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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님 찬미
오늘은 전교 주일이며 민족들의 복음화를 위한 미사가 봉헌됩니다.
식당에서 한 형제님께서 누가 옆에 있건 없건 아무 상관없이 성호를 긋고 식사 전 기도를
올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같이 식탁에 앉으신 한 여성 분께서 손으로 입을
가리고 크게 웃으셨습니다. 그러면서 비신자이신 그분이 하신 말씀이, 자신이 본 보통 다른
신자들이 성호를 그을 때는 거룩하게 천천히 성호를 긋는데, 형제님은 '획, 획'하며 빨리,
그리고 크게 성호를 긋는 모습이 꼭 파리채를 휘두르는 것 같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일상에서 가장 많이, 자주 바치는 기도가 바로 성호경이며 또한 식사 전 기도가
아닐까요? 물론 식사 후 기도도 있습니다만 기도 바치기를 자주 잊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죠.
우리 가톨릭의 '식사 전 기도'는 아래와 같습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저희에게 강복하소서.
◎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식당에서 조용히 성호를 긋고 식사를 시작하는 모습은 우리 가톨릭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전통의 하나입니다. 같은 시간대, 주변에 앉아서 식사를 하는 모든 분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분이 천주교 신자임을 알 수 있는 것이죠. 그런데 기도의 내용에서 볼 수
있듯, 모든 음식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니, 당신께서 우리 모두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듯, 식사를 나누고 있는 모든 이에게도 복을 내려 달라는 기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는 사이 주변 분들은 우리의 기도를 받고 계셨던 것이죠. 우리 신자 한 분이
올린 '식사 전 기도'가 옆에서 같은 시간에 앉아 있던 모든 이에게, 또한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생명을 유지하는 모든 이들의 복까지도 빌어 주었다는 사실을, 같이 계셨던
그분들은 알까요?
식사 전 기도는 훌륭한 전교 방법일 뿐만 아니라, 이웃 사랑의 실천임을 알 수 있죠. 그렇게
복을 빌었고, 우리는 음식으로 충만해지고 행복해졌습니다. 그렇다면 감사를 드려야
하는데, 우리 천주교 신자들에게는 너무도 훌륭한 감사 기도가 있죠. 바로 식사 후
기도입니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전능하신 하느님, 저희에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나이다.
◎ 아멘
+ 주님의 이름은 찬미를 받으소서.
◎ 이제와 영원히 받으소서.
+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하느님의 자비로 평화의 안식을 얻게 하소서.
◎ 아멘.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 아멘
위의 기도문을 보면 , 음식을 맛있게 먹었다는 등의 식사와 관련된 기도가 없습니다. 오로지
모든 것이 하느님께서 베풀어 주신 은혜이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이 모든 은혜에 대해서
감사와 찬미를 드리고 있습니다. 기도의 시작은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대한 감사입니다.
하늘나라에 갓 도착한 신자가 성 베드로의 영접을 받았습니다. 베드로 성인은 신자에게
하늘나라를 두루 구경시켜 주었습니다. 둘이 어떤 장소에 이르렀는데, 그곳에는 천사들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늘나라 가이드 베드로 성인은 걸음을 멈추며,
"여기는 하느님께 기도하는 온갖 청원을 접수하는 접수처라네. 쉴 새 없이 밀려드는 청원을
접수하는 접수처지."
이 말을 듣고 보니, 수없이 많은 두툼한 두루마리들이 쌓여 있었고, 천사들이 그것들을
분류하고 있었습니다. 두루마리 하나는 한 사람의 청원이었고 그 숫자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는 우선 두루마리의 크기에 놀랐고, 정신없이 바쁜 모습에 또 놀랐습니다.
이제 둘은 두 번째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여기는 은총과 축복을 포장하고 발송하는 곳이라네. 분류해서 넘어온 각종 청원을 청원한
각자에게 발송하는 곳이지."
