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73) - 북아프리카에서 폭발된 민주화 물결
지난 1월의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에 이어 아랍의 대표 국가 이집트에서도 며칠 전 30여 년간 장기 집권한 무바라크가 이집트 국민들의 거센 저항에 굴복하면서 민주화 혁명이 큰 고비를 넘었다. 두 나라는 이제 국민의 손에 의해 선출된 민주정부가 곧 들어서게 될 것이다. 뿌리 깊은 권위주의 체제를 종식시킨 두 나라 국민에게 축하와 격려를 보내며 이를 위해 고귀한 생명을 바친 희생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아울러 민주화 과정의 혼란을 극복하고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통해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참된 민주국가를 건설하기를 기원한다.
두 나라에서 시작된 민주화 바람은 다시 알제리와 예멘 등 다른 북아프리카, 중동 국가에도 확산되는 조짐이다. 33년 동안 권좌를 지켜온 예멘의 압둘라 살레 대통령, 1992년부터 이어진 국가 비상사태 아래 통치하고 있는 압델라지즈 부테플리카 알제리 대통령도 시위대의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다. 왕정국가인 요르단과 바레인에서도 민주화 시위가 확산되고 있다. 마치 1980년대 후반 동유럽 국가들의 민주화 도미노 과정을 보는 듯하다.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민주화 과정이 얼마나 빠르게 진전될지는 예상하기 어렵지만 아랍 전체에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이 흐르고 있는 것만은 분명한 상황이다.
이런 역사적 전환기에 북아프리카 지역을 여행하면서 변혁의 역사가 이루어지는 현장을 목격할 수 있었음은 큰 소득이었다. 재스민혁명이 진행되는 기간에 튀니지를 여행하며 통행이 제한되고 활동이 부자유스러웠지만 몽둥이를 들고 시위에 참여한 현지인들과 조우하고 계엄령이 선포된 도심에서 최루탄 냄새를 맡으며 대치중인 군인과 시민들 사이를 지나면서 1960년 고등학교 1학년 때 직접 체험한 4.19혁명의 재현을 보는 느낌이 들었다. 일행 중 한 초등학교 여선생은 24년간 장기 집권한 벤 알리 튀니지 정권에 대한 반대시위가 일주일만 늦게 시작되었어도 여행 일정이 차질을 빚지 않을 것인데 하필 우리가 방문한 기간에 터질 것이 무어냐고 불만을 털어 놓기도 하였지만 나는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 참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이 오히려 행운이라고 여겼다.
그 역사의 현장에서 적은 기록을 살펴보자.
'1월 14일(금), 아침 8시에 호텔을 출발할 예정이었는데 반정부시위의 파장이 확산되어 10시가 지나도록 행선지를 정하지 못하고 현지경찰서까지 찾아갔으나 상황이 불확실하다. 현지여행사 에이전트와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으나 결론을 내리지 못한 체 비교적 치안이 안전한 지역으로 향하였다.
일행 중 일부는 현지 여행사의 의견에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여행일정상의 목적지로 가기를 원하였으나 현지 사정에 어두운 외국인들이 책임 있는 당사자들의 의견을 배제하고 위험한 상황에 도전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TV를 통하여 시위상황이 심상치 않음을 확인하였고 버스 안에서 현지가이드가 수시로 상황을 체크하여 계엄령이 선포되고 군인이 동원된 것을 알게 되었다. 몽둥이를 든 시위군중이 집결하여 있는 것을 목도하기도 하였고 무장군인들이 공공건물 앞에 서 있는 것을 확인하며 과연 튀니지 일정을 마치고 알제리로 출국할 수 있을지도 불확실한 상황인 것을 느끼게 되었다.
오후 6시, 잠시 휴식을 취하는 사이에 상황이 더 불안하게 진행되어 수도에 가까운 수스로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현지여행사 기이드의 판단에 따라 어제 묵었던 사막지대로 다시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 사막지대의 호텔에 도착하니 저녁 7시 반, TV에서는 벤 알리 대통령이 물러나겠다는 의사표시로 상황이 반전되었다는 뉴스가 흘러나오는데 우리의 통행이 가능할 지는 미지수.
