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더불어 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싱하이밍 중국 대사가 성북동 중국대사관저에서 만나 환담을 나누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싱대사가 A4 용지에 적은 글을 약 15분 간 읽어 내려 갔는데 그 중에서 “단언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중국의 패배에 베팅하는 이들이 아마 앞으로 반드시 후회되지 않을까 하는 것입니다”라는 부분이 논란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싱대사의 발언은 우발적인 주장이기 보다 중국 최고 지도부의 승인을 받고 작심하고 한 사전에 계획된 무례한 발언이라고 추론해 봅니다.
지금부터 약 140여년 전 조선에 임오군란이 발생했을 때 청국은 조선에 3000여명의 구원병을 보냈고 그때 위안스카이가 청년 무관으로 조선에 파견되었습니다. 갑신정변때 개화파 진압에 공을 세운 위안스카이는 본국의 북양대신 이홍장의 지휘하에 10년동안 조선의 정치, 경제 외교 분야에서 내정간섭을 자행하여 조선의 근대화를 좌절 시켰던 장본인입니다. 언론에서는 싱하이밍 대사의 언행이 100여년전 위안스카이의 위세를 연상하게 한다고 보도하기도 했습니다.
고종실록에 의하면(고종실록 권 23, 고종 23년 7월 29일) 위안스카이는 1886년 6월 의정부에 보내는 ‘조선대국론’이라는 글에서 조선이 청의 속박을 탈피하여 자주노선을 추구하는 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이 정예군사가 30만 명인데 비해 조선은 수천명에 불과하다. 조선은 인구가 1000만명도 되지않고, 조세도 200만섬에 이르지 않는 가장 빈약한 국가이다. 조선이 만약 정예군사가 수십 만명이되어 아시아에서 강대국으로 불리면서 자립을 도모 한다면 이는 가능하지만, 강대국사이에서 사실상 자주.자립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조선은 러.일을 경계하고, 청에 의지 해야 한다.”
고종의 거청인아(拒凊引俄)즉 당시 세계 최강국이었던 러시아(한자음독발음 俄羅斯)와 원활한 외교관계를 맺어 청(凊)나라를 견제하려는 구상이 친청파인 외무독판 김윤식이 정보를 청에 누설하고 정부내에도 반대론자가 많아 없던 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청은 이를 빌미삼아 내정간섭을 더욱 강화하는 계기로 삼으려고 획책했습니다.
아무튼 지금 남한의 인구는 5 ,100만명이고 대한민국의 정규군 55만명에 예비군 310만을 보유한 종합국력이 세계 6위에 랭크된 명실상부한 세계의 모범적인 자주 국가입니다. 설령 죽은 위안스카이가 환생해서 지금 대한민국의 주중대사로 다시 온다 하더라도 윤석열대통령의 전략적인 선택인 거중인미(拒中引美)정책에 대해서 대놓고 후회할 것이라고 윽박지를 용기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민족이 겪은 큰 전쟁은 임진왜란, 정유재란 그리고 6.25 한국전쟁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전부 중국과 치렀습니다. 왜냐하면 중국의 현재 영토에 존재했던 옛 국가들을 중국이 스스로 자국역사에 편입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거란족이 일어 킨 요나라, 몽골족의 원나라, 만주족의 금.청나라도 전부 중국역사에 편입되었기 때문입니다. 1950년 한국전쟁때에는 항미원조(抗美援朝)와 보가위국(保家衛國)을 표방하며 중공군이 참전하여 하마터면 한반도 전역이 공산화 될 뻔 한 위기를 고조시킨 당사국이 바로 중국입니다. 한국전쟁에 참가한 중국인민지원군이 내건 표어를 풀이하자면 ‘미국에 맞서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을 돕고, 가정을 보호하고 나라를 지키자’라는 뜻이 됩니다.
여기서 미국은 북한과 중국의 공동의 적이라는 해석이 가능 합니다. 특히 보가위국(保家衛國)의 논리는 중국 자국 안보를 위해 북한이라는 존재가 순망치한(脣亡齒寒)의 관계처럼 필요하다는 뜻으로 확대해석해도 무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제(6월25일)는 한국전쟁 발발 73주년 기념일이었습니다. 한국전쟁의 비극은 김일성이 기획하고 스탈린이 동의하고, 모택동이 참전을 약속해서 발생한 김일성-스탈린-모택동의 실패한 전쟁합작품입니다.
2017년 4월 미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평 주석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대통령에게 “한국은 사실 중국의 일부였다”고 발언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통하여 시진평 주석의 한국에 대한 비뚤어진 인식을 은연중에 엿볼 수 있었습니다.
중국 싱하이밍 대사의 ‘베팅 발언’은 부통령 시절 조바이든 현 미국대통령의 말을 페로디 한 것으로 보입니다. 2013년 12월 한국을 찾은 당시 조바이든 부통령은 박근혜 전대통령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반대편에서 베팅하는 것은 좋은 베팅이 아니다.”라면서 “미국은 계속 한국에 베팅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6월제 4주 한국갤럽여론조사에서 두가지 문항에 대한 여론 지표가 오늘 제가 쓰는 글과 연계하여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주요국가에 관한 여론:
미국 70%, 중국 20%, 일본 3%, 러시아 1%
◎한반도 경제를 위한 주요국가에 관한 여론:
미국 51%, 중국 39%, 일본 5%, 러시아 1%
국가간 경쟁에서 자신을 지킬 수 있는 무기는 대략 세가지 정도가 있습니다. 첫번째 무기는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의 뜻을 따르지 않을 때 불이익을 줄 수 있는 강제력 입니다. 두번째 무기는 다른 나라가 우리나라의 뜻을 존중해줄 때 보상을 해 줄 수 있는 교환력입니다. 세번째 무기는 우리나라가 하는 일이 옳다고 남들이 인정하고 상대국이 스스로 존경하는 나라를 따르게 하는 권위입니다. 강제력과 교환력을 하드 파워라고 합니다. 반면에 많은 사람들이 승복하는 이념, 모두가 지키는 윤리도덕과 보편적인 인권 그리고 우월한 문화를 통한 국제사회의 평화로운 연대와 상호협력을 소프트 파워라고 합니다.
