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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일은 언제나 짧아서
조금만 뒹굴거려도 한나절이 지나가버려서,
어떻게든 시간을 알차게, 효율적으로 보내려고 몸부림친다.
저번 주 휴일에도 뭐할지 고민하다가
대구 미술관에서 정연두와 왕칭송의 사진전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나는 간만에 뿌듯했고, 휴일이 아쉽지 않다고 느꼈다.
이번 정연두/왕칭송 작가의 사진전에 대한 대구미술관의 설명이다.
주로 사진이라는 매체를 사용해 작업하는 왕칭송과 정연두는 단순히 주어진 풍경이나 인물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가 감독이 되어 많은 사람들과 협력해 장면이나 풍경을 연출해 촬영하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으며
또한 사회현상이나 인간에 대한 관심을 바탕으로 상상력을 더해 스케일 있는 작업을 전개해 나간다.
이러한 작업 과정에서의 유사점과는 다르게 이들의 작품은 각각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거나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과 꿈에 주목하여 이들의 꿈을 작품 안에서 현실화 시키는 등 상이한 특징을 갖고 있다.
왕칭송(WANG Qingsong, 1966~)은 중국의 사회개방 이후 자본주의와 서구문화 유입으로 변화를 겪고 있는 중국 사회를 냉철한 시선으로 고발하며
화려한 문화 속에 가려진 사회의 어두운 부분이나 현실에 감춰진 진실을 보여준다.
이번 전시는 왕칭송의 국내 첫 개인전으로서 작가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로 합성해 작업한 초기 사진부터 2000년 이후 인간 군상을 등장시켜
중국의 극단적인 자본주의를 냉소적으로 바라보며 소비사회의 근원과 인간의 깊은 내면을 표현한 작품 등 총 16점이 전시되어 그의 작품 세계 전반을 살펴볼 수 있다.
왕칭송이 작품을 통해 발언하는 중국은 경제, 사회 발전이라는 미명아래 고통 받거나 진실을 외면하는 인간 군상의 집합이다.
그는 자신이 직접 경험한 모순적 삶의 태도나 중국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논쟁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기 위해 많은 인원을 동원해
마치 연극무대처럼 과장된 상황과 극적 요소들로 하나의 장면을 연출하고 이를 촬영한다.
왕칭송의 차별화된 작품제작 방법과 작품에 담겨있는 특유의 풍자적 비판과 유머는 중국의 현실에 대한 강한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사진이라는 다분히 객관적인 성격의 매체를 사용해
눈에 보이지만 망각하는 것들에 대해 깊이 있는 성찰을 담은 그의 작품은 세계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고 아시아의 대표적인 사진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정연두(JUNG Yeondoo 1969~)는 평범한 사람들의 현실과 꿈에 주목하여 이들의 꿈을 현실화 시키는 작품으로 주목 받았다.
그는 실재와 가상의 경계, 허구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사진뿐만 아니라 영상이나 공연 등 다양한 매체를 사용해 자신의 영역을 확장시키며
동시대의 한국 작가 중 독보적 위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번 전시에서는 서울의 한 아파트에 사는 서른 두 가구의 가족사진을 담은 『상록타워』(2001),
아이들의 그림을 사진으로 재현한 『원더랜드』(2005), 꿈과 현실의 경계를 교묘하게 보여준 『로케이션』(2007)과
소박하게 사교댄스를 즐기는 중년 남녀의 모습을 담은 『보라매 댄스홀』(2001) 등 총 97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정연두는 꿈과 현실을 병렬적 구조로 보여주거나 판타지를 이루어가는 현실적인 과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실재와 가상의 경계에서 상이한 두 세계의 연결지점을 만들어내었다.
그의 작품이 일관되게 보여주는 것은 꿈을 현실화하되 그것이 현실이 아니라는 지각아래 현실화한다는 것인데
꿈을 가시적으로 실현시키며 상상이 현실이 되게 하는 유쾌함은 그의 작품의 중요한 축을 형성하고 있으며 평범한 일상도 누군가에게 주목 받을 수 있고 누구나 꿈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한다.
먼저 왕칭송의 작품부터.
왕칭송의 작품들은 올해 초에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소개된 바 있다.
