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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의 남자] 02
S#1. 벌판 (낮)
벌판을 질주하는 세령의 말. 겁에 질린 세령, 금방이라도 고삐를 놓칠 것 같다.
두려운 속도감에 잔뜩 몸을 구부리고 눈을 감아 버리는 세령. 바로 앞에 흐르는 강이 보이기 시작한다.
뒤에서 들리는 말 달리는 소리. 세령, 겨우 눈을 떠서 뒤를 보면 빠른 속도로 뒤를 쫒아오는 승유의 말.
다급해진 세령 앞을 보는데, 강이 점점 가까워진다. 승유의 얼굴을 애타게 보는 세령.
승유의 말, 점점 세령의 말에 가까워진다.
두 마리의 말 최대한 가까워지면 순간적으로 홱 제 몸을 날린 승유! 세령의 뒤에 올라타는데 성공한다!
두 사람, 앞을 보는데 이제, 코앞이, 강이다! 말을 멈추기엔 이미 늦은 상황이다.
두려움이 차오르는 세령의 얼굴. 결기가 눈에 어린 승유, 한 팔로 세령을 안아 허공으로 몸을 던진다.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승유와 세령, 필사적으로 세령을 안아 보호하는 승유 위로!
문종(E) : 김승유를!
S#2. 편전 (낮)
용상에 앉은 문종. 아래 도열해 있는 종친들과 신료들. 좌중의 귀추가 온통 문종에게 향했다.
문종 : 부마로 삼을 것이오!
놀라서 술렁거리는 장내.
김종서를 노려보는 수양의 일그러진 얼굴!
S#3. 경혜공주의 처소 (낮)
거울에 비친 경혜공주의 아름다운 모습. 도도한 얼굴로 제 매무새를 다듬는 중인 경혜공주.
문을 열고 다급히 달려 들어온 은금.
은금 : 마마!
경혜 : 웬 수선이냐?
은금 : 전하께서 직강 김승유를 부마로 삼겠다하셨답니다.
경혜 : (놀라서) 직강 김승유?
승유(E) : (힘겹게) 공주마마!
S#4. 강가 (낮)
겨우 구르기를 멈춘 승유와 세령, 몰골이 말이 아니다.
충격에 고통스러운 승유, 찌푸려지는 얼굴, 흘러나오는 신음.
승유에게 안겨있는 걸 깨달은 세령, 깜짝 놀라 일어난다.
그런 세령을 본 승유도 벌떡 몸을 일으키며 버럭!
승유 : 죽을 뻔하지 않았습니까?!
세령 : (할 말 없는)
승유 : 공주마마는 목숨이 두 개라도 됩니까? 아녀자가 어찌 이리 방자합니까?
방자하다는 말에 표정이 굳은 세령. 팽팽하게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의 눈길.
온녕(E) : (격하게) 분부 거둬 주시오소서.
S#5. 편전 (낮)
안평, 김종서, 민신, 조극관, 권람 등 앉아있다. 온녕군에게 집중되어 있는 실내의 분위기.
문종과 김종서, 수양대군도 온녕군을 주시하고 있다.
온녕 : 어찌 간택의 절차도 없이 부마를 정한단 말씀이십니까? 이는 지엄한 왕실의 예법에 어긋나는 처사이옵니다.
문종 : 과인의 뜻으로 부마를 정하는 것이 예법에 맞지 않다?
권람 : (다급히) 신 권람 아뢰오. 자질도 검증되지 않은 자를 부마로 맞으시려 한단 말씀이옵니까?
민신 : (버럭) 김종서 대감의 자제 김승유가 부마로 부족하단 말이오?
일제히 김종서에게 쏠리는 시선들. 한 점의 동요 없이 무표정하게 앉아 있는 김종서.
수양 : 종친을 대표해 신 수양 아뢰옵니다.
문종 : (보는)
김종서 : (본다)
수양 : 전하께오서 직강 김승유를 어심에 두셨을진대 어찌 신하된 도리로 따르지 않으오리까? 또한 신이 알기로
김승유의 학식과 인품이 가히 (김종서를 보며) 그 부친을 닮아 부마가 되기에 모자람이 없는 줄로 아옵니다.
김종서 : (수양을 보는)
수양 : 다만, 왕실의 예법을 따르자는 말 또한 지당하니 형식적이나마 간택의 절차를 밟아 김승유를 천거하겠나이다.
소신에게 주혼을 맡겨주신다면 이 또한 광영일 것이옵니다. '자막 {주혼: 왕실의 혼사를 맡아 주관하는 책임자}'
문종 : (잠시 머뭇거리고) 수양이 주혼을 맡음이 마땅하다. 그리하라.
의심의 시선으로 수양을 보는 김종서.
S#6. 대궐 회랑 (낮)
생각에 잠겨 걸어가고 있는 김종서. 그의 앞을 막아서는 두 발이 보인다.
위를 보면 김종서의 앞을 막아선 수양대군이다.
수양 : 혼담에 대한 답은 잘 들었습니다. 이 수양 대신 주상전하를 택하신 겝니까?
김종서 : (보면)
수양 : (싸늘하게 웃고) 감축드립니다.
예를 갖추고 돌아서는 수양. 멀어지는 수양의 뒷모습을 보는 김종서.
S#7. 강가 (낮)
승유, 서 있는 말(세령이 타고 온)의 여기저기를 만지며 살펴보는 중.
멀찌감치 떨어져 앉은 세령, 제 몰골을 보고는 한숨을 푹 쉰다. 찢어진 치맛단에다 그 사이로 드러난 버선은 먼지투성이다.
발목 통증 때문에 얼굴을 찌푸린 세령, 아파서 문지른다.
세령의 그런 모습을 못마땅하게 보는 승유.
승유 : 어찌 이리 무모합니까? 공주도 아녀자에 불과하다 일렀거늘,
조선의 어느 여인네가, 벌건 대낮에 주제넘게 말에 올라 대로를 활보하느냐 이 말입니다.
세령 : 주제넘다... 하셨습니까?
승유 : 내 당장 궁으로 들어가 마마를 출궁시킨 수문장과 상궁나인들을 벌하겠습니다. (가려는)
세령 : 벌은 스승님도 받으셔야죠!
승유 : (돌아보는)
세령 : 감히 공주에게 방자하다, 주제넘다 이리 불경한 언사를 내뱉다니요.
승유 : (어이없는) 뭐요?
세령 : 그게 싫으시면 이대로 모른 체 갈 길을 가십시오.
승유 : (노려보는)
세령 : (지지 않는)
승유 : ...그리 하고 싶은 마음 태산이나 스승 된 자의 도리를 져버릴 순 없지요. (말을 턱으로 가리키며) 오르소서.
세령 : (말 끝나기도 전에) 등을 빌려주시지요.
승유 : 등?
세령 : 말에 오르라 하지 않았습니까?
승유 : (기가 막혀) 소신의 등을 밟고... 오르시겠다?
세령 : (놀리듯) 왜요, 자존심 때문에 못하겠습니까? 감히 일국의 공주 앞에 사내의 자존심 따위를 내세우시는 겁니까?
승유 : (기가 차서) 허!
결국 내키지 않는 얼굴로 말 옆에 엎드리는 승유. 야무지게 꼬옥 밟고 올라서는 세령의 두 발.
S#8. 벌판 (낮)
세령이 올라탄 말의 고삐를 쥐고 걸어가는 승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어색한 침묵.
말 위라 긴장한 세령, 저도 모르게 발로 말 옆구리를 툭 찬다.
그걸 신호로 말이 속도를 높이자 두려움에 움츠리며 눈을 감아버리는 세령.
승유가 고삐를 잡아채 속도를 늦추자 그제야 눈을 뜨는 세령. 그런 세령을 흘깃 보는 승유.
승유 : (툭 던지는) 그리 무서운 걸 왜 타려 하시는지.
세령 : 어찌 사내가 여인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겠습니까?