튀니지는 1881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다가 1956년에 독립하여 1957년에 왕정에서 공화국이 되었다. 초대 대통령 부르기바가 1987년 고령으로 물러나고 벤 알리 총리가 대통령에 취임한 이래 지금까지 권좌를 유지하다가 시민들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1960년 4.19혁명의 진행과정을 연상시키는 일련의 상황을 역사의 현장에서 지켜보며 장기집권의 권력자들이 민중의 봉기에 의하여 몰락하는 정치사회적 현상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것도 여행에서 배우는 귀중한 소득이라 할 것이다.
4.19혁명은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집권을 꾀한 부정선거에 항의하여 전국에서 산발적으로 일어난 항의시위가 1960년 4월 19일에 서울의 대학생들이 본격적인 시위에 앞장서고 시민들이 호응하면서 더욱 확산되어 4월 26일 이승만 대통령이 하야성명을 발표함으로 진정되었다. 당시에 경찰의 발포로 200여명이 숨졌고 계엄령이 선포되어 군이 동원되었으나 강제진압에 소극적으로 임하여 친시민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미국도 이승만 정부에 우호적이지 않은 터에 4월 25일 대학교수들이 시위에 참여함으로써 민심이 떠난 것을 확인한 이승만이 물러서기로 결심한 것이다.'
튀니지에서 육로로 가는 길이 막혀 다음 행선지인 알제리로 가지 못하고 항공편을 이용하여 모로코로 향하였다. 기내의 불어판 신문에서 본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이 탈출하면서 두고 간 시계, 귀금속들이 실린 사진과 수십억 달러의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소문을 들으며 독재자들의 말로는 자신과 가족들의 부정, 부패로 허물어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이집트이 무바라크도 천문학적 재산을 해외로 빼돌렸다는 소문이고.
모로코에 있을 때 이집트의 시위소식을 TV를 통하여 알게 되었다.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의 불길이 이웃으로 번지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으나 30년 철권통치의 이집트로 파급되는 것을 보며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이 북아프리카와 아랍세계 전체로 번지는 것을 실감하게 되었다. 2004년과 2008년에 이집트를 여행하며 강압적인 경찰력으로 철권통치하는 무바라크의 장기집권 상황을 비판적으로 여겼지만 혁명의 물결이 이처럼 확산되리라고 예견하지는 못하였다. 다만 파라오의 절대 권력에 못지않은 무바라크의 일인통치가 시대조류에 맞지 않는다고 느꼈다.
1979년 10월 26일, 유신체제의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되고 민주화로의 이행이 국민적 여망으로 이어질 때 일본을 방문 중이었다. 당시 일본 관료가 한국의 정치적 전망을 묻기에 별문제 없이 민주적 개헌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답변하였는데 일본을 떠나기 전에 12.12사태가 터지고 전두환 등 군부세력이 실권을 장악하게 되어 간절히 소망하던 민주화가 물거품이 되는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이집트도 군사평의회가 실권을 넘겨받아 약속대로 자유, 인권, 평화가 보장되는 민주주의로 이행할 것인지 1952년 나세르 이후 계속된 부패한 군부가 권력을 움켜쥐는 악몽이 재현될지도 두고 볼 일이다.
좀처럼 꺾이지 않을 것 같은 북아프리카와 아랍의 권위주의 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지켜보며 세계에 유례가 없는 3대세습의 북쪽체제가 언제까지 지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사회현상을 과학적으로 분석하는 체제이론에서는 폐쇄체제가 개방체제를 이길 수 없음이 엄연한 역사적 사실로 입증되었는데 극도의 폐쇄체제인 북한이 언제까지 버틸지는 시간문제라 할 것이다. 도도한 역사의 물결이 북한으로 흘러들어갈 때는 언제일까?
첫댓글 이집트 사건에 대해 미국이 연구하는 나라 중 하나가 우리나라라는 기사를 봤습니다. 군부체제 속에서 민주화를 성공적으로 이뤄낸 사례라고 본답니다. 80년 광주에서 87년 민주항쟁까지 많은 희생이 따랐는데, 이집트 국민들은 어떻게 극복해낼지 지켜봐야겠습니다. 북한에서도 김정은 초상화를 불태운 사건도 있었다고 하니 젊은 세대들의 봉기가 머지않은거 같기도 하네요.
나 젊었을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었는데 나는 밥도 해주고 트럭도 타고다녔으며 시체확인하러도, 병원 영안실에 가보기도했는데 이젠 그 수고한 사람들이 인정을 받아서 넘 기쁩니다. 희생없이는 어떻게 이뤄질 수있나요. 용감한 분들에게 머리숙여 감사드립니다. 광주 만세~ 민주화 만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