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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은 해외주둔군으로서 보통의 미군과는 그 지위와 역할이 다르다. 독일과 일본에 더 큰 규모의 미군이 주둔하고 있지만, 주한미군은 미국의 다른 해외주둔군과 달리 전시에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가지고 한국군에 대해 군사주권을 행사할 수 있다. 또한 주한미군은 각종 특권을 가지고 이를 통해 군사적 요충지인 한반도에서 미군의 개입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한국사회 특권집단은 주한미군
주한미군의 첫 번째 특권은 한국군에 대한 전시작전통제권을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주한미군은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하기 위해 다양한 체계와 절차를 마련하였다. 미국은 한반도 군사정책과 전략, 그리고 이와 관련한 각종 실무를 해결하기 위한 행정적 수단으로 ‘한미연례안보협의회(SCM)’와 ‘한미군사위원회(MC)’를 매년 개최하며 한국국방정책에 개입하는 것을 제도화하고 있다. 1970년대 접어들면서 미국은 ‘유엔군 사령부’와 ‘주한미군 사령부’, ‘미국 제8군 사령부’ 등 여러 갈래로 나누어진 미국의 지휘명령체계를 ‘한미연합사’로 통폐합시켰다.
미국은 ‘연례안보협의회’ 등 한미 간 회담을 통해 자신의 군사적 요구를 관철함과 더불어 ‘한미연합사령부’를 통하여 국군을 미군의 하위 명령체계로 완전히 통제, 장악하였다. 지금도 매년 개최되고 있는 ‘연례안보협의회’는 미국이 한반도에서 벌이려 하는 각종 군사작전에 한국정부의 동의를 받아내는데 이용되고 있다. 2010년에는 심지어 한국군 사병의 복무기간에 관련한 협의도 미국에 보고되었다. 또한 ‘협의회’는 미국의 해외군사작전에 한국을 끌어들이는데 이용되기도 한다. 2009년에 열린 41차 한미연례안보협의회에서는 미국은 아프가니스탄에 전투병을 파병해줄 것을 요구하였다. 굵직한 사안부터 시시콜콜한 행정정책에 이르기까지 군사와 관련된 모든 사안에서 미국은 “협의”라는 이름으로 한국 국방정책에 개입할 수 있다.
1978년에 ‘유엔군 사령부’를 대신하여 창설된 ‘한미연합사령부’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을 지휘하는 기관이다. 한미연합사령관은 미국 육군 대장으로 규정하고 한국 육군 대장은 부사령관으로 묶어 미국은 ‘한미연합사’를 통해 한국군을 실질적으로 미군의 명령체계 아래로 직접 둘 수 있게 되었다. 미국은 전시작전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할 수 있는 지휘명령체계를 확보한 것이다.
미국은 동북아 패권과 한국에서의 특권을 위해 작전통제권을 유지하려 끊임없이 노력하였다. 1994년의 ‘평시 작전권 환수’도 국민을 기만하는 요식행위에 불과했다. 미국은 ‘평시 작전권’을 한국에 이양하더라도, 평시 위기관리 권한을 비롯해 작전계획 수립, 합동훈련 계획 및 실시, 정보관리 등으로 이루어진 6개항의 연합권한위임사항(CODA)을 한미연합사령관인 주한미군 사령관의 권한으로 남겨 둠으로써, 이전과 다름없이 한국군에 대한 작전통제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였다.
주한미군이 가진 두 번째 특권은 바로 영토 사용권이다. 주한미군의 영토 사용에 관한 권리는 1953년 10월 1일에 체결된 한미군사동맹의 핵심근간인 ‘한미상호방위조약’에 근거하고 있다. '한미상호방위조약'으로 미국은 한국의 영토를 ‘아무데나’, ‘무기한’, 그리고 ‘무상’으로 사용할 수 있는 특권을 갖게 되었다. 기지 사용에 대한 어떠한 세부 조건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조약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 4 조) 상호합의에 의하여 결정된 바에 따라 미합중국의 육군, 해군과 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 내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이를 허락하고 미합중국은 이를 수락한다.