승유 : (물끄러미 보고) 사내가 아니라 스승이라면 헤아릴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그 말에 승유를 쳐다본 세령, 눈이 마주치자 도로 앞을 본다. 두 사람 사이에 잠시 흐르는 침묵.
세령 : 정말 그러합니까?
승유 : (보는)
세령 : 탁 트인 곳에서 말을 달리면 정말 속이 다 후련해지느냐 이 말입니다.
승유 : 바람을 느낄 만큼 달려야지요.
세령 : ...무서워도 꼭 느껴보고 싶습니다.
승유 : (보는)
세령 : (담담하게) 여인이란 혼인을 하면 문 밖 출입 한 번 수월치 않은데, 그 답답함을 견딜만한 기억 하나쯤은 있어야겠지요.
승유, 물끄러미 세령이를 본다... 차분한 얼굴로 생각에 잠겨 있는 세령...
S#9. 강녕전 동온돌 방문 앞 (낮)
잰 걸음으로 걸어온 경혜, 전균 앞에 선다.
경혜 : 고하여라.
전균 : 지금은 우상께서 들어계십니다.
방문을 뚫어져라 보는 경혜의 시선...
S#10. 강녕전 동온돌 (낮)
찻상을 앞에 두고 마주 앉은 문종과 김종서.
문종 : 퍽이나 잘 어울리는 한 쌍이오.
김종서 : 미거한 자식이오나 전하께 힘이 될 것입니다.
문종 : 내가 아니라 세자에게 그래야지요.
김종서 : 마땅히 그러할 것입니다.
다짐하는 듯한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는 두 사람.
S#11. 운종가 기방 앞 (낮)
세령이 말에서 내리기를 기다리고 있는 승유.
세령 : (의아한) 대체 이곳이 어딥니까?
승유 : (치마를 보면서) 이대로는 모실 수 없습니다. 의복을 빌러 들렀으니 갈아입고 궁으로 가시지요.
세령 : (난처한)
승유 : 안 내리십니까?
그 말에 제 몰골을 내려다본 세령,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린다. 그제야 쪼르르 나와 말고삐를 잡는 남자 일꾼.
거침없이 앞서 들어가는 승유.
대문 안으로 들어서려던 세령, 깜짝 놀란다. 화려하고 야한 복색의 기녀들이 지나다니는, 처음 보는 광경들.
눈이 휘둥그레 커지는 세령.
S#12. 운종가 기방 / 뜰 (낮)
기녀들 승유를 보고 우르르 달려와 둘러싼다. 그 바람에 뒤로 밀쳐지는 세령.
기녀1 : 나리, 어젯밤엔 어찌 걸음을 안 하셨습니까?
승유 : 깨끗한 옷가지 한 벌 빌려야겠다.
기녀2 : 왜요?
기녀1 : 왜요, 오라버니?
기녀2 : 어디다 쓰시게요?
승유의 조용한 턱짓. 기녀들, 고개 돌리면 엉거주춤 서있는 세령.
기녀1 : (훑어보며) 저 거지 같은 꼴을 한 아가씨는 뉘십니까?
세령 : (기가 막힌)
기녀2 : (역시 훑어보며) 청순하게 생기신 분이 어디서 격하게 뒹구셨는지.
기녀1 : (승유를 훑어보는) 그러고 보니 나리 옷도....
기녀2 : 혹 같이 뒹구신 겝니까?
기녀들 : (천박한 웃음소리와 조롱)
세령 : 이보시게!
승유 : (단호하게) 농지거리로 삼을 분이 아니시다. 방으로 모셔라.
세령 : (웬 일이야? 싶어 보는)
기녀들 : (못마땅하게 세령을 보는)
S#13. 운종가 기방 / 객방 (낮)
방문에 달라붙어 있는 세령, 살짝 열린 문틈으로 밖을 내다보는 중. 마당에 승유가 기생들에게 둘러싸인 장면 보이고.
세령 : (언짢은) 호색한. 난봉꾼.
갑자기 벌컥 열리는 복도 쪽 문. 놀란 세령, 본능적으로 가슴을 감싼다.
술 취해서 눈이 풀린 중년男,
중년 : (혀가 풀려) 우리 초심이가 여기 있었구나. 어여 오너라.
세령 : (당황스럽지만) 사람, 잘못 보셨소.
중년 : 고년, 시도 때도 없이 튕기는구나. (안으려하며) 그만 이리 오래두.
세령이 주춤거리며 물러서는데, 드르륵 문이 열리고 나타난 초심.
초심 : (답답한 듯) 나리! 이방이 아닙니다. (끌고나가며) 어서 가셔요.
중년남 끌고 나가버리는 초심. 문이 닫히고 나면 그제야 안도의 숨을 쉬는 세령.
‘너 말고 방금 그년을 데려오너라!’ ‘나리!’ ‘저 년을 부르래두!’ 중년남과 초심의 실랑이가 들리자 더욱 불안해지는 세령.
S#14. 운종가 기방 / 대청마루 (낮)
대청마루에 걸터앉아 있는 승유. 승유 앞에 나란히 선 기녀들, 저마다 화려한 치마를 들고 있다.
기녀1, 제 치마를 보여주면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 승유. 기녀2, 역시 보여주면 고개를 돌려버리는 승유.
기녀3, 옷을 보이려는 순간 얼굴을 찌푸리는 승유.
승유 : (짜증난) 음전한 옷이 그리도 없느냐?
S#15. 운종가 기방 / 객방 (낮)
아무도 없는 텅 빈 방 안에 서 있는 승유. 손에는 화려한 색의 치마를 들었다. 도대체 어딜 갔지? 의아한 표정으로 방을 둘러본다.
그냥 나가려던 승유의 눈에 병풍 틈으로 드러나는 치맛자락.
S#16. 운종가 기방 / 객방 / 병풍 뒤 (낮)
좁고 어두운 병풍 뒤, 벽에 기대 잠든 세령.
기가 막혀죽겠다는 표정으로 앉아 세령을 쳐다보는 승유. 처음으로 자세히 보는 세령의 얼굴, 무장해제한 모습이 천진하다.
저도 몰래 빠져 세령의 이목구비를 뜯어보던 승유, 내가 왜 이러나 싶어 옷을 놓고 나가려는데, 가지런히 놓인 버선 보인다.
저도 모르게 발쪽으로 시선 가는 승유. 찢긴 치맛단 사이로 삐져나온 아담하고 가지런한 맨발. 푸른 멍이 선명한 발목께.
잠시 후.
겨우 눈을 뜨는 세령, 여기가 어디지? 두리번거리는데, 제 발목 위에 곱게 올려 있는, 천으로 감싸인 약초찜.
의아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보는 세령.
S#17. 운종가 기방 / 뜰 (낮)
옷을 다 갈아입은 세령, 두리번거리며 방을 나온다. 조용한 뜰에 아무도 보이지 않고 마침 대문도 열려있다.
승유(E) : 이대로는 모실 수 없습니다. 갈아입고 궁으로 가시지요.
난처해진 세령, 도망가자 싶어 주위를 살피며 대문으로 향하다가 턱! 누군가에게 부딪힌다. 보면 앞을 막아선 승유다.
승유 : 어딜 가십니까, 공주마마?
세령 : (괜히 두리번거리는) 말이 어디 있나 하여...
승유 : 지쳐서 당장은 데려가기 힘들다기에 가마를 대령했습니다. 나가시지요. (가려는데)
세령 : (다급하여) 하필 치마도 이런 낯 뜨거운 색을 골랐습니까? 고상한 색채로 다시 가져오십시오!
승유 : 고상? 척하니 맨발을 드러내놓고 잠에 빠진 여인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세령 : (새침한 표정)
승유 : 지금쯤 궐이 발칵 뒤집혀졌을 겁니다. 서두르십시오.
앞서나서는 승유를 난처하게 보는 세령.
