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손자의 벌초
장인 장님 두 분께서 돌아가신 지도 어느새 20여년이 흘렀다. 두 분은 맏아들처럼 가정 살림을 돌보던 둘째 따님 마리아의 아들 두 외손을 어느 손자 손녀보다 사랑하셨다. 다 커서 성인이 된 두 외손은 제사 때나 명절 차례 때면 집안 어른들로부터 두 분이 어릴 때 쏟아 준 사랑이야기를 생생하게 들으며 그리움과 추모의 정을 남달리 길러 오던 터이다.
마리아가 불의의 날벼락 같은 교통사고를 당해 기나 긴 입원 생활을 하게 되었다. 마리아는 병상에서 아버지 어머님을 더 그리워하며 퇴원하면 제일 먼저 성묘할 것을 다짐해왔다. 근 3개월의 입원생활을 마치고 보험과 병원 측의 강요(말로는 권유)에 따라 간병인의 도움이 없이는 기동 자체가 어려운 몸이지만 퇴원하게 되었다. 하루라도 빨리 그리운 집으로 가고 싶은 마음에다 하루라도 빨리 성묘를 하게 될 것이라는 바람을 가지고.
퇴원을 한 후 성묘를 가고자 하는 마음 오직 하나로 통증 및 재활통원치료를 열심히 아주 열심히 다녔다. 그렇게 10여일을 통원치료를 다니고는 성묘를 가고 싶다며 주위 사람들에게 통사정하다 시피 했다. 바오로는 물론 주위 사람들은 그런 불편한 몸을 가지고 어떻게 성묘를 가느냐며 말리고 말렸다. 그러나 마리아는 그러면 아래에서 아버지 어머님 산소를 지켜보고라도 있을 테이니 그동안 ‘내가 준비한 조화라도 네가 대신 바치고 오면 될 것이 아니냐?’며 성묘를 꼭 하고 싶다며 목을 가렸다.
추석이 20여일 남은 산소는 아직 벌초가 되지 않고 있었다. 동네에서 지난 날 산지기를 하던 농가 옆 농로를 따라 산소에 오르는 길은 잡목과 잡초가 우거져 오르기가 무척 어려운 상태. 마리아는 무더운 햇볕이 내려쬐는 차 안에서는 빨리 다녀오라며 그치지 않고 손을 흔들었다. 반바지 반소매 가벼운 옷차림으로 문안차 마리아를 찾았던 바오로는 작심하고 잡목과 잡초를 막대기 하나로 쳐내며 산소에 올랐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님, 두 분의 남다른 사랑을 받고 자란 둘째 따님의 아들 외손자 아무개입니다. 그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합니다. 사고를 당해 장기 입원 퇴원한 어머님이 허락하지 않는 몸이지만 성묘하길 목마르게 바라시어 이렇게 함께 왔습니다. 그러나 산소에 대한 벌초도 아직 이루어지지 않아 올라 올 수가 없는 처지라 저 혼자 올라와 어머님이 준비해온 조화를 바칩니다. 외할아버지 외할머님, 벌초를 말끔히 한 다음 어머님와 다시 함께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 때까지 안녕히 계세요!’
이렇게 조화를 바치고 성묘하고 돌아 나오는 길에 처형 내외가 사는 동네를 찾았다. 큰 동서는 산소에 다녀왔다는 말에 놀라며 ‘아직 벌초도 하지 않았는데..독 오른 뱀과 벌레들이 많아 아주 위험한 때’라며 물리지 않았다니 천만 다행이라며 추석을 일주일 쯤 앞두고 벌초할 셈이라고 했다.
그리고 텃밭에서 손수 길러 땄다는 참외와 오전에 와서 부모가 좋아하는 오리훈제 점심을 사주고 간 대전 외동딸이 사왔다는 싱싱한 포도를 내놓아 함께 먹으며 어려운 농사짓기와 건강이이야기를 나누었다. 큰 동서는 사는 곳이 세종시에 편입되면서 주변 땅 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건축 붐이 인다며 흙담 넘어 이웃 건축현장을 가리켰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요즘은 산소벌초 대행이 많다는 이야기를 한 바오로는 ‘한번 알아봐야겠다’고 혼자 말처럼 했다. 다음 날 통원재활치료 중에 바오로의 전화를 받았다는 마리아는 ‘그 놈 생각하는 게 남다르다’며 벌초 대행하는 할아버지를 산소까지 안내해 가 3시간쯤 했는데 거의 다 끝나간다‘고 알려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벌초가 끝나면 이발을 말끔히 끝난 산소 모습을 찍어가 보여주겠다. 고도.
다음 날 벌초소식을 들은 바오로의 형 발렌티노는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다음에는 제가 꼭 벌초할 게요!’ (2013. 9. 14.)
첫댓글 이렇게 명절 때 조상님 산소를 찾아뵙는 훈훈한 예절 풍속이 앞으로 몇 세대까지 이어질 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