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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의 보물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 여행기(1)>
지중해의 보물이라 하는 유럽 안에서도 이베리아반도 안에 있는 멀고도 먼 나라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한 것은 약 3년 전에 일이다. 그러니까! 2006년도 정년퇴직 직전 공무원 공로연수 교육과정(38회)에 따라 내가 소속된 반의 교육생18명이 부부동반으로 일본문화탐방(*후쿠시마-닛코-동경-하코네-아타미-교토-나라-고베-오사카-간사이)을 며칠간(´06.4. 26.~4.30.) 동거 동락하면서 다녀왔었는바, 이를 계기로 38회 친목회를 구성하게 되었고 격월로 모임을 갖는다. 이중 행자부 퇴직 모 국장 회원 1인이 총무처 재직 시 국비해외연수로 스페인에 몇 년간 공부 차 다녀왔는데 그 나라에 대한 자연환경과 경치는 물론 문화유산도 찬란하고 즐기기도 끝내주니 함께 해외여행 다녀오자 함으로써 발단이 되어 열정의 나라 스페인을 여행하기로 정하고 몇 년간 회비를 조금씩 적립하여 최근 여행사와 8명의 부부 등 18명이 여행계약 전 협의과정에서 우리의 여행일정 의견을 최대한 반영한 기획 상품 “스페인-포르투갈-모로코+파티마 12일”로 확정하여 여행을 하게 되었고 여행기간 내내 모 국장은 함께 여행을 하면서 통역도하고 관광지의 추가적 안내도하는 등 제2의 안내자 역할을 톡톡히 하여 정말 편안하고 즐거운 여행을 하였다.
◆2009년 9월14일 월요일-첫째 날 <인천-네델란드/암스텔담-포르투갈/리스본>
드디어 “포르투갈-스페인- 모로코-스페인”여행의 시작이다. 오랜만에 인천공항에서 네델란드 항공기(KL866)로 13:35분에 출발, 네델란드 암스텔담(*11시간40분소요+시차7시간)을 경유(KL1697)하여 포르투갈 리스본(*약2시간소요+시차1시간)에 도착하니 캄캄한 한 밤 중이고 현지시간 23:50분이다.
비행시간이 긴 약14시간을 비행하는 동안 우리말로 번역된 2편의 영화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숙면에 도움 될까 해서 레드와인 2병(*1병이라야 음료수잔 딱 1잔임), 향긋하고 톡 쏘는 듯 한 맥주 1캔, 꼬냑 1잔등을 아몬드, 코코넛을 안주(?)삼아 간간이 먹고, 기내식으로 연어 찜과 쌀밥ㆍ카스테라ㆍ고기 조림을..., 간식으로 삼양 컵라면 및 음료수를 먹기도 하면서, 잠도 청해보았지만 8시간 시차와 보다 젊었을 때 일반석(Economy class) 탑승 때와는 달리 느껴져(?) 자는 둥 마는 둥 약간 힘든 여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누군가 가 말하였듯 여행은 좀 더 젊었을 때(?) 유럽 등 멀리 다니고 나이 들수록 가까운 동남아를 다니는 것이 여행의 맛과 건강관리상 현명하다는 것이 나와는 아직 거리가 있다고 생각 들지만 새삼스럽게 떠올려 지는 것은 왜일까?
여하튼 이국(異國) 포르투갈에서의 첫 밤(Hotel costa da caparica)은 피곤과 밀린 잠 탓도 있겠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달콤한 숙면을 취했다.
참고로, 「포르투갈은 잘 아시다시피 유럽서남부 이베리아반도 서단에 서쪽은 대서양과 동쪽은 스페인과 접해 위치하고 국토가 우리나라와 비슷한 약 9만2천㎢(*한국/남한: 약9만9천㎢), 북부지역은 산악지대로 강 계곡 숲이 많고 옥수수, 감자, 호밀 등이 재배되고 남부지역은 평지로 올리브, 포도, 오랜지, 코르크 등을 재배한다. 인구는 약1,040만 명이고 수도는 ‘리스본’이며 1139년에 무어인으로부터 독립한 왕국 공화제의 국가이다.
1415년에 북아프리카의 모로코북단의 “세우타”를 차지한 것을 시작으로 1420년에 마데이라 제도ㆍ1427년 아조레스 제도ㆍ1444년 비르데 곶 발견, 1488년 희망봉 발견, 1492년 스페인의 지원을 받아 콜럼버스가 서인도 제도 발견(*지금은 미주 대륙의 원주민 학생 단체들이 "신대륙에 이미 원주민이 거주, 따라서 '발견'이란 말 어울리지 않아 약탈.노예제에 일조한 사람"이라고 캠페인도 벌린단다), 1500년에는 브라질을 발견하여 이후 식민지화 하는 등, 대 항해 시대의 서막(序幕)을 열면서 바다건너 신대륙 개척에 앞장섰던 나라라 한다.