좀 떨어진 뜰 한 쪽. 유심히 두 사람을 보고 있던 기녀1. 다친 발에 힘 안 주려 조심히 걸어가는 세령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본다.
기녀1 : (혼잣말) 공주...마마?
S#18. 운종가 기방 앞 (낮)
승유와 같이 나온 세령이 보면 덩그마니 놓인 작은 가마. 가마꾼들이 보이질 않는다.
승유 : (괜히) 이 사람들이, 어딜 간 게야?
초조해서 옷을 매만지며 틈을 엿보는 세령. 갑자기 저고리 아래 멈추는 세령의 손. 세령의 머릿속에 뭔가 스쳤다!
세령 : 방에 노리개를 두고 나왔습니다.
승유 : (두리번거리며) 여봐라!
세령 : (다급히) 귀한 물건이니 스승님께서 손수 가져오십시오.
승유 : (한숨 쉬고 가는)
S#19. 운종가 기방 / 병풍 뒤 (낮)
성가신 얼굴로 노리개를 집어 올리는 승유.
S#20. 운종가 기방 앞 (낮)
승유가 나오면 닫혀 있는 가마 문. 어느새 제 자리를 지키고 있는 가마꾼들.
승유 : (가마 안에다) 대령했습니다.
대답이 없는 가마 안.
승유 : 또 주무시는 겝니까?
하면서 문을 여는데 텅 비어 있는 가마 안! 어이없는 표정의 승유.
S#21. 기방 근처 (낮)
여기저기 둘러보며 세령을 찾는 승유. 뒷모습이 비슷한 여자를 봤다가 아니고, 상점들에도 없고.
승유 : (약간 걱정하는) 대체 어딜 간 거야?
S#22. 운종가 골목 (낮)
몸을 감춘 채 승유를 보고 있는 미안한 표정의 세령, 승유가 지나가자 황급히 제 갈 길 간다.
S#23. 궐문 앞 (밤)
철통 같이 궁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문병 기십 명. 수문장이 그 앞을 왔다 갔다 하며 경계중이다.
서둘러 걸어오는 승유, 손에는 손수건에 싼 노리개를 들었다.
허물없이 수문장의 어깨를 툭 치는 승유.
수문장 : 아니, 김 직강 아니신가. 야심한 시간에 관복도 없이 어인 일이신가.
승유 : 부장 나리께서 궐문을 제대로 지키시나 감시하러 나왔지요.
수문장 : 이 사람 실없기는.
승유 : 꼭 봐야할 서책을 두고 나와 잠시 다녀오겠습니다.
수문장 : 지금?
승유 : 내일 공주마마 강론에 꼭 필요한지라...
수문장 : 금방 와야 하네. 아니면 우리 둘 다 경을 칠 테니.
승유 : (빙그레 웃는)
S#24. 공주의 처소 (밤)
문을 열고 들어온 궁녀1, 은금의 귀에 뭔가를 속삭인다.
의아한 표정이 되는 은금.
S#25. 궁궐 후미진 곳 (밤)
이리 저리 거닐며 기다리는 승유.
걸어오던 은금, 유심히 보더니 이내 승유를 알아보고 예를 갖춘다.
은금 : (조심스레) 무슨 일이십니까?
승유 : 공주마마께서는 뭘 하고 계신가?
은금 : (경계하며) 그건 어찌 물으십니까?
승유 : (엄하게) 내 알아야 할 일이 있네.
은금 : (약간 기죽어) 마마께서는 주상전하를 알현하고 계십니다.
승유 : 전하를 알현하신다? (기가 차서 혼잣말) 들어오긴 왔단 말이군.
은금 : 예?
승유 : 됐네. 자네들은 공주마마 곁을 단단히 지키시게. 만에 하나 마마의 안위를 해치는 일이 생기면 경을 칠 것이야.
은금 : 예.
승유 : (가려다가) 참, 이걸 전해주시게.
은금, 승유에게 받아들어 보면 손수건에 감싼 물건이다.
멀어지는 승유의 뒷모습을 의아하게 보던 은금, 손수건을 열어보더니 놀란다!
S#26. 강녕전 동온돌 (밤)
문종과 마주하고 앉은 경혜공주.
파리한 안색의 문종, 온화한 표정으로 딸을 보고 있다.
문종 : 김승유가 그리 싫으냐?
경혜 : (눈을 피하며) 좋고 싫을 게 무엇이옵니까?
문종 : 얌전히 강론을 받는다기에 저어하지 않는다 생각했거늘.
경혜 : 좀 더 세자저하 곁에 있어드려야 합니다. 부디 부마간택을 미뤄주시옵소서.
문종 : (단호한) 정녕 세자를 위한다면 김승유와 혼인하거라!
경혜 : (보는)
문종 : 대체 언제까지 세자 곁에 있을 게냐? 세자가 장성할 때까지? 아니면 보위에 오를 때까지?
경혜 : (야속한) 아바마마!
문종 : 세자를 지켜줄 수 있는 이는 명줄이 다한 이 아비도, 정사에 어두운 누이도 아니다. 오직 김종서뿐이니라.
경혜 : ...아바마마께서 오래 오래 계시면,
문종 : (모질게) 그리 부질없는 희망에 네 동생의 명운을 맡겨도 좋으냐?
경혜 : (놀라는)
문종 : 아비는 네 투정을 들어줄 여력이 없다. (탄식 하듯) 갈 길은 급하고 마음은 무겁구나.
경혜 : (가슴 아픈)
S#27. 공주의 처소 / 후원 (밤)
화초들을 살펴보는 경혜공주. 복잡하고 연약한 표정.
조심스레 경혜공주에게 다가오는 은금. 은금의 손에는 승유에게 받은 손수건이 들려 있다.
경혜 : 세령이의 낭군 감으로 알았던 자가 나의 부군이 된다니, 이토록 기막힌 일을 들어본 적 있느냐?
은금 : 마마...
경혜 : 세령이는 알고나 있는지... 안 되겠다. 내일 당장 직강 김승유를 만나 사실을 밝히고, (하는데)
은금 : (서둘러) 방금 다녀갔사옵니다.
경혜 : ...누가 말이냐?
은금 : 직강 김승유께서...
경혜 : (의아한) 김승유? 이 야심한 시각에 무슨 일이라더냐.
은금 : (눈을 딱 감고 손수건을 내미는) 이것을 주고 가셨습니다.
의아한 얼굴로 받아 손수건을 열어보는 경혜. 그 안에서 나온 노리개!
경혜 : 이것은...
은금 : 마마께서 세령아가씨에게 주신 것이옵니다.
경혜 : (놀라는)
S#28. 수양대군의 邸 / 세령의 방 (밤)
세령의 종아리에 착착 감기는 회초리. 윤씨의 사정없는 회초리질에 이를 앙다물고 참는 세령.
구석에 선 여리, 차마 볼 수 없어 고개를 돌려버린다.
회초리 멎으면, 세령의 종아리에서 배어나오는 피.
윤씨 : 말을 타고 나간 걸로도 모자라 기녀들이나 입을 법한 복색으로 들어오다니, 네가 정녕 제 정신인 게야?
세령 : (다리가 아파 주저앉는)
여리 : (달려들며) 아가씨!
윤씨 : 다시는 말에 오르지 않겠다 약조하여라.
세령 : (차마 말을 못하는)
윤씨 : 약조하래두!
세령 : ...다시는 말을 타지 않겠습니다.
윤씨 : 한 번만 더 말 주위를 얼씬거렸다간 이 에미가 죽는 꼴을 보게 될 것이야. 알겠느냐?
세령 : (시무룩한) 예.
S#29. 수양대군의 邸 / 세령의 처소 (밤)
엎드려 있는 세령, 쓰려서 잔뜩 찌푸린 얼굴.
여리, 세령의 종아리에 약초를 발라주는 중이다.
여리 : (얼굴 찌푸리며) 종아리가 온통 붉그죽죽한 팥색입니다요.
