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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남자가 아름답다...피아니스트 이루마
이루마...이름처럼 외모도 성격도 뽀샤시하게 참 예쁘다.
음악과 함께 살아서일까. 실연의 아픔도, 새녁녘 쓸쓸함도 피아노 건반위에 올려놓으면
아름다운 멜로디가 된다.
하얀 겨울을 닮은 남자 이루마가 눈썰매 타듯 사뿐히 들려준 삶의 연주.
# 좋았던 때만 기억하기로 했다.
이루마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의 음악을 들으면 아, 이 노래, 하며 손뼉을 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의 음악은 TV드라마 배경음악으로, 핸드폰 벨소리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이제 이루마라는 이름은 인터넷 포털 사이트 검색어 음악인 분야에서 1위를 차지할 정도로 널리 알려져 있다. 10대부터 중년까지 팬도 다양하다. 연말 전국 순회공연으로 바쁜 이루마를 인사동 그의 숙소에서 만났다. 그는 새 음반 출시를 기념한 싸인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에 잠깐 올라왔다고 했다.
"지방 공연을 다니느라 5일 만에 서울에 왔습니다. 새해 초까지 스케줄이 빡빡하게 잡혀 있는데 해가 갈수록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낍니다. 올해는 보약까지 먹고 있으니 말입니다. 몇 년 동안 크리스마스나 연말연시를 개인적으로 보낸 적이 없어요. 늘 공연장에서 보내는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어 좋긴 하지만 혼자서 차분하게 한 해를 되돌아볼 시간이 없어 아쉽기도 해요. 그래서인지 공연이 끝난 후 괜히 공허해질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지인을 만나거나 혼자서 차를 몰고 속초 바닷가로 향합니다."
연주회나 사인회를 할 때마다 팬들이 다양하다는 걸 느낀다는 이루마. 연인은 물론, 엄마와 딸, 온가족이 찾는다. 특히 중고등학생이 많은데 이들은 멋 훗날까지 그의 변함없는 팬이 되어 줄 것이기에 뿌듯하다.
"예전에는 대부분이 여성이었는데 요즘은 남자 팬도 꽤 늘었습니다. 다들 제 음악이 편하다고 합니다. 음악을 듣고 있으면 위안을 얻는다고 합니다. 제가 20대여서 음악으로 사람들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팬들과의 만남이 제게 남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단지 음악을 들려주고 듣는 관계로 끝나는 게 아니라 많은 분들이 제 인터넷 홈페이지에 글을 남깁니다. 제가 모든 이야기를 들어줄 것 같다면서. 스토커 수준의 팬도 있지만 그만큼 제가 사람들로 부터 사랑받고 있다는 증거니 기분 나쁘게 여기지는 않습니다."
이루마는 최근 4집 음반 '포에뮤직'을 2년만에 냈다. 말 그대로 시와 음악이 주제로, 직접 시를 쓰고 곡을 붙인 '시 음악' 12곡이 담겼다. 사람의 귀가 가장 예민하고 가장 잘 들릴 때라는 '새벽 4시'가 이번 음반의 주제. 새벽 4시 집 근처 삼청동 길, 눈 내리는 겨울 거리, 그리운 사람을 만나러 가는, 그 느낌 그대로를 음반에 담았다.
"시라기보다는 일상에서 그때그때 느낀 것들을 일기나 수필 형식으로 끄적인 글입니다. 글을 곧 음악이 될 수 있고 음악 또한 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새 음반은 영화음악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버스 창에 기댄 모습, 연인과 걷는 모습..., 우리는 저마다 영화의 주인공인데, 제 음악이 그런 일상의 장면들을 분위기 있게 들려주는 역할을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경복궁이 내려다보이는 오피스텔에서 '동거녀'와 함께 생활한다. 그녀는 다름 아닌 피아노. 어떤 때는 첫사랑의 검은 눈동자처럼 새초롬하게 그를 바라보다가도, 또 어떤 때는 평생을 백년해로한 노부부처럼 자글자글한 눈빛으로 그의 마음을 어루만져 준다고. 그냥 손을 뻗어 건반을 누르기만 해도 반응하는 단숨이 있는가하면, 손끝의 미세한 감각을 읽고 그 감정의 변화에 따라 다른 음을 들려주는 섬세함도 지니고 있단다. 그래서 피아노는 그에겐 여자같은 존재.