그때도 눈여겨 봤었는데,
똑같은 작품을 우연히 또다른 곳에서 보니 감회가 새롭다.
<Follow you>
우리나라도 입시경쟁이 어마어마하지만, 중국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입시뿐이랴, 취업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힘들게 명문대에 들어가면, 또 그 안에서 경쟁하여 취업관문을 통과해야되고,
이제 다 되었다고 생각하면,
힘들게 돈을 모아 결혼자금, 주택자금을 마련해야 하고,
직장에는 자기가 한 일인양 확 낚아채는 얌체같은 선배, 치고 올라오는 후배
그리고 잘나가는 동기를 보면서 숨돌릴 틈없이 싸워야 한다.
왕칭송의 작품들은, 모두 그렇게 막막하고 숨이 턱 막힌다.
그의 작품들은, "이제 다 되었다." , "Finish",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없는, 마침표 없는 사진들이다.
이러다 죽겠다 라는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우리는 남들이 하니까 나도 안하면 안될것 같아
어릴 때 기차놀이 하듯, 다른사람의 어깨를 붙잡고, 그들이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고 있다.
Follow me
학문이 아니라 시험에 정진하도록 길들여진 우리 사회.
누가누가 더 깊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느냐보다는
누가누가 더 잘 외우나, 더 많이 맞추느냐에 포커스를 두는 것이 현실이다.
생각하게 만들지 않고 계산하게 만드는 문제지와 학습지들
그에 맞춰 분류되고 수치가 매겨지는 아이들, 어른들.
이것도 follow의 연작인데 이름은 생각나지 않는다.
고고학자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고학자가 무언가를 열심히 찾고 있다.
그들은 부패하지 않고 아직 살아있는 것 같다.
아니면 살아있는데 죽은 체를 하거나.
시체들은 썩기 전에 고고학자가 자신을 봐주길 원한다.
무방비로 쌓여져 있는 시체들을 보니, 얼마전 TV에서 모 방송인이 했던 말이 퍼뜩 떠올랐다.
"남에게 인기를 얻기 위해 너무 많은 시간을 쓰면 세상에서 제일 인기많은 시체가 된다"
여기서 '인기'라는 말을, 좀 더 폭넓게, '인정'으로 바꾸어도 무방할 것 같다.
우리는 '자기'를 잊은 채, 다른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한다.
때로는 스스로 과시하기도 하고, 자신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괄시하기도 한다.
카푸어족, 된장녀, 연예인병 등등.
자기가 아닌 타인에게 기대 자존감을 높이려 하고,
돋보기를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고고학자같은 사람들이 자신을 알아주기를 원한다.
돋보기 속을 들여다볼수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인데 말이다.
대중목욕탕
의도하는 바는 모르겠지만
터키탕을 흉내낸 느낌이다.
사진만 보고 있어도
진한 비누향이 나는 것 같다.
영양소
최후의 만찬과 비슷한 구도를 쓰고 있다.
어울리지 않게 서양 중세시대 의상 혹은 중국 전통 의상,
카바레의 가수가 입을 것 같은 옷도 입고 있다.
다양한 생김새의 사람들이
링거액을 맞고 있거나 화학 실험실에서 볼법한 플라스크에 든 용액을 마시면서 만찬을 즐기고 있다.
정맥주사로 영양소를 맞는 것은 최대한 빨리, 효과적으로 영양소를 흡수하는 방법이다.
먹음직한 음식을 보는 것, 맛을 천천히 음미하는 것은 하나의 즐거움인데
그런 과정은 생략하고 제 한몸 건사하기 바빠서 필요한 영양소만 골라서 효율적으로 흡수한다.
그래서 식사?를 하는 그들은 즐거워보이지 않고, 다들 무표정이다.
먹고 살자고 일을 하면서도 제대로 끼니도 못 챙겨 먹고
그때그때 인스턴트 음식을 삼키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비슷하지 않은가 생각한다.
임시병동
세미나실 혹은 영화관같은 곳에서
어딘가 일그러져 있는 사람들이 멍하게 앉아있다.
창자에 구멍이 나거나, 두부에 심한 외상을 입었다. 팔에 화상을 입거나.
나는 이 사진이, 애정결핍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다.
