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칼의 노래
올해 1500만 관객 돌파라는 김 한민 감독의 “명량”이라는 영화를 보게 되었다. 이 영화에서 이순신(최 민식)이 한 대사 중 내 머릿속에 깊게 남은 대사가 하나 있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必死則生 必生則死) “싸움에 있어 죽고자 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 그렇게 이순신 장군은 12척의 배를 이끌고 330척 왜군과 맞써게 된다. 저는 이순신 장군님과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 자세히 알고 싶어 “칼의 노래” 라는 책을 알게 되어 읽어 보게 되었다.
칼의 노래 라는 이책의 줄거리는 요약을 하면 이순신 장군은 다시 삼군통제사가 되어 명량에서 아군의 전선 12척으로 적의 330척의 함대와 맞았다. 명량해전 그 곳에서 적의 함대 33척을 완파하고 나머지는 도주 하여 정유재란의 국면 전체를 결정적으로 바꾸게 된다. 일본군은 이순신 장군의 보복을 위해 이순신장군 가족들이 살고 있는 아산을 공격한다. 이순신의 아들은 적들과 싸우다 전시하게 된다. 나는 이 책의 줄거리를 자세히 알아 볼려고 한다.
경상 해안의 조선 수군은 적의 머리를 잘랐고 일본 수군은 적의 코를 베었다. 잘려진 머리와 코는 소금에 절여져 상부에 바쳤다. 그것을 전과의 증거물 이였다. 잘라낸 머리와 코에서 적과 아군을 식별 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바다에서는 모든 적들이 모든 적들의 머리를 자르고 코를 베었다. 머리와 코의 숫자로 양측 지휘관들은 승진 했다. 승진을 하기 위해서 조선 수군들은 물 위에 떠다니는 아군들의 시체를 갈고리로 찍어 건져 올려서 갑판 위에서 목을 잘랐다. 그래서 그 증거물이 끝없는 전쟁은 결국은 무의미한 장난이며, 이 세계도 마침내 무의미한 곳이가. 내 몸의 깊은 곳에서, 아마도 내가 알수 없는 뼛속의 심연에서, 징징징 칼이 울어대는 울음이 들리는 듯했다. 이순신 장군이 출옥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께서는 순천에서 아산으로 올라왔다. 어머니는 남해안을 돌아서 서해로 올라가는 화물 배편을 얻어 탔다. 하지만 어머니는 배에 관을 싣고 있었다. 배가 아산에 닿았을 때, 어머니는 배 안에서 숨을 거두 었다. 이 글에서 어머니가 이순신 장군에게 늘 한 말이 가장 인생 깊게 남는다 “어서 가거라. 가서, 나라의 원수를 크게 갚아라.” 나는 여기서 많은 뜻을 가리키고 있다고 생각이 된다. 이순신 장군은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초상을 치루지 못했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아들로서 먼 하늘만 바라보면서 어머니를 그리워 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몸과 피난민들의 노숙자리에 내리는 비를 생각하면서 나는 자꾸 술을 마셨다.” 라는 구절이 나온다. 얼마나 어머니를 그리워 하는지를 상상하게 되는지 알수 있다. 나는 다시 충청, 전라, 경상의 삼도수군통제사 였다. 그리고 나는 다시 전라 좌수사였다. 나는 통제할 수군이 없는 수군 통제사였다. 나는 하루 종일 혼자 앉아 있었다. 텅빈 바다 위로 크로 무서운 것들이 다가오고 있었다. 수평선 너머에서 무수한 적선들의 노 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환청은 점점 커지며 내 앞으로 다가왔다. 나는 붓을 들어 임금을 향한, 그리고 이 세상 전체를 겨누는 칼이기를 바랐다. 그 한 문장에 세상이 베어지기를 바랐다. “........신의 몸이 아직 살아 있는 한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우수영에서 내 군사는 120명이었고 내 전선은 12척이었다. 그것이 내가 그 위에 입각해야 할 사실이었다. 또다시 멀어서 보이지 않는 적의 기척이 내 몸에 느껴지는 날들이 있었다, 우수영에서는 보이지 않는 적들이 더욱 확실했다. 명량해협에서 물은 겨울 산속 짐슴의 울음소리로 우우 울면서 몰려갔다 물은 물을 밀쳐내면서 뒤채었다, 말 잔등처럼 출렁거리는 물결이 수로의 가운데를 빠르게 뚫고 나가면, 밀려난 물은 흰 거품으로 소용돌이치며 진도 쪽 해안 단애를 부딪혔다. 물이 운다고 지방민들은 이 물목을 울돌목이라고 불렀다. 명량에서는 순류 속에 역류가 있었고, 그 반대도 있었다. 적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여기는 사지였다. 우수영 언덕에서 나는 생사와 존망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을 만한 한 줄기 역류가 내 몸 속의 먼 곳에서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그것은 확실했다. 내 몸이 그 희미한 역류를 증거하고 있었다. 나는 적이 울돌목의 사지로 들어와 주기를 바랐다. 그것이 전선 12척으로 적을 맞을수 있는 단 하나의 전략이었다. 나는 임금에게 수군이 비록 외롭다 하나 이제 신에게 오히려 전선 열두 척이 있사온즉.... 나는 한 줄을 더 써서 글을 마쳤다. “.....신의 몸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한에는 적들이 우리를 업신여기지 못할 것입니다.” -삼도수군통제사 신(臣) 이(李) 올림-