주한미군의 세 번째 특권은 한국의 사법적 통제를 받지 않는 ‘치외 법권’을 누린다는 것이다. 1950년 7월 12일, 대전에서 체결된 주한미군의 범법행위의 관할권에 대한 협정이라는 소위 대전협정에서 주한미군은 미군은 미군 이외의 어떠한 기관에도 복종하지 않으며 미 군법회의도 한국인을 재판하지 않는다는 치외 법권을 명백히 하였으며 이 조항은 6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다. 이로써 주한미군은 한국사회에서 어떠한 범죄행위를 저지르더라도 한국 측 사법기관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되었으며 이 관행은 일부 사안만 수정된 채 한미 주둔군 지위협정(SOFA)"이라는 이름으로 지금까지 대체적 흐름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정부는 미군에게 범죄자의 신병인도를 요청해야 하는 상황이다. 미군 당국이 신병인도를 허락해주면 처벌할 수 있지만, 거부할 경우 처벌할 길은 사실상 없다.
정부의 공식 통계로는 SOFA가 처음 발효된 1967년부터 2002년 말까지 발생한 미군(미군속 등 포함) 범죄는 경찰에 접수된 사건만 보더라도 무려 5만 2000여 건이며 범죄에 가담한 미군은 5만 9000여 명이다. 위의 통계를 근거로 1945년 미군 주둔 이후 현재까지 발생한 미군범죄는 최소 10만 건이 넘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주한미군범죄근절운동본부에 따르면, 1967년부터 1987년까지 20년간 총 3만 9452건의 미군범죄가 발생하였는데, 평균 1년에 1972건, 하루 5건의 범죄가 발생한 셈이라고 한다.
주한미군이 조직적으로 자행하는 범죄, 특히 환경 범죄는 사안도 중대할뿐더러 사회적 피해도 상상을 초월한다. 2000년 2월 9일 용산 미8군 기지 영안실에서 군무원 ‘맥팔랜드’가 독성을 가진 발암물질인 포름알데히드를 무단으로 한강에 방류한 사건은 많은 이들을 경악케 했다. ‘맥팔랜드’는 시신처리 방부제로 사용하는 20박스 분량의 포름알데히드 470병 (223리터)을 싱크대를 통해 하수구에 버리도록 지시한 것이다. 그 결과, 유독한 발암물질이 별도의 정화시설이 없는 용산 기지의 하수구를 지나 한강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가고 말았다. 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에서 가히 테러행위에 필적할 충격적 범죄이다.
미군범죄는 한국사회에서 중요한 사회문제가 된 지 오래며, “이태원 살인사건”, “괴물” 등 미군 범죄를 소재로 영화가 만들어져 광범위한 대중적 호응을 얻기도 하였다.
한반도 위기 높이는 군사훈련
미국이 주한미군을 주둔시키는 것은 동북아시아와 한반도를 중요한 군사적 의의를 가지는 지역으로 중시하기 때문이다. 미국은 한반도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소련붕괴 이후에도 북한이 사실상의 핵보유국으로 올라섰고 중국이 "G2"로 불리며 성장하고 있어 한반도는 여전히 미국패권을 직접 결정짓는 사활적인 전략지역이다.
미국의 한반도 군사작전은 태평양사령부의 지휘를 받는 한미연합사에 의해 진행된다. 한미연합사는 주한미군과 한국군의 합동훈련을 매년 진행하며 대북군사작전을 연습한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의 내용은 다름 아닌 ‘작전계획’으로서, 이를 통상 ‘작계’라고 부른다. 미군의 작전계획에는 해당 지역사령부와 작전지역을 나타내는 고유번호가 부여된다. 예를 들어 작전계획 5027-98의 경우 ‘5’는 미국 태평양사령부를, 마지막의 98은 작계의 개정연도를 의미한다. 작전계획은 1∼2년마다 수정되며 세부내용은 1급 기밀에 속한다고 한다.
주한미군의 대북작전계획은 탁자 위의 문서로 그치지 않고 실제 군사훈련으로 현실화되어 반복 연습되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세계 최대 군사대국인 미국이 직접 주도하고 미국과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북한을 대상으로 한 전쟁훈련이기 때문에, 훈련에 동원되는 핵추진 항공모함, 스텔스기를 비롯한 최첨단 무력과 각종 장비, 그리고 인력의 규모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한반도 남쪽에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이 벌어질 때마다 북한은 이를 두고 ‘북침전쟁훈련’이라고 주장하며 매번 강력한 비난과 군사적 조치들을 취해오고 있다.
