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최민식
불혹의 무당, 연기의 신과
춤추다
■ <파이란>으로 절정의 연기 보여준 최민식의 영화 세상
배우들의 사진 촬영 장면을
구경하다보면 연극계 출신 혹은 전업 영화배우들과 주무대가 TV인 연기자들의 다른 점 한 가지를 발견하게 된다. 물론 전부는 아니고
대체로 그렇다. 연기 경력이나 인기도에 관계없이, 전자에 속한 연기자들은 대개 사진 찍히는 걸 어색해하거나 불편해 한다. 대신
TV에서 주로 활약하는 스타들은 사진기자가 특별한 요청을 하지 않아도 갖가지 표정과 동작을 즉석에서 만들어내는 경우가 많다. 물론
이들도 짧으면 한 시간 길면 서너 시간씩 걸리는 사진 촬영이 즐겁지만은 않겠지만, 연극계 출신에 비하면 그래도 훨씬 자연스럽다.
그들의 이미지에 기대야 하는 영화지로서야 이 편이 더 고마운 건 말할 것도 없다.
최민식은 사진 찍기를 부담스러워하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에게 표지사진 촬영을 요청했을 때 첫반응은, 이미 몇 차례 촬영을 경험했는데도, “혹시 그냥 인터뷰만
하면 안 되겠느냐”는 조심스런 반문이었다. 배우가 사진 찍는 걸 피하고 싶어한다면 언뜻 이상하게 보일진 모르겠지만, 사정을 알고나면
이해가 된다. 감정을 잡으려면 이야기도 있고 캐릭터도 있어야 하는데, 표지 촬영할 땐 아무것도 없이 즉석에서 몇 가지 유형의 표정과
자세를 만들어내야 되니 그게 도무지 적응이 안 된다는 것이다. <파이란>에는 어색하게 웃는 그의 얼굴이 담긴 강재의
증명사진이 몇번 나오는데, 최민식은 관객이 그 사진이 나오는 장면에서 웃는 걸 보고 당황했다고 한다. 웃기려고 찍은 것도 아니고,
그냥 사람 좋게 보이려고 지은 표정이 그렇게 나온 것이다.
온몸으로 우는 울음만이 참
최민식은 느리고 깊은 배우다. 그에게
연기란 어떤 영혼을 몸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다. <파이란>에서 강재가 바닷가에서 파이란의 편지를 읽고 우는 장면은
다섯번만에 오케이가 났다. 그걸로 하루가 갔는데, 최민식 때문이었다. 최민식은 한번의 재촬영을 위해선 한 시간 내지 두 시간이
필요했다. 짓궂은 TV연예프로가 가끔 연기자들에게 요구하는 즉석 눈물 연기의 재주가 그에겐 없다. 우는 연기는 단순히 눈물샘을
작동시키는 일이 아니라, 몸 전체가 하는 일이다. 한번 눈물을 쏟아내고 나서 다시 몸이 울음의 상태로 가기 위해선 그만한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몸이 울지 않는 쿨한 눈물을, 그는 믿지 않는다.
그의 연기인생도 그의 연기처럼 느리고 무거웠다.
몇번의 굴곡을 거쳐, 아주 천천히 정상에 올랐다. TV드라마 <야망의 세월>(1990)로 어지러운 인기의 롤러코스트를
체험했지만, 아주 짧은 순간이었다. 너무 빨리 찾아온 빛이 황망히 사그라든 뒤, 10년 동안 그는 아주 조금씩 움직여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가 지금 서 있는 자리는 당대의 어떤 배우에 의해서도 대체되기 힘들 것 같다. 장르와 비장르의 경계는 물론이고 선과 악,
미와 추의 경계마저 넘는다. <쉬리>의 북한특무대장과 <파이란>의 3류 건달 역을, 한 사람이 연기했다는 건
믿겨지지 않는다. <서울의 달>의 어눌한 노총각 춘섭, <넘버.3>의 ‘왕 또라이’ 검사, <조용한
가족>의 엉뚱한 삼촌, <해피엔드>의 소심하고 무기력한 남편 등 사람들한테 깊이 각인된 그의 배역을 함께 떠올려보면,
그의 연기폭은 한 배우가 이를 수 있는 최대치처럼 보인다.
