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역설 -The Paradox of Blessing-
I remember my affliction and my wandering, the bitterness and the gall. I well remember them, and my soul is downcast within me. Yet this I call to mind and therefore I have hope:Because of the LORD's great love we are not consumed, for his compassions never fail.<Lamentations 3:19-21>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마음이 그것을 기억하고 내가 낙심이 되오나, 이것을 내가 내 마음에 담아 두었더니, 그것이 오히려 나의 소망이 되었사옴은 여호와의 인자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예레미야애가3장19-22절>
☆선지자 예레미야는 눈물의 선지자로 불렸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창조주로부터 사명을 띠고 태어났음(렘1:4-5)을 밝히고 있는 특이한 선지자이고, 그 이름도 ‘여호와께서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평생을 고난과 고통으로 점철되었으나, 그의 말과 생애 자체가 전능자의 메시지임을 드러냈습니다. 곧 개인과 나라의 죄악을 지적하고,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과 회개 그리고 회복과 메시야의 구원(렘23:5-6)을 선포하였고, 역사는 그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증명하였더군요.
그러나 그의 성스러운 말과 삶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박해와 고초를 당했고, 고통가운데서 외친 처절한 기도가 깊은 감동을 줍니다. “견뎌낼 힘과 하나님께 향한 소망마저 끊어졌다”(애3:18)고 절망하면서도, 결코 포기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 고통이 전능자를 바라보게 하고 의지하게 하는 거룩한 기회가 되었음을 고백합니다. 고통을 마음에 담아 기억하되,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결국 놀라운 창조주의 사랑과 구원의 섭리를 깨닫습니다.
곧 “주께서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니심(애3:33)”을 알고, “살아있는 사람은 자기 죄들 때문에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겠는가?”(애3:39)라고 자백하면서, 결국 “내 심령의 원통함을 풀어주셨고, 내 생명을 속량해 주셨음”(애3:58)을 깨닫습니다. 속량 곧 하나님 자신이 대가를 치르고 구원해주신 놀라운 사랑의 진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영적 축복의 역설입니다.
고난과 고통은 마음을 하나님께 향하게 하는 거룩한 은혜의 기회임을 새겨보는 시간입니다.
☞우리가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된 인격을, 연단된 인격은 희망을 갖게 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희망은 우리에게 실망을 주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우리 마음에 그분의 사랑을 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현대인)<롬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