아 포도원의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일꾼을 구하여
이른 아침, 제삼시, 제육시, 제구시에도 들여보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엔
제십일시에도 나가보았더니 사람들이 또 있어서 어찌하여 종일토록 놀고
있느냐고 물었는데 자신들을 품꾼으로 써주는 이가 없다고 대답합니다.
그 말을 들은 주인은 그때도 일하라고 포도원으로 들여보냅니다.
일할 시간이 한 시간밖에 없는 무가치한 사람들을 일꾼으로 쓰는
주인의 모습은 우리를 사용하시는 주님의 은혜입니다.
품삯을 나눠주는 주인
저녁이 되었을 때, 주인은 청지기를 시켜모든 품꾼에게 품삯을 지불하게
합니다. 청지기는 제일 나중에 온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이른 아침에 온
사람들까지 한 데나리온씩 줍니다. 먼저 온 사람들은 하루종일 일하고도
동일한 임금을 받자 원망을 하는데 주인은 늦게 온 사람에게도 차별없이
주는 것은 자기의 뜻이라고 합니다. 십일시에 선택되어 품꾼으로 쓰임
받는 것은 우리가 받은 은혜를 상징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반전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이와 같이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고 하십니다. 달리기할 때 결승선을 출발선에 옮겨
놓고 뒤돌아가라고 시키면 꼴찌가 일등이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도 이와 같이 자격 없는 자들에게도 똑같은
은혜가 베풀어지는 곳입니다.
천국은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죄인들을 자녀로 불러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들어가는 곳입니다.
우리는 제 십일시에 택함 받은 자들입니다.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이웃에게 조건 없이 나누며 충성스런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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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차별 없는 고용(20:1~7)
하나님 나라는 세상의 기준과 계산의 논리를 초월하며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은혜와
긍휼에 기초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일당을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오전 6시(일출)부터
오후 6시(일몰)까지 일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오전 6시에 나가서 품꾼을 데려왔을 뿐 아니라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 심지어 오후 5시에도 나가서 놀고 있는 사람들을 데려다가 할 일을 줍니다.
비록 일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도 일자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을 불쌍히 여겨
그들에게 기회를 준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분의 나라로 사람들을 초청하실 때 처음부터 제외되는
대상은 없습니다.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받아들이면 영생을 얻고 하나님 나라의 일원이 됩니다.
아직까지 늦지 않았습니다. 지금이 구원받을 때입니다.
- 묵상 질문: 포도원 주인은 어떤 마음으로 오후 늦은 시간까지 품꾼을 계속 데려왔을까요?
- 적용 질문: 자격 없는 나를 택하시고 부르신 하나님 앞에서 어떤 반응을 보이나요?
차별 없는 임금(20:8~16)
선하고 관대하신 하나님은 우리의 공로와 상관없이 은혜와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가장 늦게 온 품꾼부터 불러서 한 데나리온씩 삯을 줍니다.
한 시간 일한 사람이 한 데나리온 받는 것을 보며, 아침부터 일한 사람들은 좀 더 많이 받으리라
기대했지만 똑같이 받자 자신들은 종일 수고했는데 불공평하다며 주인을 원망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그들에게 약속한 품삯을 주었고,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는 선을 베푼 것이므로
잘못한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처럼 구원과 상급은 하나님 기준에 따라 은혜로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이 은혜 받는 것을 질투와 원망의 눈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일꾼 삼으신 주님의 은혜가 족한 줄 알고 언제나 감사해야 합니다.
- 묵상 질문: 먼저 온 사람에게나 나중 온 사람에게나 품삯을 똑같이 준
주인의 뜻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 적용 질문: 하나님이나 사람들이 내 수고를 알아주지 않는다고 불평한 적이 있다면
어떤 마음을 가져야 할까요?
오늘의 기도
제 잘못된 기대와 비교의식으로 하나님을 원망하고 지체를 무시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소서.
긍휼하신 하나님이 저를 부르시고 사용하심에 감사하며,
제게 주신 은혜의 자리에서 오늘도 충성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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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원 품꾼들 천국비유인데, 주인이 이른 아침 6시부터 나가서 일당 한 데나리온을 약속하고 품꾼들을 포도원에 들여보냈는데, 아침 9시에도 인력시장에 나가 보니 고용되지 못해 놀고 서 있는 사람들이 있는지라 너희도 포도원에 들어가라 했고, 정오에도, 오후 3시에도, 오후 4시에도 그렇게 했고, 해가 지는 오후 5시가 되어서 품꾼들에게 삯을 주는데, 오후 4시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아침 6시 먼저 온 자로부터 시작했으면 별 문제 없었을텐데, 일부러 나중 온 자로부터 시작한 것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이 말씀을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상당하게 주리라"(마20:4) 여기서 "상당하게"는 "δίκαιος"(디카이오스)로 "의롭게"입니다
즉,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의롭게 주리라"(마20:4) 예수님은 무엇이 정말로 의로운 공정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먼저 온 자들은 주인이 공정하지 않다고 원망했습니다(마20:9~12)
왜냐하면 사람의 공정은 "상대적 공정"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오후 4시에 온 자들이 한 데나리온을 받는 것을 보고, 자기들은 "상대적"으로 더 받을 줄로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한 데나리온을 약속했을 뿐이고, 먼저 왔다고 더 주겠다고 약속한 적이 없으며, 먼저 온 자들도 고용주가 없어 인력시장에서 놀고 있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하나님의 공정은 "절대적 공정"입니다 왜 오후 4가 되도록 고용되지 못했을까요? 누구도 고용하고 싶어하지 않는 어떤 결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해가 다 져가는 오후 4시가 되도록 인력시장에 남아 있었을까요?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하고, 혹시나 어떤 자비로운 주인이 고용해 주지 않을까 희망한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이러한 희망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긍휼이 공정이고, 사랑이 공정이며, 약속한 대로 주시는 것이 공정입니다 만약 아직도 "사람의 의", "사람의 공정"을 주장한다면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것이나 가지고 가라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20:13~16) 우리가 먼저 되었다고 더 받을까요?
자랑할까요?(사10:15~16)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사45:9~13)
아무 자격 없는 우리를 불러 써주시는 주께 감사할 뿐이며, 약속대로 주시는 주께 영광을 돌릴 뿐입니다 다만 하나님의 공정에 참여하고, 복음에 참여하고자 할 뿐이며, 우리의 몸을 쳐서 복종하게 할 뿐입니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3~27
하나님, 저를 불러 주신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함을 깨닫습니다.
비교하며 불평했던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오늘 제게 주신 은혜를 기쁨으로 받게 하소서.
늦게 부름받은 자도 품으시는 주님의 넓은 마음을 배우게 하시고,
은혜 안에서 겸손히 살아가게 하옵소서.
계산이 아니라 감사로, 경쟁이 아니라 사랑으로 반응하는 하루가 되길 소망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자꾸만 올라오는 비교와 계산하는 마음을 내려놓게 하시고
내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게 하옵소서.
비교로 인해 감사가 사라지지 않게 하시고,
불러 주신 자리에서 기쁨으로 섬기게 하옵소서.
보상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이루는 삶을 목표로 삼게 하시고,
오늘도 은혜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