세령 : 팥이든 콩이든 쓰려죽겠으니까 빨리 발라.
여리 : 다 돼가니까 좀만 참으세요. (바르면서) 발목을 또 다치셨다더니 붓기는 가라앉았습니다.
세령 : (골똘히 생각에 잠긴)
#플래시백1: 제2화 장면 16의 일부
병풍 뒤. 잠을 자다 깬 세령, 여기가 어디지? 두리번거리는데, 제 발목 위에 곱게 올려 있는, 천으로 감싸인 약초찜.
#플래시백2: 제2화 장면 17의 일부
승유 : 척하니 맨발을 드러내놓고 잠에 빠진 여인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닌 듯 싶습니다만.
도로 현재.
여전히 골똘히 생각에 잠긴 세령.
세령 : (혼잣말) 직접 해 준 건가?
여리 : 예?
세령 : 아니야. (하다가 쓰려서 얼굴 찌푸리는) 아!
민신(E) : 감축드리옵니다.
S#30. 김종서 邸 / 사랑채 (밤)
주안상을 앞에 둔 김종서 무리들. 마주 앉은 민신, 조극관, 김승규.
민신 : 명실공이 분부가 되시옵니다. '자막 {분부 : 부마의 아버지, 공주의 시아버지}'
술잔을 들고 목을 축이는 김종서.
민신 : 수양대군이 전하와 대감의 역공에 꼼짝 없이 당한 꼴 아닙니까.
어명을 받들어 주혼까지 자청하는 모양새가 초라하기 그지없더이다.
조극관 : (골똘한) 도무지 납득이 되질 않습니다.
좌중 : (보면)
조극관 : 승유를 제 사위로 삼고자했던 자가 아닙니까? 전하와 대감의 의도를 모를 리 없는 수양대군이
어찌 이 부마간택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민신 : 받아들이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주상전하와 우상대감이 손을 맞잡겠다는 데요.
김종서 : 아직 부마가 정해진 건 아닙니다.
다들 : (보는)
김종서 : 수양이 주혼이 되었으니 부마간택의 절차가 그의 손아귀에 있소.
그 말에 긴장하는 민신과 조극관, 그리고 김승규.
S#31. 수양대군의 邸 / 사랑채 (밤)
수양대군과 마주앉은 권람과 온녕군. 무거운 분위기.
온녕 : 부마라니! 대군의 청혼을 물리치고 보란 듯이 제 아들 김승유를 부마에 앉히겠다?
이것은 전하와 김종서가 대군의 목을 조이겠다는 선전포고와 다름없네.
권람 : 대책을 강구해야합니다. 앉아서 당할 수만은 없지 않습니까?
수양 : (그저 미소)
온녕 : 참으로 속도 좋으시구려. 주혼까지 자청하다니 아예 중신을 서주지 그랬나.
권람 : 대체 어찌할 작정이십니까?
수양 : (담담히) 김승유를 대신할 다른 부마감을 찾으시게.
권람,온녕 : (영문 모르는)
S#32. 금혼령 몽타주 / 다른 날 (낮)
도성 여기저기 벽에 척척 붙여지는 방. ‘금혼령’이라 한문으로 쓰인 제목 위로 {자막: 금혼령}
S#33. 가마 안 (낮)
치마를 걷어보는 세령, 종아리에 선명한 회초리 자국. 아픈지 조심스레 매만져본다.
그 때! 창으로 불쑥 얼굴 디미는 여리.
여리 : (호들갑) 아가씨! 공주마마께서도 혼인하시나 봐요. 좋은 신랑 구한다는 방이 곳곳에 붙었어요.
물끄러미 창밖을 내다보는 세령.
S#34. 공주의 처소 / 옷방 (낮)
속곳차림으로 서 있는 세령. 경혜공주의 의복을 조심스레 세령에게 입히는 은금.
세령 : 공주마마는 어디 계시냐?
은금 : 누구도 따르지 말라 하시고 나가시더이다. (세령의 눈치 보면서) 혼인을 앞두신 터라 예민해지신 듯 하옵니다.
세령 : 들었다. 부마간택을 한다더구나.
은금 : (슬쩍) 그런데 노리개는 어쩌셨습니까?
세령 : (깜짝 놀라) 어?
은금 : 공주마마께서 손수 달아주신...
세령 : (그제야 생각나서 난처한) 아! 두고 왔느니라.
괜히 시선을 요리조리 돌리는 세령을 탐색하는 은금.
S#35. 공주의 처소 / 후원 (낮)
손에 든 노리개를 만지작거리며 생각에 잠긴 경혜. 후다닥 달려와 예를 갖추는 은금.
은금 : 막 강론에 들어가셨습니다.
경혜 : 사내가 아녀자의 노리개를 가지고 있었다...무슨 의미겠느냐?
은금 : (차마 말 못하는) 그, 그것이....
경혜 : (매섭게) 내 확인해 볼 것이야!
S#36. 종학 / 집무실 (낮)
앉아서 서책을 보고 있는 직강들. 염직강도 보인다.
여유롭게 서책을 챙기고 있는 승유 옆을 지나치던 이개.
이개 : 할 만 한 게야?
승유 : 무엇을요? 아아- 공주마마 강론말씀이십니까? 전 다른 직강들께서 왜 그리 공주마마를 힘겨워하셨는지 도통 모르겠습니다.
염직강 : (언짢은 헛기침)
이개 : (염직강을 의식하며 승유에게 속삭이는) 어렵게 다시 모셔왔느니라.
승유 : (개의치 않는)
이개 : 공주마마는 어떠하시냐?
승유 : 아주... 신출귀몰하시옵니다.
이개 : 뭐라?
예를 갖추고 나가는 승유. 허! 기가 차서 웃는 이개.
S#37. 종학 / 복도 (낮)
태평한 얼굴로 복도를 걸어가는 승유.
#플래시 백: 제2화 장면 7의 일부
세령의 놀리는 듯한 모습.
세령 : 왜요, 자존심 때문에 못하겠습니까? 감히 일국의 공주 앞에 사내의 자존심 따위를 내세우시는 겁니까?
#플래시 백: 제2화 장면 16의 일부
벽에 기대 잠든 세령. 앞모습과는 전혀 달리 무장해제한 모습이 천진한.
현재.
픽 웃고는 마음을 가다듬고 걸어가는 승유.
S#38. 종학 / 공주 강론방 앞 (낮)
강론방 앞에서 시종 중인 나인의 뒷모습.
방 앞에 멈춘 승유, 몸가짐 바로 하고 진지한 표정. 나인이 문 열어주면 들어가는 승유.
S#39. 종학 / 공주 강론방 (낮)
발을 사이에 둔 채 또 마주 앉은 세령과 승유.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정적.
찻상을 들고 들어와 승유 옆쪽에 앉는 나인의 윤곽. 앉아서 차를 준비하기 시작하는 나인의 뒷모습, 돌아보면 경혜다!!
승유 : (대뜸) 밤사이 무탈하셨습니까?
세령 : (약간 미안한 듯) 예.
승유의 앞에 차를 한 잔 놔주고 물러나는 경혜. 흘깃 보지만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 승유.
승유 : (장난스럽게 비꼬는) 이 스승은 궁 안에만 곱게 계시는 공주마마의 안위가 왜 이리 걱정되는지 모르겠사옵니다.
노파심이겠지요?
세령 : (살짝 욱해서) 그리 마음 써주시니 감사하옵니다.
차를 한 모금 마시는 승유의 기품 있는 동작과 수려한 이목구비, 찬찬히 훑어보는 경혜의 시선.
승유 : 타지도 못하는 말에 올라 목숨을 잃을 뻔하고, 사내 품에 안겨 스스럼없이 풀밭을 뒹군,
맹랑한 한 여인의 풍문을 들으신 적 있사옵니까?
경혜 : (눈빛 빛내며 승유를 보는)
세령 : (치밀어 오르지만 참고) 그 사내가 반가의 규수를 색주가에 끌고 가 야릇한 복색을 입혔다지요?