또한 포르투갈은 향료(*후추)제도와 일본에 진출하여 동방무역(※일본이 1592년 임진왜란 때 이미 포르투갈에서 전해 받은 기술에 의한 조총 약 3만정의 무기로 당시 우리나라를 초토화 시킬 수 있는 게기가 되었다는 악연도 있단다)으로 크게 번성하였으나 1580년에 왕조가 단절되어 스페인 왕이 사실상 지배하게 되었고 1640년에 독립을 회복하였다 한다.종교는 천주교가 90%이상이지만 현지 안내자(Guide) 말에 의하면 우리나라처럼 성당에 자주가지 아니하고 대부분 평생에 3번 정도(*출생시 부모가 감사의 표시로, 결혼 시 행복하게 잘살게 해달라고, 그리고 죽을 때쯤 천국에 가게 해달라고...) 다닌다고 하는데 농담(?)인지.... .」
◆2009년 9월15일 화요일-둘째 날 <리스본-까보다로까-신트라-파티마>
리스본에서의 첫 날밤은 단잠을 푹 자고 새벽 5시40분에 일어나 창문을 열고 밖을 내다보니 아직 동트기 전, 날이 밝아오기 시작하는 새벽녘이다. 해맑은 찬 공기가 그 어느 때 보다도 관광 첫날의 설레는 내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상쾌하고 하늘도 무척이나 맑디맑아 숨 쉬는 내 가슴을 확 트이게 한다. 해서 잠간 호텔 밖으로 나와 보니 포르투갈은 대서양에 접하고 지중해 및 대륙성 혼합 기후라 그런지 아직 하계 건기(*5~10월)임에도 새벽 찬 공기(*16℃ 내외)가 약간 서늘하게 느껴지면서 살갗을 여미며 스친다.
오늘은 아침 일찍 호텔조식(*양식;부페)하고 유럽의 가장 서쪽 끝이며 포르투갈의 땅이 끝나고 바다가 시작되는 땅 끝 마을인 “까보다로까(*로까곶)”로 가기 위해 8시에 출발이다.
이번에 함께 여행하는 반가운 얼굴의 일행은 우리 38회 14인을 포함하여 여행자 28인과 안내자 2인 및 현지 전용 초대형버스(*긴 여행일정을 고려한 57인승)에 스페인 기사가 1인이 딸려 있어 총 31명이다. 그래서 간단한 스페인 인사말도 배웠고 승하차시 기사와 또는 관광 시 걸으면서 현지 시민과 간단한 인사도 하였다.
*예시하면;HOLA(올라):안녕, GRACIAS(그라시아스):고맙습니다. PERDONE/DISCULPE(뻬르도네/디스꿀뻬):죄송합니다, MUY BIEN(무이 비엔):아주 좋아요, OIGA(오이가):여기요, AGUA(아구아):얼마죠? 등등
대서양 바다를 바라보고 가면서 버스 창밖을 내다본다. 도심의 빌딩숲을 지나서 도로 옆에 보이는 낮은 야산 또는 구릉지 같은 언덕 위(*산 같은 산은 거의 보이지 않음)에는 주택지와 그 주위를 인위적으로 조성하지 아니하고 자연 상태를 그대로 이용하여 형성한 소규모 또는 좀 큰 마을의 여기저기에 모든 주택들이 한결같이 통일된 주홍색의 기와(?)지붕에 하얀색의 집벽(*집 벽이 외부와 경계를 이루어 담 벽은 찿아 볼 수가 없다)인데 두 밝은 색이 조화를 이룬 집들이 특색(?) 있으면서 주위 풍경, 즉, 청명하고 드높은 하늘과 따사로운 햇살에 너무나 잘 어울려 매우 아름답다.
까보다로까에 9시30분에 도착했다. 넓은 들마루(?)에 알 수 없는 식물들(*선인장등?)의 꽃은 이미 져서 축 늘어져 있거나 말라붙어 있어 한때 아름다움을 과시한 흔적이 역력하고 들마루 녘이 끝나는 곳의 발 저 아래 펼쳐지는 끝없는 대서양 이쪽 바닷가의 바로 위로 몇 백 미터의 절벽꼭대기 이곳이 유럽의 가장 서쪽 끝임을 알리는 하얀 기념비가 서 있다.
‘까보다로까’의 ‘까보다’는 끝을 의미하고 ‘로까’는 돌이라는 뜻으로 ‘돌의 끝, 땅의 끝 마을’이라는 뜻의 이름이란다.하얀 기념비에는 포르투갈의 국민 시인‘루이스 데 까몽이스’가 쓰고 이곳에서 이 시를 읊으면서 이곳이 대서양의 시작이고 유럽의 서쪽 끝이라는 것의 시 한 구절이 적혀 있다.
