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날씨 변화를 수치로 관측하기 시작한 것은 500여년 전부터라고 한다.
기압계와 온도계 등 기상관측기구가 잇따라 발명되면서였다. 그러나 날씨를 과학적으로 예보한다는 생각은 못했다.
그러다 19세기 중반 유럽에서부터 일기도를 이용한 일기예보가 시작됐다.
이후 인공위성이 등장하고 컴퓨터가 진화를 거듭하면서 일기예보의 차원이 달라졌다.
기상위성이 지구 밖에서 보내오는 풍부한 자료를 슈퍼컴퓨터를 통해 극도로 정밀하게 분석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일기예보는 사시사철 생활과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만, 초여름엔 역시 장마예보가 가장 관심사였다.
6월 하순부터 한 달간 계속되기에 '제5의 계절'이라고까지 불렸던 장마의 시기는 농어민의 생활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중요한 문제였다. 도시에서도 장사를 하거나 휴가를 계획 중인 사람 등은 기상청의 장마예보에 촉각을 곤두세우곤 했다.
그러나 기상청의 장마예보가 올해부터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기상청은 어제 자료를 내고 지난 1961년부터
해 오던 장마예보를 48년 만에 전면 중단한다고 밝혔다. 이미 지난해 장마 종료시점을 예보하지 않은 데 이어,
올해부터는 장마의 시작과 종료를 모두 전망하지 않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구온난화 탓에 장마전선이 형성되기 전이나
소멸하고 나서도 강한 비가 자주 내리는 등 우리나라 여름철 강수 특성이 걷잡을 수 없어진 만큼 장마 예측이
의미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실제 게릴라성 국지폭우는 발생에서 소멸까지 불과 2시간도
걸리지 않는다고 하니 예보 자체가 불가능한 형편이다.
오보는 잦았지만 우리나라 기상예보는 그래도 그 나름대로 권위를 갖고 있었다.
수백억원짜리 슈퍼컴퓨터를 잇따라 도입하면서 기상기술력도 세계 9위를 자랑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무력해지고 말았다. 장마예보의 포기는 우리가 지구온난화의 무서운 위력 앞에
또 한 번 굴복한 셈이어서 가슴이 서늘해져 온다.
이 현 논설위원 hlee@busa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