사실 그는 얼마 전 연인인 탤런트 김지우와 헤어졌다. 지난 6월 열애 사실이 알려진 후 5개월간 공개적으로 아름다운 만남을 이어오다 좋은 친구로 남기로 한 것.
그는 힘들 때도 있었고, 좋을 때도 있었지만 좋았던 때만 기억하기로 했다.
"지금은 극복을 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우울증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집에 틀어박힌 채 음반 작업에만 집중했습니다. 성격이 잘 안맞았던 것 같아요. 그 친구나 저나 좋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앓은 심한 치통이었나 봅니다. 저는 아마 연예인하고는 결혼을 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 그 여자가 싫어하던 우동을 시키고 말았다.
이루마는 최근 에세이집 <이루마의 작은 방>(명진출판)도 한권 펴냈다. 작곡가, 피아니스트에 이어 작가란 호칭이 하나 더 붙은 셈. 그는 이 책의 '세상에서 가장 슬픈 우동'이라는 글에서 연인과의 만남에서 헤어짐까지를 솔직하게 밝혔다.
"한국에서 세 번째 콘서트를 할 때였습니다. 아는 후배로부터 '형하고 진짜 잘 어울리는 누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지만 콘서트 준비로 바빠 만날 여유가 없었습니다. 콘서트를 마치고, 마지막 날 싸인회가 있었는데 한 여성 팬이 크리스털로 만든 작은 피아노를 선물로 주었습니다. 그 피아노가 너무 앙증맞고 예뻐서 한참을 바라보다가 그녀가 남긴 명함의 메일 주소로 감사하다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메일을 몇 번 주고받은 후 우리는 만나기로 약속했습니다."
비 오는 날, 광화문 근처에서 그녀를 만났다. 남색 원피스에 하얀 우산을 쓴 그녀의 모습이 그렇게 단아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점심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만난 터라 시간이 별로 없었고, 근처에 우동집이 있길래 "우동 드실래요?"하고 물었더니 그녀는 음식을 가리지는 않지만 우동은 싫어한다고 했다.
첫 만남 후 그에게 사랑이 시작됐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녀가 바로 후배가 말한 '아는 누나'였던 것. 그러나 남녀 그사이의 일은 언제 어떻게 될지 아무도 모르는 법. 정말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인연의 끝이 찾아왔다. 며칠 동안 힘들어하던 그녀가 찾아왔고, 두 사람은 긴 시간을 눈물로 이야기 나눈 후 결국 헤어지기로 했다. 그날은 하염없이 비가 내렸다.
"이별을 견디며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에 마음이 아팠습니다. 사랑을 시작할 때는 언제나 처음처럼 마음이 설레듯, 이별이란 것도 아무리 되풀이해도 절대 익숙해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울다 지친 그녀를 그냥 보내고 싶지 않아서 '뭐라도 좀 먹고 갈래?'물었습니다. 그녀도 허기가 졌는지 국물 있는 것을 시켜 달라고 하더군요. 마땅히 생각나는 것도 없고 해서 우동 두 그릇을 주문했습니다. 따뜻한 국물을 마시고 나면 그녀의 언 마음이 조금은 풀릴 것 같았으니까요. 그런데 배달돼온 우동을 보더니 그녀가 허탈하게 말했습니다. "내가 그렇게 싫어하는 우동을 시켰네."그리고는 쓸쓸한 뒷모습을 남기고 떠나 버렸습니다."
식어가는 우동 두 그릇을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그토록 좋아했던 사람을 보내면서 그 사람이 가장 싫어하는 우동을 시키다니...정말 좋아했던 사람이기에 더 소중한 마음으로 그녀를 보내고 싶었는데, 마지막 순간은 덜 아프게 간직하고 싶었는데...그녀를 보내는 아?戮? 한없이 쓸쓸하기만 했다.
헤어지고 난 한참 뒤에 그는 그녀에게 전화를 했다 영국에 돌아가서 친구들과 룩셈부르크 공원에 갔던 날이었다. 공원을 산책하고 잇는데 갑자기 비가 내렸고, 그녀 생각이 났다. 그녀를ㄹ 처음 만난 날 비가 내렸고, 그녀와 헤어진 날도 비가 내렸으니...내리는 비를 한참이나 바라보다가 전화를 한 것이다. 하지만 잠시 침묵이 흘렀고 몇 마디 안부 인사를 건네고 전화를 끊었다. 친구들은 비 오는 공원 여기저기를 좋다면서 구경을 다니는데 그는 한참 동안 공원 한구석에 물끄러미 서서 전화기만 만지작댔다. '너랑 함께 오자고 했던 그 공원에 왔는데, 지금 굉장히 비가 많이 내린다'고 가만히 속으로 속삭였다.
