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바냐 3: 14
지난 년말에 미국 CNN 방송에서 올해의 영웅으로 뽑힌 사람이 있습니다. 콜롬비아의 헤이손 아리스티사발이란 사람입니다. 사진 한번 보실까요? 보시다시피 그는 뇌성마비 장애인입니다. 그런데 ‘골짜기장애인협회’라는 장애인 지원 재단을 만들어서 15년간 1000명 이상의 콜롬비아 장애 청소년에게 교육 및 의료를 지원해 왔다고 합니다.
헤이손은 콜롬비아의 칼리라는 빈민촌에서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한 집에서 태어났어요. 그것도 정상적인 몸도 아니고 뇌성 마비의 몸으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늘 이런 질문에
부딪혔다고 합니다. 왜 하나님은 나를 이 가난한 집에서 더군다나 장애인으로 태어나게 했을까?
오늘 본문의 주인공인 스바냐 선지자의 마음이 아마 그와 비슷한 마음이었을거에요. 선지자 자신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진노앞에 있는 이스라엘을 보며 분명히 너무 힘들어 했을거에요.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 하셨어요. 앞의 1장 10절 에 나오는 말씀이에요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날에 어문에서는 곡성이 제 이구역에서는 부르짖는 소리가 작은 산들에서는 무너지는 소리가 나리라” 이대로 간다면 통곡하고 울부짖고 무너지는 소리가 온 예루살렘과 유대를 덮게 된다는거지요.
선지자는 그 날을 알리며 목이 터지도록 외치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백성들은 들은척도 안해요. 그러니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그래도 하나님 백성인데 꼭 이런 자리까지 오게 하셔야 할까? 백성들 잘되게 하려는 하나님 본심을 모르는게 아니에요. 그렇지만 눈앞에 보이는 그 큰 화를 생각하며 너무나 힘들고 더 가슴이 아팠을거에요. 분명 그 속에 많은 질문이 있었을것입니다. 내용은 다르지만 하나님을 향한 아픈 마음은 앞의 헤이손이 했던것과 별반 다를바 없을거에요.
여러분 우리도 가끔 이런 비슷한 질문하지 않습니까? 개인마다 가정마다 사정 형편은 다 다르지만 왜 하나님은 이런 원치 않는 자리에 나를 이끄실까? 인생 살면서 그런 질문을 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아마 없을거에요. 앞으로도 세상 끝날때까지 가끔씩 분명 있을것입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와중에서 이스라엘에게 한 줄기 빛을 주십니다. 그 빛을 받은 자들을 뭐라고 부르시느냐면 남은자들이라고 하세요. 그런 혼란과 파멸속에서 멸망치 않고 남겨 두시는 자들이 있다는거에요. 본문 앞에 나오는 12절 13절을 함께 읽을까요? 12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
하나님께서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남겨 두시겠다고 하셨는데 그 말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가난하고 곤고한 자들을 의미하는 말이에요. 마음이 가난하다는것은 마음이 비고 비인것입니다. 하나님 아니면 살 수 없다는 애절한 마음이에요. 이젠 정말 다른 무엇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으로서만 내 마음이 부해 질 수 있고 내 육신이 회복 될 수 있고 내 영이 살 수 있다는 그런 고백 의 마음이에요.
곤고한 마음은 애통하는 마음입니다. 자신을 바라보며 아파하는 마음이에요. 내가 얼마나 교만하였던가? 내가 얼마나 하나님 대신 다른 주인을 섬겻던가? 내 속에 얼마나 하나님 싫어 하신는것 가득 안고 살았던가? 그리고 그 모든것 주님 발아래 내려놓고 엎드려서 회개하는 사람 이에요. 제가 좋아 하는 찬양 가운데 가사가 이런 찬양이 있어요. “캄캄하고 어두운길을, 홀로 걷다지친 이몸이, 무거운 짐 병든 마음을 모두주께 맡기었다오 온갖죄와 허물속에 교만하던 그길버리고 우리주님 만나던날 눈물만 흘렸다오” 오래전인데 그때는 눈만 뜨면 불렀던 생각이 납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이런 마음이 가난한 사람을 은혜로서 구원하시고 이런 마음이 곤고한 사람을 사랑으로서 위로하십니다. 예수님께서도 말씀 하셨죠? “마음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것임이요.” 이런 사람들이 남은자들이에요. 하나님께서 남겨 두신 사람들입니다. 여화와를 믿고 의뢰하는 사람들이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보호하시겠다고 하시는거에요. 여러분 우리 모두가 남은자들임을 믿습니까? 아멘!