사실 이 사람들은 모두 겉으로는 멀쩡한 사람들인데,
속으로는 곪아터져서, 자신이 생각하는 자신의 모습은 피폐할대로 피폐해져서,
누군가가 자신을 보듬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를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든 것은 우리 스스로가 아닌가 생각도 해본다.
우연히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읽은 글귀가 떠올랐다.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특히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성과사회의 주체가 스스로를 착취하고 있으며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다.
자기 착취는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로서 타자 착취보다 훨씬 더 효과적이고 더 많은 성과를 올린다.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루어지므로 사람들은 완전히 망가질 때까지 자신을 자발적으로 착취한다."
"21세기 시작은 병리학적으로 볼 때 박테리아적, 바이러스적이지도 않으며 오히려 신경증적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신경성 질환들, 이를테면 우울증, 주의력 결핍과잉행동장애, 경계성 성격장애, 소진증후군 등이 21세기 초의 병리학적 상황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제목은 기억이 안난다.
그리스 로마신화를 다룬 르네상스의 작품들을 흉내낸 듯하다.
사람들은 그 작품들처럼 우아하게 사진을 찍고 싶어했을 테지만,
뭔가 우스꽝스럽게 보인다.
툭 튀어나온 배, 지저분한 머리칼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등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이려고 하지만 다들 시선은 정면을 향하고 있고,
엉뚱한 사이즈 옷을 입은 것처럼 어색해보인다.
나는 해외여행을 가본 적은 없지만,
지인들의 여행담을 듣다보면, 신흥 중국 부자에 대한 에피소드 하나쯤은 꼭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여행을 간 곳은 중국이 아닌데도 말이다.
"백화점을 갔는데 기름기 낀 중국인이 루이비통 매장에 있는 백을 다 사가더라."
"그 번화가에 있는 건물 모두 건물주가 알고보니 다 중국인이라더라."
"땅딸막한 중국인이 쭉쭉빵빵 서양모델을 양옆에 끼고 다니더라."
확실히 어딜 가나 중국의 영향력은 크다고 느낀다.
가장 비싼 화가 중 중국화가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는 것은
그들의 진정한 예술혼이나 뛰어난 능력은 차치하고라도,
급속도로 팽창하는 중국의 입김이 사실 가장 컸다.
그러나 여전히 중국의 많은 사람들은 가난하게 살고 있다.
밤을 화려하게 비추는 달의 보이지 않는 뒷면처럼,
눈에 띄진 않지만 분명 존재한다.
경쟁
내가 대구미술관에 처음 갔을 때,
처음 본 비디오 아트와 조금 비슷했다.
그 비디오 아트(제목은 기억안남)는 대충 이런내용이었다.
어떤 토크쇼 MC가 사회를 보고 있는데,
밑에 광고자막이 처음에 한줄 나오다가 그다음 두줄, 세줄, 계속 늘어나다가
결국 화면에는 MC의 얼굴을 빼고 모두 자막으로 채워져버렸고,
MC는 이를 알고, 광고자막 위로 자신의 얼굴을 보여주기 위해 몸부림치는
약간 코믹한 내용이였다.
무언가를 알리기 위한 대자보, 광고, 전단지
우린 하루에 수십개 아니 수백개를 보고 접하고,
그 수백개의 기억속에 살아남기 위해 광고들은 고군분투한다.
이 <경쟁>이라는 작품속에 있는 광고 혹은 무언가를 알리는 메시지들은,
너무나 많고 어지러워서 눈에 들어오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용지물이 되어버리고, 바닥에 대책없이 내팽겨쳐진다.
결국 이를 만들어낸 그들이 의도한 것은 이루어지지 않았고,
그들은 무얼 위해 이토록 경쟁했어야 했나, 허무하기까지 하다.
정연두의 작품들.
상록아파트
정연두 개인전때도 보았던 작품이다.
상록아파트의 한 동 주민들에게 '사진작가가 가족사진을 찍어줍니다.'
라는 전단을 뿌리고, 그들의 집에서 촬영을 했다.
자연스럽게 꾸미지 않은 가족을 찍은 것도 있고,
요란하게 분을 칠하고 정장을 입고서 나름 멋을 낸 가족도 있다.