난 연기자는 무당이라고 생각한다. 연기는
신내림이고. 논리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설명할 도리가 없다. 나도 대학에서 연기를 배웠다. 똑바로 서는 법, 발성하는 법, 선동작
후시선, 선시선 후동작 같은 걸 배웠다. 그런 건 꼭 필요하지만 결국 연기의 보조 수단일 뿐이다. 연기는 신내림처럼 자기의 몸 전체가
무언가를 받아들여야 한다. 무당 정석의 1, 2 같은 책이 있어서 그걸 독파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런 건 없다. 주위에서 장구도
쳐주고 추임새도 넣어주지만 결국 스스로 받아들여야 한다. 작가가 쓴 가공의 영혼을 놓고 토론도 하고 분석도 하고 테크닉도 보충해서
준비할 순 있지만, 그 영혼을 내 몸 안에 집어넣는 요령은 어디에서 씌어 있지 않다. 배우는 무슨 수를 써서든지, 감독이 슛이라고
외치기 전에 그걸 해놔야 한다. 환장할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다.
연기를 넘고 배우를 넘고 나를 넘어
<파이란>의 송해성 감독은 최민식을 두고
“주름도 연기가 되는 배우”라고 했고, <해피엔드>의 정지우 감독은 “정지동작을 찍어도 감정선이 살아 있는 배우”라고
했다. 두 감독은 같은 걸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최민식의 연기는 분석적으로 포착될 수 있는, 혹은 시나리오상으로 특정한 동작과
표정이 지시될 수 있는 영역 너머에 있다. <파이란>의 장례식장 장면은, 빼도 아무 관계없을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벌어지는 일은 강재가 파이란의 영정을 바로 세우고 머뭇거리다 담배 한대 피우는 게 전부다. 그저 ‘뻘쭘함’이란 단어말고는 달리 컨셉을
말하기 마땅치 않은 이 장면은 시나리오상에는 없었지만 최민식의 제안을 감독이 받아들여 삽입된 것이다.
감독의 소망은,
그가 정면승부를 원한다면 그리고 그 소망을 체현할 수 있는 연기자가 곁에 있다면, 이야기 진행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이런 장면들에서
차곡차곡 느낌을 쌓는 것일 터이다. 연기자가 이런 대목에서 감정의 선을 살리는 특별한 요령은 아마 없을 것이다. 기던 아기가 갑자기
설 수 있는 건 몇 가지 요령을 학습해서가 아니라, 모든 근육과 신경과 뼈가 어느 순간 스스로 균형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올해
한국영화의 발견이라고 해도 좋을 <파이란>은 최민식이란 배우의 연기 본능이 찾아낸 빛나는 균형의 순간이기도 하다. 그리고
이건 <해피엔드>에서 아이와 함께 자다 일어나 우두커니 앉아 있는 서민기의 모습에서 이미 예고된 것이기도 하다.
내가 제일
즐겨보는 TV프로는 <병원24시>다. 그게 내 교과서다. 사람을 배우고, 감정을 배운다. 얼마 전엔, 술만 들어가면 개꼬장
부리는 어머니와 함께 사는 젊은 여인 편이었다. 몸이 아픈 어머니가, 딸이 만류하는데도, 또 술이 엉망으로 취해 집을 개판으로
만들고, 여인은 아파트 복도에 앉아서 울더라. 얼굴이 찌그러들면서 울더라. 저런 게 우는 거구나. 저런 게 진짜구나. 내가 해봤자
강재 흉내내는 것밖엔 안 된다. 그저 진짜에 조금이라도 가깝게 가려고 발버둥치는 것밖엔 다른 도리가 없다. 연기에서 테크닉이란 건
정말 보잘것없는 거다. 가끔 얼굴 표정 변화없이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연기를 본다. 그게 쿨하다는 생각이 퍼져 있는 것 같다.
