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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략 난감”, “겁나 피곤해요”, “가슴은 므흣하던가”, “완소 훈남”, “코디가 안티인가 봐”, “탄력받으셨어”, “어이가 상실되네”. 이상은 중·고등학생의 대화가 아니다. 인터넷 게시판을 장식한 말 역시 아니다. <마리 앙투아네트>에 등장한 자막들이다. ‘엽기, 고음불가, 빤따스틱’ 등의 단어들이 튀어나오는가 하면, 숙모들이 마리 앙투아네트를 보며 비웃듯 내뱉은 ‘She looks like a child’가 ‘언제 키워 잡아먹냐’로, 마리 앙투아네트가 아이를 가질 리 없다는 뜻에서 사용한 ‘This is not dangerous’가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요’로 둔갑한다. ‘This is ridiculous’를 ‘대략 난감이네요’로, ‘I’m exhausted’를 ‘겁나 피곤해요’로, ‘How was her bosom?’을 ‘가슴은 므흣하던가’로 번역한 것과 같은 이치다. 록음악을 삽입하고 컨버스화를 보여주는 등 마리 앙투아네트의 삶을 현대적인 시각으로 재해석한 영화라 하더라도 시대극에 어울리지 않는 과도한 자막이라는 의견이 대세다.
여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미로스페이스와 하이퍼텍 나다에서 상영 중인 <마리 앙투아네트>는 와이드 릴리즈되는 블록버스터들과 달리 두벌의 프린트만을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다른 영화였다면 으레 진행했을 자막 수정 작업은 축소됐다. 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쪽은 “이번 영화는 굉장히 드문 케이스”라며 “자막번역가의 초벌번역본이 거의 그대로 필름에 찍혔다. 회사의 의도와는 다른 부분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번역가 또한 “수정 작업이 반영되지 않은 초벌번역본이 걸릴 줄은 몰랐다. 그쪽과 처음 같이 작업하는 것이라 잘하려는 마음이 지나쳤다. 그 상태로 상영했다면 너무 과하다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일반적으로 초벌번역본은 내부시사를 거치며 적어도 한두 차례 수정하는 것이 정석이다. 몇번씩 다듬은 자막에서조차 미세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고 직배사 혹은 수입사와 자막번역가간의 의견 조율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단어를 하나 바꾸자”부터 “이 부분은 더 재미있게 만들자”, “성격에 맞춰 이 캐릭터는 존댓말을 쓰고 저 캐릭터는 반말을 쓰게끔 하자”는 식의 논의까지 이뤄지고 또 반영된다.
문제는 <마리 앙투아네트>를 제하더라도 의역에 집중한 나머지 불쾌감마저 일으킨 영화들이 이미 상당수 눈에 띄었다는 점이다. 최근 작품 중 가장 대표적인 예로 2006년 12월 개봉한 <박물관이 살아있다!>를 꼽을 수 있다. 이 작품에는 당시 개그 프로그램에 등장했던 “옳지 않아”, “열라 짬뽕나” 등의 유행어가 나오는가 하면 우리나라 마술사인 이은결의 이름을 맥락없이 인용해 원성을 샀다. 물론 이를 단순히 자막번역가 개인의 잘못으로 돌리기는 힘들다. 일부 직배사는 자사의 특성이 뚜렷한 자막을 선보이기도 하는데 클라이언트의 제안을 무시할 수 없는 번역가로선 해당 회사의 방침을 충분히 반영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이십세기 폭스코리아는 유머를 가미한 재미있고 간결한 자막을, 워너브러더스코리아는 원본에 충실하며 너무 압축하지 않은 자막을 선호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와 달리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의역한 자막이 도리어 불편함을 자아냈던 경우도 있다. <스타워즈> 시리즈에서 ‘드로이드’를 ‘로봇’으로, <반지의 제왕: 반지원정대>에서 위대한 선조의 이름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 ‘엘렌딜’을 ‘어림없다’로 번역한 것은, 좀더 쉬운 자막을 위한 번역자의 배려였다 할지언정, 결국 영화의 텍스트를 망치는 행위였다고 일부 관객은 지적한다.
물론 자막번역이 말을 다루는 작업임을 염두에 둘 때 하나의 자막이 모든 관객을 만족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예를 들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와 <슈렉> 시리즈의 자막은 영화의 코믹함에 일조했다는 호평을 얻었지만 한편으로 원작에 충실하지 않았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었다. 관객 각각의 배경지식이 다를뿐더러 영화 자체에 대한 이해도 역시 높아야 하기에 자막번역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추측과 달리 결코 쉬운 작업이 아니다. SF나 판타지, 전쟁, 의학, 종교영화 등 전문용어가 비일비재한 작품들은 무엇은 그대로 삽입하고 무엇은 풀어 써야 할지, 또 과감하게 생략해야 할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보가 부족한 관객을 배려하면 마니아들이 반발하고 마니아층을 우선시하면 다른 관객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항의하는 일도 빚어진다. 한 관계자는 “<스파이더 맨> <스타워즈> <반지의 제왕> 시리즈처럼 원작이 있거나 마니아가 있는 작품들은 더욱 그렇다”며 “내부적으로도 잘된 번역과 그렇지 않은 것을 가늠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또 다른 어려움은 환경적인 한계다. 개선된 관람 환경에 힘입어 세로에서 가로로 자막의 형태가 바뀌었고 글자수도 띄어쓰기를 포함해 10자 내외에서 13자 내외로 늘었지만 근본적인 제약은 여전히 존재한다. 특히 타 장르에 비해 대사가 많은 로맨틱코미디나 코미디물은 의도하지 않더라도 상황에 따라 의역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웃음의 코드가 비슷하지 않으니 대사를 한국 문화에 맞게, 한국어에 맞게 완전히 새롭게 재창조해야 하는 일도 종종 생긴다. 들쭉날쭉한 상영 스케줄과 개봉일자에 맞춰 결정되는 작업 기간 역시 고역일 수 있다. 극장에 걸리지 않은 작품은 외부로 유출하기를 꺼릴 수밖에 없거니와, 회사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나 전세계 동시개봉인 영화는 여러 번 영화를 보고 수정하는 일 자체가 불가능하다. 때문에 꼼꼼하게 자막을 뜯어보며 10번 이상 수정한 영화가 있는가 하면 초벌번역과 간략한 수정 작업만을 거친 영화도 있을 수 있다. 같은 번역가가 작업한 자막이라도 완성도에 편차가 있는 원인은 여기에 있다.