#꿈이 많다...좋은 음악, 음악학교, 레스토랑, 가구점, 글쓰기, 결혼
데뷔 초 그의 이름은 그의 음악만큼이나 화젯거리였다. 일본인으로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고 이름만 듣고 여자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러다 한국인, 남자, 20대까지 알려진 것이다. 그의 이름 이루마는 아버지가 '뜻을 이루마'라는 의미에서 지었다. 큰누나는 이루다, 작은누나는 이루지, 누나는 둘 다 결혼해서 한국에 살고 있으며 부모님은 영국에 계신다. 한국 손해사정인 1호인 아버지는 선박관련 보험회사에서 일한다고.
"11세에 영국에 혼자 건너가 음악 공부를 했습니다. 부모님이 강요해서가 아니라 음악이 좋아서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습니다. 2년 후에 부모님이 영국에 오셨죠. 저는 원래 꿈이 피아니스트였는데 영국에 와서 보니 워낙 친구들의 실력이 뛰어났습니다. 그럴 수밖에요. 저는 제대로 음악교육을 받은 적이 없고 그저 취미로 피아노를 쳤으니까요. 이건 아니다, 싶어 작곡을 하기 시작했는데 반응이 무척 좋았어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한국에서 연극 '태'의 음악을 맡아달라는 제안이 들어온 게 계기가 되어 한국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부모님은 연고도 없는 한구겡서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판단, 한국행을 반대했다. 하지만 이미 마음은 한국에 가 있었던 터라 그의 고집을 꺾지 못했다. 2000년 겨울, 대학 졸업시험만 보고 한국에 왔다. 12년 만의 귀향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생활은 순탄하지 않았다.
"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4만원으로 한 달을 버틴 적이 많았고 웬만한 거리는 항상 걸어서 다녔죠. 음반을 내려고 이것저것 시도를 해봤지만 도무지 길이 보이지 않았고, 할 수 없이 반주음악을 녹음한 테입을 팔아 근근이 용돈을 벌었습니다. 그러다 친국의 도움으로 연주앨범을 내게 됐습니다"
2001년 데뷔 앨범 '러브 신'은 선풍을 일으켰고 '겨울연가'의 최지우 테마곡 연주를 맡으면서 그의 이름이 본격적으로 알려졌다. 데뷔 5년이 지났지만 아직 목표의 반도 이루지 못했다는 그. 좋은 음악을 만드는 것뿐 아니라 음악학교, 레스토랑, 가구점을 차리는 것도 꿈이다. 특히 그는 산업디자인을 공부한 큰누나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가구 디자인에 관심이 많아 앞으로 그쪽 공부도 해볼 생각이다.
"새해 초에는 영화음악과 장애인 자선공연이 잡혀 있습니다. 그게 끝나면 좀 쉬면서 음악 구상도 하고 시나리오도 쓸 생각입니다. 30대에 나만의 영화를 한 편 만들고 싶어요. 그동안 써온 시를 책으로 묶을 계획도 있고요. 저는 잘될 때가 있으면 잘 안될 때가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준비하는 자세로 사랑요. 저한테 가장 중요한 것은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만드는 일입니다. 사랑받는 대중음악가로 남고 싶어요."
오랫동안 제 삶의 화두는 사랑이었습니다.
그리고 삶 속에서 간직했던 사랑의 기억들이 제 음악의 자양분이 되었습니다.
제가 썼던 음악은 대부분 사랑을 테마로
하고 있고 사랑하면서 혹은 그리움 속에서 제 경험을 쓴 곡들입니다.
자연에 관해서 곡을 쓴다고 해도, 부모님에 대해 곡을 써도 결국에 가선
사랑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사랑으로 살아가는 존재고 사랑이 없다면 어떤 음악도 메마른 쇳소리에
지나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제 음악의 가장 중요한 모티브는
항상 사랑이 될 것입니다.
살아가는 동안 사랑에서 벗어날 수도 없고
사랑을 느끼는 순간이 있기에 음악을 만들 수 있는 것이니까요.
- 에세이<이루마의 작은 방>중에서
이영민 기자/ 사진 김범경/디자인 김현희
기사: 2006. 01월 주부생활
첫댓글 원본 게시글에 꼬리말 인사를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