-“땅이 끝나는 곳에 다시 바다가 시작된다. 땅은 끝나도 바다가 시작되니 젊은이여 절망을 버리고 희망을 가져라-” 이곳 까보다로까는 바로 이 시 구절 덕분에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고 관광객이 오기 시작 하였다고 한다.
기념비 앞에서 이번 여행의 첫 기념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이어서 영국의 시인 ‘바이런’이 에덴의 동산이라고 불렀을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며 포르투갈 왕들의 여름휴양지이자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인 고도(古都)이고 작은 도시인 “시트라”로 이동(*약 30분 소요거리)하여 13~15세기의 왕궁, 고깔탑 모양의 굴뚝이 이색적인 “신트라성”과 산 높은 곳 꼭대기 위에 있는“페냐성” 그리고 아기자기한 중세(풍)에 이슬람교도들이 살았던 곳으로 이슬람교도의 전통양식과 포르투갈의 고유양식이 뒤 섞인 ‘구시가(舊 市街)’이면서 관광 선물가게인 상점들을 관광하고 점심(*빵과 우리의 야채 섞인 ‘볶은 밥’과 유사한 음식)을 먹은 후, 1917년5월13일부터 5개월 동안 매달 13일이면 3명의 목동 앞에 성모마리아가 나타나 죄의 회개 로사리오의 기도를 권하였다는 유래 때문에 유명한 카토릭의 중심지 성모마리아 발현지 "파티마(Fatima)"로 이동(*약 1시간40분 소요거리)하여 대성전 입구 건너편 호텔(Directorio do hotel)에 짐을 풀고 성스럽고 웅장한 "바실리카(Basillica) 대성전”을 관광하였다.
1917년 5월 13일 세 목동아이들이 놀던 장소이며 성모발현지에 세워진 발현 소성당과 로사이오 대성전은 로마에 성베드로 대성당보다 약 두 배만큼 넓은 광장 안쪽에 위치하고 있다.
대성전은 1928~1953년에 걸쳐 단단한 석회암 대리석으로 축성되었으며 65m의 높은 탑을 지니고 있고 로사이오의 15신비가 양옆 소 성당 안에 조각되어 있으며 중앙제대위의 벽화는 성모님이 메시지를 성체성사를 통해서 아이들에게 전해주는 모습이다.
또한 대성전 내에는 발현당시의 성모님 행적의 파티마 이야기를 묘사하는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 창문도 있다.
파티마에서에서 ‘파티마의 비밀’이라고 불리우는 성모마리아의 예언은 로마 교황에 의해 유일하게 공인되었고, 대성전은 해마다 수십만 명의 참배객과 약 4백만 명의 순례 객들이 이곳을 찿아 온다고 한다.
그 외 항상 성체조배와 기도를 할 수 있는‘성체흠송 성당’, 교황 바오로6세 기념관과 종교회관(*약3천명수용 강당과 순례 객 4백명 숙박시설 완비), 교황 바오로12세 기념관 등이 있다.
대성전 관람을 17시에 마치고 오늘은 저녁식사를 일찍 17시30분에 셀러드, 빵, 길게 튀긴 돼지 삼겹살, 감자와 포도주 등으로 만찬을 하였다. 포르투갈 음식은 일반적으로 쌀과 생선ㆍ야채 등을 많이 사용하여 기름지지 않아 우리나라 사람 입맛에도 그리 거부감을 주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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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스본 costa da caparica호텔앞>
<리스본 costa da caparica호텔앞 대서양 해변에서>
<루이스 데 까몽이스가 쓴'시'가 새겨진 하얀 기념비>
<땅끝마을'까보다로까(곶) 전경 앞>
<땅끝마을 기념비 맞은편 절벽위 '등대 및 선물가게'>
<신트라 구시가 및 그 위 산꼭대기에 '페냐성'>
<13~15세기 왕궁'신트라성' >
<파티마 에 '바실리카 대성전 및 광장' -전경>
<'바실리카 대성전'>
<성모마리아 발현 성지 중심 '소 성당'>
<'바실리카 대성전안' >
<바실리카 대성전입구의 '코르크나무'>
< 교황바오로 6세 종교회관 강당내 '예수상'>
<교황바오로 6세 종교회관 강당내 '예수상 '(*근접촬영)>
첫댓글 사진과 함께 여행기를 재미있게 올려 주셔서 미답의 세계를 잘 구경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여행기 잘 읽고 아름다운 사진들도 흥미진진하게 감상하였읍니다 감사합니다
도토리가 누군가? 했드니! 여행기 대단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