경혜 : (세령 쪽을 쏘아보는)
승유 : (피식 웃는)
세령 : 사내에게 남긴 그 여인의 노리개는 어찌 되었답니까?
파르르 떨리는 경혜의 손.
승유 : 아, 게까지 들으셨습니까? 사내 곁에서 태연히 잠까지 자고 황망히 자취를 감춘 그 여인의 노리개는...
하는데, 쨍그랑! 깨지는 소리!
승유, 놀라서 보면 경혜의 손에서 미끄러져 깨진 다기 조각들. 다기 조각을 주을 생각도 않고 미동 없이 앉아 있는 경혜.
발 너머 상황이 궁금한 세령, 슬쩍, 발을 들춰본다.
동그래지는 세령의 눈. 승유가 의아하게 보고 있는 궁녀, 경혜다!
S#40. 궁궐 일각 (낮)
나란히 선 공주 차림의 세령과 궁녀 복색의 경혜.
한 무리의 나인들, 세령이 공주인 줄 알고 고개 숙여 예를 갖춘다.
얼굴 보이지 않게 살짝 고개 돌리며 지나치는 세령. 그런 세령을 의미심장하게 보는 경혜의 눈길.
나인들, 눈치 채지 못하고 제 갈길 가면,
세령 : 깜짝 놀랐습니다. 왜 그리 위태로운 장난을 하십니까?
경혜 : 위태롭기로 치자면 너와 난 한 배를 탄 사이 아니냐. 네가 공주노릇을 하는데 나라고 궁녀노릇을 못 할까?
세령 : 어찌 들어오신 겝니까?
대답처럼 세령에게 노리개를 내미는 경혜. 의아한 얼굴로 노리개를 받는 세령.
세령 : 이것이 어찌...
경혜 : 어젯밤 내 처소의 나인이 김직강에게 받아왔더구나.
세령 : 이걸 전하겠다고 그 밤에 왔었단 말입니까?
경혜 : 사내 곁에서 태연히 잠까지 자고 황망히 자취를 감춘 그 여인이 너인 게냐?
세령 : 예? 아아- 우연히 궐 밖에서 만난 일을 가지고 장부가 되어서 어찌 과장이 심한지...
경혜 : 퍽 가깝게 들리는구나.
세령 : 가깝긴요. 종일 사내는 어떻고 아녀자는 어떻고를 따지는 고루한 자인 걸요.
(불현듯 떠오른) 근데 참 별일입니다. 어제는 다친 제 발목에 약찜을 올려놓질 않나- (하는데)
경혜 : (그 말에 얼굴 대번에 서늘해지는)
S#41. 공주의 처소 / 옷방 (낮)
옷을 갈아입는 세령과 경혜공주. 옆에서 시중을 드는 은금.
싸늘하게 굳어있는 경혜의 표정. 저도 모르게 경혜의 눈치를 보는 세령.
세령 : (다 갈아입고)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고개만 살짝 끄덕이는 경혜.
나가려던 세령, 그런 경혜의 태도가 신경 쓰여 돌아본다.
세령 : 참, 부마간택을 한다 들었습니다. 감축드리옵니다.
은금 : (경혜의 안색 살피는)
경혜 : 고맙다.
예를 갖추고 나가는 세령. 세령이 나가자 더욱 무섭게 굳는 경혜공주의 표정.
경혜의 눈치를 보는 은금.
경혜 : 김승유는, 네 사내가 아니다!
S#42. 강녕전 동온돌 방문 앞 (낮)
걸어와 장지문 앞에 멈추는 신숙주. '자막 {신숙주. 집현전 직제학}'
서 있던 전균 안에 고한다.
전균 : 전하, 직제학 신숙주 들었사옵니다.
S#43. 강녕전 동온돌 (낮)
안색이 파리한 문종이 앉아있다. 그 앞에 부복해 있는 신숙주.
문종 : (피곤한 목소리) 그간 격조했네.
신숙주 : 전하, 안색이 어찌 그리...
문종 : 집현전에서 밤을 지새우며 그대와 학문을 논하던 시절이 그립구나.
신숙주 : (물끄러미 올려보는)
문종 : 집현전 학자들의 정치참여를 금하신 선대왕마마의 유지만 아니었다면 과인은 그대를 의정부에 두었을 것이야.
신숙주 : (황공한 듯 고개 숙이는)
문종 : 정승판서가 되어 이 나라를 경영하고도 남을 인재이거늘...
신숙주 : 망극하옵니다.
문종 : 나의 힘이 되어주게.
신숙주 : (문종을 올려다보는)
문종 : 지금 길례청엔 온통 수양의 사람들뿐이야. 그대가 수양의 농간을 견제해 주어야한다.
신숙주 : 명심하겠사옵니다.
문종 : (믿음직하게 보는)
S#44. 길례청 앞 (낮)
위로 '자막 {길례청: 왕실의 혼사를 총괄하는 임시기관}'
길례청을 향해 걸어가는 신숙주의 모습 보인다. 먼발치에서 신숙주를 보고 있는 수양과 권람.
수양 : (신숙주에게 시선 꽂힌 채로) 신숙주라....
권람 : 집현전에서도 대쪽 같기로 유명한 자입니다.
수양 : (의미심장하게 웃고) 대나무는 속이 텅 비어있는 법이지.
권람 : (의미를 파악하려는)
수양 : 김승유를 대신할 부마감은 찾았는가?
권람 : 마땅한 후보 서넛을 점찍어 두었습니다.
수양 : (고개 끄덕이고)
신숙주(E) : 불가합니다!
S#45. 길례청 안 (낮)
상석에 앉은 수양대군, 그 옆에 앉은 신숙주.
신숙주의 반대편에 앉은 권람과 온녕군, 신숙주를 견제하는 시선.
나머지 관리들도 옆에 앉았다. 말미에 앉은 박주부(50대, 男)
신숙주 : 논산현감 송기석은 비첩이 무려 넷이나 되니, 그 행실이 사뭇 바르지 못합니다.
고로 그 자제는 부마 후보로 부적격합니다.
권람 : (몹시 못마땅한) 원주부사 조현의 장남 조경택은 어떻습니까?
신숙주 : (거침없이) 조경택의 아비인 조현과 조부인 조일섭은 금품을 수뢰한 혐의로 동시에 의금부에 하옥된 전적이 있습니다.
탐관오리의 자제를 부마후보로 올릴 수는 없는 노릇이지요.
수양 : (차분하게 보는)
온녕 : (버럭) 형식적인 간택이오! 사사건건 시비를 따지면 어쩌자는 것이오!
권람 : 지금 재간택에 올릴 후보들을 뽑지 말자 이것입니까?
신숙주 : 그보다 직강 김승유와 공주마마의 궁합수를 보는 일이 우선이지요.
온녕 : 뭐라? 궁합수는 최종간택에서 보는 일임을 모르는가?
신숙주 : 이미 내정된 부마에게 절차가 무슨 의미입니까?
온녕 : (버럭) 이보게!
수양 : 직제학의 말씀이 참으로 지당하십니다. '자막 {부사: 길례청의 관직}'
좌중 : (보는)
신숙주 : (견제하는 눈초리)
수양 : 직제학께서는 공주마마와 김승유의 궁합수를 얻는 데 신경 써 주십시오.
(온녕과 권람을 보며) 두 분께서는 최종간택에 올릴 형식적인 후보들을 가려주시구요.
권람 : 예, 대감.
온녕 : 알았네.
수양 : (신숙주에게) 흡족하십니까?
신숙주 :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삼가야 할 일이 있습니다.
수양 : (온화하게) 무엇입니까?
신숙주 : 궁합수는 관상감의 주부 박수천이 맡을 것입니다. '자막 {관상감: 조선시대 천문, 지리학, 역술 등을 맡아보던 관청}'
좌중, 박수천을 주목한다. 인사도 하지 않고 시선도 마주치지 않는 박주부. 묘한 분위기.