이순신 장군은 장졸들에게 “사지에서는 살 길이 없음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아마도 살길이다. 살 길과 죽을 길이 다르지 않다. 너희는 마땅히 알라.” 그리고 그날 밤 나는 전선 12척과 군사를 우수영으로 옮겼다. 밝는 날 명량에서 일자진으로 적을 맞이 하겠다. 라고 말을 하였다. 또다시 나는 적의 선두를 부수면서, 물살이 바뀌기를 기달리며 지휘 체계가 무너지면 적은 삼백 척이 아니라, 다만 삼백 개의 한 척일 뿐이다. 라고 한 뒤 잠을 청하였다. 적들은 아침에 왔다. 명량까지는 일렬종대로 나아가서, 거기서 적의 주력 정면에 일자 횡렬진으로 펼칠 것이다. 물에 덤비는 역류의 물결은 사나웠다. 일렬종대의 선두와 후미가 좌우로 갈라지면서 종대는 횡대로 바뀌어갔다. 일자진을 펼쳤다. 명량 어귀에서 나는 외가닥 일자진으로 물결을 버텨가며 기다렸다. 적들은 더욱 다가왔다. 일자진은 움직이지 않았다. 나는 기다렸다. 적의 날개는 점점 좁혀졌다. 총단이 무더기로 쏟아져왔다. 칼을 든 적들은 월선 공격을 준비하고 있었다. 적의 갈고리가 날아와 뱃전에 걸렸다. 사부들이 갈고리 줄을 끊어 냈다. 격군들까지 갑판 위로 올라와 뱃전으로 기어오르는 적들을 찌르고 돌로 찍었다. 나는 안위의 배 쪽으로 다가갔다. 안위의 배가 포위를 뚫고 나왔을 때. 물살은 일어서기 시작했다. 물결은 말처럼 일어서서 뒤로 달리기 시작했다. 물살을 버티려는 적들의 노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밀집대형을 이룬 적의 대열이 거꾸로 흐르는 역류에 휩쓸리면서 서로 부딪혔다. 노가 부서진 적선들은 방향을 돌리지 못하고 뒤로 밀렸다. 밀리는 적들은 점점 더 좁아지고 빨라지는 역류의 물길로 들어서고 있었다. 뒤로 밀리는 적선들이 불타는 적선과 부딪히면서 깨어져나갔다. 적병들은 물 위로 뛰어내렸다. 물 위로 뛰어 내린 적병들은 헤엄치지 못하고 물결에 휩쓸렸다. 구루지마의 시체는 내 배 쪽으로 떠내려왔다. 갈고리를 던져 구루지마의 시체를 건져 올려 투구를 씌운 채 목을 베었다. 구루지마의 머리를 대장선 돛대 꼭대기에 걸고 적의 정면으로 향해 나아갔다. 적들은 뒤엉켜서 부서지면서 밀렸다. 명량 서쪽 어귀에서 아직도 온전한 적의 후미는 이 물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하여 이순신 장군의 12척의 배가 330척의 왜군을 물리치게 되었다. 내가 칼의 노래 줄거리를 자세하게 쓰게 된 이유는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 깊게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누가 12척의 배가 330척을 배를 이길수 있다고 생각을 했을거라고 생각하는가? 그것은 투지와 나라를 위해서 싸웠기 때문이라고 생각 한다. “싸움에 있어 죽고자하면 반드시 살고 살고자 하면 반드시 죽는다“ 라는 뜻을 확실히 표현 해주는 것 같다.
이순신 장군의 내면과 그 시대에서의 처한 상황을 더 세밀하게 볼 수 있어서 좋았고, 나는 “칼의 노래” 라는 책을 읽기 전에는 영화에서만 봤듯이 이순신은 장군이다. 나라의 영웅 대접을 받으며 직위를 지키는줄 알았다. 하지만 그것이 아닌 것을 알게 되었고, 한줄 한줄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이순신 장군의 말과 행동에 대해 뜨겁게 달아오르는 내 자신을 발견 하였다. 전쟁의 참혹함과 조정과 왜적사이에서 싸우는 이순신 장군의 심정이 절박하게 묻어나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느낀 감동을 글로 표현하기에는 나의 언어 순환이 부족한 것 같다. 김훈 작가가 “칼의 노래”를 일인칭 시점으로 잘 표현 했을뿐더러 전쟁의 상황을 눈 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잘 묘사했다고 생각이 든다. 우리나라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알게 되어 다른 누군가에게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