신자가 보니 이곳 역시 너무도 바빠 보였는데, 잘 분류된 두루마리에 따라서 축복이
하나하나 청원자에 맞게 포장되었고, 끊임없이 배달 나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음 방에 들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천사 단 한 명이 할 일 없이 빈둥거리고
있었습니다.
"이곳은 확인처라네. 축복을 잘 받았다, 감사하다 등의 응답을 기다리는 곳이지."
베드로 성인의 말이었습니다.
"어째서 이곳은 이렇게 한가합니까?"
"지상 사람들은 부탁한 축복을 받고 나서 확인서를 보내는 일이 거의 없다네."
우리가, 또는 자녀가 학위를 얻고, 직장을 구하고, 승진도 하고, 가정도 꾸리고, 간절히
바라던 아기가 태어나게 되고, 바라던 모든 것을 얻고 또 얻어도 행복하지 않다면, 그것은
감사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보시면 어떨까요?
감사는 우리가 가진 것과 관련이 있기보다 내적 태도와 관련되지 않을까요? 우리가
주어진 것에 감사드리고 기뻐하지 않는다면 새로운 것, 가지지 못한 것에만 눈길을
돌린다면 영원히 행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이 성공하지 못한 것에 실망하기보다 말썽 피우지 않는 것에, 경제적으로 곤궁하지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다른 가정에 비해 가진 것은 없지만 가족
모두가 건강하다는 사실에, 분하고 억울하고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이 너무도 화나지만,
주일, 성당에 가서 매달려 하소연할 수 있는 하느님께서 계시다는 사실에 그나마 그 모든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면, 이만해도 감사하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게 될 것입니다.
감사하는 것에는 더 큰 감사할 거리가 따라옵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퍼르전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촛불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별빛을 주신다.
별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햇빛을 주신다.
또한 햇빛을 보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하느님은 천국의 빛을 주신다.
유다 전통에서 날마다 하느님께 백 번 감사하기를 권한다고 합니다. 어떻게 백 번이나
감사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께서 일상에서 수도 없이 베푸시는 은총에 대해 무심하지
않도록 자신을 일깨운다면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음에, 여명이 밝아오는 하늘을 볼 수 있음에, 식사를 하고, 일터가 있음에,
그리고 함께 일하는 동료가 있고, 말썽을 부리고 심술을 부려 속상하게 만들어 줘서 인생
심심치 않게 만들어 주는 이가 있다는 것에, 그리고 돌아갈 가정이 있고, 내 몸 누울
잠자리가 있는 사실에 감사드린다면 백 번도 부족하지 않을까요?
헨리 나웬은 말했습니다.
나를 황홀하게 하는 것은
내가 감사하기로 결심할 때마다
감사해야 할 새로운 것들을
매우 쉽게 발견한다는 사실이다.
사랑이 사랑을 낳듯
감사는 감사를 낳는다.
이렇듯 '식사 후 기도'는 감사를 통해 주님께 찬미드리도록 이끕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지은 죄대로 우리를 다루지 않으시고 연옥에서 기회를 주시는 주님께 세상을 떠난
모든 이가 설사 신자가 아니었던 영혼이라 할지라도 연옥에서 주님의 자비를 깨닫고 어서
천국에 들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의 모습인 것입니다.
옛날, 어른들께서는 '식사 후 기도'의 중요성을 늘 강조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들을 위해
기도할 수 없는 연옥 영혼들은 우리가 식사를 마치고 자신들을 위해 '식사 후 기도'를 바쳐
주기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러서 늘 식사 후에 기도를 아주
열심히 바쳐 줄 것을 부탁하셨습니다. 자신들도 곧 연옥에 들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연옥 영혼이란 가장 가난한 존재들입니다.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래서 오직
살아있는 이들의 기도와 희생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는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입니다.