자막번역이 전문적인 작업인 이상 한정된 시간 내에 최대한 완벽한 자막을 생산하는 것은 번역가의 몫이다. 무엇이 완벽한 자막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분분할 수 있으나 자막이 번역자만의, 이를 수입한 회사만의 작품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 기억해야 한다. 근래는 내부 직원이 자막을 번역하는 경우가 사라졌고 일부를 제외하면 번역가의 실명을 크레딧에 명시하는 등 자막번역에도 책임과 프로의식을 요구하는 경향이 짙어졌다. “새로운 번역가의 발굴을 위해 작은 영화는 되도록 새로운 사람에게 맡기려고 한다”는 한 관계자의 말처럼 직배사와 수입사의 지속적인 노력도 요구된다. 이미도, 조상구 이후 김은주, 박지훈, 성지원, 홍주희, 이진영 등이 실력을 발휘하고 있지만 극장영화를 꾸준히 번역하는 이들은 열 손가락을 채 넘지 못한다. 지나친 의역으로 원본을 훼손하는 사례, 영어번역을 하는 번역가가 다른 언어를 번역하는 아마추어적인 사례가 없어야만, “편하게 다가가는 자막을 좋아하는 요즘의 추세”를 자막의 완성도에 대한 기대치가 높은 관객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자막번역에는 훈련이 필요하다”
자막번역가 김은주씨 인터뷰
-지금까지 어떤 작품들을 주로 번역했는지.
=23년 정도 일했다. 초창기에 <나 홀로 집에>를 했다. 그걸 하면서 <시스터 액트> <미세스 다웃파이어> 등 코미디물을 많이 했던 것 같다. 흔히 기억할 영화는 <해리 포터> <매트릭스> 시리즈고 가장 최근작이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다. 요즘은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도, 영어 잘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영화를 이해하는 것과 그걸 자막으로 표현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자막번역을 지속적으로 하기 위해선 훈련이 필요하다.
-직배사나 수입사에서 특별한 요청을 하는 경우가 있나.
=과학 용어가 많이 나오는 영화 등은 쉽게 해달라고 하기도 한다. 나는 경력이 많은 편이라 대부분 믿고 맡기는 편이다. 영화사마다 원칙이 다르지만 초벌번역본에선 수정하고 싶다는 부분이 항상 있게 마련이다.
-자막의 속성상 문장을 축약해야 하기에 힘든 점이 많을 듯하다.
=세로로 작업할 때는 정말 힘들었다. 항상 계산해서 글자수를 만들어야 하고 어쩔 수 없이 거두절미하는 경우도 생긴다. 개그적인 포인트가 필요한 영화는 그런 것도 동시에 살려야 하고. 가끔씩은 대사 하나하나가 넘어야 할 산같이 느껴지더라. (웃음)
-어떤 영화의 자막번역이 특히 어려운가.
=제일 힘든 영화는 대사가 많은 것이지만 대본 자체가 어려운 작품도 있다. 예컨대 고어가 등장하는 <오만과 편견> 같은 영화들. 18세기 영국 귀족들을 다룬 것이라서 현대 대사가 아니었다. 얼마 전에 무척 고생했던 영화는 앨 고어 미국 전 부통령이 나오는 <불편한 진실>이다. 환경을 다룬 논문이라 해도 될 정도로 내용이 어려웠고 대사도 무척 길었기 때문에 뒷대사까지 고려해 자막을 만들어야 했다. 시간여행을 다룬 <데자뷰>를 번역할 때는 양자물리학 이야기가 나와 자료를 뽑아 따로 공부하기도 했다.
-어떤 번역가는 자신의 자막을 수정하는 것을 꺼리기도 한다고 들었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공동 작업으로 이뤄진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예술이기도 하지만 또 흥행을 위한 것이지 않나. 나도 그렇지만 한 영화의 흥행을 위해 많은 사람들이 협업하고 있다. 주장해야 할 부분은 주장하되 흥행에 도움이 되고 합리적인 요청이라면 충분히 받아들인다는 입장이다.
(글) 장미 rosa@cine21.com
첫댓글 솔직히 영화 번역이 제일 쉬운거 아닌가? 스크립터 다 있겠다... 내가 보기엔 거저먹기 하는 사람들이 제일 폼은 잡는것 같다. 영화는 스크립터 있겠다 영상 있겠다... 스크립터로만 의미가 좀 애매하면 영상을 보면 더 힌트가 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