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슬 생각: 전주 오던 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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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고등학교 100주년 기념관-완주군 구이면 구이로 1696
17년 전 가을, 목포에서 전주행 시외버스를 타고 난 처음으로 전주에 왔다.
흥덕이라는 곳을 경유한 버스가 국도를 달릴 때
양손에 국화 화분을 들고 신작로를 걷는 할머니를 스쳐보았다.
나는 효자동 간이 정류장에 내려 ‘미도’라는 이름을 가진 꽃집에서 국화 화분 두 개를 샀다. 그리고 전주에서 처음 만난 사람에게 화분을 건넸다. 아니 국화꽃을 전했다.
그는 화분을 받는 둥 마는 둥 하며 툭 화분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일순간 흥덕을 지나며 얻은 감흥이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난 그때 전주를 그저 내 어머니의 고향으로만 알고 있어야만 했다.
난 지금 쉰 아홉이다.
바닥에 내려지면서 나던 국화 화분 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것으로 지우려 무진 애를 썼지만 그럴 때마다 다른 화분들이 바닥에 내려지곤 했다.
사람들은 말한다.
10년과 15년이 무슨 의미이며, 그러니 16년도 마찬가지라고.
옳다. 내겐 시간이 아니라 하루하루가 단두대였으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은 맞다.
난 얼마 전부터 태양이 정수리를 쬘 시간에
예배당과 수돗가 중간에 속옷만 걸치고 서있는 버릇이 생겼다.
안에서 밖이 보이지 않으니 밖에서도 안이 보이지 않을 것이라는 자만으로 그렇게
10년 전 심은 나무들이 숲을 이룬 정오
내 몸뚱아리는 나무 잎사귀들로 가려져 안과 밖, 밖과 안을 차단한 채 그렇게
푸르다 못해 몸서리치도록 짙푸르다
16년이 이리도 또렷하니 이제 남은 건 국화 화분이 되어 길을 걷는 할머니를 찾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