그래요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그 분의 보혈로 인하여 남겨진 자들입니다. 그 이름을 믿고 의뢰하는 자들이에요. 그러기에 우리를 보호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반드시 성취됩니다. 유월절 문설주에 바른 어린양의 피로 인하여 죽음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을 뛰어 넘었듯이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이 우리를 피해 가는거에요. 어떤 환난의 구렁텅이가 우리 앞에 벌어질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그 소용돌이에서 구원하시어서 남겨 두시겠다는거에요. 왜냐면 사명이 있거든요. 죽은것 같은 세상의 그루터기에서 이 남은 자들로 인하여 복음의 새싹이 솟아납니다. 줄기가 돋아나고 하늘나라의 열매가 맺히거든요.
이런 환난과 아픔속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으로 남겨진자들을 고린도전서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보배를 질그릇에 가진자로 표현합니다. 우리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남은자 들이에요.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않는다.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않는다. 핍박을 받아도 버린바 되지 않느다. 거꾸려 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않는다. 여러분 이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2017년 올해 한해 여러분의 살아 있는 간증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을 보니까 이런 남은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두가지 부탁을 하십니다. 먼저 우리 14절 읽으실까요? 14시온의 딸아 노래할찌어다 이스라엘아 기쁘게 부를 찌어다 예루살 렘 딸아 전심으로 기뻐하며 즐거워할찌어다
여러분 하나님을 찬양하시기 바랍니다. 기쁘게 그 이름을 늘 노래 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늘 찬양할려면 가사도 많이 외워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지난번 어떤 식사 모임에서 찬양을 한곡 인도를 했습니다. 악보가 없어서 많이 부르고 가장 잘 알것 같은 찬양을 부르자고 했습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였어요. “여기에 모인 우리” 그리고 저는 가사가 햇갈리는거에요. 다른 분들은 조금 더 불렀어요. “주의 은총 받은자여라” 그런데 그 다음부터는 “음음음” 제가 얼른 스마트폰 찾아서 가사를 불러 주었어요. 희얀한것은 멕시코에는 찬송가 가진 사람이 별로 없어요. 프로젝터도 안 쏩니다. 그런데 그 수 많은 찬양을 다 외워요. 오하까 깊은 산속의 지붕만 있는 교회에서 한 1시간 이상 찬양만 하는데 모든 교인이 다 외워서 하는거에요.
우리교회 모두가 찬양을 좋아하고 또 잘합니다. 올해는 우리 교회에 더욱 이 찬양의 소리가 풍성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중요한것은 그 찬양에 우리의 마음을 다 담아 드려야 하는거에요. 영혼을 담아야 합니다. 주님 받으시기에 합당한 찬양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원래 찬양이란 말이 노래만 뜻하는게 아니에요. Praise the Lord주님의 이름을 높이는거에요. 감사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노래로 악기로 춤으로 연극으로 주님께 올려 드리는 제사에요.
15절 보니까 우리의 찬양이 내가 노래를 좋아하고 춤을 좋아하고 뭐 그런 내용이 아님을 알 수가 있어요. 너의 형벌을 제하였고, 너의 원수를 좆아 내었으며라고 과거형으로 쒸워져 있는데 사실은 지난 일이 아닙니다. 앞으로의 일이에요. 일어날 입입니다. 그런데 그속에서도 찬양하라고 하십니다. 왜요? “이스라엘의 왕 이신 하나님께서 너희중에 있으니” 아멘…. 성경에는 이런 멋진 찬양의 장면들이 많이 나오죠?
여호사밧왕이 도무지 이길 수 없는 전쟁을 맞았어요. 누가봐도 질 수 밖에 없는 전쟁이었어요. 오금이 저릴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금식을 선포하고 기도한 후에 그 제일 앞에 찬양대를 세우고 적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여러분 그 찬양이 어떤 찬양이었겠어요. 그들중ㅇ 함께 하시겠다는 하나님을 믿고 뜨겁게 드리는 찬양이었어요. 하나님께서 그 찬양을 받으시고 마침내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이깁니다.