신숙주 : 최종간택이 끝날 때까지 박주부의 집무실은 내금위가 지킬 것입니다. 궁합수가 누설돼선 안 되니 출입을 금해 주십시오.
수양 : ...참으로 철저하십니다.
팽팽한 눈길로 서로를 보는 수양과 신숙주.
S#46. 길례청 앞 (낮)
수양과 신숙주, 나란히 걸어 나온다.
수양 : 직제학이 길례청을 맡아주어 참으로 든든합니다.
신숙주 : (흔들림 없이) 대군께서 맡으신 주혼의 자리가 더 막중하지요.
수양 : 그리 말씀해주시니 고맙습니다.
그 때 지나가던 승유, 얼른 다가와 공손히 예를 갖춘다.
신숙주 : 퇴청하느냐.
승유 : 예.
신숙주 : 수양대군 대감이시다.
승유 : (예를 갖추고) 종학 직강 김승유라 하옵니다.
수양 : (!)
신숙주 : (보는)
수양 : ...부친에 비길 만한 그릇이네 아니네, 세간의 입방아가 피곤하지 않은가?
승유 : 타인의 평은 그리 귀담아 듣지 않사옵니다.
수양 : (그 기개가 맘에 들어 호탕하게 웃는) 허허허! 공주의 강론을 맡았다 들었네. 마마와 많이 돈독해지셨겠네.
승유 : 그저 효경을 마치는 일이 저의 소임이옵니다.
수양 : 자네를 보고 있자니 내 속이 몹시 쓰리구만.
신숙주 : (그 말에 수양 보는)
승유 : (약간 어리둥절한)
수양 : 이만 가보시게.
승유 : (예를 갖추고 멀어지는)
수양 : 종학의 젊은 직강들과도 교류가 있으신 모양입니다.
신숙주 : (무뚝뚝한) 제 아들의 벗입니다.
멀어지는 승유의 뒷모습을 보는 수양.
S#47. 한성부 큰마당 (낮)
무장을 하고 도열해 있는 송자번을 비롯한 한성부 군사들. 그 앞에 늠름하게 서있는 신면.
신면 : 근자에 도성 안 시정잡배들의 횡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나는 이를 좌시하지 않겠다.
사대문 안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먹는 모리배들을 모조리 잡아들여라!
일제히 : 예!
S#48. 운종가 난전거리 (낮)
거리 곳곳을 누비고 다니는 한성부 군사들. 거세게 저항하며 도망하는 시정잡배들을 무자비하게 잡아들인다.
그 안에 칠갑, 막손과 그들의 무리들도 섞였다. 속 시원한 얼굴로 보고 있는 운종가 상인들.
마상에서 날카롭게 보고 있는 신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흩어지는 칠갑, 막손 등.
S#49. 운종가 일각 후미진 골목 (낮)
코너에 몰린 왈패 두 놈, 돌아보면 송자번이 홀로 쫓아왔다.
비린 웃음을 지으며 각각 허리춤과 발목에서 칼을 뽑아드는 왈패 1, 2 천천히 쌍칼을 뽑아드는 송자번.
왈패 1, 2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달려든다. 순식간에 날아간 송자번의 쌍칼이 두 사람의 허벅지에 박힌다.
나뒹구는 왈패1,2의 허벅지에서 쌍칼을 뽑아드는 송자번. 왈패 1, 2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 나온다.
골목 밖 도망치고 있는 칠갑이 송자번의 시야에 들어온다. 날래게 추격하는 송자번.
S#50. 청풍관 앞 (낮)
도망치던 칠갑, 황급히 청풍관 안으로 튀어 들어간다. 순식간에 닫히는 묵직한 대문.
코앞까지 쫓아온 송자번과 군졸 서넛. 송자번, 청풍관 현판을 보고 주저한다.
뒤늦게 다다른 신면의 말.
신면 : 어찌 주저하느냐?
송자번 : 고관대작들이 자주 드시는 청루이옵니다.
신면 : 한낱 기방일 뿐이다.
송자번 : (걱정스럽게 본다)
신면 : 열어라.
군졸 하나가 다가가 힘차게 문을 두들긴다. 그러나 묵묵부답.
송자번 : 열지 않을 것이옵니다.
신면 : 담을 넘어라!
S#51. 청풍관 안 (낮)
대문의 빗장을 여는 군사. 문이 열리면 군사들과 송자번이 앞장서 들어오고 뒤이어 들어오는 신면.
그러나 텅 비어있는 마당.
본채 안에서 스르륵 나오는 기생 매향. 교태와 도도함이 넘친다.
매향 : 귀한 손을 뫼시고 있습니다. 이 무슨 결례요?
신면 : (잠시 당황하나) 이곳에 숨어든 왈패를 찾고 있소.
매향 : 잘못 찾으셨나이다.
신면 : 죄인을 숨기는 것도 범법임을 모르는가?
매향 : 귀한 손을 뫼셨기에 대문을 닫았는데 어찌 죄인을 숨긴다 하십니까!
신면 : 기방 안을 뒤질 수도 있소.
매향 : 이제 보니 왈패는 바로 제 눈앞에 계십니다.
신면 : (일방통보)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오. (군사들에게) 샅샅이 뒤져라!
흩어져 청풍관 건물 이리저리를 뒤지는 군사들. 이 소란에 안에서 성난 얼굴로 나오는 사내, 바로 함귀다.
함귀 : 웬 소란이냐! (신면을 보고 얼굴 일그러지는) 또 무슨 볼 일입니까?
신면 : 네 놈을 보니 이곳이 운종가 왈패들의 소굴이 맞구나.
함귀 : (힐끔 본채를 보고) 오늘은 날이 좋지 않습니다. 다른 날 찾아오시면 친히 상대해 드리지요.
신면 : (본채에 시선 꽂힌)
신면, 한달음에 본채 안으로 뛰어든다. 놀라는 함귀와 매향.
S#52. 청풍관 / 본채 안 (낮)
순식간에 겹겹이 장지문이 젖혀지고, 젖혀지고, 또 젖혀지고.. 미로 같은 깊숙한 기방 안으로.. 안으로.. 달려 들어가는 신면.
드디어 마지막 장지문이 열리기 직전! 신면의 목에 겨눠지는 날카로운 검.
흠칫 멈춰서는 신면, 손은 반사적으로 자신의 검 위에 닿아있다.
신면에게 검을 겨누고 있는 임운. 본능적으로 알아본 무사들의 눈빛.
스르르- 안쪽에서 천천히 마지막 장지문이 열린다.
신면의 눈앞 정면에 앉아있는 이는, 수양대군이다. 그 옆에 한명회가 앉아 있다. '자막 {한명회}'
수양대군의 얼굴을 알지 못하는 신면. 흥미롭게 신면을 보는 수양대군.
수양 : 무슨 일인가?
신면 : (당당하게) 한성부 판관 신면이라 하오이다. 이곳 왈패들의 우두머리를 잡으러 왔소.
임운 : (칼끝으로 신면을 더욱 위협하는)
수양 : (손들어 저지한다)
검을 걷는 임운. 황급히 뒤를 쫒아 들어온 함귀와 매향.
수양 : 왈패의 우두머리라... 나를 찾고 계시는구만.
그 말에 깔깔거리는 한명회와 함귀, 매향.
신면 : 그렇다면 한성부로 같이 가야겠소이다.
더 크게 깔깔거리는 한명회와 함귀.
신면, 뭔가 잘못 돼가고 있음을 느낀다.
한명회 : 이보시게 한성부 판관! 이 어른이 뉘신지 진정 모르는가?
신면 : (불길한)
한명회 : (정색하며) 예를 갖추게! 수양대군 대감이시다.
신면 : (그 말에 놀라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갖추는) 대감, 무례를 용서 하십시오.
수양 : 무례라고 생각은 하는가?