절제미를 과시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물론 그게 아주 적절한 연기인 경우도 없지 않겠지만, 난 그게 테크닉을 위한 테크닉이 든다.
나도 그렇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슬플 때 얼굴이 찌그러지면서 북받쳐서 운다. 꺼이꺼이 우는 것이다. 어떤 훌륭한 연기보다 살아 있는
사람들의 진짜 모습이 언제나 나를 낙심하게 하고 또 배우게 한다.
늙음이
아름다운 남자 “거울 보면 어떤 생각 드세요?”
“아이구, 많이 망가졌지요.” 최민식은 1962년생이다. 나이를 감안해도 주름이 깊은 편이다. 왼쪽 눈밑의 주름은 고등학교 때
깡패친구들에게 얻은 흉터고(이때 이미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는 피투성이인 채로 1시간 동안 성형외과를 찾아다녔다) 미간의 주름은
눈이 나빠 자주 찡그리는 바람에 생겼다. <서울의 달>의 춘섭부터 기억하는 젊은 관객은 믿기 힘들겠지만, 그는 10년 전엔
데뷔 때의 차인표와 같은 이미지, 그러니까 백마 타고 온 왕자였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을 본다면 그때의 이미지를
비슷하게라도 연상할 수 있을 것이다. <파이란>을 본 어떤 관객이 인터넷 사이트에 올린 글에는 “최민식 아저씨가 쭈그리고
앉아 담배 피우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파요. 그새 너무 늙으셨어요”라는 구절이 있다. 최민식의 말도 이 여린 관객의 말도 반쯤 맞고
반쯤은 틀리다. 최민식은 <파이란>을 하기 위해 일부러 더 늙어버렸다. 불과 1년 전에 찍은 <해피엔드>만 봐도
그의 얼굴엔 푸른 기운이 남아 있었다. 물론 카메라의 트릭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최민식이라면 일부러 늙었다고 말하고 싶은 기분이
든다. 스무살 시절부터 연기해야 하는 임권택 감독의 <오원 장승업>을 보면 그가 자연적 나이조차 연기의 품으로 얼마나
완벽하게 끌어들이는지를 판가름할 수 있을 것이다.
최민식은 미남이다. 매끈한 꽃미남이 아니라, 알랭 들롱처럼 주름이
그의 미모를 더욱 풍성하게 하는, 늙음을 느끼는 남자라면 누구나 부러워할 만한 타입의 미남이다. 그러나 <파이란>에서 그는
자신의 미모를 철저히 구긴다. 3류 양아치의 추한 세상에 뒤돌아보지 않고 잠겨버린다. 그래서 그는 늙어버린다. ‘신들림’말고는 적당한
표현을 찾을 수 없는 어떤 경로를 통해 최민식은 우리가 좋은 배우들에게 기대할 법한 이미지의 너비조차 훌쩍 넘는다. 그래서 롱숏이나
미디엄숏으로 잡은 동작의 섬세한 선에서도, 주름의 골까지 드러나는 클로즈업에서도 최민식은 극중 인물의 영혼이 돼버리는 것이다. 두
감독의 말대로 3, 4분을 계속 카메라를 들이대고 있어도 불안하지 않는 이유다. 최민식의 변함없는 표지는 깊은 눈이다. 박무영의
표독한 기운을 내뿜을 때나 강재의 여린 눈물을 흘릴 때나, 인생을 몇번은 산 듯한 아득한 눈매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영화 밖에서
만날 때면 그는 그 깊은 눈을 무너뜨리며 아직도 어딘지 멋쩍어 한다. 최민식은 멋진 배우다.