한미합동군사훈련은 ‘작전계획 5027’을 기본내용으로 하여 ▲야외실전 연습 및 유사시 미군의 신속한 증원을 보장하기 위한 훈련인 ‘키 리졸브/독수리 훈련’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부 연습 및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 훈련이 중심이 되는 ‘을지 프리덤 가디언 훈련’으로 나눠 진행된다.
키리졸브(Key Resolve) 훈련은 2008년 처음 실시되었으나 그 뿌리는 1969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북한의 남침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한미 양국은 ‘포커스 레티너’라는 합동군사훈련을 처음 실시하였다. 이후 1971년부터는 ‘프리덤 볼트’, 1976년부터는 ‘팀 스피리트’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합동군사훈련을 진행하였다.
‘팀 스피리트’ 훈련은 첫째로, 핵전쟁 훈련이었다. 미군은 핵무기를 한반도에 상시적으로 배치하고 있었다. 1975년 5월 30일 미 국회 하원에서 진행된 심의과정에서, 미국 민주당 소속 의원인 델모스는 미국이 한국에 1,000여 발의 전술 핵무기와 54대의 핵 적재기를 배치했다고 밝혔다.
‘팀 스피리트’ 훈련은 둘째로 그 기간이 60~90일에 달해 세계 군사훈련에 유례가 없는 장기훈련이었다. 북한은 ‘팀 스피리트’ 훈련이 시작되는 순간부터 국가비상사태를 선포하여 모든 정부와 민간의 활동이 국토방위태세로 전환되어서, 두세 달간의 훈련기간 동안 국가생산기능이 대체로 축소되거나 중단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팀 스피리트’ 훈련을 진행하는 것만으로도 북한에 상당한 경제적 타격을 입힐 수 있었던 것이다.
‘팀 스피리트’ 훈련은 셋째로, 당시 세계 최대 규모로 진행되었다. 팀 스피리트 훈련의 핵심은 작전계획 5027의 3단계에 따라 유사시 일본에 주둔하는 미군 4만 명, 괌과 알래스카 주둔 미군, 나아가 미국 본토 미군을 한반도로 신속히 증원하는 훈련이다. 이 훈련은 별도로 ‘연합전시증원(RSOI)훈련’이라고 구분되었다. 실제 훈련에 동원되는 병력은 한미연합군을 포함하여 대체로 20만 명에 이르렀다.
한미연합군은 또한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이용한 지휘부 연습과 한국 정부의 전쟁지원 훈련이 중심이 되는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을 중시한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은 야외기동 훈련과는 달리 2008년부터 매년 8월에 실시하는 정부 및 군사 분야 종합지휘소 연습으로써, 한국 정부 및 한미연합군 관련 수뇌부가 서울 인근 지역의 B-1 벙커에 들어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적용하여 ‘전쟁지휘’를 연습한다. 실제로 동원되는 병력은 한국군 5만 6000여 명과 미군 1만여 명 정도로 알려졌다.
‘을지프리덤가디언’ 훈련의 전신인 ‘을지포커스렌즈’ 훈련은 1954년부터 유엔군 사령부 주관하에 시행되어 오던 군사차원의 작전계획 수행 절차를 숙달하기 위한 ‘포커스렌즈’와, 1968년 이른바 청와대 기습사건이라고 하는 1.21사건을 계기로 정부차원의 군사지원을 위한 ‘을지연습’을 통합하여 1976년부터 실시하는 한미연합연습이다. 이 연습의 통합은 1973년 유엔사의 모자를 쓴 미국에 의해 이뤄졌다. 그 후 1975년 9월 양국 실무자 회의를 거쳐 1975년 11월 ‘을지포커스렌즈 연습에 대한 합의각서’를 교환하고 그해 통합 훈련을 실시하면서 오늘날까지 이르게 된다
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일 경우를 상정한 워게임 시뮬레이션 결과는 간혹 언론에 보도되기도 한다. 일례로, 2004년 합동참모본부가 실시한 ‘남북군사력 평가 연구’에서는 한반도 전쟁 발발 이후 24시간 이내에 수도권 시민과 한국군, 주한 미군을 포함한 사상자가 1994년 추정치 150만 명에서 230여 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나온 바 있다.