신면 : (고개 들어 당당히 보는)
수양 : 위세 따위에 굴하지 않는 당당한 눈빛이라. 신면이라 했는가?
신면 : 그러하옵니다.
수양 : 어느 가문의 장부이신가?
신면 : (당당한) 집현전 직제학 신 숙자 주자 어른이 제 부친이옵니다.
수양 : (놀랐지만 이내 껄껄 웃는)
신면 : (웃음의 의미를 모르는)
수양 : 이곳은 내가 안식을 즐기는 유일한 곳이네. 제 일 종친을 대접하는 곳에서 법도를 어길 리야 있겠는가.
(미소) 오늘 일은 내 인연으로 새겨둠세.
한명회가 눈짓을 하면 신면의 눈앞에서 스르륵 닫히는 장지문.
S#53. 청풍관 / 뜰 (낮)
생각에 잠겨 본채에서 걸어 나오는 신면. 신면을 기다리고 있던 송자번과 군사들.
송자번 : 어찌 되셨습니까?
뒤돌아 본채 쪽을 보는 신면.
수양(E) : 기이한 연일세.
S#54. 청풍관 / 본채 안 (낮)
호젓하게 앉은 수양대군과 한명회.
수양 : 내 오늘 궁에서, 방금 다녀간 자의 죽마고우를 만났네.
한명회 : 우상의 자제 김승유 말씀이십니까?
수양 : 남에게 주기에는 참으로 아까운 사내더군.
한명회 : 혼담은 거절당하셨습니까?
수양 : 이 손이 아닌 형님의 손을 잡았지.
한명회 : (아무렇지 않게) 끊어버려야지요.
수양 : (보면)
한명회 : 손을 못 잡게 해버리면 그만 아닙니까? 흔적 하나 남기지 않고 묻어버리면
고관대작이든 거렁뱅이든 썩은 내가 나는 건 매일반입니다.
수양 : 의심의 화살이 나를 향하겠군.
한명회 : (보는)
수양 : 허나 어쩌겠나. 의심을 한다한들 증좌가 없으니, 오히려 실체 모를 두려움에 떨 뿐이겠지.
이심전심으로 웃는 수양과 한명회.
S#55. 정종의 집 앞 (낮)
한눈에도 몰락한 가문처럼 보이는 쇠락한 분위기의 집.
대문을 두들기고 있는 승유.
승유 : 종이! 안에 있나?
대답이 없자 또 두들긴다.
승유 : 종이! 나 승유일세! 어딜 갔나?
그제야 삐걱하고 열리는 문. 안에서 얼굴을 내비치는 정종의 어머니(40대후반, 女)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 병색이 완연하다.
정종母 : 승유로구나.
승유 : 하인들은 어찌하고 어머님께서 나오십니까?
정종母 : 품삯을 주지 못하니 붙어 있을 리가 있나?
승유 : (짠하게 보다가) 종이는 안에 없습니까?
정종母 : (한숨 쉬는)
S#56. 약방 안 (낮)
약재 꾸러미가 한켠에 놓여있고, 약방 의원과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정종.
의원 : 안됩니다요. 하늘이 두 쪽이 나도 더는 안됩니다요.
정종 : 허허, 그 사람 왜 그리 빡빡하게 구는가. 내 한꺼번에 다 쳐서 갚는다 하질 않는가?
의원 : 한꺼번에 다 쳐서 갚으면, 약은 그때 가져가십시오.
정종 : (난감한) 이 보게 허의원, (하는데)
승유(E) : 얼마면 되는가?
정종, 돌아보면 서있는 승유.
S#57. 약방 앞 (낮)
걸어 나오는 정종과 승유, 정종의 손에는 약재가 들려 있다.
정종 : 고맙다. 어머니께 긴요할 것이야.
승유 : (살짝 안쓰러운)
정종 : (기죽지 않으려 허세) 내 부마도위에 오르면 톡톡히 갚아주지.
승유 : 부마? 누구 맘대루?
정종 : 오호, 요놈 봐라. 꼴에 스승이라 감싸는 거냐? 아, 이제 보니 너도 내 경쟁자구나. 면이는 형님이 간택대상이니 제외지만
네놈은 사주단자를 올렸을 것 아니냐.
승유 : 어른들이 알아서 하셨겠지. 어서 들어가서 약이나 다려드려.
정종 : 알았어. 그럼 가네. (멀어지는)
승유 : (뒷모습 보면서 혼잣말) 공주의 지아비라.
돌아서 제 갈길 가는 승유.
S#58.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뜰 (밤)
불이 켜진 사랑채 앞에 와서 서는 승유.
승유 : 아버님. 소자 다녀왔습니다.
김종서(E) : 잠시 들어오너라.
승유 : 예.
무슨 일이지? 의아한 승유.
S#59. 김종서의 邸 / 사랑채 (밤)
김종서와 마주 앉은 승유.
김종서 : 공주마마는 어떤 분이시냐?
승유 : 예?
김종서 : 항간에 떠도는 풍문이 사실이더냐?
승유 : 무슨 말씀이신지.
김종서 : 금상께서 오냐오냐 키워 철이 없다는 얘기 말이다.
승유 : (웃고) 그릇된 풍문이라 사료되옵니다.
김종서 : 어째서?
승유 : 공주께선 총명하고 생기 넘치는 분이십니다.
김종서 : 듣던 중 다행이구나.
승유 : (의아한)
김종서 : 부마간택에 너의 간택단자도 올릴 것이다. 허나 절차는 형식에 불과할 뿐이다.
승유 : 예?
김종서 : 주상전하의 부마도위는 이미 결정되었다.
승유 : (무슨 말인지 모르겠는)
김종서 : 부마는 바로 너이니라.
승유 : (놀라는)
S#60. 김종서의 邸 / 뜰 (밤)
뜰을 거닐며 상념에 잠긴 승유, 발길을 멈춘다.
김종서(E) : 부마는 바로 너이니라!
이런 인연이었나. 미소 지으며 하늘을 올려다보는 승유. 밤하늘에 덩그마니 뜬 달.
S#61. 수양대군의 邸 / 세령의 방 (밤)
따분한 얼굴로 수를 놓다가 바느질을 멈춘 세령. 수틀을 한쪽에 툭 던져버린다.
벌컥 문 열고 들어오는 여리.
여리 : 아가씨! 대군마님께서 곧 사냥을 가신답니다. 서둘러 말을 찾아다놔야 합니다요.
S#62. 운종가 거리 / 기방 근처 / 다른 날 (낮)
같이 걸어오는 세령과 여리.
여리 : 혼자 가도 된다는데 어찌 따라오십니까?
세령 : 거깁니까? 요깁니까? 어디요? 저 골목이요? 그거 하나 못 외고 거듭 물어본 게 누군데?
여리 : (할 말 없으니) 왜 이리 멉니까요?
세령 : 다 왔어. 저기다.
S#63. 운종가 기방 앞 (낮)
기방 앞에 도착한 세령과 여리.
여리 : 아가씨는 여기 계십시오.
대문 안으로 여리가 들어간다.
심심한 마음에 여기저기 둘러보는 세령. 그때! 하필 저쪽에서 어슬렁어슬렁 말 타고 오는 승유 보인다.
당황한 세령, 등을 돌려 슬금슬금 피한다.
S#64. 운종가 거리 / 골목 (낮)
골목 안으로 쏙 들어온 세령, 긴장한 채 숨을 고른다.
여리(E) : 아가씨! 세령 아가씨! 어디 계세요? 아가씨!
하필이면 지금. 얼굴을 찌푸린 세령, 여리의 소리가 멀어질 때까지 기다린다.
잠시 후. 동정을 살피려고 조심스레 고개를 내미는 세령, 헉! 하고 놀란다. 바로 앞에 떡하니 있는 승유의 얼굴!
한심해죽겠다는 승유의 시선을 애써 피하는 세령. 기가 막히면서도 한편으로 반가운 승유.