다윗은 춤으로서 찬양을 했어요. 법궤를 찾은 기쁨에 옷이 다 헝클어져서 신체가 보일 정도로 춤을 추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이 그냥 기뻐서 막춤을 춘게 아니에요. 성경보면 법궤를 옮길때 법궤맨 자들이 6걸음을 옮기고 멈추었다고 했어요. 다윗이 소와 살진것으로 제사를 지냅니다.그리고 여호와 앞에서 힘을 다하여 줌을 추었다고 기록하고 있어요. 어떤 학자들은 이 구절을 매 여섯 걸음마다 제사를 드리고 온 힘을 다하여 춤을 추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 길이 약 20KM되는 길이에요.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나님께 죽을 힘을 다하여 춤으로서 찬양한거에요. 그리고는 온 백성과 함께 즐거이 찬양하며 나팔을 불고 춤추며 궤를 날랐다고 합니다. 법궤를 옮기면서 길위에서 뜨거운 찬양예배를 드린거에요.
여러분 이 찬양의 장면이 사무엘하 6장에 나오는데 그 다음 7장에 무슨일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바로 그 유명한 언약장이에요.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그의 후손을 통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그 왕국에 대한 언약을 그와 함께 맺으십니다. 찬양의 삶이 얼마나 중요한지 우리는 알 수가 있어요. 여러분 주께 드리는 감사와 영광의 찬양이 여러분의 모든 삶속에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남은 자들에게 또 주시는 부탁이 있어요. 우리 16절 함께 읽을까요? 16그 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
그날은 백성들에게 닥치는 아픔의 날입니다. 고통의 날이고 심지어 극심한 환난의 날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남은자들은 어떻게 하라고요? “두려워 하지 말고 네 손을 늘어 뜨리지 말라”
지난 한 주간 사실 저는 밤마다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앉아 있거나 서 있으면 그래도 괜찮은데 누우면 목에서 부터 왼쪽 어깨까지 엄청난 통증이 오는거에요. 진통제를 먹어도 소용이 없어요. 한 시간을 못자고 깨고 그러면 일어나서 앉습니다. 한 20-30분쯤 지나면 가라 앉아요. 그러면 또 눕고 좀 있다가 또 일어나고 밤새 그렇게 반복을 하는거에요. 누웠다가 자리에서 일어나는것도 이게 보통 일이 아닙니다. 일어나기는 일어나야 하는데 목을 못 들어요. 으악 소리를 몇번 지르면서 어떻게 뒤척이다가 간신히 일어납니다. 겨우 일어나 앉으면 정말 식은 땀이 흐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눈을 뜨고 앉으니까 눈이 쓰리고 졸리긴하고 아무것도 못하잖아요. 할 수 있는게 하나 있더라고요. 기도였습니다. 덕분에 깜깜한 속에서 기도 많이 했습니다. 회복시켜 달라고도 기도하고 또 이것 저것 많이 기도 했어요. 그때는 아파서 손도 못 들어요. 대신 마음의 손을 들고 기도했습니다.
기도 하면서 많은것을 깨달았어요. 무엇보다 먼저 우리가 누워서 잠 잘 수가 있는것도 참 복이구나 하는것 느꼈어요. 그래서 간간이라도 누워서 잘 수 있는것을 감사했고 지금까지 우원서 자는것이 감사의 조건인것 몰랐는데 알게 해 주셔서 감사하다고 기도했어요. 그러먄서 전에 어떤 분이 간증하던게 떠올랐어요. 직장암으로 고생하시던 분이신데 제일 힘이 드는게 화장실에서 큰일 보는거래요. 안 먹으면 죽고 무엇이든 먹으면 일을 보애야 하는데 그때마다 화장실에서 몇시간을 고통속에서 몸부림을 친다는거에요. 여러분 누워서 잘 수 잇는것, 화장실에서 그런 고통 안 받는것 우리 감사하며 삽시다.
서두에서 말씀 드린 아리스타사발은 어릴때 의사가 그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 아이는 절대 아무 곳에도 올라서지 못할 거예요.” 그래요 그는 물리적으로 높은곳에는 절대 올라가지 못했어요. 그런데 2016년 CNN 선발 올해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감동 받은 사람들의 짐심어린 박수를 받고 존경의 찬사를 받는 높은 자리에 올라간거에요.