미국으로부터 도입된 군수산업과 무기
미국이 이러한 대규모 한미합동군사훈련을 해마다 두 차례씩 전개하려면 그 비용도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대규모 첨단무기부터 시작해서, 소총 실탄을 포함한 모든 물자를 미국과 일본에서 가져올 수도 없었다. 군사운영의 효율성 증대, 운영비용 전가 등을 위해 미국은 전통적인 무상군사원조로부터 군수산업 설비이전을 위한 차관, 그리고 무기판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경로를 통해 한반도로 무기를 들여왔다.
박정희 군사정권도 군 현대화, 자주국방의 명분으로 미국으로부터 대대적인 군수산업 설비 도입, 무기 수입에 나섰다. ‘율곡사업’으로 명명된 사업은 1974년에 처음 시작되어 방위사업 비리가 적발된 1993년까지 계속되었다. <표>에 의하면, 한국이 90년대 초반까지 ‘율곡사업’으로 들어간 차관의 원금과 이자, 그리고 직접구매 비용은 총 461억 달러에 달한다.
박정희 군사정권은 1970년대부터 중화학공업 육성정책을 내걸고 철강, 제철, 비철금속, 기계, 전자공업 등을 전략과제로 채택하였다. 이 가운데 포항제철로 대표되는 제철공업은 군수산업의 핵심적 조건이었다. 1970년대부터 미국의 군사설비차관을 받아 탄생한 한국의 군수산업 대표기업은 삼성탈레스(전 삼성항공, 프랑스 탈레스와 합작), 삼성테크윈, LIG넥스원(전 금성정밀), 현대로템(전 현대차량), 두산인프라코어(전 대우종합기계), 한국항공우주산업(대우중공업, 삼성항공, 현대우주항공 통합), 현대중공업, 한진중공업(전 대한조선공사) 등이 있다.
미국의 군수기업은 대외군사판매(FMS) 차관을 통해 낡은 설비를 비싼 값에 팔아넘기는 동시에 새로운 설비로 교체할 수 있었다. 미국은 생산설비를 그대로 이전한 후 한국에서 제한된 수량을 조립 생산하는 형태로 차관을 제공했다. 일례로 80년대 중반 삼성정밀과 대한항공이 제네럴 일렉트릭(GE)으로부터 하청 생산한 ‘F-5’의 개량형인 ‘제공호’는 계약된 68대의 전투기를 조립생산한 후 아무런 기술이전효과 없이 생산설비 자체가 폐쇄되었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대외군사판매차관은 대체로 이자율이 1980년에 최고 12.9%, 1981년에 최고 14.5%를 넘나드는 고리대였다. 이 때문에, 한국이 미국에 해마다 갚아야 할 이자는 1987년부터 원금보다 많아졌다. 1971년부터 1990년까지 20년간 도입한 차관의 원금과 이자는 각각 23억 9500만 달러와 18억 1900만 달러였다. 한국은 원금에 육박하는 이자를 갚아나가기 위해 특별세인 ‘방위세’를 신설하고 국민방위성금을 걷는 등 국민의 고혈을 짜내야 했다.
지금도 각종 신무기 도입사업을 벌이고 있는 한국은 대외군사판매차관과 일반 상업 구매를 통해 적게는 1조 9316억 원에서 많게는 6조 8460억 원에 이르는 무기를 도입하고 있다. 2006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의 무기 도입 비용은 15조 원을 넘었으며, 이들 중 전투기를 비롯한 주요 무기는 전적으로 미국에 의존하고 있다.
주한미군의 이같은 특권은 근본적으로 미군이 한국에 주둔함으로써 생기는 문제이다. 주한미군이 계속 주둔하는 이상, 그리고 한국정부가 미군에게 국방을 의존하는 이상, 한국군은 미국의 작전지휘아래 움직여야 하며, 한반도의 대북전쟁훈련은 끊이지 않으며, 한국은 영원히 미국무기를 수입해야 하며 미군 범죄 역시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이는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한국국방의 가장 시급한 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