승유 : 무슨 궁을 그렇게 밥 먹듯이 나오십니까? 내 오늘은 기필코! 공주처소의 상궁나인들의 주리를 틀어
죄를 엄히 물을 작정입니다.
세령 : 잘됐습니다. 저도 죽자고 기방에 드나드는 종학 직강의 문란함에 대해
사헌부와 사간원에 빈틈없이 감찰하라 이를 것입니다.
승유 : (픽 웃고) 오늘은 무슨 용무십니까?
세령 : (당당히) 말을 찾아야겠기에.
승유 : 핑계도 참 다채로우십니다. 말이야 아랫것들을 시키면 되실 일이 아닙니까?
세령 : (말문이 막히지만) 스승님께서는 아실 수 없는 사정이 있습니다.
승유 : 스승이란 자가 말리든 어쩌든, 말에서 떨어져 다치든 말든, 마상에 또 오르시겠다?
세령 : 아닙니다. 다시는 말을 타지 않을 것입니다.
승유 : 어째서요?
세령 : (기가 꺾여) 저 때문에 노심초사하시는 분과 약조를 했습니다.
승유, 풀이 죽은 세령의 모습, 처음 보는 그 모습을 물끄러미 본다.
#플래시백: 제2화 장면 8의 일부
승유에게 속을 털어놓는 세령의 말들.
세령 : 정말 그러합니까? 탁 트인 곳에서 말을 달리면 정말 속이 다 후련해지느냐 이 말입니다.
도로 현재.
자리를 뜨려고 예를 갖추는 세령.
세령 : 이 길로 궐로 돌아갈 것이니 염려 마시고 가던 길 향하소서. (돌아서는)
승유 : (대뜸) 가십시다.
세령 : (돌아보는)
승유 : (뒤에 세워둔 제 말을 턱짓하고) 정말 속이 후련해지는지 몸소 겪어보시지요.
세령 : (!)
S#65. 운종가 거리 / 일각 (낮)
말을 끌고 멀어지는 세령과 승유의 뒷모습. 그 모습을 보고 있는 정체모를 사람의 뒷모습.
S#66. 벌판 (낮)
승유가 세령에게 해주는 일종의 승마강습.
승유 : 말은 타기 전에 반드시 고삐와 말갈기를 잡고 계셔야 합니다.
말의 고삐와 말갈기를 잡고 있는 세령.
승유 : 말에 오를 때는 반드시 왼편으로 타십시오.
승유, 무릎을 굽혀 세령이 밟고 올라가도록 해주면, 예상외의 행동에 잠시 승유를 바라보는 세령.
승유, 타라는 듯 제 허벅지를 톡톡 치면 잠시 망설이던 세령, 조심스레 밟고 올라탄다.
세령이 말에 오르면 도로 일어나는 승유.
승유 : 말에 오를 때 오른발이 말의 엉덩이를 차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낙마하시기 십상입니다.
세령 : (이제 알겠다) 아아- 전에 그런 적이 있었습니다.
승유 : (피식 웃고) 올라보시지요.
조심히 말에 오르는 세령. 겨우 올라탔다.
승유 : 머리와 엉덩이, 발뒤꿈치가 일직선이 되도록 앉으십시오.
열심히 말대로 해 보는 세령.
승유, 손짓으로 머리는 좀 더 집어넣게 하고, 발뒤꿈치는 좀 빼게 한다.
승유 : 무게중심은 반드시 뒤편에 두셔야 합니다. 앞이나 뒤로 쏠릴 경우 또한 낙마를 하시게 됩니다.
세령 : (조심하는)
승유 : 고삐는 항상 팽팽히 잡으십시오.
세령 : (팽팽히 잡는)
승유 : 자, 이제 발뒤꿈치로 말의 배를 가볍게 차보십시오.
긴장해서 아주 툭 가볍게 차는 세령. 말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얼굴이 환해지는 세령.
S#67. 숲속 (낮)
멀리 세령과 승유가 보인다. 말에 탄 자객의 뒷모습.
S#68. 벌판 (낮)
여전히 승마 강습 중인 승유. 세령이 탄 말은 천천히 걷고 있다. 고삐를 쥐고 따라가는 승유.
승유 : 세게 찰수록 속도는 빨라집니다. 한 번 차보십시오.
세령, 조금 세게 차니 말의 발걸음이 약간 빨라진다. 두려움에 눈을 질끈 감아버리는 세령.
말을 살피면서 지시를 내리는 승유.
승유 : 눈을 감으시면 안 됩니다.
눈을 살짝 뜨는데 옆의 광경들이 휙휙 지나가자, 눈을 감아버리는 세령.
그 모습을 본 승유, 천천히 말을 세운다. 훌쩍, 세령의 뒤편에 올라타는 승유.
살짝 놀라고 긴장하는 세령.
S#69. 수양의 邸 / 사랑채 (낮)
권람과 마주 앉은 수양대군. 심각한 권람의 표정.
권람 : 김승유에 필적할 후보가 흔치 않사옵니다.
수양 : ...김승유는 간택에 오지 못할 것이야.
권람 : 그것이 무슨 말씀이옵니까?
수양 : (의미심장한 미소)
S#70. 벌판 (낮)
말에 나란히 앉은 세령과 승유, 천천히 달린다.
승유 : 눈을 떠보십시오.
세령 : (겨우 눈을 뜨는)
승유 : 속도를 더 높이겠습니다.
승유의 발뒤꿈치, 말의 배를 세게 찬다.
단숨에 말의 속도가 빨라지자 세령의 입에서 터지는 비명. 도로 눈을 꼭 감아버리는 세령.
승유 : 제가 뒤에 있습니다. 눈을 뜨십시오.
세령 : ...겁이 납니다.
과감히 세령의 허리를 감싸 안는 승유의 팔. 순간적으로 그 감촉에 놀라 움츠리는 세령의 몸.
승유 : 절대 다치게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를 믿고 눈을 뜨십시오.
그 말에 천천히 눈을 떠보는 세령. 휙휙 지나가는 주위 풍경에 눈이 시리지만 점점 적응 된다.
승유 : 괜찮으십니까?
세령 : 예.
승유 : 좀 더 달리겠습니다. 하!
승유가 박차를 가하자 달리는 속도가 더욱 빨라진다.
세령, 처음 느껴지는 공기의 마찰에 숨도 쉬지 못하겠다.
세령 : (소리 지르는) 스승님! 온 세상이 저에게 달려드는 듯합니다.
승유 : (역시 소리 지르는) 바람을 안아 보십시오!
세령, 달려드는 바람으로 깊게 심호흡을 한다. 너무나 시원하고 후련하다!
승유 : (크게) 시원하십니까?
세령 : (한껏 크게) 가슴 속이 뻥 뚫리는 듯합니다!
그 말에 환하게 미소 짓는 승유.
수양(E) : 김승유는!
S#71. 수양의 邸 / 사랑채 (낮)
잔인한 얼굴로 읊조리는 수양.
수양 : 살아 돌아오지 못할 것이네!
S#72. 벌판 (낮)
어디선가 빠르게 날아온 화살, 말의 몸통에 명중한다!
히히힝! 고꾸라지는 말. 땅바닥에 패대기쳐져 구르는 승유와 세령.
그 와중에도 세령을 감싸서 보호한 승유, 심한 물리적 충격에 쓰러진 채 신음소리를 흘린다.
비교적 다치지 않은 세령, 일어나 승유에게 달려든다.
세령 : 스승님! 정신 차리십시오! 스승님!
겨우 눈을 뜬 승유, 세령의 뒤를 보며 서리는 공포....
왜 그러나 싶어 뒤를 돌아본 세령, 경악한다!
나무 사이사이에서 스윽- 말을 타고 나타나는 도적떼. 요란한 말발굽 소리와 함께 다가오는 그들,
놀라는 승유와 세령의 얼굴에서!!
[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