그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릴때 왜 하나님께서 나를 이런 장애의 몸으로 태어나게 하셨을까? 심지어 원망하며 많은 질문을 하였는데 이제 확실히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장애 청소년과 그 가족들을 도와 그들 꿈의 연결 고리를 만들어 주라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것입니다.” 그리고 또 이런 부탁을 하였어요. “어쩌다 커다란 문제에 직면했을 때 우리는 절대 해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곤 합니다. 하지만 작은 일부터 시작하세요. 작은 일을 바꾸는 것을 돕는 것부터 시작하면 수많은 생명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여러분 두손 늘어 뜨릴 일이 참 많으시죠? 그러나 어떤 형편속에서도 여러분의 손을
늘어 뜨리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어려운 환경을 맞고 있는가 고통속에 있는가 그것보다 더 중요한것은
우리가 손을 느러 뜨리느냐 아니면 드느냐 하는것입니다. 우리의 손은 기도하는 손입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며 높이 들리우는 손이에요. 여러분 모세가 그렇지 않습니까? 광야에서 아말렉이라는 적군을 만났어요. 그들은 이제 막 애굽을 탈출했습니다. 군대 편성도 안되었어요. 훈련도 무기도 없었어요. 애굽에서
양치면서 노예같이 부역만 한 사람들이 무슨 전쟁의 경험이 잇겠어요. 오합지졸일 뿐입니다. 더군다나 광야의 지형도 익숙치를 않아요. 아무런 전쟁 준비가 안되었습니다. 여러분 그때 모세가 산위에서 어떻게 했습니까? 산 위에서 손을 높이 들었어요.
너무 힘들어 하자 아론과 홀이 옆에서 붙들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겼잖아요.
여러분 우리의 손을 늘어 뜨리지 말고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드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늘을 향하여 높이 들리운 여러분의 손이 이런, 또 함께 기도로서 붙드는 사랑하는 성도들의 손이, 두손을 늘어 뜨리고 싶고 또 늘어 뜨릴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조건속에서 우리를 강건하게 세우고 넉넉히 일으켜 세우실것을 믿습니다.
이렇게 주님을 찬양하며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높이든 남은자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려 주십니다. 우리 17절 같이 큰 소리로 읽을까요? “17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성경보면 우리 믿음의 선배들도 때로는 닥친 일들을 두려워 하기도, 미래를 두려워 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그런 시간들도 있었음을 봅니다. 그때마다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은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않으리라” 하는 약속의 말씀 이셨어요. 또한 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반드시 구원의 손길을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도 아골골짝에서도 우리를 인도해 내시는 하나님이세요. 더군다나 마지막 심판날에는 영원한 죽음에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시지 못하신답니다. 우리를 잠잠히 사랑하신답니다. 그리고 저와 여러분으로 인하여 즐거이 노래하시며 기뻐 하신대요. 왜냐면 정말 사랑하는 아들 딸이거든요. 독생자 아들을 주시기까지 그렇게 사랑한 백성이거든요. 그러기에 여러분 그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손을 절대 놓지 않으십니다. 영원한 위 생명의 아버지께서 여러분의 손을 꼭 붙둘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붙들고 계실진대 우리는 쓰러지지 않습니다. 넘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쓰러지고 넘어져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손을 꼭 붙잡고 계시는 한, 우리는 오뚜기처럼 다시금 일어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도 주님손 뿌리치지 말고 그 분께 맡기고 꼭 가시기를 바랍니다.
말씀 맺습니다. 여러분 이제 새로 시작되는 2017년 어떤 상황속에서도 우리 손을 늘어 뜨리지 맙시다. 춤추고 노래하며 주님의 이름을 늘 즐겁게 부릅시다.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시고 하나님이 함께 하시고 우리 손을 붙들고 가시기에 기죽을 필요 없습니다. 두려워 할 필요 없어요. 복음 전하며 예수 이름 외치며 십자가의 길을 당당히 가시기를 바랍니다. 역사를 운행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여러분의 모든 길을 인도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가운데 계셔서 우리를 천국의 행복으로 이끄시는 이 하나님으로 인하여 오직 그분께 찬양과 경배와 영광이 드려지는 복되고 아름다운 우리 도두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