평소에는 켜지도 않느 바이올린을 사진촬영을 위해 소품으로 활용한 가족도 있을 것이다.
32평쯤 되는 똑같은 공간의 아파트를
저마다 다른 삶과 희망으로 채워가고 있다.
이게 무려 2001년 작이니까, 십여년이 흐른 지금에는 좀 다른 모습일 것이다.
딩크족이나 독신 가구가 늘어나고 있는 지금, 어떤 모습일까?
원더랜드
아이들이 그림을 그리면, 그것과 똑같이 사진으로 재현을 했다.
꼬마의 그림에는 원근법이나 인체 비례가 없다.
사람이 날아다니고 현란한 색을 칠해놓아도 이상할 것이 없다.
누구 하나 타박하지도 않고 잘했다고 칭찬해줄 것이다.
그래서 아이들의 그림은 자유롭다.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들의 그림을 한번도 실제로는 어떤 풍경일지 생각해본 적이 없다.
아이들은 저런 풍경을 상상하고 그림을 그린걸까?
그러고 보니 어릴 때 금색 은색 크레파스를 가지고 있는 친구가 항상 부러웠고
특이한 색의 크레파스는 항상 제일 빨리 닳았다.
아마 저런 풍경을 생각했다기보다는
이것저것 넣어보고 싶은 것을 잔뜩 넣어 풍성하게 보이려고
꽃도 많이 그리고 색도 많이 쓰고 옷도 화려하게 그린 것 같다.
어디까지가 실제고, 사진이고, 그림인지 분간이 안간다.
초현실적이다. 마그리트의 그림을 보는 느낌이다.
꿈 속에 나올 것 같다.
보라매 댄스홀(2001)
경제가 어려울수록 댄스교습소는 성황을 이룬다고 한다.
불륜들의 온상이라는 억울한 누명을 쓰기도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댄스는 사람을 즐겁게 한다.
이주은의 <그림에, 마음을 놓다>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다.
' "나 춤 배워볼까?” 리듬을 타면 생활이 경쾌해질 것 같아서 한 번 진지하게 꺼내본 말이었다.
늘 얼굴을 보고 사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반응들이 비슷하다.
“요즘 사는 게 따분하니?” “본격적으로 중년에 접어드신 게로군요. 축하합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춤이라는 단어는 선뜻 일탈이라는 의미로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모양이다.
(중략)
사람들에겐 자기에게만 들리는 리듬이 있다.
첫댓글 사진... 저만 안 보이나요??
이장님네 흑백티비님 일단 이 공간을 통해서 인사드립니다. 운영진 페르소나벗기에요. 이 글 쓰신 유라님도 이번달부터 운영진에 합류하기로 했구요. 운영진이 아무런 활동을 하지 않는 다는 글에 대한 댓글 쓰신 거 보았습니다. 넘 감사하게 잘 읽었구요. 그 글에 대한 적절한 변명을 해야하는가? 로 요 며칠 동안 운영진들 정신없이 지냈습니다. 수십만개? 의 의견들이 오고갔고 글이 오고갔습니다만.. 운영진이 아무런 노력도 하고 있지않고 슬럼프를 만들고 있는 장본인이라는? 말까지 듣는 마당에 그냥 일단은 더 큰 불란이 일어나는 것을 최소화하기 위해 스스로들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지요. 누군가 말씀 해주신 것처럼 운영진들 다 생업
@페르소나벗기 에종사하고있고, 가정이 있고그 와중에 한달에 한번 정모 전에 꼭 모여서 운영진 회의 하고,정모 장소 미리 사전답사도 하고.. 이런 이야기 다 적어서 말하는 것도 참 유치한듯 싶고..운영진은 무관심이아닌 우리들은 우미갈을 자유롭게 흘러가게 하고 싶었지요 각자의 우미갈인들의 인격을 존중해서 자유롭게 놓아주고.. 뒤에서 티안나게 배려해주고 싶었던 거지요. ㅋ 그런데 그 마음을 콕 찝어서 이해해주시니 넘 감사했어요. 든든하고 힘이 나고이제 안억울하네요. 다시 한번 정말 감사드려요. 발뻗고 잘 수 있을 것 같아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안보이는 것 다시 수정했습니다. :)
@페르소나벗기 페르님, 유라님 글 안봤으면 이 댓글 못 봤겠어요. 제 글로 운영진이 그만큼 고민을 주고받았다니 놀랐어요. 유라님이 운영진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것도 지금 댓글 보고 알았고요. 게시판에 페르님 이하 운영진 글이나 댓글 등장해줬음 좋겠다 싶지만 마음 불편해하실 정도라면 그건 아니죠. 저도 그런건 싫어요. 드문드문 마음 갈때 편하게요. 이곳에 속마음 남기신 거 보면 네겐 말하고 싶지않다는 의미인 것 같아서 댓글을 남기는게 맞나싶지만요.