<파이란> 시사회 때, 지금 서울예대
학장으로 계시는 안민수 선생님이 오셨다. 연기자가 무언가를 알려주신 스승님이다. 인사를 드리니까 “너 옷이 그게 뭐냐. 배우는 멋있게
당당하게 입어야지”라고 하셨다. 아버지가 아들을 야단치듯이. 너무 고마웠다. 영화가 마음에 안 들었거나 내 연기가 못마땅했으면 툭
치고 가셨을 분이다. 동국대 다닐 때 배우는 멋있는 사람, 빛나는 사람이라는 걸 선생님에게서 배웠다. 배우는 멋있는 사람이다. 그래야
한다. 난 아카데미 시상식을 빼놓지 않고 보는 편이다. 내겐 배우라는 직업을 전세계 사람들이 인정하는 행사로 보인다. 대니얼 데이
루이스가 중국식 롱코트를 입고 입장하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난다. 큰 무대 구석에서 들어오는 데도 무시무시한 에너지가 느껴졌다.
멋있었다. 지난해 엘리아 카잔이 평생공로상 받을 때, 배우들이 반은 일어나 박수를 치고 반은 자리에 앉아서 외면하더라. 얼마나
멋있나. 대단한 자존심이 아니면 그런 행동을 취할 수가 없다.
두 고비를
돌아 다시 아득한 산으로 임권택 감독은 <오원 장승업>에 최민식을
캐스팅한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오원은 고아에 무학이며 한량인데다 동시에 걸출한 예술가였다. 이 영화에서 배우는 그의 인생을
20살에서 59살까지 살아야 한다. 게다가 나로서도 한 사람의 인생을 좇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이다. 대단한 연기력의 소유자가
필요했다.” 최민식은 <해피엔드> 때도 <파이란> 때도 시나리오에 반했지만, 막상 출연을 결심한 순간부터 끙끙
앓았다. 플롯과 스타일이 나서지 않고 연기만으로 미묘한 감정선을 잡아나가야 하는 영화는 배우에게 독이고 약이다. 넘어서면 약이지만
걸려 넘어지면 다시 일어나기 어렵다. 두 고비를 넘어온 최민식에게도 <오원 장승업>은 아득한 산이다. 100년 전의 위대한
예술가의 영혼을 몸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 술에 만취해서도 붓놀림 연습을 무의식적으로 해대며, 최민식은 자신의 연기인생에서 가장
중대한 도전을 앞두고 처방전 없는 속앓이를 이미 시작했다. 기대대로라면, 그는 정말 반쯤 미쳐, 광인 예술가가 돼 우리 앞에 나타날
것이다. 그가 소처럼 걸어 올라온 그 길은 내려가기도 어렵기 짝이 없어 보인다. 만에 하나, 최악의 경우라도, 안쓰럽게 머리숙인
연기자 최민식의 모습을 그가 보여줄 것 같진 않다.
늘 다짐해둔다. 나를 연기자로서 꼭 필요로 하지 않은 시점이 온다면 중국집 할 생각이다. 괜한 소리가
아니다. 아내에게도 말해뒀다. 카운터에 앉을 각오하고 있으라고. 난 다른 사람들이나 언론에서 하는 말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려고
한다. 칭찬 들으면 기분 좋지만, 그냥 그걸로 족하다. <파이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눈물나게 고마운 이야기가
많다. 하지만 내가 무대에서 밀려나면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다는 걸 이미 경험했다. 난 이제부터 연기가 시작이라고 생각하지만,
지금까지만 해도 불평할 수 없다. 나름대로 인정도 받고, 좋은 가정도 있고, 최고의 예술가와 함께할 영화도 있다. 늙어서도 폼나게
연기하자고 강호하고 경구하고도 이야기했다. 하지만 내 소망대로 되지 않는다고 구걸하지는 않겠다. 구걸 자체가 싫어서라기보다, 내가
너무 사랑했고 너무 소중하게 생각해온 연기자의 삶이란 걸 그렇게 해서 욕되게 하기 싫기 때문이다.
글 허문영 기자 사진 손홍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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