曲阿(곡아)와 말陵(말릉, 장쑤성 장닝)을 평정한 손책은 군율을 엄히 하고 백성들을 위로하였다. 또 적병들은 손책의 군대로 들어오거나 歸農(귀농)하는 등 자신의 뜻대로 하게 하였다. 이에 강남의 민심을 얻게 되었고 軍勢(군세)도 크게 늘어났다.
197년 손책은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남으로 吳郡(오군, 장쑤성 쑤저우)을 공격하였다. 오군은 嚴白虎(엄백호)가 주위의 무리를 모아 스스로 왕이라 칭하며 割據(할거)하고 있었다. 엄백호는 싸움에 패해 會稽(회계, 저장성 사오싱)로 달아났다.
회계태수 王朗(왕랑)은 엄백호와 함께 저항했으나, 周瑜(주유)와 程普(정보)가 후진을 치자 무너졌고 성안으로 후퇴했다. 왕랑은 지연전을 펼쳐 손책군이 군량이 떨어지기를 기다렸다. 이에 손책은 왕랑군의 군량이 있는 사독을 공격하는 것처럼 위장하여, 적을 끌어내어 크게 이겼다. 이리하여 華東(화동) 일대는 손책의 세력 속에 들어가게 되었다.
손책은 사신을 파견하여 袁術(원술)에게 저당 잡힌 옥새를 돌려달라고 하였다. 원술로서는 도움을 베풀어준 손책이 무례하게 옥새를 요구하니 당장 공격하고 싶지만, 이미 세력이 안정된 손책은 버거운 상대였으므로 먼저 유비를 치기로 하였다. 그림은 손책과 엄백호의 전투 장면으로 왼편의 젊은 장수가 손책이다.
출처:국제신문 글.서성 열린사이버대 실용외국어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