글로 인해 심란하게 해드렸지만 그래도쓸데없는 짓만은 아니었구나 싶어서 다행입니다.
나도 안보이죠,,,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사진 안보이는 것 다시 수정했습니다. :)
사진이안보이는군요 다시 수정해서 올리겠습니다
유라님 사진 올리면 다시 댓글 달게요. ㅋ 아 그냥 가볍게 댓글 달 수 없는 진중한 글이라 부담은 되지만 사진 올리면 사진 보면서 댓글 다시~ 일단 정연두 상록 아파트 저도 그 사진 참 좋았어요. 플라토에 몇 번 간 거 같아요. 같은 공간에 사람들 표정이나 그런 게 다른 듯 하면서도 뭔가 크게 다르지 않은 획일화된 면도 보였구요. 내가 그 아파트에 살았다면 분명 사진 요청을 했을거고, 가장 획기적인 ..일단은 확실히 남들과는 차별화된 사는 모습을 보여줬을텐데 .. 하는 생각도 했어요. 가구 배치나 소품등을 통해서 어느 정도는 내면을 보여주는 것 같아요. 적어도 그 사람이 중요시하게 생각하고 관심을 두는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페르소나벗기 감사합니다 페르님이 만약 상록아파트의 주민이 되어 사진을 찍었다면 남달랐을것 같습니다. 집안 인테리어부터 일단 우아할것 같아요. 예쁜 커피잔들과 책장들로 가득하겠지요? ㅎㅎ 그러고보니 저도, 가족사진을 새로이 찍는다면 어떻게 찍을까 고민하게 되네요.
대구미술관은 이상하게 반갑거든요. 다른 얘길 한참 해놓아 죄송. 잘 읽었습니다.
왕칭송의 사진은 유라님을 통해서 처음 보는데 실제로 사진을 보면 그 멧세지가 되게 강력하게 다가올 거 같아요. 에두리지 않고 거의 정공법으로 작가의 의도를 가감없이 보여주네요.쉬지 않고 변화되어야만 하는 지금의 경쟁 사회에 대한 모습들이 불편하고 자신을 소진시키고 있다는 것을 사진을 통해 느껴지면 그 기분은 어떨까요. 각자의 상황에 따라 다양한 해석과 행동이 있겠지요. 그래도 그 누구의 삶에 대해 뭐라 할 수 없는 건 각자만의 길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구요.사회가 강요하는 획일적인 가치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나름 욕망에는 차이나 다양성이 있어서 각자의 개별 욕망에 집중하는 삶이길 바래봅니다.
유라님 글과 전혀 상관 없는 댓글이어서 죄송하지만...
페르님 안녕하세요?! 잘 지내셨죠? 보고 싶사옵니다!
정연두의 사진은 꿈을 꾸고 있는 것 같아요. 아름다운 꿈 질리지 않는 꿈 ..정연두의 사진을 한참 보았던 봄날이 생각나네요. 봄날의 화사함과 정연두 사진의 현란한 화려함이 참 잘 어울렸었어요. 현실이 동화같지는 않은데 그래도 어느 한순간 동화같은 순간이 있었다고 믿고 싶을 때 저 사진들을 떠올릴 거 같아요. 사람의 마음을 이랬다 저랬다 움직일 수 있는 작가군의 한사람인듯 싶어요.
오산에서도 본적이 있는데 감각있는 작가임에 분명합니다. 작품 좋습니다.
유라님 뵌적 없으나 글 잘 읽고 갑니다 갑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