강제력과 교환력은 미국과 중국이 비슷한 수준일 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공산전체주의 이념을 국가의 지도 이념으로 하는 중국의 소프트 파워는 자유민주주의 이념의 본산인 미국에 비해 현저하게 단점이 많고 취약합니다.
국가의 생존 전략은 국가공동체의 안전, 국가공동체의 풍요 그리고 국가공동체 구성원의 자유의신장을 염두에 두고 상호발전에 도움이 되는 나라와 선택적으로 이루어져야만 할 것입니다.
최근 미국의 움직임을 보면 decoupling(관계단절)이 아니고 derisking(위험관리)에 주안점을 두고 중국과 치열한 외교를 통한 경쟁과 공존 노력을 병행할 것으로 보입니다. 안보 문제는 미국과 일본과 협력을 강화하고 그러나 경제 문제는 감정을 앞세우기 보다 상호 이익이 되는 선에서 사안별로 중국과 실용적인 관계를 유지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닌가 싶습니다.
1905년 11월 을사늑약과 1910년 8월25일 한일합병으로 한국이 망하는 것을 보면서 중국의 대표적인 지식인 양계초(梁啓超)는 조선멸망의 원인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비판했습니다:
첫째, 한국황제가 잘못된 자질을 가지고 있으며, 동시에 전제 정치 자체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둘째, 한국의 지배층은 오직 개인만 알 뿐 국가를 알지 못하며, 놀고먹기만 할 뿐 실질적인 일은 전혀 하지 않는 존재라고 지적했다. 끝으로 한국인은 자립하지 못하고 남에게 의지하는 천성을 가지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습니다
반면 싱가포르(Singapore)의 전 총리 리콴유는 자신의 저서 싱가포르 이야기(The Singapore Story)에서 다음과 같이 한국인의 저항 정신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한국인은 일본이 한국을 통치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항을 멈추지 않았다. 일본인은 한국인의 풍습, 문화, 언어를 말살하려 했지만, 민족적 자부심을 갖고 잇던 한국인은 굳은 결의로 야만적인 압제자에게 항거했다. 일본은 수많은 한국인을 죽였지만 그들의 혼은 결코 꺽지 못했다.”
반면 리관유 전 총리는 타이완 등의 다른 나라의 저항 정신의 부족에 대해서 비판했습니다:
“중국,포르투갈,네데란드, 일본이 차례대로 지배당한바 있는 타이완은 이민족 상전들에게 별달리 저항 하지 않았다. 또한 일본이 싱가포르와 말라야를 계속 지배했다면 아마 50년안에 그들은 타이완에서 했던 것처럼 식민화에 성공했을 것”이라고 섰습니다.
리콴유는 한민족이 빌미론을 극복하고 위기관리의 역사성을 실증한 당당한 민족이라는 점을 찬양하며, 이(異) 민족과의 대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죽기를 무릅쓰고 끝까지 싸우는 정신과 기계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초강대국인 미국과 신흥 강대국인 중국이 경쟁하는 지금도 한반도의 지정학적 구도는 100여년전조선과 큰 틀에서 별로 변화가 없는 것 같습니다. 한반도를 둘러싼 미국,중국, 일본의 합종연횡의 힘겨루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맹자(孟子)에서 양혜왕상편의 장구를 보면 제나라 선왕이 맹자에게 “이웃나라와 사귀는데 지켜야 할 도리가 있습니까?’ 라고 묻자 맹자가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 대국의 통치자인데도 소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소국의 통치자로서 대국을 섬기는 자는 하늘의 이치를 경외하는 사람입니다. 하늘의 이치를 즐겁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천하를 보전할 수 있고, 하늘의 이치를 경외하는 사람을 나라를 보전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이제 더 이상 100년전 그 못난 조선이 아닙니다. 이제 대한민국도 종합국력이 세계 6위로 평가받고 있는 지구촌의 당당한 모범국가 입니다. 따라서 중국과의 관계에서 조공-책봉을 받던 옛날 옛적에 소-대국관계에서 탈피하여 대등한관계에서 상호 이익을 도모하는 선린외교를 펼쳐야 공정하다고 생각합니다. 중국도 이제 대한민국을 국제외교무대에서 대등한 파트너로 인정하고 서로 예의를 지키 면서 호혜적인 선린외교를 펼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북송시대 문인으로서 당송 팔대가(唐宋8大家)의 한사람인 증공(曾鞏)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역사를 배우는 것은 장차 한시대의 잘잘못을 밝히기 위해서이다.
夫學史者 將以明一代之得失也
최근 싱하이밍 대사의 “베팅”망언을 계기로 100여년전 좌절한 조선의 근대와 중국의 간섭에 대해서 되 새김질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