식사 후, 우리는 세상을 다 가진 것과 같은 포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그
행복의 순간에 '식사 후 기도' 바치는 것을 잊고 자리를 뜹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것은 '식사 후 기도'는 우리가 한 끼 배부르게 먹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는
의미보다는 배부르게 먹어 포만감이 가득한 행복으로 가득한 그 순간에도 하느님의
은혜와 가장 가난하고 불쌍한 이들을 잊지 말라는 교회의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지금
나의 행복에 갇혀있지 말고 늘 이웃을 배려하라는 뜻이 포함되었는 것이고, 또한 가장
쉽게 이웃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
있음에, 그리고 자신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과 이웃 특히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음에 감사드려야 합니다.
오늘은 전교 주일이며, 민족들을 위한 복음화를 위한 미사를 봉헌합니다. 교회는
1026년부터 해마다 10월 마지막 주일 앞 주일을 '전교 주일'로 정해, 전교 사업에
종사하는 선교사와 전교 지역의 교회를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 또한 교회의
본연의 사명인 선교를 실천해야 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들음에서 옵니다.
그런데 선포하는 사람이 없으면 어떻게 들을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며 우리에게
선포하는 이가 되어 달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여라."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제자들을 파견하시며 말씀하셨듯, "내가 세상 끝 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라고 말씀하시며 우리에게 용기와 힘을 주십니다.
우리는 모두 선교하는 제자들임을 깨닫고, 전교 주일을 맞아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용기와 힘을 청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믿고, 자랑스럽게 우리의
손을 파리채 휘두르듯 힘차게 성호를 그읍시다. 선교는, 성경에 정통해 사람들에게 해박한
성경 지식으로 성경 구절을 인용해 복음을 전하고, 설득해 교회로 부르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생활 안에서 신앙인의 삶을 실천하는 것이 바로 선교입니다.
선교는 나에게부터 우선 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남들 앞에서 내 몸에 성호를 그어
놓고 어떻게 세상에 해가 되는 행동을 할 수 있겠습니까? 성호로 내가 가톨릭 신자임을
선포해 놓고 어떻게 사랑을 실천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내 몸에 십자 성호를 그어 놓고
어떻게 내게 주어진 십자가를 거부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 모두, 우선 식사 전, 후 기도를 통해 우리에게 하느님의 은혜가 가득히 주어지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받았든, 받지 못했든 상관없이 모든 일에 감사합시다.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하며 하느님을 찬미합시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웃을 위해 기도합시다.
그렇게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합시다.
크게 웃고 덕담을 하며 축복과 칭찬의 말로, 그리고 약간 손해 보며 기쁘게 삽시다.
참 좋으신 주님! 우리 모두가 주님께서 참 주님이시며, 참 좋으신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소서. 그래서 우리 모두가 주님 닮은 삶을 살아 주님의 사랑을 이웃에 알리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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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는 제 자신에게 자신감이 없든지 이기적인 것 같습니다.
많은 이들이 있는 곳에서는 식사전 기도를 잘 올리지 못합니다.
부끄러워서가 아닙니다.
누군가 절 보며 카톨릭 신자임을 알아내고 제 행동에 의해 카톨릭 신자라면서 저렇게 행동하다니, 저런 사람이 신자라고? 하며 하느님을 욕보이게 할까봐, 함부로 성호를 긋지 못한답니다.ㅠㅠ
아마도 신자임을 의식하지 않고 살고 싶은 내 이기심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사족입니다만,
며칠 전엔 식사전 기도를 바치고 있는 남편에게 불현듯 건의를 했습니다.
"주님, 은혜로이 내려주신 이 음식과 이 음식을 준비해준 모든 이들에게도 강복하소서."라고 기도해 달라고 ...
"준비해준 모든 이들"에겐 요리한 '저'도 포함되니까 말이죠.^^
아마도 '저희에게 강복하소서'란 청원 보다는 제가 좀더 특별한 대우, 아니 남편이 제 요리의 수고를 알아봐 주고 기도해주기를 바랬던 거 같습니다.